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텍 나다 회원 시사에 당첨되어 <Tickets>을 관람했다. 부산영화제때 못보았던 그 영화.

상영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표를 받고, 홀리스에 앉아 espresso con panna 를 홀짝이며 잡지를 뒤적였다. 휘핑 크림이 제법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시계는 이제 8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을 뿐이다. 전화가 오기로 한 11시까지 나는 그저 기다릴 수 있을뿐.

상영시간이 다가오고, 불꺼진 극장 안에서 나는 실컷 웃고, 또 웅크리며 이 멋진 영화를 보았다. 제법 이탈리아어가 몇 마디씩 귀에 들어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 거칠고 빠른 말투가, 온 정신을 다 빼놓는 소란스러움이 낯설지않다.

실컷 이탈리아어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나에겐 그것만으로도 bravo!  

전화기를 꼬옥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11시가 조금 안된 시각,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여전히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라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적으로 힘을 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무조건적으로...

두번 다시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좀더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 라고 제법 따뜻해진 2월의 끝자락의 밤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껍데기뿐인 호의에 대한 무관심, 추악한 본심에 대한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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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1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3-0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진심이고는 싶은데 그리고 어쩌면 진심일텐데 그게 사실은 아닌듯 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6-03-0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진심이고는 싶은데 그리고 어쩌면 진심인데 그게 사실은 아닐 듯...낡은구두 님께서 하신 이 말을, 도리어 제가 되내이게 됩니다. 감정이입이라기 보다는 다른 일에서.

이리스 2006-03-0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사실과 진심의 그 엄청난 간극이라니....
 

외국의 어느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을 보았던 적이 있다. 공사장 아래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가짜로 뭔가 떨어지는 듯이 주변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이다. 미리 포진해 있던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액션을 취하면 걸어가던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담는것. 나는 그곳을 지났던 몇몇 커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젊은 연인, 노부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액션은 놀랍게도 한결 같았다. 위에서 뭔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순간 그와 거의 동시에 남자는 여자의 머리와 얼굴 부분을 재빨리 자신의 팔과 상체로 감쌌다. 위험한 상황이 왔을때 본능적으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킨다. 그 상황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움직인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자를 감싸는 정도와 액션은 저마다 틀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 전체를 이용해 여자를 감쌌고 또 어떤 사람은 두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결론은 모두가 그렇게 여자를 보호하려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러지 않았던 커플은 따로 걸러서 방영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결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최소한, 사랑하는 여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은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위험한 순간에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보다 더 앞서는게 사랑을 지키려는 본능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어느쪽으로 핸들을 꺾느냐에 따라 운전자가 더 위험할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더 위험할지. 그정도 판단이 서는 상황에서의 사고에서 조수석에 앉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더 다칠것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그리로 꺾었던 어느 남자를 알고 있다. 다행히 커다란 부상은 없었지만 조수석의 그 여자는 거의 다치지 않았던 데 비해 운전석의 그는 몇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었다. 그들은 일 년 뒤 결혼했다.

남자가 그렇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를 지켜내는데 여자는 뭘 하냐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계산하거나, 재어보지 않고. 어쩌면 그것 역시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실제로 그 일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래서 우리는 유사한 경우에 그것을 간접 체험하게 되고 그럴때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닥쳐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간과 쓸개라도 당장 내어줄 것 같던 친구도 돈 몇푼에 얼굴색 바꾸고 욕하며 돌아서기도 하는것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듯, 사랑도 그러한것 같다.

사랑이 곧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에 불타오르는 것도 본능이지만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는 것 역시 본능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본능은 이기심 앞에 꺾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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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G의 사고소식을 듣고, 연이어 운전하던 그 사람은 괜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사랑하기는 한걸까, 가 아닌,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

이리스 2006-02-2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의 글 읽고.. 애틋함에 대해 생각하다 쓴 글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친구분의 남자는 친구분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그게 그의 입장에서 혹은 그가 할 수 있는 사랑이었을지도요. 저마다 생각이 다를테니까요. 그에게 있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다치지 않는 한도, 거기까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구겨진 것은 펴기가 힘들다고 새삼 생각한다.

하지만 노력하면 펼수는 있다.

다만 그건 옷같은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

마음이 구겨지면 어쩌면 펴는 것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 뿌옇고 보기 싫은 하늘이 곧 무너져내릴것 같다.

지옥으로 가면서 신경질 내며, 지옥인거 알어.. 그러니까 내버려두라고 날카롭게 외치는 사람을 보면

동정심도 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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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챙겨 볼만한 틈을 안주는 훌륭한 회사 덕분에 대체로 나는 본방송 대신에 케이블에서 해주는 재방송을 본다. 그러다 보니 정말 보고 싶은 드라마 아니면 찾아서 안보게 되는데 최근 내가 즐겨 보는 드라마는 sbs 금요 드라마 <그 여자>다.

