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린이가 새로 다닐 유치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습니다.

그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 12월까지만 다니고 지금은 집에서 엄마랑 열심히 놀고있지요. 전 사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이 좋았습니다. 뭐 선생님들 친절하고 애들 데리고 소풍이나 견학도 정말 열심히 다니고, 쓸데없는 보여주기 행사로 아이들 고생시키지도 않고....

근데 예린이가 4살부터 다녔으니까 2년을 다녔군요. 작년에 아이들을 봐주시는 친정어머니가 예린이 어린이집을 바꿨으면 하셨습니다. 뭐 2년이나 다녔으니까 유치원으로 바꾸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게 이유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여동생네 집 가까운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것였습니다. 이제 우리집 애들도 조금 커서 손이 좀 덜 가니까 친정엄마도 다니고 싶은 절에도 가끔 갈수 있는 여유를 가지시려고 하는거였죠. 아무래도 동생네 아이랑 같은 곳을 다니면 엄마랑 여동생 둘다 여유가 좀 생기니까요. 저에게 선택의 여지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들 봐주는 두사람이 약간의 여유를 가지자는데 제가 어떻게 반대를 하겠냐구요.

결국 그러다보니 유치원의 선택의 폭이 너무 줄어들더군요. 조건은 딱 하나! 동생네 집과 친정 두곳다 차량운영이 될 것. 이러고나니 선택할 수 있는 유치원이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가보니까 규모도 있고 또 그동네에서 오래된 곳이라 나쁘지 않겠지 하고 그냥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그동안 2번 정도 있었던 사전 모임에는 별게 없었고요. 이것도 사실 저는 직장땜에 못가고 늘 동생이 대신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격적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고 갔습니다. 아이들은 따로 무슨 검사같은걸 하고 강당에서 복조리 만들기도 하고 즐거웠나 봅니다. 하지만 저와 제 동생은 하나도 안즐거웠습니다.

원장과 원감 선생님이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한 얘기의 기본 전제는 "어머니들은 집에만 계시니 지금 교육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시겠지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제는 "어렸을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금 2-3년을 미리 준비해서 영재교육을 시켜야만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 유치원 출신 아이들이 이 근처 중학교에서 거의 전교 10등안에 다 든다. 뭐 이런 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유치원 본 수업이외에 방과후 영재교육을 소개했죠. 프로그램은 예능과정(바이올린과 성악), 영재교육과정(국어 수학 그림등의 학습지 교육이더군요.) 영어회화 이렇게 세가지로 나눠 수업을 하는데 이걸 해야만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대비를 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뭐 새로울건 없는 얘기지요. 이 나라 전체가 내 아이가 잘되기 위해서라며 온갖 학습의 장으로 밀어넣는게.... 그런데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늘 아이들을 바라봐온 이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건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저 과정들의 가격도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주 5회 50분 수업에 싼게 10만원, 비싼 영어회화는 15만원입니다.)

유치원때 초등학교 공부를 하고, 초등학교때 중학교 공부를 미리 하고, 중학교때는 고등학교 공부를 미리 하고, 그래서 좀 더 좋은 대학에 간 것만으로 그 아이는 무조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 다음에는요. 대학에서 미리 취업을 걱정해서 취업공부에만 매달리고, 그리고 직장에선 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아둥바둥거리고, 그리고 결혼을 하면 또 자기 아이에게 자기와 똑같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게 될까요?

누구에게나 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한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현재, 지금의 나이에 걸맞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겁니다. 나는 내 아이가 지금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유치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겁게 놀고,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 공부를 하고 중학교에서는 중학교대로 그 과정을 따라가는..... 그래서 공부가 좀 처지면 내 아이는 불행한 것일까요?  글쎄요.

아마 오늘 많은 엄마들이 유치원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가 방과후 과정을 신청했을겁니다. 엄마들의 불안감을 한껏 올릴 수 있을 만큼 유치원 교사들의 말은 달변이었으니까요.

나는 내 아이가 친구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그 나이에 걸맞는 여유와 즐거움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이의 권리를 박탈할 수 권리가 내게는 없으니까요. 다만 한가지 욕심이라면 아이가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에 대한 한가지 취미만큼은 가져줬으면 합니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니까요. 아마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학교 마치고 피아노든 아니면 미술이든 둘중의 하나정도는 지가 원하는 것 중에서 골라서 보내겠죠. 하지만 그걸로 끝내렵니다. 기왕이면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만약 그걸 위해 아이의 너무 많은걸 희생해야 한다면 차라리 공부를 좀 못해도 당당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냥 내 소신을 가지고 나의 신념대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외부의 억압이 너무 많네요. 부디 그런 외부의 억압에 굴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내가 여전히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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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1-1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끼리 모여살까요?

