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여러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진보란 행복해지는 것이라 대답하겠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의 지배 계급과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가지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통해서 주어지겠죠. 사회구조가 확 바뀌어야 하니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얘기하려면 아주 기니까 그 중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른바 국익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전체의 이익, 이런 식의 개념이 한국사회에 지나치게 횡행한다는 것이죠. 국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급간의 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 성원의 전체에 해당하는 공통된 이익이나 공통된 손해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FTA가 한국에  큰 손해를 가져다준다고 얘기하지만 이건희씨 같은 사람은 훨씬 이익이죠. 대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는 거죠. 그러니 FTA가 한국에 어떤 이익이 있는가, 미국에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기만적인 것입니다. 또 요즘에 ‘양극화’란 말은 정말 아주 개나 소나 하는데 ‘계급’이란 말을 하면 ‘에이 80년대 얘길 하고 있어?’ 이런단 말이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양극화란 말은 계급적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잖아요.
국익이라는 건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의 이익’ ‘농민의 이익’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합니다. 그런데 지배계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배계급의 이익’ ‘극소수 부자의 이익’ 이런 식으로 말했다간 당장 난리가 나겠죠? 그래서 지배계급은 어느 시대나 자신의 이익을 ‘국익’ ‘우리나라의 이익’ ‘우리민족의 이익’ 따위로 표현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런 식의 기만에 빠져있고 계급적 갈등이나 어떤 억압을 느끼다가도 뭐 월드컵 같은 것 벌어져서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하고나면 전 사회성원이 ‘우리는 하나’ 이런 식으로 통합돼 버리는 거죠. 그게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데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국익이란 실은 거짓말이며 오로지 계급의 이익만 존재한다는 걸 되새겨야 합니다.

계급을 한 개의 수직선으로 표현해볼까요. 맨 꼭대기가 최상층계급, 그리고 맨 아래가 최하층 계급이라 치지요.  그러면 좌우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계급을 한 개의 수직선을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린 것입니다. 왼쪽은 좌 오른쪽은 우죠. 그리고 맨 왼쪽은 극좌 맨 오른쪽은 극우입니다. 극좌는 최하층계급의 이익을 타협없이 지키려는 태도라 할 수 있고 극우는 최상층계급의 이익을 타협없이 지키려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극좌는 확 뒤집어엎으려는 것이고 극우는 아무런 변화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한국 사회는 해방 후 50년 동안 우파 정치만 존재해왔습니다.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극우파와 신민당, 평민당, 열우당, 민주당 같은 좀 자유주의적이거나 개혁적인 우파들로만 이어져왔죠.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극우파와 자유주의적인 우파가 각각 우파(보수) 좌파(진보)를 자임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지배계급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대변해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곳을 선택해도 군사독재 시절처럼 잡아가지 않지만 여전히 정치하면 우파정치 안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사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한국에선 제일 좌파 정당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중도좌파, 어떤 정책에선 그냥 중도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인민들은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지나치게 온건해서 계급의 이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불만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뭔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죠. 이런 모든 게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허위의식들입니다. 사회변혁과 관련하여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87년 이후에 진행된 민주화가 실제 더 중요한 내용은 자본화였다는 것이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것이 말하자면 70년대 중후반부터 국제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 국가권력이 경제를 딱 틀어쥔 딱딱한 사회는 신자유주의체제에 포섭될 수가 없죠. 신자유주의체제에 포섭시키기 위해서는 민주화 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혹시라도 오랜 기간 동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분들을 폄훼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거기 참여했던 사람이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세계체제 포섭의 준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한국의 사회운동세력이나 진보운동하는 분들이 국제적인 세계자본주의의 이런 변화에 대해서 경계의식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군사 파시즘이 물러나면 저절로 좋은 사회로 계속 진행할 거라는 낭만적인 믿음이 있었죠.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그나마 반자본주의적인 운동을 하던 세력들이 많이 쇠락을 했고, 그러면서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자본화가 별 장애 없이 진행이 된 거죠. 신자유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구제금융 이후, 김대중 정권부터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민정당이나 한나라당 같은 세력과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구분되는 세력이지만, 이 신자유주의 자본화라는 논지에 있어서는 사상 동지적적인 관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무현씨가 한 3년전에 한나라당의 합당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과 우리간에 실질적인 정책간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한 적이 있죠.
