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앞에 있는 아저씨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먹거리를 양손에 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본인이 먹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양과 질을 따지고 보면 분명 어른의 몫은 아니었다.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부모의 모습은 여러 사람의 흔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추억들은 아주 멀리서 발견되었다.
꼭 약주를 하고 퇴근하실때면 과자나 치킨 같은 것을 사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거 먹어보라며 내 앞으로 쓰윽 내밀던 비닐 봉지에 있는 것들은 나이드신 분들이 어렸을 때나 즐겨먹었을 만한 과자였고 모양도 참 없었다. 취하신 모습이 싫어서 투정 비슷하게 과도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힐끗 보고 '맛없다'며 딴짓을 하다가도 한 두개 꺼내먹다가 반은 그 자리에서 먹어버렸던 것을 아시는지 늘 그것을 사오셨다. 
그런 일은 이젠 없다. 나도 아버지도 세월을 타고 어느덧 여기까지 흘러왔으니까. 가끔 취하신 모습을 보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눈은 휘청이는 다리보다 손을 먼저 보았던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염치없게도 나의 손은 언제나 빈 손이었는데, 여전히 눈은 그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사 온 것을 맛있게 드실때면 이거 말고 더 맛있는게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게 되지만, 세월은 그 분에게도 나에게도 다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워진다.
나는 그대로인거 같은데, 당신은 참 많이 변하셨다. 젊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낯선 사람이 과연 나의 아버지인가...
인간은 세월을 견뎌내면서 그 모든 모습을 하나씩 담아간다지만, 이 생소한 시간의 꼬임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내가 살아왔던 이 공간에서 시간은 따로 걸어왔다니... 바빴나?.. 바빴지.. 핑계냐?  핑계지..
난 성인이 되었고, 그 분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태어났다. 언젠가는 내 손에도 애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싸들고 가는 날이 오겠지. 예전부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 부모의 생을 이어간다. 난 내 자식의 생에도 남을 것이고, 자식과 자식으로 이어지지만 모두가 부모이고 자식인 삶의 순환과 반복의 고리일 뿐이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나는 얼마나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지금은 낙제점수... 앞으로 그다지 나아질 것 같지 않지만... 
난 그 분의 아버지가 되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옴을 느낀다...
나의 보살핌과 나의 애정에 하루하루를 살아가실 날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

지지난 주 동생이 외국으로 놀러 갔다가 문자메세지를 어머니 휴대폰에 남겼던 것 같은데..
그것이 아직도 미확인 메세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니...
흐릿해지는 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같은 공간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을 걸어야 한다는 거...
삶은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휴대폰 사용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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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3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와 아들은 애증이 많이 교차하는 관곈데...애정이 좀더 강해 보이는데요..ㅎㅎ 그런데 왜 난 결혼하고 싶다는 의지의 간접적 고백???으로 읽히는겨???

라주미힌 2009-07-31 10:51   좋아요 0 | URL
ㄷㄷㄷㄷ 제가 집에서는 뻣뻣한 인간이라서 ㅋ

무해한모리군 2009-07-3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늦은 시간에 포스팅하시는 라주미힌님..
저도 어머니를 보면서 아 나이들면 나는 저런 얼굴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워낙 서걱서걱 되는 관계입니다만..
다정함이 느껴지네요 표현만 하시면 되겠다.

라주미힌 2009-07-31 10:59   좋아요 0 | URL
오늘 일어난 일들을 이것저것 읽다 보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