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블리또 , 2008-06-04 03:25:04 (코멘트: 7개, 조회수: 151번)
 

깃발

난 깃발이 없었다.
난 홀로 진보신당 창당 연석회의에 참가했고
외국서 잠시 한국에 들른 지인과 함께 진보신당 창당대회에 참가했다. 
5월 1일에 깃발이 없어서 혹은 깃발이 싫어서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촛불집회와 촛불행진에 
두번은 혼자 나갔고 
한번은 막내 여동생과 나갔고 
한번은 내게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과 나갔고 
한번은 15년만에 시위에 참가하는 누나와 나갔다.

홀로 혹은 지인과 함께 
아무곳에나 앉아서 집회에 참석했고 
아무데서나 끼여들어 행진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내게 깃발이 없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날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내게 초를 주던  
교복 소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내게 피켓종이를 건네주는 자원봉사자에게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답례했다. 

어느날 문득 깃발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거리에서 이중의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명박 정권을 향해 아니오라고 얘기하는 해방감이 하나이고
또 하나의 낡은 운동권의 습속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해방감이 다른 하나였다.
깃발이 만들어내는 강요된 동질감과 배타성은 
2008년 5월의 서울 거리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동지들은 사방에 앉아 있거나 사방에서 행진하고 있었다.
전선박스위에 올라 이명박OUT 피켓을 들고 뛰어놀던 7살 소녀에서부터
'가마솥'으로 시작되는 판소리 이명박뎐으로 스타가 된 할아버지까지. 
그들 모두가 동지들이었다.  

이따금 칼라TV 동지들이 보여 반가웠고 
얼마전부터 진보신당 깃발이 보여 반가웠고  
진중권, 심상정, 노회찬, 정종권 등등 얼굴이 잘 알려진 당원들을 봐 반가웠지만
그들과 무리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난 홀로 혹은 지인과 함께  
노동자의 힘 깃발 뒤에도 섰다가
안티이명박 깃발 뒤에도 섰다가
아고라 깃발 뒤에도 섰다가
심지어는 민주노동당 깃발 뒤에도 섰다가 
어처구니없이 다함께 깃발 뒤에 서기도 했다. 
어디 나뿐이랴. 수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집회에 참석하고 그렇게 거리를 행진했다.
그들은 깃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람  

난 이번 촛불행진을 통해
새로운 운동 세대의 탄생을 보고 있다.
그들이 87년 체제 20년이 
주조해낸 시대착오적 이분법적 인간형에서
다양한 개성들을 해방시켜주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운동시절 대학가에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학생운동의 주류인 반미 구국의 열혈 청년 포풀리스트가 그 하나였고
또 하나가 레닌주의의 세례를 물씬 받은 까칠한 전위들이었다. 
둘다 서로의 성격을 비웃고 조롱했지만
모두 '붉은 사제들'에 불과했다.    

그들의 잿빛 사제복의 시대가 마감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해괴망측한 이분법적 인간분류의 시대가 끝나고  
다양한 인간 개성을 긍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과 강부자 내각의 패션 감각을 조롱하는 베스트드레서 아가씨 
대한민국 군장교 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안녕을 위해 나선 전역 중령아저씨. 
유모차 아줌마와 팔짱낀 연인은 물론이고 촛불여중생의 이명박타도 응원가. 
집회에 참가한 우리 모두는 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세삼스럽게 공유하고 있고 
우리 모두가 이 공동체의 기초를 만들고 있다는 자각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서로 바라보고 
서로 응원해주고 서로 반가워한다. 
지구상의 사회주의자들이 연대라고 부르는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달라서 좋다는 평범한 사실을 배운다.  


운동권

몇몇 당원들이 당 깃발을 보고 반가워했는데도 
그놈의 당깃발은 도무지 당원을 반기지 않은 것 같다. 
사방에서 느끼는 연대감을 도무지 당깃발 안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왜일까?

하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것은 이 당이 아직도 '운동권'이라는 패거리 문화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증거이다.    

프로이트공산주의자 빌헬름 라이히라면
'성격갑옷'속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다면서 
이들 모두를 신경증 환자로 분류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세상에 갇혀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것은
이명박과 '강부자'들뿐만 아니다.
어청수와 폭력적인 전경부대만이 아니다. 
바로 운동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이번 시위는 소녀들의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에겐 깃발이 없었다.
그들에게 깃발을 쥐어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명박은 그들에게 반미좌파의 깃발을 주려고 시도했다.
다함께는 그들에게 반전반자본주의깃발을 주려고 시도했다.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불과 몇일전까지만 해도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시작되어
그리고 오늘 거리에서 참으로 많은 깃발을 보았다. 
모두 보이지 않던 깃발들이었다.  

소녀들의 저항을 예감하지도
그들의 직관이 무엇인지 파악도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깃발을 든 운동권들이 모여든 것이다. 
대중보다 늦는 '전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대중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속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당황해하던 '전위'도 필요 없다. 

그래서 이번 촛불항쟁에서 난 
'운동권'이라는 제국이 붕괴되기를 바란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잿더미로부터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추신 

당원들이 왜 당 깃발 아래에 떼를 지어 행진해야 할까? 
그 너른 대중의 바다에서 
당원들이 할 일은   
자신의 존재감을 영리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당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연행되어 
진보신당이 시민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수십개의 깃발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시민과 함께 싸운 그 당원들이다. 
바로 그들이 진보신당의 진정한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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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0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깃발을 빼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_- 인원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깃발만 나부끼는 것도 같고, 정치색 짙은 깃발 때문에 오히려 동참하고픈 사람들 멀리할까 걱정됩니다. -_-

2008-06-04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