그런데 우리는 대개 민정당 한나라당은 우파 김대중 노무현은 좌파 이런 식으로 구분해왔죠. 좌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민노당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계속 한나라당은 우파 김대중 노무현은 좌파, 조중동은 우파 한겨레는 좌파, 이런 식의 왜곡된 이념구도 속에서 신자유주의 자본화는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정치적 민주화를 내세운 사회경제적 신자유주의 자본화, 그걸 이른바 ‘개혁’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개혁은 지난 10년 동안 언제나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것으로 여겨져왔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정치나 사회문화의 면에서 노동자 인민의 이익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 구조인 것이고 오늘의 이 상황, 복잡하고 고된 이 상황은 그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행복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촛불시위, 많이 나가보셨죠? 제 둘째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여러분들 초등학생들이 이명박 싫어하는 거 잘 아시죠?  엄청나게 싫어합니다. 광우병하고 관계가 없이 처음부터 싫어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며칠 전에는 뜻밖에 약간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더군요. 갑자기 밥 먹다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빠, 근데 어른들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뽑은 거 아냐?” “그렇지.” “그런데 왜 이명박 욕만 해? 어른들은 왜 그래?” “그러게.” 어른의 한 명으로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하는 애들이 또 있니?" "응, 우리 반에 여러 명.“ 지각있는 사람이 촛불이나 광장의 열기에 100% 감흥에 젖을 수 없는 이유가 그겁니다. 지각 있는 사람은 자기의 책임이 포함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게 되죠. 비판과 분노. 그 상황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반성과 성찰, 그런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번 5, 6월의 촛불과 광장의 의미는 그런 기운이 없습니다. 사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뽑힌 이유는 참 더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좋은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대통령이 되면 뭔가 짭짤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그를 뽑은 것이지요. 그래놓고선 우리 새끼 광우병 고기 먹이는구나 하니까 다들 들고 일어나는 건데 이걸 민주화운동에 비견하거나 위대한 항쟁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민망한 데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사회가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많이 변했습니다. 그걸 알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른바 교육입니다.  이명박 씨가 0교시, 학교자율화, 학교서열화 하니까 양식 있는 많은 분들이 이명박이 아이들 다 죽인다 라고 비판을 했는데, 글쎄요 이명박이 갑자기 애들 죽이기 시작했나요? 이미 애들은 우리 손에 다 죽어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미 고등학교로 보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가는 수준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나은가요? 저는 박정희 정권에 태어나서 고등학교 2학년때 박정희씨가 죽었는데 초등학교 때 거수경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호가 “건설합시다”였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녔지만 하교 후엔 우리는 군사파시즘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 오후 세시 쯤에 소재가 정확하게 파악되는 아이는 병든 아이거나 아니면 징계중인 아이였죠. 그렇게 아이들이 놀면서 건강해지고 자랐었는데, 지금 보십시오. 오후 세시에 초등학교 아이가 한 30분 정도 행적이 안밝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30분이 뭐 30분입니까? 15분만 행적이 안 밝혀져도 이제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상이 험해서 아이를 보호한다 이런 면도 있지만 실은 관리와 감시체제의 측면이 훨씬 더 강하죠. 아이가 계속 학원을 돌아야 하니까. 애들을 이렇게 키우던 사람들이 이명박이 0교시 뭐 어쩌고 하니까 갑자기 화를 내면서 이명박이 애들을 죽인다고 하면 정작 애들이 볼 때는 우리가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대운하도 마찬가집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아마 100% 가 대운하에 반대할 겁니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 두시에 길게 늘어선 수십대의 학원버스들, 그 안에 생기잃은 낯빛으로 실려가는 아이들, 그게 대운하가 아니고 뭡니까? 저는 그 대운하가 경부 대운하 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 고, 거대한 대운하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운하에 자기 아이를 ‘아이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 (어디서 들어 본 말이죠?) 실어보내는 이명박의 경부대운하를 정색을 하고 반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개혁을 외치던 지난 10년 사이에 작은 이명박들, 작은 이건희들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군사파시즘은  말입니다. 사람을 때리고, 고문하고, 폭압하고, 잡아가고, 죽이고 그렇게 다스리죠.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사람이 상대를 존중하게 되나요? 그런  폭압 속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고개숙이고 눈치보면서 살지만, 속까지 변하는 건 아닙니다. 위험하고, 겁이나니까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자본화가 무서운 것은 내 스스로 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군사파시즘은 폭력과 억압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화는 우리한테 욕망을 심어주어서 우리가 그 욕망을 쫓게 만듦으로서 우리의 정신과 가치관과 영혼을 송두리째 변질시킴으로서 지배하는 것이죠.
