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수해(水害)의 역사-바람돌이님께

수해(水害)의 역사

우리나라는 지리적인 위치와 기후조건으로 6,7,8월 3개월의 강수량은 연강수량의 60%나 되어 홍수는 연중행사처럼 되었으며, 또한 계절풍의 시기와 강약에 따른 한해(旱害)로 인해 자연에 의한 재해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역대 군주들 중에도 성군으로 칭송받는 왕들은 치산치수에 힘써 홍수와 한해(旱害)를 예방하려 하였다. 그 예로 조선시대 영조는 한성부의 수해를 막기 위하여 청계천의 준천역사(濬川役事)를 크게 일으켰으며 준천사(濬川司)라는 관서를 설치하였다. 고종 2년(1865)의 을축년 홍수로 동년 3월 중순부터 4월말까지 준천역사를 벌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으니 집권하던 흥선대원군의 치수정책을 비난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고종 16년(1879) 7월에도 큰 비가 내려 한강의 수위가 10.61m나 되었다. 그리하여 한성부내의 가옥전파가 933호나 되고 가옥반파 이상이 148호, 일부파손이 277호나 되었으며 물위에 뜬 가옥이 30호나 되었다.
[註1] 고종 22년(1885) 7월에도 홍수로 한성부내 가옥전파가 520호나 되는 피해가 있었다
서울의 수해 원인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호우에도 있지만 한강의 범람이 더 큰 원인이었다. 따라서 한강의 범람을 측정하여 기록하는 것이 치수의 방법도 되므로 일찍이 세종도 한강수위 측정에 관심을 두었다. 즉 한강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암석위에 척(尺), 촌(寸), 분(分)까지 눈금을 새긴 수표를 만들어 강도승(江渡丞)이 수위를 측정하여 보고하게 하였다.
[註2] 그러면 19세기 중엽부터 일제시대까지 한강의 최고수위를 나타내 보면 다음 <표:한강의 수위변동>과 같다.[註3]
위의 기록을 살펴보면 1865년과 1925년의 한강수위가 제일 높았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을축년이었다. 따라서 항간에는 을축년과 홍수는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일제 때 서울의 홍수는 조선시대보다 훨씬 피해가 많았다. 이것은 한성부 때에 비해 인구가 증가하여 한강범람은 물론 서울 안의 하천범람까지 주거지가 확대되어 홍수 때 침수와 도괴(倒壞) 그리고 인명피해가 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 때의 홍수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911년 7월 중순 … 홍수로 인축사상(人畜死傷)등 피해액이 587,000원에 달하였다.
[註4]
② 1912년 … 홍수로 침수가옥이 1,467호 유실이 1호
③ 1913년 … 홍수로 침수가옥이 80호
④ 1915년 7월 23일, 24일 … 북한강 유역 일대에 300 ∼ 380mm의 비가 내려 피해를 입었다. 그 해 8월 22일, 23일 서울의 강우는 262mm로 침수가옥이 많았고 농작물에도 피해가 막심하였다.
[註5] ⑤ 1916년 6월 13, 14일 … 서울의 강우는 156mm로 가옥침수 농작물 피해 교량 도로의 파손이 심하였다. 경성부에서는 각 처에 구호소를 설치하고 이재민 피난을 주선했다. [註6]
⑥ 1920년 7월 …홍수로 한강의 수위가 9.53m나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용산에는 침수를 막기 위해 12.12m의 높이로 제방을 쌓았다.
1925년 7월 … 서울의 역사적인 대홍수로 일컫는 을축년홍수가 이 해에 일어났다. 이 당시 두 차례에 걸친 집중호우와 한강의 범람으로 큰 수해를 일으켰는데 특히 인천만의 만조(滿潮)로 호수가 한강으로 역류되어 더욱 큰 수해를 입게 되었다.
[註7]

