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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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는 소설이 내 독서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건 뭐 나의 능동적인 선택사항은 아니었던듯하다.

그 시절에 교과서 외의 책이라고 하면 당연히 소설이라고 생각했지 다른걸 선택할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20대와 30대 중반까지 이 시절은 논리의 시절이었다.

세상은 논리적으로 파악가능한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잘 사느냐에 따라 세상의 미래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세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나는 논리에 의해서 움직였고, 그것에 의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철학과 경제학과 정치학과 사회학 온갖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이 내 독서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소설 또는 문학은?

그야말로 머리아픈 중간에 쉬어가는 곳이었을 뿐이다.

내가 이 시절에 해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무게를 잠시 덜어줄, 아무 생각없이 낄낄거리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의 잠시의 피서 그것이 문학이었다.

 

그러나 나이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좀 더 똑똑해진건지, 그도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가 된건지 아직도 명확하게 진단내릴 수는 없지만, 다시 문학이 내게로 왔다.

논리만으로는 세상을 구하지도 변화시키지도, 사람을 설득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문학의 의미가 각별해졌다.

 

아마도 20대의 나는 절대로 이 소설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안읽은게 다행이다.

 

소설 <환상의 빛>은 4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4가지 이야기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불가해성과 모호함, 그리고 상실의 고통이다.

<환상의 빛>에서 아내는 남편이 왜 그 밤에 갑자기 철길을 걸었는지, 그리고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않고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슬픔은 오래도록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때문이다.

죽은 남편에게 "그래 당신이 그렇게 힘들었구나, 이제는 편히 쉬어'라고 사후에라도 위로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간 할머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기에 그 뒷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죽은자는 죽었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삶의 지속성만으로 보자면 유미코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한 듯보인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고, 그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어가고, 그리고 새 남편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모습은 유미코가 전남편의 죽음을 극복한 듯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내내 묻고 있다.

당신 왜 거기에 있었지요? 왜 돌아오지 않았나요?

나중의 어느날 유미코 그녀가 철길을 걷거나 또는 을씬년서러운 바다를 걸어들어가거나 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도 남은 이들은 유미코와 같은 의문을 내내 곱씹고 곱씹어야 하리라......

한 인간의 내면의 모두를 누가 감히 전부 알 수 있다고 할까?

 

<밤 벚꽃>은 그림같은 소설이다.

눈을 감으면 소설의 장면이 영화속 정지화면처럼 아스라히 떠오른다.

아스라히 날리는 밤 벚꽃과 상실의 고통을 삭이고 있는 어미, 그리고 이제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가난한  신혼부부의 애틋한 모습이 어찌 그리도 손에 잡힐듯 떠오르는걸까?

풍경속에 그들의 상반되는 마음자락이 모두 어쩌라고 이리도 잘 잡히는지.....

이런 특징은 다른 소설 <박쥐>와 <침대차>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역시  글을 읽다보면 소설속 장면들이 선명히 떠올라 그야말로 글이 아니라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박쥐가 날던 어두운 하늘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르고, 그 아래 소년의 손을 잡고 같이 뛰고 싶은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침대차>에서는 기차 침대칸에서 우는 노인의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싶은 소설과 내가 섞이는 경험을 한다.

 

4개의 소설 모두가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그 어느 소설도 그 상실의 원인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 아픔을 같이 느끼고 같이 울어주고싶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영화속 스틸화면으로 어느새 내가 들어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라니, 이야말로로 불가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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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3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 때 추리소설을 주로 읽다가 로멘스소설,,,만화,,,주로 만화를 읽다가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작년부터 소설을 읽으려고 하는데 저도 이 나이에 읽으려고 하니 읽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시건방지기만 해서 소설을 우습게(?) 알았던;;;; 암튼 [환상의 빛]을 담습니다.,,,그런데 왜 요즘 이렇게 제 주위를 `환상`이라는 단어가 배회하는 듯~~~?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15-02-03 11:14   좋아요 0 | URL
ㅎㅎ 환상의 여인... ^^
그러고보니 제가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놓지않는 장르가 하나 있네요. 만화... ^^
전 원래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 읽은 2권의 단편집 <축복받은 집>과 이 책 <환상의 빛>은 진짜 좋네요.

앤의다락방 2015-02-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책방에서 다뤘는데 너무 재밌겠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구입까지했는데 아직 다른책 읽느라 읽진 못했네요^ ^ 바람돌이님 서평보니 얼른 읽고 싶어지는 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