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마키아벨리적인 virtue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독서가 문학에서 출발했음에도 문학이 가엾다. 아, virtue! 이 얼마나 매혹적인 단어냐! 나는 우리가 virtue의 무한한 발산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삼십 줄에 들어섰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나고 설렌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삼십 대를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함의하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과 에너지로 인해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나는 삼십 대야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이루려 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시기라고 확신한다.

 

훈육과 양성, 그 지긋지긋한 길들여짐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와서 이제는 내적인 방황과 삽질의 상처마저도 단단하게 아문 시기, 정신적으로는 의연하고 단단해진 한편으로 세속의 이치를 충분히 파악하여 적당히 교활하고 영리해진 시기, 요령이 생기고 눈치가 여물어 그것을 수완있게 사용할 줄 아는 시기, 그러면서도 열정과 의욕이 팽배하고 체력적으로도 완벽한 시기- 이것이 바로 우리의 30대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이 세계에 뛰어들어 우리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니 삼십 대란 대체 얼마나 살맛나고 재미나는 시기일 것인가.

 

어젯밤에 대강 이런 내용의 취중연설을 했던 것 같은데, 비록 단 한명 뿐이었으나 청중의 반응이 매우 좋아서 연설한 보람이 있었다. 청중과 나는 오래도록 자뻑의 기쁨에 취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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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2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쓴 글이 도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쭐하다. 도용한 이가 보기에는 내 글이 뭔가 있어 보였던가 보다. 계속 도용하시라. 이 글을 보는 즉시 이 글도 도용하시라. 나는 내가 쓴 글에 대해 배설물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으니 배설물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피식거리게 만들 뿐이다. 나를 계속 웃게 해달라. 그리하여 이토록 터무니없는 내 오만함에 타당한 근거가 되어 달라.         

요즘은 열심히 머리를 깎고 있다. 가끔은 대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지껄이기도 해야 마음의 체증이 가라앉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사회에서 쓸모로 하는 좋은 이발사가 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고.) 야간에 자꾸 대밭에 들어가 악 지르는 일로 기력을 탕진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구무언. 쓰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고, 나는 또 그런 것들을 배설의 쾌감을 느끼는 항문기 유아처럼 혼자서 신나게 풀어낼 자신이 있는데, 그러니까 좀, 아니 많이

피곤하다.   

자판 칠 기운도 없다. 손가락이 근질거리는데 긁을 힘도 없으니 요즘은 그저 손가락 혼자 근질거리다 지칠 때까지 놔두자는 주의로 산다. 손가락 끝에서 소란대는 나의 이야기들은 결국 활자의 형상을 얻지 못한 채 유산되고, 끊임없이 유산되고... 오만한 나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기제는 역시 직업적 노동이라는 생각.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는 활자적 배설의 욕구라는, 나로서는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까지 드렸다는 생각. 나로서는 혓바닥까지 잘라서 내어준 셈이니 이 이상 무엇을 더 바칠 수 있으리. 피곤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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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가입형 블로그 사이트들을 주유하였으나 알라딘 서재만큼 흥미로운 곳을 알지 못한다. 이곳은 무엇보다도 상품 후기를 남기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심지어 후기를 남기면 돈까지 벌게 해주는 것이다. 알라딘의 세계에서는 음식이나 각종 생활 잡화는 물론이고 종교와 사상과 철학마저 상품으로 환원된다. '맑스'와 '스위스 미스 마쉬멜로우 핫 코코아 믹스'가 동급이 되어 어우러지는 평등한 세계 속에서 소위 '알라디너'들은 끊임없이 상품 후기를 남김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다. 상품 후기를 통해 제 존재를 증명해내는 소비사회 주체들의 모습을 이토록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사이트가 또 있을까.

 

알라딘 서재질에 취미를 붙이면서 내가 품게 된 한 가지 허황된 야망은 내게 할당된 알라딘 서재라는 이 공간 속에서 나 스스로를 '호모 프로덕트 리뷰무스'로서 형상화시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체제가 요구하는 한 독특한 인간 종(種)을 가상의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체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능력이 된다면 그런 미학적 연출이 얼마나 기이한 느낌을 주는지까지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종의 자기 실험인 셈이며, 성공하든 못하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자족적인 유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야망이 무색하게도 요즘들어 내 서재는 갈수록 절간처럼 고요해져 가고, 팍팍한 삶에 기적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 소강 상태는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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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2011-04-0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들로만 봐선 서른 훨 넘은 분인줄 알았어요^^: 서른에 일에 대해 이런 가치관이 생기셨다니..정말 부러운데요.(서른 훌쩍 넘어서도 아둥바둥거리는 1인..^^)

수양 2011-04-06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적다보니까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하게 되었는데 막상 일하다 보면 또 마냥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도 아니고 때로는 열불나서 다 때려치고 싶기도 하고 그럽니다.