을축년 1차 홍수(1925년 7월 9∼12일)때 서울의 강우량은 383.7mm였고 2차 홍수 (동년 7월 15∼19일) 때의 강우량은 365.2mm를 나타내어 공전(空前)의 대홍수를 가져왔는데 7월 12일자 동아일보 호외에는 1차 홍수 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모진 빗발은 11일 밤에도 의연히 줄기차게 내리어 홍수는 더욱 흉포를 다하여 시각마다 늘어가는 상태에 있어 연안 일대의 주민들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저주하는 듯이 달려드는 홍도(洪濤)에 위협되어 어쩔줄을 모르고 캄캄한 어둔 밤에 찬비를 맞아 앞을 다투어 피난하기에 ……(중략)……아이를 등에 업고 철벅거리며 달아나는 잔약한 여자, 늙은 노인, 세간을 구해내기에 망지소조하는 남자들이 한데 섞여 연안일대에는 실로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이루었으며 사정없는 홍수는 더욱이 인천해의 조수가 밀려 올라옴을 따라 맹렬한 상태로 증수되야……」

이와 같은 홍수의 큰 피해로 수마의 할퀸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2차 홍수가 재차 엄습해 왔다. 젖은 옷을 말리고 흙벽이 채 마르기도 전인 사흘 뒤 7월 15일 저녁부터 19일 17시까지 집중호우가 내림으로서 1 · 2차 홍수 때 9일간의 강우량(降雨量)은 748.9mm를 나타냈고 특히 7월 17일 하루의 강우량은 184.6mm를 기록하여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7월 16일 21시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한강수위는 6시간이 지난 17일 오전 5시 현재 20척(6m 5cm)을 돌파하여 매시간 평균 1m씩 증수(增水)현상이 일어났다. 2차 홍수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 17일 오후 8시에 37척 4촌에 달하여 위험이 경각에 달렸고 한강연안 용산 일대에는 동 11시 반경에 38척 4촌에 달하여 수백년 이래에 처음있는 큰 홍수이므로 경성부출장소에서는 위급함을 일반시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경적까지 울리었는데 용산 관내의 침수가옥은 마포방면까지 합하여 2,876호에 달하였으며 더욱이 그날밤 7시 30분경에는 경정(현 문배동), 대도정(현 용문동) 뎨방 등의 약 20여간이 터지어 무너진 뎨방으로 붉은 물이 폭포 쏟아지듯이 수세가 맹렬하여 백여명의 인부와 구호반 30여명이 급거 방수에 노력하였으나 사나운 물결은 미쳐 걷잡을 수가 없어서 삽시간에 용산일대는 거의 전부가 침수되어 17일 12시경에는 2,000여호가 침수하였는데 용산일대의 피난민들은 비를 맞아가며 앞을 다투어 피난민 수용소인 군사령부와 본원사(本願寺) 등으로 피난하여 수용되었더라
[註8]

고 보도하였다. 2차 홍수 때의 서울 수해를 살펴보면 우선 한강 제방이 유실되고 한강 제1 · 제2철교 중간교각이 파손되었다. 철도(鐵道)의 침수로 열차운행은 일시 불통되고 용산역 구내도 물바다를 이루었다. 통신이 두절된데다가 송전선의 고장으로 전차도 운행이 중단되고 밤에는 암흑세계로 지내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수원지의 침수로 식수의 공급도 끊어졌다.
인축의 사상 및 행방불명 그리고 각종 시설의 파손, 농토의 매몰, 유실 등 피해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서울의 수해상황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
<표:1925년 7월 서울의 수해상황>과 같다. [註9]
을축년 홍수로 인한 전국적인 총피해액은 모두 5,964만 5,149원(圓)에 달하였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註10]

「1925년 7월 수해손해(조선총독부 내무국 사회과 조사)

- 토목관계피해 1,731만 499원
- 가옥, 가재(家財) 피해 1,598만 8,090원
- 농작물피해 1,387만 7천원
- 철도관계피해 400만원
- 전답 등 경지피해 383만 7,400원
- 각종공장피해 200만원
- 수리조합공사피해 189만 6천원
- 직접구조비 42만 5천원
- 체신관계피해 28만원
- 가축피해 31,160원
계 5,964만 5,149원」

을축년 대홍수 때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은 북한강 하류 일대였다. 따라서 한강 하류에 해당되는 서울의 연안일대는 증수로 수위가 높아져 용산, 마포, 뚝섬, 영등포 방면 저지대는 침수로 인하여 큰 피해를 보았다. 이 때의 「한강범람도」는 당시의 피해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참고가 될 것이다. 먼저 용산, 마포 지역의 각 동별 가옥피해를 살펴보면 <표:침수피해 상황>과 같다. [註11]


