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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오은선씨가 요즘 이슈가 되었다. 관심 없던 분야를 관심 가지게 만들어 주는 몇몇 언론이, 높은 산 여럿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신나게 달아주더니, 정말로 정상에 올랐는가에 대한 진위여부의 공범자가 되는 과정을 또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산악계의 황우석이 될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지만, 경마저널리즘의 폐단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오은선씨의 문제이고,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촌극인가? 이 책을 보니까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논란임을 알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인간이 많아지니 상업화 되어 돈만 있으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산악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정신마저 훼손하여 누가 먼저, 누가 많이, 누가 더 빨리, 올림픽 정신처럼 경쟁적으로 산을 타고 있다. 헬기에 탑승하여 중간부터 오르질 않나, 산소 마스크 착용 유무에 따른 ‘진골-성골 산악인’ 논란, 여러 등반 팀들이 벌이는 신경전과 등반 코스의 정체현상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봐도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소개가 된다. 잦은 기후변화와 추위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믿는 도덕성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져버린 순간을 기록했다. 이 논픽션은 아무리 경험이 많고 뛰어난 산악인이라도 고산지대에서는 철저하게 무기력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든지 찾아온다고 한다. 흔히들 산이 인간을 허락한다 하지 않은가. 상업화 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것이다. 스폰서가 없으면 산에 오를 수 없고, 스폰서가 있으면 무조건 올라야 한다. 비용과 인명을 바꾸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르파들은 이들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서 오르고 또 오르다 참변을 맞이한다.
무엇을 위해 위험한 산을 오르는지 일반인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산악정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오은선씨 논란을 보면서 이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 등반이 이미 수 많은 사람들에 이뤄졌다고, 더 많이 오르는 것으로 승부하려는 그들은 그저 호들갑 떠는 시시한 뉴스거리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알기는 알까. 명예는 커녕 무사귀환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