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신드롬 -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천정환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씌어진 역사와 우리의 기억은 가장 단조롭고 앙상한 뼈다귀에 불과하다.’ 머리말 중에서

미시사와 거시사는 아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뼈와 살을 분리 해낸 활어의 잔해처럼,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서로의 유기성이 입맛에 따라 철저하게 단절되어 버린 그것.
그래서 본래의 기억, 형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숭고하다. 그러나 너무나 흔해빠진 구호로 전락한 과거사 청산, 역사 바로 세우기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역사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1926년 몰락한 봉건의 표상인 순종의 죽음, 1936년 손기정 베를린 마라톤 우승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라는 방점을 두고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대중적 흐름을 미시사와 거시사의 시선으로 아우른다. 지그재그처럼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이 책의 구성은 다소 산만하지만, 서사성과 저자의 재구성 능력(마치 드라마 제 5공화국 같은)은 나름대로 개성 있는 근대의 시선을 보여 준다. 게다가 상당히 독소적이고 냉랭한 문장들은 시니컬한 유머를 자아낸다. 예를 들면 난징 대학살에 대한 설명을 ‘그 학살은 최첨단의 살인 과학이 동원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학살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개별적인 군인들 각각의 손노동으로 저질러졌다.’는 식의 표현이나 ‘은어’나 ‘속어’가 은근히 등장하여 적절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를 선명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두고 벌어진 언론사 기자의 민족주의적 보도 행태, 미디어 자본의 태동, 대중의 신드롬, 그것을 지켜본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탄압의 과정 같은 것이 그 예이다. 큰 그림은 역사 교과서적이고, 작은 그림들은 드라마틱하다. 다시 말하면 픽션답다.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흐물흐물하지도 않은 것이 먹기는 좋은데 정리가 안 되는 것이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이상, 윤치호, 이광수, 함석헌, 심훈, 여운형 등 수많은 인물들이 저런 식으로 등장했다 사라진다. 그들은 그들 시대를 대표하면서 역사를 이어갔다. ‘너절한’ 부르주아 민족주의, ‘열렬한’ 친일, ‘순진’했던 독립 운동 등 근대성, 변태적 식민성, 탈근대성 등을 골고루 보여준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망탈리테는 그 흔적을 찾아가기에 매우 좋은 유물이다. 그런데 70년 전 유물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스포츠에서 보여진 국가에 대한 맹렬한 추종과 타국에 대한 적의를 보고 있자면 흔한 얘기로 하는 전쟁 대용물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승리! 그것은 민족적 우열과 국가적 파시즘의 발판으로 손색이 없다. 파시즘과 민족주의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섬세하게 어떻게 조절되고 대중을 장악해 나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은 부단히 애쓴다. 추악한 형상이 드러나고 그것은 역시나 ‘앙상한 뼈다귀’였다..

역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할 것 같다. ‘당신이 숨쉬는 그 순간에도 수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함께 들이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수많은 인류의 죽음과 행복과 욕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인지하라’. 의식하고 있던 안 하던 간에 개인은 이미 대중이라는 거대한 정체성으로 명명된다. 때로는 민족의 탈을 쓰고, 때로는 이데올로기의 바퀴를 달고, 널뛰듯 날뛰는 그것은 역사의 상흔만 남기고 잊어버린다.

잊는 것이 속편하긴 하다. 그런데 말이다. 윤치호가 초대 교장이었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이미 내 주위에서 계속 발견되는 그놈의 역사가 자꾸 거슬린다. 그러고 보니 유도를 의무적으로 배웠던 기억은 일제 치하의 기억, 상무 정신, 우승열패의 신화의 맥을 이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애국조회로 국민성을 다지고, 청군 홍군 운동회로 체력을 국력으로 승화시키고, 월드컵 때 보인 붉은 물결의 집단성과 광적인 열광이 무지 거북하다. 타인의 시선에 걸려있는 나(우리)의 정체성이 너무 구질구질해지니까.

그래서 현재 진행형인 ‘끝나지 않는 신드롬’이다.
열강에 대한 무한한 동경, 자학적인 피해의식, 집단에 의해 개인은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어찌 인간을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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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9-1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미시적인 사유가 거시 담론을 준비하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라주미힌 2005-09-1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살가운 맛도 좋고, 좀 더 다채로운 이해를 돕는데에 너무 좋다고 생각해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