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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iusti meditabitur sapientiam
의인이 지혜를 생각할 것이니라
Et lingua eius loquetur iudicium
그리고 그의 혀가 심판을 내릴것이니
Beatus vir qui suffert tentationem
유혹에 저항하는 자 은총을 입으니
Quoniqm cum probates fuerit accipient coronam vitae
시련 받은 만큼 생명의 왕관을 받을것이다
Kyrie
주여
ignis divine, eleison
당신의 신성한 불로 자비를 베푸소서
O quam sancta
오, 이 얼마나 성스러운가
quam serena
얼마나 고요한가
quam benigma
얼마나 자비로운가
quam amoena
얼마나 위안스러운가
O castitatis lilium
오, 순결의 백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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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유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성인에게 필요한 것은 유년의 기억 또한 성장을 시키는 일. 눈높이 취향은 애니메이션읉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다.
위협이란 늘 제어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뚜렷한 인식에서 온다. 인류에 의해 태어났지만, 인류와는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디크로니우스는 제어의 대상이자 제거의 대상이다.
그녀들의 전제 조건은 미-소-녀. 누가 성인애니메이션이 아니랄까봐 1편부터 신체분리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하드고어와 미소녀, 일본작가들은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한다는 일종의 공리가 있나 보다 -_-; 선과 악에 미와 추를 등식처럼 붙이는 보편적인 구도와 조금은 다른 일본 특유의 어리면 예쁘고, 늙으면 추하다는 기준이 작동한다. 하여간 어리면 일단 눈이 얼굴의 1/3이다. 남성적 미추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면이지만, 주체와 피지배에 대한 구분, 아이(특히 미소녀)에 대한 절대적 지위에 대한 ‘아저씨 로망’이 한껏 느껴지는 애니이다.(로리콘이라고 부르는 듯)
쿠로마 실장은 아마도 이것의 대표성을 띤 인물이 아닌가 한다. 아이에 대한 욕망은 부정(父精)의 부정(不精)으로 이어지지만 결국엔 그 벽을 인정함으로써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는다. 돌연변이는 외부의 변이가 아닌 내부의 일탈의 한 면일 수도 있다.
디크로니우스는 이런 욕망들의 결집이다. 장관(남성) 본인이 디크로니우스이면서 새로 태어나는 여자 디크로니우스를 죽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보아도 남성적 지위에 대한 실력적 행사와 귀엽고 깜찍한 여자 아이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야릇함이 양가적으로 보여진다.
루시에게 인격분리적 성향을 부여한 것 또한 흥미로운 설정이다. 쿠로마에 대한 복수는 치밀하고 인정사정 없이 이루어진다. 아이의 천진난만함까지 더했으니 잔인함은 절대, 순수한 악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한 비인간화된 모습을 통해 그들을 대하는 인간의 비정함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인격의 분리, 정신적 분열은 아마도 파괴적 본성을 깨워 그녀를 분노케 한 모든 것들에게 복수를 하게끔 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렇게 분열된 자아의 편안한 죽음은 그녀를 완전한 ‘미소녀’를 만들기 위한 간편한 방법인 것이다. 엔딩에서 줄줄 흐르는 카타르시스는 온전한 남성의 그것으로 탄생시키는 데에 한치의 모자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