결혼생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보니 추잡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각자의 캐릭터가 꽤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의 지금까지 진행된 스토리는 오해없이 축약하기 힘드니 생략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스토리가 아니니까.  어제 재방송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 3회 정도를 연속해서 본 것 같다. 어제 본 마지막 내용은..

마음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것을 서로 알고서 결혼한 커플이 있다. 그 마음 까지는 건드리지 않기로 서로 약속까지 하며 결혼한 커플. 이런저런 사정이 생기며 문제가 커지자 결국 남자는 이혼을 하자고 말하게 되었다.이혼하자고 하는 와중에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구실로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외칠 수 있을거라 여긴 여자는 당당해진다. 착한 남자니까 당연히 아이를 낳을것이라 여긴 이 여자. 물론 여자 생각은 맞았다. 그 남자에게 있어 아이를 낙태 한다는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단지 아이 때문에 이 여자와 평생 계속 함께 살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이런 제안을 한다.

아이를 낳아달라고. 그리고 아이는 남자가 키우겠다고. 마음에 담아둔 그 여자한테도 물론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 여자는 이미 아이가 있고, 그 여자와 함께 살며 이렇게 아빠 다르고 엄마 다른 아이를 함께 키우는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러니 자신은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겠다고 한다.

가끔 싱글 파더가 많아지면 남자들이 철 좀 들겠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여자는 돈도 벌면서 살림 하고 거기에 아이까지 키우는게 드문 경우가 아니다. 그 고생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다. 엄마라서. 모성이라는 그 이름 하나를 지고 가는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힘들여 키워놓으면 이따금 아들은 이런 소리도 해댄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둥, 아버지를 더 잘 챙겨드려야 한다는 둥. 어머니 희생을 밥 먹듯이 먹고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품어 안는 멋져보이는 행동을 하며 짐짓 그것이 제가 잘나서 그렇다는 듯 행동하고 심지어 어머니를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부성은, 꽤나 뒤로 숨어있는 사회다. 남자는 돈만 벌어오는 것으로도 여전히 큰소리 치고 사는게 가능하다. 거기에 심지어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큰소리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마디로 그냥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해지는 것이다. 오, 위대한 남자여!

만일 남자가 돈도 벌고, 살림도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 그렇게 한 1~2년이라도 살아본다면 지금 같은 헛소리는 해대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저런 고생하는 사이 여자는 고시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어디 해외 지사같은데 파견나가 살고, 번 돈은 현지 생활비와 처가쪽 어른들 생활비로 거의 다 보낸다면 말이지. 홀로 가정을 지켜나가는 남자에게 처가쪽 식구들까지 챙기라고 한다면 아마 남자들은 자폭하지 않을까.

좀 극단적인 예처럼 보이겠지만 찾아보면 저렇게 사는 여자들이 존재한다. 줄어들기야 했지만 저렇게 해놓고 고시에 덜커덕 붙은 뒤에는 딴소리하는것도 다반사.

가정을 지키기 위해 대단한 위협과 맞서 싸우는 그럴싸한 모습에만 시선을 두지말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 아이 기저귀 갈고, 걸레질 하면서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뛰어다녀보는건 어떨까.

모여서 도박에 열중하고, 단란하다는 곳에 즐겨 찾아가 어린 여자들 가슴 주무르느라 정신 없는 수많은 애아빠들에게 퇴근하고 곧바로 집에 가서 아이를 챙기고 살라 하면 제 자식들도 버릴까 염려가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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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보니 오윤아가 어떤 남자에게 "나 임신했어!" 하며 묘하게 웃던데
그 드라마인가요?
그 장면만 어쩌다 본지라......
싱글파더, 꽤 있더라고요. 텔레비전에서 보니.....

이리스 2006-02-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네, 그 드라마 맞습니다. 전업주부 남편들도 종종 매스컴을 타고 소개되곤 하니 싱글파더도 슬슬 그렇긴 하죠. 하지만 뭐, 새발의 적혈구.. -_-;;;
 

지하철에서 이번주 씨네21을 읽다가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의 인터뷰 중 다음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 윤서는 영화 끝부분에 이르러 욕정인지 사랑인지 모르겠어, 사랑이라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짜 그런가.

# 욕정과 사랑을 구분한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질이 안좋은 놈이다.(웃음)

   욕정과 사랑은 구분이 안 된다.

저 대답에 담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나름대로 이해한다. 감독에 의하면 난 안좋은 년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욕정인지 사랑인지 명확해져서, 이제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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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2-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도 욕정의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이리스 2006-02-2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정이 사랑의 무수한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