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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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작가의 작품은 약자를 세분화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피억압자, 무산계급, 정신지체인, 이방인, 불청객, 경계인, 사회적 소수… 각각의 이야기 조각을 맞추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난감한 몽타주가 완성이 된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기술과 문화와 유행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규석의 만화를 보면 마치 잊었던 현실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약자를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은 집요한 시선으로 현실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풍자 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깊이를 잴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고, 현실에 기댄 상상 속에는 세상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녹아있다. 우리가 일상이라는 변명거리로 애써 무시하던 것들을 한 보따리 펼쳐 놓았으니 이미 이것은 만화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예술이 된다. 언어는 날카롭고, 그림은 거칠다. 그것은 외과용 메스가 되어 살 속을 파고든다. 이 땅에서 선택이라 불려졌던 강요들이 하나 하나 적출되어, '당신을 병들게 했던 그것이다!'라고 마침내 눈 앞에서 굴러다니게 된다.

만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그가 알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정직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우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우리가 걸친 현실의 옷은 실크나 벨벳처럼 결코 매끈하지 않다. 누군가의 살을 먹고, 고통의 즙을 짜내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게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다만, 수 많은 단계를 거침으로써 시스템의 내부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마음의 편이를 위해 우리는 ‘편리한 삶’에 스스로를 길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걷는 것보다 실려 가고, 소비하기 위해 죽여야 하는 삶.

디지털화 된 세계가 가져온 풍요가 인간의 고통을 감추고 있다. 마치 가상의 세계처럼 만들어버렸다.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듯 하다. 최규석 작가의 만화는 그것에 대한 심한 불만을 드러내놓는다. 좀 더 가까이… 인간들 틈 속에서 서성이며 이야기를 주워 담는다. 네가 느끼고, 내가 느껴야 할 감각들…

그것들에게 감각을 빼앗겼다면 상상하라.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없다.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곧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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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8-08-0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책이 많이 안팔려서 우울해하고 있더라는 -_-;;
모두들 만화를 사서 봅시다아~ (알라딘서재인들만같아라아~)

라주미힌 2008-08-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낡은구두님.. 최규석 많이 좋아하시죠? ㅎㅎㅎ

순오기 2008-08-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봤어요. 우리애들은 다보고 지들끼리만 통하는 얘기를 한다니까요~ 나도 빨리 봐야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최규석팬이에요.^^

라주미힌 2008-08-0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만들어진 글과 그림이에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