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한 밤, 결국 나는 할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엉뚱한 짓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서
한 술 더 떠서
파자마 차림에 외투만 걸치고 어슬렁거리며 편의점에 가서 맥주 두캔을 사오고 말았다.
하나는 6.9% 알콜의 카스 레드, 하나는 카스 라이트.
안주로 대령한 것은 말린 무화과. 뚜껑을 보니 이란 산이라고 되어 있다.
비오는 봄밤에 나는 이란의 어느 하늘 아래서 익고 또 말려졌을 무화과를 먹고 있다.
(예전의 말린 무화과는 주로 터키산이었던 것 같은데..)
윤건의 새 앨범을 틀어놨다.
녹음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땐 뭔가 생각나는 말들이 많은데 그걸 편하게 녹음기에 대고 중얼거렸다가 나중에 들어보고 건질 것들은 옮겨 적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무화과는 넉넉하게 있다. 맥주는 오로지 두 캔 뿐이지만
와인이 일곱병 있고 따지도 않은 보드카가 한 병 있고, 조금 먹다가 남겨둔 글렌피딕이 있고, 누군가 중국 출장길에 사다준 이름모를 중국술이 커다란 병에 담겨 있다.
한데, 딱히 취하고 싶은것도 아니니 무화과나 열심히 먹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