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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66p
“어린이 무덤”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 16p
나는 대형할인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빈곤마저도 넘치게 하는구나라는 묘한 아이러니를 한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 진열대의 빈곳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풍요. 세계 곳곳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어, 아직 살아있다라는 것을 눈깜빡임으로 알리는 아이들은 이런 ‘흔한 세계’를 알고 있을까. 태어나자 마자 지구 최악의 고통만을 간직한 체 짧은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갈까.
멜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식량부족은 필연적이고, 빈곤과 죄악은 막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틀렸지만 맞았다. 인구가 증가하였지만, 식량생산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으니 그의 주장은 틀렸다. 하지만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으니 그의 주장이 그다지 틀린 것도 아니다.
장자크 루소-사회계약론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빈곤, 가난, 기아의 원인을 따지자면 (경제적으로 볼 때, 자연적인 영향으로)공급의 부족, 수요의 증가에 있기도 하지만, (구조적으로 볼 때, 정치적인 영향으로)불균형적이고 기형적인 자원의 배분이 더 큰 원인을 제공한다. 이 책은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지만, 후자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바로 글로벌 자본, 신자주유의 비인간성을 말하려 한다. 정치적 부패, 사회적 차별, 전쟁에 쓰여질 에너지는 있어도 가난한 자에게는 돌아갈 빛이 없고, 소에게 먹일 ‘사료’는 있어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모자라다는 것이다.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에게 스테이크를, 그렇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사를 선사하는 끔찍한 세계가,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 이해하고 서로가 고민하여 변화와 행동과 희망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인류에게 고하는 전지구적 메시지를 담아 낸 것이 이 책의 가치인 셈이다.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161p
무릇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대세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제가 세계의 경제가 되고, FRB같은 기관의 영향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FRB는 누구의 소유인가?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이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투기자본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맡긴 체, 세계화 된 경제 성장만이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의 혜택은 아주 극소수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망상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을까. 지금은 비록 다수에 포함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극소수에 오르려는 욕망일까.
인간의 굶주림에 관망하는 것도, 무관심도, 막연한 동정도 떨쳐내야 한다.
인간성 회복,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어쩌면 사소한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관심과 나눔, 이해와 실천.
그것을 힘들어 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
파블로 네루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꺽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