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도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쭐하다. 도용한 이가 보기에는 내 글이 뭔가 있어 보였던가 보다. 계속 도용하시라. 이 글을 보는 즉시 이 글도 도용하시라. 나는 내가 쓴 글에 대해 배설물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으니 배설물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피식거리게 만들 뿐이다. 나를 계속 웃게 해달라. 그리하여 이토록 터무니없는 내 오만함에 타당한 근거가 되어 달라.         

요즘은 열심히 머리를 깎고 있다. 가끔은 대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지껄이기도 해야 마음의 체증이 가라앉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사회에서 쓸모로 하는 좋은 이발사가 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고.) 야간에 자꾸 대밭에 들어가 악 지르는 일로 기력을 탕진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구무언. 쓰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고, 나는 또 그런 것들을 배설의 쾌감을 느끼는 항문기 유아처럼 혼자서 신나게 풀어낼 자신이 있는데, 그러니까 좀, 아니 많이

피곤하다.   

자판 칠 기운도 없다. 손가락이 근질거리는데 긁을 힘도 없으니 요즘은 그저 손가락 혼자 근질거리다 지칠 때까지 놔두자는 주의로 산다. 손가락 끝에서 소란대는 나의 이야기들은 결국 활자의 형상을 얻지 못한 채 유산되고, 끊임없이 유산되고... 오만한 나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기제는 역시 직업적 노동이라는 생각.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는 활자적 배설의 욕구라는, 나로서는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까지 드렸다는 생각. 나로서는 혓바닥까지 잘라서 내어준 셈이니 이 이상 무엇을 더 바칠 수 있으리. 피곤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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