용산강 연안일대는 비교적 저지대로서 욱천은 한강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오히려 역류되어 내수로 인한 침수 피해를 입곤하였다. 조선말기부터 용산일대에 모여 살게 된 일본 거류민들은 수해예방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을 선출한 뒤 욱천하구에 제방을 쌓는 일을 추진하였다. [註12]

그러나 이 제방은 을축년 홍수에 붕괴되면서 용산 일대를 수몰시켰다. 이때 원효로 1가의 수심은 8척, 삼각지 로터리 일대는 2척, 용산역 구내는 10척, 용산우체국 앞은 7척, 원효로 4가 전차종점 부근은 무려 22척이나 침수되었다. 당시 서울의 총 침수면적은 198만9,200평이 되었다[註13]고 하니 그 피해를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이제 서울의 각 지역별 피해상황을 살펴보면, 이촌동에는 600호의 가옥이 거의 침수되어 주민 700여명은 용산역 구내 기차내로 대피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뚝섬은 당시 경기도 고양군에 속한 면이었는데 1 · 2차 홍수 때 모두 침수되었다. 피해 상황을 보면 가옥 1,200여호가 유실 도괴(倒壞)되어 이재민 4,000명이 발생되었다. 이들은 인근 학교 예배당, 면사무소 등에 피신하게 되었다. 7월19일자 동아일보 호외 기사에는 당시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뚝섬 가운데로 한강줄기가 생겨 한강이 두 곳으로 흐르게 되었고, 뚝섬 건너편 신천리의 120호 700여명 주민들은 기와집 지붕위와 배 2척에 빽뺵이 올라 앉아 끼니도 거른 채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며 한강 인도교 밑으로 산사람과 시체가 떠내려 가는 것이 많이 눈에 뜨인다.」

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가는 거의 지붕만 내어 놓고 침수되었으며 종묘장(種苗場)의 과일나무도 꼭대기만 뾰죽뾰죽 보일 뿐 망망대해를 이루었다. 드디어 7월 18일 오후 9시 뚝섬의 한강수위는 42.2척을 돌파하였다. 운래 뚝섬 주민 수효는 약 7,000명인데 그 중 2,000명은 왕십리로 피난하였다.


자양동의 수해도 역시 비참하여 동네에서 가옥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겨우 한 채 뿐이었다고 한다.[註14]
뚝섬 수원지도 침수가 되어 탁류에 휩쓸리게 되니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1차 홍수 때는 이곳의 수위가 33척 8촌에 이르러 겨우 침수를 면했으나 2차 홍수에는 무려 43척 3촌에 달하여 위험수위 38척을 능가했던 것이다. 경성부에서는 이에 긴급조치로 부민(府民)에게 제한급수를 하고 또한 급수차를 동원시켜 30만 부민 중 일부에만 식수를 공급하였다. 물이 빠지자 7월 25일 수백명의 인부를 독려하여 복구한 결과 송수(送水)가 가능해진 것이 7월 26일이었다. 이때 수원지 침수 피해액은 7,700원에 달하였다.


그리고 청량리 일대의 수해는 역 부근의 50호가 침수됨으로서 400명의 이재민이 생겨 대학예과(현 미주아파트 · 동산병원 자리)에 수용되었으며 용두교까지 물바다를 이루어 배 4척을 이용하여 왕래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註15]


장안평 일대는 1913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개간한 곳으로 농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관천(箭串川) 연변에 64척 8촌 높이로 제방을 견고하게 쌓았다. 1920년 홍수 때 제방의 손상이 약간 있었지만 을축년 1차 홍수에 수위가 63척 5촌에 이르러 제방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다시 2차 홍수 때에는 수위가 72척 6촌에 달해 이 일대가 모두 침수됨으로서 농작물은 전부 물에 떠내려 갔다.


영등포 김포방면의 피해도 상당하였다. 영등포는 이미 여러차례 홍수에 시달려 왔으므로 이에 대비했었다. 1920년 홍수에도 시가지가 거의 침수되었던 관계로 제방을 5척 이상 높이 올려 1,400간(間)을 쌓았다. 그러나 을축년홍수에는 제방보다 수위가 2∼3척이나 높아 영등포역전은 한 길 이상의 수심으로 참담한 광경이 재연되고 말았다.


