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감독 : 데이빗 와이즈만 

 

 

제목 : 두 개의 문
감독 : 김일란, 홍지유 

 

매년 인천의 작은 상영관에서는 관객으로 보이는 사람과 빨간 티를 입은 자원봉사자의 비율이 엇비슷한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규모만 보자면 인권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반추하게끔 한다. 하지만 여성, 외국인노동자, 성적 소수자, 사회 취약층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고발성 짙은 다큐멘터리들이 주를 이룬다. 소재도 그렇긴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 좀 더 대상을 면밀하고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국내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면들을 접할 수 있다.

올해 본 작품은 198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사회에 HIV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한 공동체의 변화와 계속되고 있는 차별과 편견의 벽에 질문을 던지는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와 야만적인 개발 이데올로기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 용산참사, 그곳에서 일어났던 생생한 증언과 자료를 '역사화' 시킨 '두 개의 문'이다.

연달아 보아서 그런 효과가 났는지,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묘한 대비와 동질의 문제들을 보여준다.
숨어지내야 했던 그들의 삶에 이름 없는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에게 죽음은 곧 사회적 편견이 그대로 투영된다. 게이 암이라 명명된 에이즈. 치유되야할 사람을 보지 못하고, 병과 인간을 함께 묶어버리고 배제시키는 수법이 얼마나 역사속에서 빈번하게 출현했는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노력들은 어찌나 눈물겹던지.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공동체를 끝까지 지켜냄으로써 에이즈는 병명을 갖게 되었고, 그들도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싸움의 현장은 주변이 아닌 우리 생활 전면에 있음을 공감하게끔 하는데, 솔직히 졸았다. 인터뷰식의 단조로움이 좀 심했다. 인상적인 것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동료, 친구들 곁에 끝까지 남았던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과연 선택한 것인가, 그들이 가진 선택이 그것뿐이 없는 상황이었는지. 어찌됐던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그럼으로써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용산이라는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던가. 대테러리스트 진압 부대의 진압으로 불타 죽은 사람들... 뉴스와 책, 추모집회에서 느꼈던 부분들을 다시 다큐멘터리로 접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농성자와 가족들은 감옥에 가 있는 최소한의 진실조차 드러내지 못한 이 사회의 병적인 면은 에이즈보다 치명적이다. 에이즈는 약이라도 있지. 기억력을 믿을 수 없다면 이런 역사적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생상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 많은 희생자들과 희생될 사람들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 있음으로써 공동체를 지켜낸 그들과 도시 곳곳에서 파괴되고 내쫓기고 죽임을 당하는 그들이 있는 그곳에는 과연 누가 있었는지. 진압을 명령한 자는 명령을 받은 자들의 생명조차도 가벼이 여겼다는 점도 두고두고 새겨야 할 부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반딧불,, 2011-11-2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수도권이 아닌 것이 무척 아쉬운...
책도 그런 느낌이 강하더라구요. 동성애 인권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공감이 안가고..성명서들을 한꺼번에 묶은 듯한.
공감은 없고 그저 표현만이 난무하는 느낌이랄까.
감성을 두드리는 책이 가슴에 남듯 영화도 그렇더라구요.

라주미힌 2011-11-29 09:15   좋아요 0 | URL
흐흐.. 수도권 변두리라도 가끔 누리는 혜택이라서 .. 게다가 무료 상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저런 영화는 공중파를 타도 좋을거 같은데.. 아쉽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