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질의서
노회찬(펌)
지난 20일 한미양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의 지역분쟁에 대한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투입을 전면 허용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물론 우리 국민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우리 국민 누구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공개질의에 대해 국민 앞에 답변할 것을 요구합니다.
1. 대통령께서는 2004년 11월 미 국제문제협의회(WAC) 연설을 통해 “(주한미군의) 융통성있는 운용에 대해선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지만 내가 말한 `융통성' 이란 건 동아시아에 있어서, 주한미군 역할에 있어서의 유연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게 해두고 싶다”고 하였으며, 2005년 3월에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장관급 전략대화에서의 합의는 대통령께서 그동안 누차 천명해 온 `원칙'을 번복한 것입니다. 번복 경위에 대한 대통령의 납득할만한 해명을 요청드립니다.
2. 이번 공동성명에는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얼핏 보기에는 기존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지만, 합의가 아무런 법적 강제력이 없는 `공동성명'이라는 점, 사전협의 의무조차도 없다는 점, 실제 동북아 분쟁에 주한미군이 개입할 경우 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분쟁연루가 불가피하다는 점, 분쟁발생 이전에라도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과 군비 증강이 예상된다는 점, 한미동맹의 종속성과 과거 경험에 비추어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평화번영정책'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3.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안보와 관계없는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한반도에 대한 외부의 무력공격에 대한 공동대처’를 목적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문제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해외분쟁 개입과 침략의 전초기지로 전락시켜 한반도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중대사항입니다. 따라서 국회의 사전논의와 동의가 없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안전보장 등 중대사항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 제60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는 한 공동성명은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전략적 유연성이 허용된 주한미군은 평택주민 강제철거를 통해 확장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평택기지를 이용하게 되고, 국민혈세인 6,8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외교부과 NSC사무처도 미군기지 이전재배치는 한미동맹 재조정의 하드웨어이고 전략적 유연성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택기지 이전재배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해 추진하는 해외미군재배치계획(GPR)과 무관하다고 강변해온 정부의 과거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국민의 땅과 혈세로 추진되는 평택기지 이전확장을 즉각 중단하고 방위비분담금 지원을 즉각 중단 용의가 없는지 답변할 것을 요구합니다.
5. 우리 국민은 그간 대통령의 말씀과 의지를 믿고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협상이 우리의 국익을 지키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형태로 귀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동성명은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합의였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 과정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으며,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한 바 없습니다. 심지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도 전혀 사전에 설명하거나 협의하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 대토론회 개최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는 매우 기본적인 요구에 불과합니다. 대통령의 긍정적 답변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은 협상과정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를 추진해 나갈 것임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히는 바입니다. 한반도의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국회가 본연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야당의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2006. 1. 23.
민 주 노 동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