을축년홍수의 후일담으로 서울의 세(貰)집값이 나날이 폭등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1 · 2차 홍수로 인하여 가옥을 잃은 이재민들이 남부여대하여 도성내로 들어와 세집과 셋방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서울의 인구는 홍수 이후 8월 8일까지 20일 동안에 523호가 급증[註16]했다고 하니 이는 이재민의 계속적인 유입이 주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서울 5백년사(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9-6-1-1.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머리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성취동기 : 42 점 사욕추구 : 14 점

 

당신은 돈에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무리해서 돈을 벌 생각도 없다.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는 박민규 소설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 모토가 당신에게 어울린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더 잘 보이는 법, 남들이 헛된 목표를 향해 부질없는 노력을 다할 때, 당신은 뒷짐을 지고 관조하며 대나무처럼 유연하게 산다. 물론 혹자는 당신을 보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삶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당신은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는 대신, 인간적인 삶을 누릴 테니 말이다.

 

 

당신의 여유로움 자체가 장점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게다가 당신에게도 여유는 도움이 된다. 욕심이 없으니 갈등이 적고 갈등이 없으면 마음이 편하며 편한 마음은 몸도 건강하게 만든다.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알고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당신은 진정 안분 자족하는 현인의 전형이다.

 

특별한 야망도 근성도 없으니 무시당하기 쉽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도, 성공을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근성과 집요함이다. 그런데 당신에겐 그게 부족하다. 뭐든 끝까지 밀어 부쳐야 성과물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쪼들리고 불편해질 가능성이 있다. 편안한 사람이긴 하지만 믿기는 어렵고 듬직하지도 못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당신에겐 조직 생활이 어울린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당신은 훌륭한 직원으로서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며 지내는 것이 좋다. 부지런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좋다. 당신이 스스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조직이나 친구들에 이끌려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당신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발전시키는 것도 좋다. 여유에 약간의 사교성, 약간의 성실성이 받쳐준다면 당신 주변에는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당신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처럼) 유능한 인재를 끌어 당기고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재주가 있을 수 있다. 그들 중에는 돈은 많은데 쓸 곳이 없는 사람도 있고 아이디어와 열의는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들을 연결해 준다면 당신은 뜻하지 않게 중요한 성공의 막후 실력자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도 당신에겐 별 흥미 없을 지 모른다. 그저 집착을 버리고 유유히 살아가는 것이 당신이 바라는 인생일 지도 모르니.
 이해진
1967년 생. "평범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삼성 SDS에서 근무하며 일이 너무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 동료들과 함께 삼성SDS 사내 벤처 1호 회사인 네이버를 설립한다. 단순한 검색 서비스 회사로 출발한 네이버는 이후 포털 업체로 발전, 한게임 등을 인수하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시장 경쟁력을 갖춘다. 특히, 검색 시장에 사활을 걸고 역량을 집중, 2002년 지식검색 오픈을 계기로 인터넷 검색 1위 자리에 오른다. 부동의 검색 1위 자리를 차지한 네이버는 승승장구, 잇달아 메이저 서비스들을 성공시켰으며, 이해진 사장은 회사의 주식 상장으로 천억원 대의 자산을 보유한 갑부가 된다. (대기업의 지원 아래 벤처 기업을 세우고 법인을 세우자마자 100억원의 펀딩을 받는 등, 이해진 사장은 다른 자수성가형 갑부들에 비해 무난하게 성공 가도를 달렸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6-01-1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한테 큰소리치고 왔는데. 깍두기님보다는 부자될 가능성이 좀 더 있을거라고... 근데 이게 뭐냐 똑같다. 역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좋아하면 안되는거였어. ^^;;

바람돌이 2006-01-1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우리 서방 결과!! 다른 건 같은데 사욕추구 0점 나왔다. 어쩐지 결혼할때부터 싹수가 노랗더라니.... 젠장 망했다. 풀이나 뜯어먹고 살아야겠다. ^^;;

하늘바람 2006-01-1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결과 실제랑 많이 다른것같아요

바람돌이 2006-01-12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희망을 주시는군요. ^^

조선인 2006-01-1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그래도 전 농부형이에요, 조금 낫죠? 캬햐햐햐

바람돌이 2006-01-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푸덕~~~ 으아아아~~~ 기냥 이래 살래요. ^^;;

kleinsusun 2006-01-15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해봤는데...50% 밖에 안나와요. ㅎㅎ
비슷한 인물에 오프라 윈프리. 재미있네요.
 

