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 처음 만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
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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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지리학자라는 저자의 직업명칭이 확 눈길을 끈다.

거기다가 제목도 얼마나 도발적인가?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라니....

이 책의 원제는 <Feminist City>이다. 여성주의 도시쯤으로 해석될 이 구절을 저렇게 바꾸어놓았으니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성공적이라고 생각은 드는데 책의 내용을 보면 원제가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어쨌든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라는 이 생소한 분야가 나의 흥미를 확 끌었던건 맞다.

원래 지리학에 관심이 많고, 특히 도시와 도시의 삶을 좋아하며 이제 페미니즘에도 집중된 관심을 가지게 된 현재의 나 말이다.


완전히 모르던 새로운 내용은 없으나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또는 무지해서 무시했던 여러가지 도시체계의 불합리함, 반여성주의, 반인종주의 등등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인해 새로운 관점과 나의 시야를 튀우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래서 항상 뭔가 새로운 분야의 책을 처음 시작하는 것은 늘 좋다.

거기에는 모르던 것에 눈이 번쩍 뜨이는 신기함이 있고, 나의 생각의 지평을 확대하는 신선함이 있으며, 내 삶의 태도를 다시 정비하게 하는 그럼으로써 내가 사는 곳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만드는 힘이 있다.


흔히 헐리웃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항상 동경이었던 삶의 형태가 있다.

교외의 넓은 부지에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마당의 큰 나무에는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 비밀 아지트가 있으며 때로 날씨좋은 밤이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별을 보며 잘 수도 있는, 그리고 2층의 단독주택이 있는 그런 미국 중산층의 심볼같은 집 말이다. 

집은 커녕 내 방 하나 가져보는게 소원이었던 어린 나에게 저 영화속의 집들은 그야말로 드림하우스였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인들에게도 이런 교외의 주택은 드림하우스였단다.

저 드림이 희망이 아닌 허상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교외의 주택은 분명히 사회적 경제적 성공의 상징이었지만 이 주택은 직장에서의 거리가 멀고, 각종 편의시설에서의 거리 역시 너무 멀고,집을 관리해야 하는 노동이 엄청남으로 인해 성인 중 한명은 밖에 나가서 일하고 다른 한 명은 집 안에서 일하는 이성애자 핵가족을 모델로 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이는 대부분 남성이고, 교외의 주택에서 혼자 남은 노동 모두를 감당해야 하는게 여성임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교외 주택에 사는 중산층 여성들의 우울을 다룬 영화나 콘텐츠들이 한 때 왜 그렇게 많았는지도 이해가 된다. 여성을 삶으로 부터 고립시키는 그럼으로서 가부장제를 강화시키는 삶의 방식이라는 교외주택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도시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여성친화적인 아니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여기서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이 <교차적 관점>이다.


우리는 안전한 도시의 형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거기에 사적인 안전 조치가 포함되지 않은다는 것은 안다. 안전한 도시는 범죄 예방이나 적절한 조사를 경찰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해보이는 겉모습을 위해 성노동자, 유색인, 젊은이, 이민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백인 여성 특권층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변화가 부정적 지배를 무너뜰릴 거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필요와 관점에서 출발하는 교차적 접근법이 요구될 것이다. 여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미는 것이 표준 관행이 될 것이다. 사적 공간의 폭력과 공적 공간의 폭력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가 증가할 것이다. (249쪽)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연구해온 저자의 학문적 입장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저자가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이 나는 이 <교차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홍대앞, 가로수길, 서촌 같은 곳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 구도심과 외딴 지역이 개발되면서 정작 그곳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던 이들은 땅값과 임대료의 상승으로 쫒겨나고 대자본이 들어와 지역을 차지하는 현상은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여기에 더해 구도심의 독특한 지역들이 개발되면서 백인 중산층들이 이곳을 돈으로 점령하고 이곳에 살던 이들은 더 외진 곳으로 교외로 밀려나면서 삶의 질이 더 낙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뭐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들이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얼마나 많은 판자촌들이 밀려났던가 말이다.

어떤 특정 계층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도시 내의 모든 계층의 삶의 안전을 강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성들이 도시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이 설치하자는 CCTV는 어떠한가?

그것은 약간 으슥한 곳의 위험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성매매 여성이나 이주자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낙후된 동네에 새로 이사온 중산층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문화센터를 만들자 도시의 안전도가 증가한 것 같지만 문제는 그곳에 있던 그나마 가난한 여성들을 지원하던 센터와 그들이 안전하게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다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또한 남녀의 두가지 젠더에만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더 다양한 성별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트랜스잰더, 젠더플루이드(성별이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젠더, 다양한 젠더 사이를 짧으면 분 단위부터 길면 연단위까지 변화), 논 바이너리(남녀의 이분법을 거부하는)등등.... 

모르는 것은 때로 죄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존재를 모르면 인정할 수 없고 배려할 수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고, 행동하고, 시위를 한다고 할 때도 그 대열 안에서도 소외되는 소수자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 이들을 소수자로 남지 않게 하는 힘은 역시 알아야 하고, 앎으로써 연대의 첫 발자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여성친화적인 도시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도시의 계획과 건설, 배치에 성평등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제설정책같은걸 실시할 때 자가용 선호자가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가능자가 어느쪽이 더 많은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골목길이 우선적으로 제설작업이 되어야 한다. 중심도로가 아니라..... 

돌봄노동의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이성애자 핵가족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더더구나 한국 사회에서는 그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계층과 나이와 성별, 인종의 돌봄노동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이러한 추세에 대한 공공서비스와 편의시설을 배치할 수 있는 마인드를 지녀야만이 도시의 슬럼화를 방지하고 살고싶은 도시를 만드는 첫걸음이 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모든 것이 땅값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없는 형편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누군가가 알고 논의를 시작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고 싸우고 건의하고 시위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세상은 바뀌어 가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때로는 그냥 거리로 나가야 한다.

권리란 강의실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혹은 선거 정치를 통해서도 쟁취하거나 지킬 수 없다. 모든 일은 현장에서 일어난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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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4 1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지도 폭력이 될 수가 있음을 한번씩 절감합니다. 관점을 재점검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책이 그래서 필요한것 같아요. 찜해두었었는데 꼭 읽어볼래요!! *^^*

바람돌이 2022-08-14 18:11   좋아요 3 | URL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무식한데 신념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딱 맞는 상황이라는 생각이.....ㅠ.ㅠ 이 책 어렵지 않으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미미님도 좋은 독서 되시기를..... ^^

그레이스 2022-08-14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차적인 관점이라는 말 이해가 되네요. 도시문제는 정말 여러 방향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람돌이 2022-08-15 20:50   좋아요 2 | URL
맞아요.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어떤 문제도 쉬운건 없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다른방법을 모색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파랑 2022-08-15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표지 보면서 왜 원제랑 번역제목이 완전 다르지? 이 생각 했었는데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페미니즘과 지리학이라니 신선한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8-15 20:51   좋아요 3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다보니 제목을 좀 강렬하게 한것 같아요
사실 저도 저 제목에 끌렸거든요. ㅎㅎ

희선 2022-08-16 0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시도 여러 사람을 생각해야겠군요 그런 거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아파트 짓기에 바쁜... 그게 다가 아닐 텐데... 앞으로는 거기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고 도시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8-18 12:42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도시는 무조건 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느낌이 많잖아요. 그런데 진짜 앞으로는 도시에 사는 여러 사람들의 요구, 도시환경 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을거 같아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