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사회에 있어서 개인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공간, 행동의 조건이 집단, 기관,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조정되어 진다면 개인이 진정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자아의 의지와 인식의 출발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삶과 개인의 성찰로 향하는 시발역이면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훈육된 의식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는 현실의 종착역이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듯한 우리는 과거와 미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개선의 의지는 모호하며, 현실의 현상은 난해하다. 어쨌든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61p)’ 아니겠는가.

에티엔느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은 고도화 된 사회적 억압기제에 무기력해진 개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목표를 추구하기에 개인은 소외되고, 초라하고, 나약해진다. 그렇게 탄생한 흔해빠진 편의의 논리, 편의의 정치학은 경쟁이란 구도 위에서 무적이 되곤 한다. 그렇다 타산적인 이해를 부정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적 존재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이다.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양심을 안락사 시키기 위한 독극물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목이 칼칼하지 않을까. 심장이 뜨끔거리고 식도가 타는 느낌에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엄은 내 안에서 스스로 결정 해야 한다. 그래야 생의 의지가 되는 것이다. ‘윌든’에서의 녹색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개인의 양심, 자연적 도덕률을 깨우는 아침 수탉의 횃소리가 되기를 선언한다. 이름하여 ‘시민 불복종’.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우월한 지능이나 정직이 아니라 우월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쉴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155p)

전쟁에 반대하고, 노예제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힘보다는 자신의 양심의 목소리에 따르겠다는 그의 선언은 책 제목대로 세계를 뒤흔든다. 맑스주의자, 자유주의자, 환경주의자, 인권운동가, 히피 등을 비롯해 간디,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은 수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었고 실천이 되었다. 150년 전의 선언은 현재에도 유효하기에 예언자로써의 그의 영향력과 선견지명이 놀랍지만, 그만큼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변화는 무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여튼 당시에는 비난과 왜곡된 평가로 무시되어온 개인의 목소리가 세계의 양심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다. 소로우가 말하는 저항정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의 힘에 현대인의 무기력증을 대입시키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작이 얼마나 작아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어떤 일이든 한번 제대로 행해지면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48p)

사실 현대인들은 결과를 두려워 한다. ‘결과가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를 본다면?. 시간낭비일수도 있고, 귀찮아!.’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진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운명은 비극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장미빛이었던 경우가 있었던가? 기득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가슴 속에 공포와 좌절을 심어준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외친다. ‘나에게 힘을 달라. 내가 세상을 바꿔주겠노라.’

‘당신의 표를 모조리 던져라. 종이쪽지 한 장이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45p’
우리는 우리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를 못하고 있다. 양심의 목소리보다는 왜곡된 ‘상식’과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노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사슬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그 사슬을 더 견고히 하기에 바쁘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사상전향이나 병역을 거부한 양심수들일 것이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54p)

법과 질서, 제도와 정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인간을 억압하는 데에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빨갱이, 병역기피자로 보는 건조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기계적인 관성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 국가주의적인 요소가 깊숙이 박혀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사회는 단결이 잘 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법을 잘 지키는 사회가 아니다. ‘국가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원천으로서 개인을 더욱 고귀하고 독립된 힘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접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없을 것이다.’ (125p)
다수가 하나인 사회가 아니라, 하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게 산다면 수치스런 일이며,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는데도 부귀를 누린다면 이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65p
소설가 공선옥씨는 그 수치스러움을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라는 산문집에서 제대로 느끼고 있다. 나의 배부름을 나의 부끄러움으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힘이 개인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는 역사를 담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인의 힘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에 간디의 비폭력,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의 힘),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리고 환경운동 등으로 확장되고 진보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개방성의 일면을 드러내려고 이 책은 친절하게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사상의 배경’, ‘선언문’, ‘선언의 여파’. 크게 보면 이렇게 구성되어 있고 어느 곳을 펼쳐도 역사의 각 장면들을 선명한 칼라로 확인할 수 있다.

얇으면서도 강렬한 책이다. 안 읽으면 후회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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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6-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리뷰에서도 사티아그라하가 느껴집니다. 안 읽으면 후회할 리뷰를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라주미힌 2005-06-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닉네임 바꾸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