2장 - 생물학적 유전자와 인문학적 유전자

두사람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딘가에서 접합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화론 - 생물학 분야가 될 것이다라는데 두사람의 의견은 일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유전자와 유전물질의 발견 이후 그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데도 공감하는듯하다. 인문학의 기본 전제는 결정론과 환원론을 배격하고 문제를 열어두고 싶어한다면 현대 생물학은 환원론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이런 방향이라면 두 학문간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두사람의 관점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일단 최재천씨는 현대 생물학=유전자 과학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생물학 내에도 무수히 많은 분야가 존재한다. 흔히 비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문화, 사회, 경제적 특성들을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개미사회의 경제, 개미사회의 정치라는 식으로 개미생물학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사회생물학>이 있다. 따라서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뭐 어떻게 보면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가 생물=동물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시작하고 또 인간사회의 여러면도 자연계의 여러 특징을 보이는 점도 있을 수 밖에 없고하다면 이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남는 의문은 있다.

여기에 대한 도정일씨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도정일씨는 인간이란 생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생물적인 측면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다. 가령 '평등'이라는 개념을 두고 볼때 이것은 자연계의 질서는 아니다. 인간이 사회라면 이래야 저래야 된다고 규정하는 일련의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은 생물적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비생물학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연스럽지 않은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 자연상태에 개입하고 자신의 행동과 존재방식을 바꾸어 사회적 진화를 이루는 것이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것.

이 부분에서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친듯.

대담은 이후 진화 진보의 개념에 대한 인식으로 옮겨간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는 생물학 쪽에서는 모두가 생물의 개체가 진화를 해온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줄 알았더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으가보다. 진화를 인정하는 쪽과 생물 발생의 유전자, 환경, 생명체등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그것을 꼭 진보해왔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쪽도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은 인간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반드시 진보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어려운것처럼 그건 생물학쪽도 마찬가지인가보다.

3장.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이미 올해 최대의 사기극으로 판명나버린 황우석박사의 연구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이 약간 먼저 나왔다보니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이 두 학자의 접합점을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이들이 말하는 원칙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다시 되새겨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딜레마란 '과학과 생명윤리의 대립'이기도 하지만 기술이 어떤 미래를 열지 불투명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건 안돼"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하자, 하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는 경우가 생명과학의 딜레마가 아닐까? 여기에서 인문학과 과학쪽의 대처방법에 차이가 나는데 일단 과학쪽은 방법의 맹목성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자는... 하지만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지는 것에서의 차이. (도정일)  ---- 결국 필요한 것은 과학자 역시 어떤 방법을 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는 백번 지당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돼서 그렇지...

한편에서 제기되는 과학적 사고의 문제에서는 최재천씨의 말이 한 편으로 와닿는다. 전에 국가에서 자립형사립고 20개를 선정하면서 반발을 샀었는데 이건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립형사립고의 교육효과가 훨씬 좋다는걸 입증하려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험군과 다른 평준화 대조군을 같이 만들어야 하고 또한 재정지원이나 여타 지원에서 가능한한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놓치는건 자립형 사립고는 사실 20년뒤의 교육효과 어쩌고 하는것보다는 가진자들이 자기의 많은 돈을 더 투자해서 지 자식 출세시키겠다는 귀족 교육적 발상이라는건 일단 제껴두고 보자) 이런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 중의 하나가 과학적 사고방식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은 있어도 과학적 사고는 없는게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 (최재천)

결국 다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적 사고능력의 문제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6-01-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워낙 게을러서 말이죠.
님이 하시니까 저는 다시 읽기만 하렵니다. ^^

바람돌이 2006-01-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순전히 제 주관적인 정리라서...^^
저도 요즘 방학이니까 이러고 있는거지요. 뭐...^^