率路 2011-04-0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부럽습니다. 나이에 니은붙힌지도 꽤 되는데 전 아직도 왜 이모냥인지 쩝-_-;;;;

수양 2011-04-1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차 말씀드리지만-_-;; 글로 적다보니까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하게 되었지 정말 저도 사실은 뭐 이모냥이에요-ㅇ-;;;
 

그날 너는 취기가 오르자 핸드폰을 꺼내들고 최근에 내가 적은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신랄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너는 내 글에서 극도의 자기방어 심리와 자폐적인 에고이즘, 배타성과 공격성 같은 것들을 읽어내었고, 심지어는 내가 의도치 않은 문장에서조차 그런 것들을 찾아내어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상당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즐겁게 읽히기를 바라지 낱낱이 해부되고 난도질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아가씨의 경우로 말하자면, 곱게 단장을 하고 밤길을 나섰다가 겁탈을 당하고 돌아온 꼴과 다를 바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불쾌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면서, 너 따위가 내 글을 분석하는 것이 불쾌할 법도 한데 내가 전혀 불쾌해 하지 않는 이유는 네가 ‘너 따위’라고 명명될 수 있을 만한 따위마저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가시 돋친 나의 말에 너는 쉽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예의 그 호탕한 웃음으로 어색한 순간을 넘기려 했지만, 사실 내가 너에 대해 경계하는 여러 지점 가운데 하나는, 나에 대한 공격을 능란하고 우아하게 철회하는 바로 그런 순간인 것이다.

 

너는 종종 이런 식으로 내 껍데기를 기습한 다음 내가 표독스런 얼굴로 돌변하면 얼른 찔렀던 칼을 도로 빼내어 칼집에 쓱 집어넣고는 짐짓 머쓱하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너는 내 껍데기를 건드림으로써 나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가? 우스워라, 나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의지만이 나의 유일무이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순간이 곧 나의 죽음의 순간이라는 확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이야말로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 심리라는 사실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로데오 경기장의 성난 황소처럼 너를 흙바닥에 처참하게 팽개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뛴다. 자폐의 성에 갇혀 한줌의 햇볕조차 두려워하는 나의 심약한 에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며, 내 목덜미를 끌어안는 너의 위선에 대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온갖 몸부림으로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너는 아는가. 이것이 위악자가 자존하는 야생의 방식이라는 것을.

 

네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키아벨리라면, 나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동지 대부분을 숙청해버렸던 스탈린이다. 그는 위악적인 인물의 전형이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일수록 의심하고 경계했으며,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최선의 방법은 마음을 소란하게 하는 존재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것이었다. 위악은 말하자면, 끔찍하리만치 심약한 인간들이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보호하기 위하여 취하는 필사적인 생존의 제스처가 아닐지.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은 사랑했던 이들을 처단함으로써 그 자신은 더욱 더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모두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모두가 그를 따랐다. 내부로는 처참한 고독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망정 그는 위악을 통해 자신의 권좌를 유지했으며, 그리하여 자신을 그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만인에게 사랑받은 독재자의 기이한 생존 방식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항구적 본질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는 오로지 행위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위악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악인이 될 것이며, 너는 위선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선인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연애는 사도-마조히즘적 대결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너에게 잠식당하지 않고 나를 나로서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더욱 더 악해지는 길 밖에 없을 테니.

 

너는 나를 지나치게 사랑한 죄로 숙청당할 것이며, 너는 끝내 모래바닥에 나가떨어질 운명이다. 총명한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잔혹한 선언이야말로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연애편지의 궁극의 내용이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자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지르는 기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애초에 이 편지는 네가 내 글을 감히 함부로 난도질한 데 대한 복수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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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3-21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같다고 먼저 말해 주고 싶습니다. 혀 끝에서 녹아드는 맛이 납니다. 혹여^ 중국의 쑨원 사상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지니고 있으세요^^ 철학이란 의미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글자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 채 느낌이란 말로 눈으로 감동과 지루함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치 쑨원 사상가가 다시 이야기를 옆에서 들려 주는 느낌이 나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민주든, 공산주의든.. 사회운동가들이 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에너지가 문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말로 전달하는 글 보단 마음으로 연결되어지는 문필이 더 강한 이유도 행동과 실천 때문이겠지요.

수양 2011-03-21 10: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쑨원은 아직 저에게는 미지의 위인인데 반이법 님 댓글 읽고 나니 궁금해집니다^^

2011-03-22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간의 구멍 / 홍영철 

멋대로 하세요.
나는 당신 것이에요.
옷을 벗기시든지
주무르시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사랑하진 말아요.
밑지는 건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그것만은 안 되겠네요.
심각한 척도 마세요.
그냥 우리 편하게 지내요.
자, 가까이 오세요.
아니, 가까이 오시든지 마시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당신의 욕망 앞에 나는
순진한 창녀예요.
나는 의미 없는 작은 구멍이에요.
즐거움도 아픔도 모두 껴안는
그런 작은 구멍이에요.
멋대로 하세요, 당신.
나는 나의 것도 너의 것도
그의 것도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제야 알겠다, 창녀야. 나의 비극은 너를 사랑한 것이었구나. 네 날카로운 입꼬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마다 나는 발정 난 짐승마냥 신음하였으나 내가 바친 순정은 한갓 통속적인 멜로에 지나지 않았구나. 나에게 한 가지 죄가 있다면 지나치게 구구했다는 것이리. 네 앞에서 나는 늘 작은 농담에도 분개하는 소년이었네. 핏발선 눈을 하고 아무데로나 돌진하는 소년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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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 2011-03-21 20:07   좋아요 0 | URL
어익후야, 저는 오늘이 춘분인 줄도 몰랐네요.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걸 보면 저는 창녀를 겉으로만 사랑하나봐요:P

근데 이 시집 정말 보석 같아요. <시간의 구멍>만 옮겨적기엔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에게 미안할 정도로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