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어느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을 보았던 적이 있다. 공사장 아래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가짜로 뭔가 떨어지는 듯이 주변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이다. 미리 포진해 있던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액션을 취하면 걸어가던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담는것. 나는 그곳을 지났던 몇몇 커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젊은 연인, 노부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액션은 놀랍게도 한결 같았다. 위에서 뭔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순간 그와 거의 동시에 남자는 여자의 머리와 얼굴 부분을 재빨리 자신의 팔과 상체로 감쌌다. 위험한 상황이 왔을때 본능적으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지킨다. 그 상황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움직인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자를 감싸는 정도와 액션은 저마다 틀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 전체를 이용해 여자를 감쌌고 또 어떤 사람은 두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결론은 모두가 그렇게 여자를 보호하려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러지 않았던 커플은 따로 걸러서 방영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결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최소한, 사랑하는 여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은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위험한 순간에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보다 더 앞서는게 사랑을 지키려는 본능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어느쪽으로 핸들을 꺾느냐에 따라 운전자가 더 위험할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더 위험할지. 그정도 판단이 서는 상황에서의 사고에서 조수석에 앉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더 다칠것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그리로 꺾었던 어느 남자를 알고 있다. 다행히 커다란 부상은 없었지만 조수석의 그 여자는 거의 다치지 않았던 데 비해 운전석의 그는 몇주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었다. 그들은 일 년 뒤 결혼했다.

남자가 그렇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를 지켜내는데 여자는 뭘 하냐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계산하거나, 재어보지 않고. 어쩌면 그것 역시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실제로 그 일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래서 우리는 유사한 경우에 그것을 간접 체험하게 되고 그럴때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닥쳐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간과 쓸개라도 당장 내어줄 것 같던 친구도 돈 몇푼에 얼굴색 바꾸고 욕하며 돌아서기도 하는것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듯, 사랑도 그러한것 같다.

사랑이 곧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에 불타오르는 것도 본능이지만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는 것 역시 본능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본능은 이기심 앞에 꺾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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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G의 사고소식을 듣고, 연이어 운전하던 그 사람은 괜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사랑하기는 한걸까, 가 아닌,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

이리스 2006-02-2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의 글 읽고.. 애틋함에 대해 생각하다 쓴 글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친구분의 남자는 친구분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그게 그의 입장에서 혹은 그가 할 수 있는 사랑이었을지도요. 저마다 생각이 다를테니까요. 그에게 있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다치지 않는 한도, 거기까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