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한민국 - 변화된 미래를 위한 오래된 전통
심광현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몇 년전 중국 여행을 한적이 있다.(아직은 이게 내 유일한 해외경험이다)
처음 이틀정도는 중국의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질린 날들이었다. 진짜 바다같았던 이화원의 인공호수,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던 만리장성, 그리고 자금성. 그 옛날 조선의 사신이 자금성의 아홉문을 들어서면서 문 하나마다 절을 올리면서 들었을 주눅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금성에서 내 속에 어떤 변화가 일었다. 그 때까지 주눅만 들어 바라보다가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가 규모만 엄청나지 볼거라고는 늘 거기서 거기인 중국이 시시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경이의 세계로 이끌었던 창덕궁과 여기 저기를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그 전핸가에 나는 답사팀에 포함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영역까지 창덕궁의 전모를 답사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더랬었다.) 규모가 작은 대신 곳곳에 자연을 끌어들여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여기저기 숨은그림 찾기 하듯 소소한 온갖 이미지들을 숨겨놓은 창덕궁을 보는 재미와 자금성을 보는 재미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면서 같이 갔던 친구들과 나눴던 말이 관광한국의 미래가 참 어둡구나 하는 거였다. 중국은 규모로 승부하고 일본은 그들 나름의 아기자기한 독특한 인공적인 미로 승부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동양문화에 문외한인 서양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인데 반해 한국의 미는 주변의 자연을 고려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미다. 이건 그리 단번에 터득되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쩔까나....

그 때 우리가 잡담처럼 나누었던 한국미의 특징을 이 책은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소박미, 자연미 등의 어정쩡한 말로 이름지어져 왔던 한국미의 특성을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자연의 고르지 않은 현상 및 불규칙한 자연 형태의 사물을 묘사할 수 있는 개념이라 하는 프랙탈 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솔직히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처음 듣는 개념이다)유클리드 기하학이 질서정연한 서구의 근대합리성의 시공간을 상징한다면 프랙탈이라는 개념은 무질서속의 질서로 훨씬 역동적이고 강렬한 질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하에서 저자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자연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여기서 프랙탈한 자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드는 것이 정선의 금강전도이다.) 수없이  주름지고 구부러진 한반도의 산수는 그 자체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미감을 표현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것의 발현이 바로 흥의 미다. 저자는 우리 나라의 미를 흥의 미, 한의 미, 무심의 미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흔히 한의 미가 우리의 미의 주류인 것처럼 얘기되어진 것은 근대 이후 질곡의 길을 걸었던 우리 역사에 의해서 오해되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흥의 미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한의 미와 무심의 미가 보태지는 것이라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우리의 풍수지리사상, 전통건축, 전통음식, 음악 문학, 미술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 내달린다. 읽다보면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은 수많은 의문들을 동시에 남긴다. 내 자신이 아직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과연 하나의 개념으로 한국예술의 모든 분야를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 나라의 산천이 다양한 것처럼 각 지방마다 각 분야마다 얼마나 다양한 문화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지어져야 한다는게 오히려 서구 근대합리성의 유산인 것은 아닐까? 실제로 책의 많은 예가 수긍이 가지지만 일부분에서는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설명이라든가 2002년 붉은 악마에 대한 너무 나아간 평가들, 풍수지리사상에 대한 평가들 같은 것들은 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나아간 면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의 개념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자 하면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런 단점을 이 책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우리의 전통을 우리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 내부의 무수한 예들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 지는건 여기서 그가 얼마나 더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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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5-10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다음에 책을 고를 때에 충분한 고려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한"의 정서라기 보다 "흥"의 정서에 더 가깝다는 심증적 감정을 지닌체 살고 있답니다. *^^*

바람돌이 2005-05-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우리 나라의 정서가 흥의 정서에 더 가깝다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다만 이런 식의 지나친 일반화가 또 놓치게 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거지요.

비로그인 2005-05-1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