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영화감독인 남편은 불황기의 영화계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하고자 고군분투하나 작업환경은 나아지는 게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운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가 밤새 노래방 도우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시아버지는 유서 한통 남기고 목을 메고 자살을 하였다. 아내의 시동생은 은둔형 외톨이로 아버지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내의 소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시나리오 수정 작업만 계속 할 뿐이다. 이내 밤이 되자 아내는 노래방 일터로 나서고, 남편은 탈고 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 대표를 만나러 가고, 시동생은 축 늘어진 아버지의 시신 아래에서 찬밥을 차려 먹는다.
가족들은 아버지 곁에서 똑같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데...




당구장 주인이 죽었는데, 왜 나의 아내가 소복을 입고 슬퍼하며, 나에게 맞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비는 자살함으로써 풀 수 없는 문제로 남겨두었다. 자신의 시신을 화장실에 걸어둔 체 영혼은 울부짖는다.
둘째야~ 나 좀 내려줘. 목이 아프다. 첫째야~ 나 좀 내려줘. 며느라기야 나 좀 내려줘~

삶의 목을 죄는 것은 관계의 끈이기도 했다. 나의 아내였고, 내 아들이었고, 며느리였다. 그 끈은 화장실에 영혼을 붙잡아 맨다. 차라리 툭하고 끊어지는 것이 편하다 아니면 누군가 끊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은 인연은 단두대에 잘린 머리보다도 못하다. 왜 이렇게도 질긴 것인지. 어미가 남긴 기억의 맛살만 먹으며 나오지도 않는 똥만 싸려는 둘째에게는 똥냄새가 더 반가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송장냄새조차도 저 고장 난 환풍기만 고쳐지기만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첫째의 아내이자 둘째의 아이를 가진 며느리는 오직 손님을 받을 뿐이다. 집에서건 노래방에서건 그녀는 떠내 보내는 자가 아닌 받아내는 자다. 송장은 남편이 치울 것이고, 남편은 영화를 찍어야 한다. 둘째가 아내의 침실에 들락거려도 자신은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환풍기를 고치는 일 따위는 안 하는 감독이다.

“내 일에 충실한 것뿐인데, 왜 남들은 나를 무관심하다고 할까”

썩은내가 가득한 집은 기능만 남은 인간들의 역할만을 보여줌으로써 부조리한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제거한 체 하던 것을 계속 하는 인간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맡게 해준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송장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환기가 되지 않은 공간은 흡사 순장을 당한 사람들의 무덤과 같다.

그 집에는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았다.
지구상에 어딘가에서 이들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집의 화장실에 가보라. 송장의 목에 감긴 끈이 아직도 성한지…

역하고 음울하지만 해학을 놓지 않는 연기와 연출이 인상적인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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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1-1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나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09-11-16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6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