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그다지 엽기적인 사건은 경험하지 않았다 싶었는데 마태우스 님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팍- 삘(!)이 꽂혀 버려서뤼 어설프게 한 자 적어보렵니다.

전 지금도 좀 그런 기질이 남아 있긴 합니다만, 학창 시절 꽤나 융통성이 없는 아이었지요. '뭐 하지 말아라' 라고 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지요. 심지어 대학에 입학해서는 술 마시고 필름 끊겼을 때의 레퍼토리가 집에 수십 번 전화해서 "나 오늘 늦어서 선배 언니네 집에서 자고 갈께요." 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을 정도니까요. 알코올 마저도 어느 정도 이성으로 커버가 되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대충 눈치껏 알아먹으셨으리라 봅니다.

고로 전 또래 친구들 보다는 선생님들과 더욱 친한 사이였지요. 그렇다고 못 되게 마구 일러 바친다거나 그랬다는 건 아니고요. 말 없고 조용하다 못해 친구들 사이에선 존재감을 거의 인정받지 못했는데,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다보니 선생님들의 눈에는 '저런 애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을... 그런 아이였던 거지요.

하지만 그런 저도 된통 두드려 맞았던 적이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받아쓰기를 해서 다 맞은 이에게는 '상'이라는 글자가 찍힌 색종이를 나눠주곤 했었지요. 노트에 붙여서 10개가 모이면 뭘 주고, 20개가 모이면 뭘 주고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곤 했던...

어느 날 받아쓰기를 했는데 전 분명 하나를 틀렸습니다. 그런데 제 짝이 제 답을 고쳐서 100점을 만들어놓았더라고요. 선생님께서는 100점 받은 아이들은 손을 들라고 하셨고 여느 때처럼 '상' 자가 찍힌 도장을 나눠 주셨지요. 전 분명 100점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건만... 글쎄 제 짝이, "수정이도 100점이에요" 라고 말해버렸지 뭡니까. 소심했던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체 선생님으로부터 100점 받은 아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그 작은 종이를 받고야 말았지요. 아마도 사실대로 말하면 제 짝이 혼나게 될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던 듯. 하지만 100점이 아닌 게 100점이 되어버렸으니 어찌나 기분이 이상했던지, 받자마자 구겨서는 호주머니에 넣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지요. 선생님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제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신 듯, "너 나와!!" 라고 소리를 치셨고, 그 때부터 무차별 구타가 시작했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묻지도 않으셨지요. 정말이지 신체의 모든 부분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전 깨달았답니다. 뺨을 때리시고 머리채 잡고 쥐어 뜯으시고 발길질도 하시고, 쓰러지면 일으켜 세우신 후에 다시... 한 30분은 그렇게 맞은 듯... 입술이 터지고 머리카락은 일부 뽑혀나갔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버렸다지요. (심지어 그 선생님 임산부셨습니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솟구치셨는진 아직도 의문입니다;;) 집에서 손바닥 한 번 맞아본 적 없이 곱게 자랐던 저였건만...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얻어터졌으니, 심지어 아이들은 넘어졌다가 다시 오뚝이 마냥 일어나야 했던 절 보고 막 웃음을 터뜨렸지요. 맞는 거 보는 게 재미라도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패싸움을 구경하는 걸지도;;) 하지만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증오보다는 '내가 잘못했어. 난 죽어야 돼.' 라는 생각을 제가 계속 해대고 있었다는 사실이랍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자아존중감이 심히 낮았었던 듯;;

터벅터벅.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거의 1시간 30분은 걸어서 집에 왔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지요. 하지만 어린 아이의 심히 조심스러워 하는 행동은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겠지요. 어느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엉거주춤, 멍든 엉덩이가 아파서 완전히 앉지도 못한 묘한 자세로 있는 저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제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답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어찌 행동했을까요? 아- 전 그 와중에서도 계단에서 굴렀느니, 자전거 타다가 엎어졌느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변호하고야 말았답니다. 지독한 모범생 증후군...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신 어머니께서는 그 길로 학교로 쳐들어가셨지요. 그나마 차분하고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셨으니 망정이지, 속으로는 아마 끙끙 앓으셨을 겁니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난 후 어머니께서는 그러시더군요. 그 당시 당장 경찰에 신고해버리고 싶었다고.. 참느라고 많이 힘드셨다고...

어머니께서 학교를 다녀가신 후 선생님께서는 저를 부르셨고, 멍 들 때 바르는 연고 하나를 주시더군요. 미안하다고... 하지만 먼지 나듯 두드려 맞은 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되진 않음을... 그게 전부였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곧 출산 휴가에 들어가셨고, 담임 선생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셨거든요. 어쩌면 제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도 전 그 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부들부들 떱니다. 인생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데 있었던 두 가지 일 중 하나인지라... 그 때 왜 그랬는지 이유만이라도 물으셨다면 싶은... (그럼 뭐해요. 제가 대답을 안 했을 거 같은데... 크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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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2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위와 폭력은 무저항과 침묵에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거 같군용... 흐...
평범한 여대생님 답지 않는 유년 시절.. ^^; 정말 말 잘 듣는 학생이었네요.. (저도 조용한 '범생' 스타일이긴 했지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