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너는 취기가 오르자 핸드폰을 꺼내들고 최근에 내가 적은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신랄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너는 내 글에서 극도의 자기방어 심리와 자폐적인 에고이즘, 배타성과 공격성 같은 것들을 읽어내었고, 심지어는 내가 의도치 않은 문장에서조차 그런 것들을 찾아내어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나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상당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즐겁게 읽히기를 바라지 낱낱이 해부되고 난도질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아가씨의 경우로 말하자면, 곱게 단장을 하고 밤길을 나섰다가 겁탈을 당하고 돌아온 꼴과 다를 바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불쾌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면서, 너 따위가 내 글을 분석하는 것이 불쾌할 법도 한데 내가 전혀 불쾌해 하지 않는 이유는 네가 ‘너 따위’라고 명명될 수 있을 만한 따위마저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가시 돋친 나의 말에 너는 쉽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예의 그 호탕한 웃음으로 어색한 순간을 넘기려 했지만, 사실 내가 너에 대해 경계하는 여러 지점 가운데 하나는, 나에 대한 공격을 능란하고 우아하게 철회하는 바로 그런 순간인 것이다.

 

너는 종종 이런 식으로 내 껍데기를 기습한 다음 내가 표독스런 얼굴로 돌변하면 얼른 찔렀던 칼을 도로 빼내어 칼집에 쓱 집어넣고는 짐짓 머쓱하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너는 내 껍데기를 건드림으로써 나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가? 우스워라, 나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의지만이 나의 유일무이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순간이 곧 나의 죽음의 순간이라는 확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이야말로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 심리라는 사실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로데오 경기장의 성난 황소처럼 너를 흙바닥에 처참하게 팽개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뛴다. 자폐의 성에 갇혀 한줌의 햇볕조차 두려워하는 나의 심약한 에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며, 내 목덜미를 끌어안는 너의 위선에 대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온갖 몸부림으로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너는 아는가. 이것이 위악자가 자존하는 야생의 방식이라는 것을.

 

네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키아벨리라면, 나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동지 대부분을 숙청해버렸던 스탈린이다. 그는 위악적인 인물의 전형이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일수록 의심하고 경계했으며,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최선의 방법은 마음을 소란하게 하는 존재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것이었다. 위악은 말하자면, 끔찍하리만치 심약한 인간들이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보호하기 위하여 취하는 필사적인 생존의 제스처가 아닐지.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은 사랑했던 이들을 처단함으로써 그 자신은 더욱 더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모두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모두가 그를 따랐다. 내부로는 처참한 고독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망정 그는 위악을 통해 자신의 권좌를 유지했으며, 그리하여 자신을 그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만인에게 사랑받은 독재자의 기이한 생존 방식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항구적 본질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는 오로지 행위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위악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악인이 될 것이며, 너는 위선을 행함으로써 진정한 선인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연애는 사도-마조히즘적 대결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너에게 잠식당하지 않고 나를 나로서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더욱 더 악해지는 길 밖에 없을 테니.

 

너는 나를 지나치게 사랑한 죄로 숙청당할 것이며, 너는 끝내 모래바닥에 나가떨어질 운명이다. 총명한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잔혹한 선언이야말로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연애편지의 궁극의 내용이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자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지르는 기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애초에 이 편지는 네가 내 글을 감히 함부로 난도질한 데 대한 복수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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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안그림자 2011-03-21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같다고 먼저 말해 주고 싶습니다. 혀 끝에서 녹아드는 맛이 납니다. 혹여^ 중국의 쑨원 사상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지니고 있으세요^^ 철학이란 의미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글자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 채 느낌이란 말로 눈으로 감동과 지루함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치 쑨원 사상가가 다시 이야기를 옆에서 들려 주는 느낌이 나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민주든, 공산주의든.. 사회운동가들이 대중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에너지가 문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말로 전달하는 글 보단 마음으로 연결되어지는 문필이 더 강한 이유도 행동과 실천 때문이겠지요.

수양 2011-03-21 10: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쑨원은 아직 저에게는 미지의 위인인데 반이법 님 댓글 읽고 나니 궁금해집니다^^

2011-03-22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