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화 기획위원
후덥지근한 날씨에 ‘대연정’이라는 끈적끈적한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 연정인지, 왜 하필 지금인지 등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연정 상대가 한나라당이라는 점이다. 개혁을 내걸고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은 끝내 ‘개혁’이라는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던졌다. ‘지역구조 해체’라는 시대적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과대망상의 나르시시즘일까, 아니면 바보스러움을 가장한 독선과 오만일까, 벌거벗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점을 알려고 하지 않듯, ‘대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에게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프랑스의 좌우동거 사례를 들지만 한참 헛짚었다. 대통령 임기 7년, 의원 임기 5년이던 프랑스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는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헌법에 의해 좌우동거를 강요받았다. 그나마 3년 전에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이는 개헌을 통하여 앞으로 좌우동거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연정이건 소연정이건, 그것은 국민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지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임의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독일의 사민당과 기민당의 대연정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반개혁 세력’, ‘열린우리당=개혁 세력’이라며 민주당과의 분당을 관철시킨 집권세력이다. 그들의 눈엔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지역주의가 똑같은 것인가. 그러나 팽창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가 같을 수 없듯이, 영남의 공격적 지역주의와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는 같을 수 없다. 민주당을 공격하면서 ‘자, 우리를 봐라, 우리처럼 해야 하지 않니!’라고 영남과 한나라당을 향해 시위를 벌였지만, 역사과정의 산물인 이 땅의 공격적 지역주의는 그 정도 시위로 없어지지 않으며, 선거구제를 바꾼다고 해도 없어지는 게 아니다. 개혁만이, 오직 개혁만이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지난한 과제의 해법이며, 그 때문에 개혁을 주장한 정치세력에게 국민이 표를 주었던 것이다.

지역주의에 대한 노 대통령의 태도는 이라크 파병 과정에서 미국을 대했던 태도와 흡사하다. 힘센 깡패에게는 꼼짝 못하고 약한 동네 약골에게만 큰소리치는 격이다. 집권세력에게서 영남의 공격적 지역주의를 개혁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를 볼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역주의가 망국병인 것은 그것이 사회개혁과 건강한 시민의식의 형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곧, 개혁이 궁극적 목적이지 지역주의 해소가 목적일 수 없다. 따라서 개혁을 저당잡혀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발상은 본말 전도 그 자체다. 그러나 지역구조 해체라는 역사적 위업을 떠맡은 노 대통령의 고정관념은 한나라당과 정책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니 연정 못할 이유가 없다는 발언으로까지 나아간다.

지금 시민사회는 ‘엑스파일’과 관련해 정-경-언-검 유착을 고발하면서 가장 중요한 고리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조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착의 한 당사자인 검찰은 불법도청만 조사하며 이상호 기자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바로 그 삼성이 무노조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자행했던 위치 추적에 대해서는 맥없이 물러섰던 검찰이다. 그런데 집권 초기에 검사들과 토론을 벌였던 노 대통령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대통령 되기 전과 후의 변화무쌍함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따를 집권자가 또 있을까. 미국 앞에서 옷을 벗고 재벌 앞에서 옷을 벗더니, 마침내 영남의 지역주의 앞에서 옷을 벗고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를 뽑은 국민이 초라할 따름인데, 더 벗을 옷이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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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8-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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