돌바람 2006-01-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저 '자연적 진화'랑 '사회적 진화'를 무리하게 접합하려는 예를 많이 보게 돼요. 억지스럽지요. 어제 다큐를 하나 보다가 잠깐 뜨끔하였는데요. 육지동물이 수상동물로 환경이 바뀔 때요, 육지에서 필요했던 허파며 발이며 하는 것들이 퇴화하잖아요. 대신 아가미며 지느러미 같은 것들이 새로운 환경에 의해(필요에 의해) 나오구요. 물론 몇 백, 몇 천년에 걸쳐서 진행되겠지만, 그걸 진화로 볼 거냐, 퇴화로 볼 거냐! 같은 거요. 비교적 간단한 이런 현상에마저 저는 '퇴화했잖아', 그렇게 말해버렸다니까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잘못된 통합적 사고능력'의 예였슴다. 그러니 통섭을 말한다는 것은 더 어렵지요. 으그그...

바람돌이 2006-0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그런 새로운 진화의 예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심지어 성적 선택에 유리할 때 그에 맞도록 진화를 하는게 아니냐까지...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세계 자연의 세계는 너무 오묘해서 사실 이게 인간의 힘으로 이해가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화론적으로 어떤 변화를 설명하고 그것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다가도 또 인간에게는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주된 요인이 동물과는 다른 사회적 이유가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양자의 통합은 또 멀어지고요. 어쨌든 이 두 학문간의 대화가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음은 분명해보입니다. 책속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는데요. 인문학자가 과학을 하는건 너무 어려우니까 과학자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를 해야하지 않나라는 얘기요. ^^ 뭐 이것도 100% 맞는 얘기는 아닌것 같지만-인문학자의 사고에서도 과학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한거겠죠- 양자의 통섭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우리 아기 웃으니까 정말 예쁘네 그림책 도서관 23
샘 맥브래트니 지음, 찰스 푸즈 그림, 김서정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3살 해아를 위해 사준 책. 하지만 해아도 예린이도 엄마도 같이 웃고 즐거워하는 책.

제목부터 정말 다정하기도 하지!! 가만히 있어도 심술난 모습도 예쁜 것이 우리 아기인데 그 아기가 진짜로 천사로 보이는 순간. 웃을 때!!!

아기 캥거루 루는 어느날 아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심술이 잔뜩났습니다. 책의 첫장을 펴면 심술이 나서 뿌루퉁한 루와 그런 루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숲속 친구들- 오리와 생쥐와 벌이 나오지요.

엄마는 심술이 난 루가 안타까와 루를 달래지만 루는 여전히 뾰루퉁할 뿐.그런 루를 위해 엄마는 루를 안아서 하늘높이 휙 던져주기도 하고, 까꿍놀이를 하기도 하고 나뭇잎을 모아 공중에 휙 뿌려보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루의 심술은 그칠줄을 모르는군요.

이제는 포기한 듯한 엄마가 밥을 먹으러 가자며 들판을 껑충껑충 뛰어갑니다. 이장면에서 엄마 캥거루는 당연히 아기 캥거루를 배주머니에 넣어서 뛰지요. 그러고 보니 한번도 캥거루를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예린이와 해아가 "캥거루는 왜 배에 주머니가 있어?" 질문을 하네요. 그래서 캥거루는 "아기를 안아주기 위해 아예 몸에 주머니가 달려있어서 늘 아기를 안고다닌다"고 하니 너무 신기해합니다.

그런데 폴짝 폴짝 잘 뛰던 엄마가 웅덩이를 못봤네요. -아마 못본게 아니라 루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못본척 한거겠지요.그만 루랑 엄마랑 둘다 웅덩이에 철푸덕~~~난리가 났네요. 난리가 났어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쓰고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루는 드디어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엄마의 사랑을 한껏 느껴주게 하는 책이에요. 이 책을 본 아이들은 아마 그전보다 엄마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림책의 기본 색조도 너무 예쁜 초록색이어서 바탕색을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같이 나오는 오리랑 생쥐랑 벌 친구의 모습을 같이 보는것도 즐겁고요. 장면에 따라서 책의 그림이 가로로 세로로 왔다갔다 하는것도 책읽기를 즐겁게 해줍니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깔깔깔깔 웃을 수 있다면 좋은 그림책이 맞는거겠지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깍두기 2006-01-1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 어렸을 때 알라딘을 했어야 하는데....그럼 좋은 그림책들 많이 보여주었을 텐데. 이제 새삼스레 그림책 살 수도 없고 침만 흘리네요ㅠ.ㅠ

