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생물학적 유전자와 인문학적 유전자

두사람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딘가에서 접합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화론 - 생물학 분야가 될 것이다라는데 두사람의 의견은 일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유전자와 유전물질의 발견 이후 그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데도 공감하는듯하다. 인문학의 기본 전제는 결정론과 환원론을 배격하고 문제를 열어두고 싶어한다면 현대 생물학은 환원론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이런 방향이라면 두 학문간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두사람의 관점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일단 최재천씨는 현대 생물학=유전자 과학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생물학 내에도 무수히 많은 분야가 존재한다. 흔히 비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으로 문화, 사회, 경제적 특성들을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개미사회의 경제, 개미사회의 정치라는 식으로 개미생물학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사회생물학>이 있다. 따라서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뭐 어떻게 보면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가 생물=동물이라는 것에서 출발을 시작하고 또 인간사회의 여러면도 자연계의 여러 특징을 보이는 점도 있을 수 밖에 없고하다면 이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남는 의문은 있다.

여기에 대한 도정일씨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도정일씨는 인간이란 생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생물적인 측면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한다. 가령 '평등'이라는 개념을 두고 볼때 이것은 자연계의 질서는 아니다. 인간이 사회라면 이래야 저래야 된다고 규정하는 일련의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은 생물적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비생물학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연스럽지 않은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 자연상태에 개입하고 자신의 행동과 존재방식을 바꾸어 사회적 진화를 이루는 것이 비생물학적 차원이라는것.

이 부분에서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친듯.

대담은 이후 진화 진보의 개념에 대한 인식으로 옮겨간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는 생물학 쪽에서는 모두가 생물의 개체가 진화를 해온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줄 알았더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으가보다. 진화를 인정하는 쪽과 생물 발생의 유전자, 환경, 생명체등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그것을 꼭 진보해왔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쪽도 있다는 것. 결국 그것은 인간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반드시 진보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어려운것처럼 그건 생물학쪽도 마찬가지인가보다.

3장.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이미 올해 최대의 사기극으로 판명나버린 황우석박사의 연구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이 약간 먼저 나왔다보니 시의성은 떨어지지만 이 두 학자의 접합점을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이들이 말하는 원칙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다시 되새겨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딜레마란 '과학과 생명윤리의 대립'이기도 하지만 기술이 어떤 미래를 열지 불투명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건 안돼"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하자, 하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는 경우가 생명과학의 딜레마가 아닐까? 여기에서 인문학과 과학쪽의 대처방법에 차이가 나는데 일단 과학쪽은 방법의 맹목성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하자는... 하지만 인문학은 그 방법이란게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따지는 것에서의 차이. (도정일)  ---- 결국 필요한 것은 과학자 역시 어떤 방법을 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방법인가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는 백번 지당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돼서 그렇지...

한편에서 제기되는 과학적 사고의 문제에서는 최재천씨의 말이 한 편으로 와닿는다. 전에 국가에서 자립형사립고 20개를 선정하면서 반발을 샀었는데 이건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립형사립고의 교육효과가 훨씬 좋다는걸 입증하려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험군과 다른 평준화 대조군을 같이 만들어야 하고 또한 재정지원이나 여타 지원에서 가능한한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놓치는건 자립형 사립고는 사실 20년뒤의 교육효과 어쩌고 하는것보다는 가진자들이 자기의 많은 돈을 더 투자해서 지 자식 출세시키겠다는 귀족 교육적 발상이라는건 일단 제껴두고 보자) 이런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 중의 하나가 과학적 사고방식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은 있어도 과학적 사고는 없는게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 (최재천)

결국 다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적 사고능력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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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1-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워낙 게을러서 말이죠.
님이 하시니까 저는 다시 읽기만 하렵니다. ^^

바람돌이 2006-01-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순전히 제 주관적인 정리라서...^^
저도 요즘 방학이니까 이러고 있는거지요. 뭐...^^

돌바람 2006-01-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저 '자연적 진화'랑 '사회적 진화'를 무리하게 접합하려는 예를 많이 보게 돼요. 억지스럽지요. 어제 다큐를 하나 보다가 잠깐 뜨끔하였는데요. 육지동물이 수상동물로 환경이 바뀔 때요, 육지에서 필요했던 허파며 발이며 하는 것들이 퇴화하잖아요. 대신 아가미며 지느러미 같은 것들이 새로운 환경에 의해(필요에 의해) 나오구요. 물론 몇 백, 몇 천년에 걸쳐서 진행되겠지만, 그걸 진화로 볼 거냐, 퇴화로 볼 거냐! 같은 거요. 비교적 간단한 이런 현상에마저 저는 '퇴화했잖아', 그렇게 말해버렸다니까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잘못된 통합적 사고능력'의 예였슴다. 그러니 통섭을 말한다는 것은 더 어렵지요. 으그그...

바람돌이 2006-0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그런 새로운 진화의 예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심지어 성적 선택에 유리할 때 그에 맞도록 진화를 하는게 아니냐까지...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세계 자연의 세계는 너무 오묘해서 사실 이게 인간의 힘으로 이해가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화론적으로 어떤 변화를 설명하고 그것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다가도 또 인간에게는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주된 요인이 동물과는 다른 사회적 이유가 나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양자의 통합은 또 멀어지고요. 어쨌든 이 두 학문간의 대화가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음은 분명해보입니다. 책속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는데요. 인문학자가 과학을 하는건 너무 어려우니까 과학자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를 해야하지 않나라는 얘기요. ^^ 뭐 이것도 100% 맞는 얘기는 아닌것 같지만-인문학자의 사고에서도 과학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한거겠죠- 양자의 통섭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