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지하게 갑자기 슬퍼졌다. 왜냐고~~ 세상에 우리반에 나도 모르는 일이 있었다. 물론 내가 이녀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에 고자질에 일가견이 있는 이 녀석들이 무려 51일간이나 나에게 비밀을 지켰다는건 충격적이다.

오늘 종례시간 - 그렇게 종례시간에 어디 가지 말고 교실에 앉아 있으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했건만 오늘은 무려 10명 정도나 없다. "뒷문 닫아!" 5분여를 기다려서야 녀석들이 앞문으로 슬금 슬금 들어온다. 그 중에 1명은 무리들 속에 섞여 기어서 도망가다가 잡힘.

이유를 들어본즉 5명 화장실에서 놀았단다. - 도저히 이해 안되는 행동 얘들은 왜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맨날 놀까? 다른데도 천진데.... 아직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쌈도 화장실에서 하고 장난도 화장실에서 한다.

나머지 5명, 과학샘이 불렀단다. 그래? 하고 넘어가려는데 애들이 또 일러준다. "선생님 과학샘이 2시 45분까지 오랬는데요."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이다. 칠판에 대빵만하게 2시 45분이라고 적혔다.

"이것들이... 야! 빗자루 가져와!"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녀석 잽싸게 뛰어가서 열심히 빗자루를 가져온다. 제일 아픈 나무 막대놈으로...(우리 교실의 빗자루는 하도 녀석들이 갖고 험하게 놀아서 늘 부러져 바꾼 탓에 구입시기에 따라서 자루의 모양이 세가지다. 맞는 강도도 다 다르다. 내가 가끔 이용하는건 그중 소리 가장 요란하고 아프기는 제일 덜 아픈 플라스틱 막대자루이다.)

걸린 녀석들의 원성. 나는 "이런 인정머리 없는 놈, 친구가 맞는다는데 이걸로 가져오냐"

"이게 제일 아픈데요. 쥑이는데요 샘!" "시꺼 임마~~ 의리없는 놈! 새로 갖고와"

10명이 모두 손바닥 한대씩 맞고 들어가는데  마지막 여학생이 맞는 순간 어느 녀석이 실수로

"선생님 **이 가슴 찢어지는데요"

엥! 이게 뭐야!  "야 너네 둘 연애하냐?"

그제서야 봇물이 터진듯이 "쟤들 50일 됐대요, 사귄대요. 어디 사이트에서 채팅하고 난리래요. **이가 ㅇㅇ보고 이세상에서 제일 예쁘대요"  "눈꼴 시어요"등등등....

순간 황당하고 슬퍼진 나! 이런 젠장! 50일이나 됐는데 내가 몰랐단 말야!

잠시 슬퍼하다가 분노했다.

청소시간에 잠시 둘을 불러서 추궁하니 둘보다도 더 많은 녀석들이 주위에 모여 일러주기 바쁘다.

한 녀석은 계속 내 옆에 붙어 "샘 51일 51일...." 노래를 부르고 이 둘이 모 싸이트에서 만나 나눈 얘기가 모두 폭로돼고 나는 "그래 너그들이 내 몰래 연애를 했다 이거지... 너희둘다 내일 부터 다른 반으로 가!"

순진한(?) 남자애 "진짜요!"

그옆에 우리반 무리들"빙시 아이가? 야 13반 가라 13반"(우리 학교는 1학년이 12반까지다)

나의 분노겸 놀림에 고개도 못드는 녀석들.. 흥 귀엽군...

그래도 우리 때는 꿈도 못꾸던 것들인데 요즘 애들은 참 연애도 잘한다. 대부분 얼마 못가긴 하지만... (하지만 이 나이때야 뭔들 어떠랴!)

그래도 조금 슬퍼하면서 교무실로 내려왔다. 근데 조금후에 우리반 여학생 한명이 쪼르르 내려와서 나더러 "선생님 3학년에 ***오빠 알아요" 한다. "응 알지 근데 왜"

" 그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그 오빠가 너무 좋아요"

엥! 이건 또 뭐야! 아무리 잘봐주려고 해도 이놈의 짝은 무조건 내 딸래미가 아깝다.

"야 왠만하면 내가 다른 오빠야 소개시켜 줄게. 짝사랑의 대상을 좀 바꿔라..."(그 반 담임에게는 비밀이다)

바야흐르 꽃피는 청춘들이다. 아직은 어린 녀석들. 연애마저도 참 귀엽다.

그래도 나를 50일동안이나 아니지 51일이지 어쨌든 괴씸하다. 방학하기 전까지 계속 괴롭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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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7-1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러워라~~
우리땐 대학가야 연애하는건줄 알고 꾹꾹 참았는데..
얼마나 갈지 궁금한걸요? 100일이면 기념식도 하겠네(별게 다 궁금한 아짐)

클리오 2005-07-1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그래도 다행이여요.. 저는 도망간 놈들이 뭐 안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게 비밀인가 했더니만, 아이들 사귄지 51일째 정도를 모르셨다니.. 그 정도야 뭐.. ^^ 나쁜 일이 아니라 다행이여요... 호호.. 걔네들은 50일째에 50원씩 걷으러 안다녔나요??

파란여우 2005-07-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뭐든지 일찍 터득하는게 좋지 않나요?
쿨럭!(오늘 왜 기침을 이렇게 자주 하게 되지?^^)

날개 2005-07-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애들이 그런거 시시콜콜이 다 얘기를 한다는 말씀? +.+ 전 그게 더 놀라와요~

조선인 2005-07-1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에요. 흐뭇~

바람돌이 2005-07-1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죠. 100일 기념식 그런건 하겠죠. 그 때 가서 나도 기념 사탕이라도 내놓으라고 해서 뺏어 먹어야지~~^^
클리오님/ 이녀석들은 좀 순진한 아니 아직 어린 구석이 있어서 50원씩 걷지는 않았더라구요. 100일되는 날은 모르죠 어쩔지... 근데 제 생각에는 이놈의 봉숭화 학당 100원 내놓으란다고 내놓을 놈이 없지 않을까....
파란여우님 감긴간요? 약드세요. 초장에 잡으세요. 아님 젊은 애들 연애에 혹 질투하는건 아니신지...^^
날개님/중학교 1학년은요. 특히 남자애들은요. 수다가 끝내줘요. 절대로 비밀이 없어요. 얘들이 선생님에게 입을 닫는건 2학년은 되어야 하죠. 사실 어떤 때는 내가 모르고 넘어갔으면 싶은 일도 너무 일러줘서 미칠 때도 있어요.
조선인님/맨날 소리지르고 빗자루나 휘두르는 깡패 선생입니다. ^^

chika 2005-07-1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50일... 바람돌이님, 좀 무디신게..... ^^;;;;;;;
'니 13반 가라~' 한 녀석의 센스를 배우심이...(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

바람돌이 2005-07-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글세말예요. 제가 화나는 것도 바로 그거라구요. 제가 언제 이리도 무뎌졌느냐 말예요. 옛적에는 한 눈치로 날렸었는데....

진주 2005-07-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갸들이 100일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헐? 이건 또 모야?)

바람돌이 2005-07-1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나중에 100일되면 알려드립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