바람돌이 2006-01-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아이들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은 정말 많은데 사실 아까 사진에서도 보셧다시피 얘들이 워낙에 몸으로 노는걸 좋아해서 자기전에 읽는 것 외에는 그림책은 거들떠도 안봐요. 그래서 엄마의 의욕을 확 꺾어놓는다는.... ^^ 그리고 저도 알라딘이 아니었다면 이런 좋은 그림책들을 어디서 알아서 샀을까요. 그러고보면 알라딘 서재가 참 고마워요. ^^ 앗! 드디어 1시군요. tv앞으로 갑니다요. ^^
 

  이 책이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학문의 분화와 전문성의 추구가 최고의 학문의 방법인것처럼 신봉되는 사회에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나누는 대담이라는건 그 기획 자체부터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자연과학에는 관심도 흥미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까지도 없는 나에게 그나마 자연과학도 참 재밌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준 최초의 사람이 바로 최재천씨였다. 내가 읽은 최초의 자연과학 서적이 아마 최재천씨의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아니었을까싶다.

 두 사람의 대담으로 엮어가고 있는 책은 만만치 않은 화두들을 다루고 있고, 또 두사람의 말빨이 장난아닌지라 재밌게 읽어진다. (하지만 역시 말빨쪽은 도정일씨쪽이 한 수 위다. 아직까지는.... 하기야 말빨로 먹고사는게 인문학쪽인데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은 아닐 것도 같다.) 읽다보니 워낙에 광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고 서로의 의견이 설왕설래하는지라 이거 다 읽고나서 리뷰쓸려면 아마 책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나의 머리의 한계다.) 전부터 생각한거긴 한데 이 책을 시작으로 새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지금은 책 읽는 중> . 뭐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읽으면서 내 자신의 정리가 필요한 책들은 따로 정리를 해둘까 하는 생각에서 만든거다. 머리나쁘니까 중간 중간에 요약하고 생각해둬야 할 것들은 챙겨두는 창고라고나 할까? ^^

1장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왜만나야 할까? 이 두사람이 만나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얼까? 도정일씨는 '과학과 기술, 종교와 예술은 삶의 토대이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인문학의 영역인 종교와 예수, 과학의 영역인 과학과 기술 이 두영역이 모두 인간문명의 토대를 이룬다면 그 토대들 사이에 접합 교섭 대화가 없을 수 없음을 얘기한다. 결국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점에서 공통의 지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현재의 우리 학문의 풍토는 자연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서로간은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엄격한 선을 긋고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침범'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생물할쪽에서 최재천 씨의 경우 윌슨의 <통섭>이란 책을 예로 들면서 단순한 학문의 통합이 아니라 모든 학문분과가 활발하게 소통하고 서로 굳게 닫은 빗장을 열어젖일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의 공간이 탄생해야 함을 얘기한다.

초반에서는 화기애애하게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 대한 의미부여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출발점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씩 보이는 차이점은 이 두사람의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주미힌 2006-01-1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 '글'은 도정일씨가 압도적이었는데, 'tv 책을 말하다'에서의 '말빨'은 최재천씨가 훨씬 잘하시던데요.. ㅎㅎㅎ

바람돌이 2006-01-11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전 tv는 못봤는데.... 그러면 도정일씨는 글빨이 낫다고 해야 하나? 근데 이건 대담이잖아요. 도정일씨가 tv에 나가서 떨었던가보죠? ^^;;

돌바람 2006-01-1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안 읽고 언니 정리 노트만 훔쳐봐도 될까용^^

바람돌이 2006-01-1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안되는데요. 이 책이요. 워낙에 방대하고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논쟁이라 논쟁을 따라잡는게 너무 힘들어요. 제가 정리하는건 너무 주관적이라 사실상 책의 핵심과는 동떨어졌을 가능성도.... 책을 볼때는 그런대로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데 이걸 막상 정리하려고 하니까 대담이라는 형식의 특성상 너무 힘들어요. 그냥 책보세요. 책 재밌어요. ^^

2006-01-18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