조선인 2006-01-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주님, 저도 껴주세요. ㅠ.ㅠ

세실 2006-01-1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맞벌이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ㅠㅠ

바람돌이 2006-01-1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어디쯤에서 모여살죠?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독립해서 독립공화국 하나는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 ^^

히피드림~ 2006-01-1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저도 아이에게 예술에 관한 소양은 좀 키워주고 싶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피아노같은 악기 하나는 배우게 할 생각입니다.^^

아영엄마 2006-01-16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기면 그 곳으로 이사갑지요~ ^^

책읽는나무 2006-01-16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친구도 다섯 살 배기 아이 유치원을 결정하느니라고 유치원 몇 곳을 돌아보고서 한 곳의 원장샘의 말을 듣고 와서 기겁을 하더라구요!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봐요! 그리고 이유치원 출신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도 똑부러지게 공부를 한다는 둥~ 아이들에게 과자나 사탕은 일체 안먹인다는 둥~ 과자나 사탕을 안주는 것은 좋긴 하지만...학습에 대한 열의가 너무도 대단하여 친구는 기가 질려 나와버렸다고 하더라구요! 실은 저는 다른친구에게서 그유치원이 괜찮아서 자기 아이를 그곳에 보낸다는 소리를 듣고서 그친구에게 그유치원을 소개시켜줬었거든요!
근데 그런 곳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결국 그친구는 다른 유치원을 선택하여 입학날짜를 기다리고 있긴한데....유치원을 알아보는 친구를 통하여 들리는 소리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유치원 수업과정에 정말 할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냥 민이를 계속 미술학원에 보내버렸습니다. 뭐 지금은 그나마 몇 달 보냈던 미술학원도 그냥 끊어버렸습니다...쩝~
이제 다섯 살인데~~ 싶은 맘도 있고, 민이도 이제 슬슬 동생 맞을 준비를 시켜야겠기에....ㅡ.ㅡ;;

클리오 2006-01-1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를 가지면서 단 하나의 희망이라면 애가 일찍부터 조기교육과 학원에 시달리지 않고 힘겨운 공부에 시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안교육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학교도 학부모들의 뜻이 비슷하면 좀 변할 수 있으련만... 행복한 세상이 되었음 좋겠는데... 엄마들도 그런 걸 다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휴..

바람돌이 2006-01-1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저도 그래서 초등학교 가면 피아노정도는 시키고 싶은데 그것도 뭐 제 욕심인지도 모르죠. 애들이 할려고 하면요. ^^
아영엄마님/ ^^ 지금부터 찾아봐야 할려나요?
책읽는 나무님/전 이미 그 유치원에 돈도 엄청 내놨고 더군다나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서리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정규시간은 지난번에 봤을 때 그렇게 심하지는 않더라구요. 방과후 영재교육인지 뭔지는 내벼려두고, 일단 다녀보다가 정 안되면 길을 다시 찾아봐야겠지요. 쩝~~~
클리오님/학교 학부모들의 뜻이 정말 안변하는 것 아시잖아요. 학교에서 자기 아이가 공부를 좀 한다면 정말 안하무인에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는 학부모 어디 한둘인가요?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학원이 필요한 아이도 있고 좀 줄여줘야 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얘기 해봤자 씨알머리도 안먹히더라구요. ^^

클리오 2006-01-16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도 우스운 것은 분당 일대에서는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남겨놓고 시키는 것을 엄청 싫어한답니다. 아이들 학원갈 시간 빼앗긴다구요. 그나마 학교에 의지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류층을 포함한 그 이하의, 더 '수준높은' 교육을 찾아서 시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공교육은 점점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심란하기도 하구요... 휴휴..

바람돌이 2006-01-1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클리오님! 그나마 학교 보충수업이나 이런거에 매달리는건 중류층 이하죠. 요즘은 잘사는 이들은 자립형 사립고니 해서 귀족형 학교를 더 만들려고 난리잖아요. 근데 또 이렇게 되면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같은 걸 계속 해야 된다는 논리고 빠질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한국의 공교육도 깝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