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섯 번 잡혀갔다.
 

빠블리또 , 2008-06-03 02:19:05 (코멘트: 12개, 조회수: 357번)
 


난 다섯번 잡혀갔다.

 

90 전남대서 열린 전대협 출범식에 참석하려고 
용산 역에 가서 어슬렁거리다가  
들이닥친 사복체포조에게 체포되었다. 
조였던 선배는 백골단이 불심검문하는 동안
슬금슬금 뒷걸음치더니 사라져버렸다. 
체포조의 조장은 무전을 날리며
"불꽃 2, 꽃잎 3"이라 보고하고 있었다. 
 불꽃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이 첫번째 연행이었다. 

대학 내의 집회를 제외하곤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던 그 시절. 
지금같은 도심광장의 평화집회도 
평화적인 거리행진도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난 서울 도심 곳곳을
한무리의 송사리떼처럼
휩쓸려다니다가
강제
연행되어

동부서, 성동서, 종로서를 각각 1회씩 방문했다. 
요새는 이것을 '닭장차 투어'라고 부른다지만 
당시 체포 및 연행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잡혔을 때는
91 5월이었다. 
그해 5월은 죽음의 달이었다. 
강경대로부터 김귀정까지.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것을 자책해야 했고 
그  부채감을 이기지 못해
그들을 '열사'라고 불렀다.  

 그날은 노동자 박창수의 추모일이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목숨을 걸어야했던 시절이었다.
그날 동국대 후문에서 백골단에 의해 체포되었다.

난 사방에서 날아오는 발길질에
구타당하고 끌려가고 있었지만
내 주변엔 공포의 흰색 화이바 무리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없었다.
시위
초반에 체포되어서인지 
시위가 완전히 해산될 때까지


공포 속에서 초조함을 견뎌야했다. 

백골단 가운데 한 놈은 내게
화염병 꼭지를 따고 들이 밀며

"너도 열사되고 싶어?"라고 냉소적으로 물었다.

 
닭장차 너머로 가로등 하나 외롭게 섰던 충무로 그 길  
다정한 연인 한 쌍이 걷고 있었다. 
평범한 데이트의순간이
당시 내가 가장 절실하게 바랐던 '자유'라는 이름의 순간이었다.  

이후론 운이 좋았을까.
더이상 잡혀가진 않았다.

지금 나는 수많은 시민들이
국가권력의 적나라한 폭력에 노출된 현장을 보고 있다.

날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지금은
그것을 집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서 
국가권력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살해당한 대학생
우린 그것을 보았지만 
시민들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권'이라는 대기권 안에 갇혔다.  

 공수부대의 총칼에 살해당한 광주시민
그들은 모든 것을 직접 겪었지만 
우리는 없었다.

그래서 광주는 고립되고 학살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효자동의 청와대 들머리에서 
전투경찰이 어린 여학생의 머리를 짓밟고
한 시민의 옷을 벗겨 전경차 지붕에서
떨어뜨리는 광경을 보고 있다.

이 사태에 유일한 위안은
그들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리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 나는 
전남도청에 고립되었던 광주시민들의 외로움 때문에 
닭장차에서 구타당하고 고문당하는 기억때문에 
깨어났지만
오늘은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쓰러지고 다치고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늘 당당하고 옳았던 시민들.
그들을 밤새도록 응원하던 사람들이 
오늘 세찬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였다.   
그것을 나는 지금 집에서 보고 있다.  

내일은 그들과 함께 시청에서 비를 맞아야겠다. 

오늘에서야 나는 
멕시코 시티 광장에 모였던
20만명의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멕시코 시티에서 버스로 꼬박 24시간 떨어진 
깊은 정글을 걸어나온 
사빠띠스따 원주민 게릴라들과
부사령관 마르꼬스를 향해
쉴새없이 외쳤던 구호의 의미를 이해했다. 

"¡No están solos!" 
"¡No están solos!" 

"너희들은 외롭지 않아!"
"너희들은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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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8-06-0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드팀전 2008-06-0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롭군요.한 켠에서 운동권/ 시민을 애써 구분하려는 경우가 있던데...현 상태에 대한 감격때문이겠지요.
저 위의 글쓴이는 운동권인지 시민인지 ^^

마노아 2008-06-0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하네요. 외롭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