가치관이 변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관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자본의 가치관과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 자본의 가치관은 뭐냐 하면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잘살고, 이런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 하는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들 의 가치관은 뭐냐하면은 그것을 오히려 불편해하면서 좀 더디게 가더라도 같이 가고 싶어하고, 자기보다 좀 더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연대하고 싶어하고, 이것이 일하는 사람들 의 가치관입니다.  지난 10년동안 한국사회의 성원들을 가만히 보시면 거의 대부분 자본의 가치관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일단 커야 성공한 교회이고, 사람을 평가할 때도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게 절대적 기준이죠. 그래서 젊은 여성들은 자기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들 성형수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그러는 거죠. 요즘 아이들 장래희망 중 가장  많은 게 뭔지 아세요?  연예인입니다. 문론 옛날에도 가수나 배우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건 자기 재능이나 취향과 관련된 것이죠. 지금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에게 심어준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연예인이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물질적으로도 아주 잘 나가는, 근사한 삶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가.  다 아이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진짜 우리가 행복한가 가까운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여러분들 주변에 고등학교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이 엄마한테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보십시오.  굉장히  함부로 합니다. 적대감 같은 게 있어요.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라 아주 일관된 그런게 있습니다. 엄마는 청춘을 바쳐서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하고 봉사하는데 왜 아이들은 고등학교 정도가면 엄마를 저렇게 함부로 하고 막하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지금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코치와 선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체육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 성적일 뿐이죠. 코치가 선수를 붙들고 ‘경기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거 보다는 스포츠 인으로서의 태도와 인간미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도 과도한 훈련으로 심신이 포화상태가 된 그 선수한테.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아이와 엄마 사이에 인간적은 존경 같은 건 갈수록 사라지는 겁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헌신하는데 아이 입장에서 엄마는 경기성적에만 매달려 자신을 관리하고 괴롭히는 냉혹한 코치일 뿐이죠. 지금 이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애를 쓰고 고생을 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인 것처럼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이명박, 작은 이건희인 우리에게 성찰없는 분노는 카타르시스일뿐이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는 거니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이명박씨는 군사쿠테타로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쿠데타로 억지로 집권한 사람이 아니라, 이른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압도적인 표차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이명박을 비판하고 욕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과 욕이기도 해야하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된다.  이명박이 생각하는 행복, 이건희가 생각하는 행복과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를 게 없다면 어떤 분노나 싸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겁을 내더라고요. 이를테면 내일부터 권정생 선생님처럼 그렇게 사는  것으로. 왜 그런 극단적인 상상을 하면서 겁을 내는지 저는 이해가 안가요. 사실 그것은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아하는 욕망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권정생 선생님의 인세가 수억원이 통장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20만원 가지고 사셨다, 우리 시대의 성자다.  이런 거를 우리는 잘 알지만 모든 사람이 권정생 선생님처럼 산다면 그처럼 훌륭한 세상은 없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세기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 하는 특별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늘 흔들리고 욕망도 있고 속물적인 즐거움을 가지면서 또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지금 고속 인터넷과 최신 휴대폰이라는 족쇄를 차고 살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되새겨 볼 수가 없어서 그렇지 우리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라 세계가 다 이런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아이들이 저녁까지도 학원을 돌고, 고등학교의 공부못하는 아이들이 새벽 2시에 들어오고, 핸드폰이나 엠피쓰리. 운동화 이런 걸 가지고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장래희망이 없거나 아니면 거의 모든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연예인인 이런 사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괴상하고 비정상적인 상태가 우리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 당연한 일인양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다르게 살자는 것은 내일아침부터 권정생선생님의 삶으로 이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괴상하고 비정상적인 삶에 한번쯤 브레이크를 걸고 되새겨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한건가? 내가 애들 이렇게 키워서 10년후 20년후에 나하고 아이들하고 인간적으로 믿고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아이는 정말 고마워할까 ?  이렇게 계속가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명박 욕만 할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진보라는 것은 행복하자, 잘 살자는 것입니다. 진짜로.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믿고서 인생을 소모시키거나 더욱더 고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다며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하자 더 잘살자는 것입니다. 올바르고 정의롭기 때문에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짜 더 잘살고 더 행복해지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기를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정중하게 제안합니다. (6월, 작은책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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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9-0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글과 사람이 조화롭다...

머큐리 2008-09-0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면의 성찰이 부족하다 보니 촛불이 힘을 받지 못하는 걸까요...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라 오늘 하루라도...정말 진지하게 되새겨 봐야 할 듯 하네요

라주미힌 2008-09-0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씨 글을 보면.. 소통 의지가 분명한 지식인임을 느낄 수 있어요.
알기 쉬우면서도 정곡을 예리하게 군더더기 없이 베어내는 사무라이 같다고나 할까...

니나 2008-09-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내놓는 의견과 일치하는 삶을 사려는 노력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분이라 그런 것 같아요. 고래가 그랬어도... 미약해 보인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해도 최대한 실천적이며 대안적인 실제 행동과 함께 쏟아져나오는 지성이라 항상 존경스럽다는. 겉멋으로 부리게 되는 열정, 냉소주의 이런거에 빠지기 쉬운 젊은날에 본보기가 되어주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