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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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미쉐린? 미슐랭????

표지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하여튼 음식 만화인줄 알았다.

1화 캘리포니아 롤의 시작을 봐도 딱 그렇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그대로 패러디한 전개다. 시작부터 아 뭐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스터 초밥왕>을 따라한거라면 이 만화는 영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기다린다. 

온갖 디테일을 가리키며 음식의 때깔을 칭찬하던 아저씨는 바로 캘리포니아 롤 모형을 주문한 업체 사장님이었던 것.

그러니까 사장님은 그냥 자기가 파는 음식을 모형을 보면서도 감탄하고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서 우리의 주인공 이세린은 그냥 우물쭈물... 아 뭐지? 그냥 보내준대로 만든건데 도대체 모형을 칭찬하는거야? 자기 가게 음식을 자화자찬하고 있는거야 하면서 궁지렁 궁지렁 난감해하는 중일뿐이다. 

그 궁지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낄낄거리게 된건 솔직히 말해서 저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다.

그러므로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확 올라갔다.


이 만화의 시점은 전형적인 1인칭 시점인데 그게 좀 묘하다.

1인칭이라고 해도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 책은 자꾸 작가와 주인공 이세린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만화가이고, 음식모형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1인칭의 시점과 더불어 이 책이 소재의 면에서 음식모형제작을 선택하고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솔직히 만화의 초반에나 좀 신기했지 뒤로 갈수록 이 모형의 제작 과정 얘기는 살짝 지루해지기까지 하는데, 그럼에도 이 모형제작과정에 대한 얘기로 말미암아 독자는 이 책의 주인공 이세린에 대해 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실존인물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원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경우가 많다.

그것은 읽는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기 때문인듯한데, 이 만화가 취하고 있는 구성이 노리는게 바로 그런점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만화가 정말로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음식모형제작 사이 사이에 양념처럼 배치된 이세린의 어린시절, 가족, 독신직업인으로 사는 현재의 삶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면에서는 <82년생 김지영>에 대비되는  <92년생 이세린>의 삶을 얘기한게 아닐까 싶은거다.(대충 이세린의 삶의 궤적을 살펴봤을 때 90년대생쯤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그리고 문학적 성취로는 이세린 가이드가 훨씬 낫다. 내 생각에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이라기보다는 무슨 르포같았으니까 말이다)

3남매 중의 막내 고명딸로 귀여움을 받고 살았지만, 이세린 그녀의 역할은 바로 그 귀여움에 갇힌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기존의 남존여비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여자의 행복은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데 있다는 생각을 가진 세대이면서 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문화의 틀에 묶여있는 세대다. 

하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다른 문화와 다른 교육을 받고 자라난 이 세대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우선하는 첫 세대고, 그 간극에 대해 고민하고 저항하는 그럼으로서 빠져나오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세린의 엄마의 꿈 중 이세린이 가장 잘 되는 것은 영부인이 되는 것이고, 이웃집 엄마 친구는 덜떨어진 자기 아들과 이세린을 엮어주려하고, 친척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가족을 비하하는 말을 내뱉는다.




3화 비빔밥편에 나오는 이런 친척모임의 한 장면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불괘하면서도 집안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짜 웃음을 짓는 명절 분위기 딱이다. 

물론 저기에 술이 한잔 걸쳐지면 제대로 대화하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는 너네 집은 뭐 별거 있냐? 돈 좀 있으면 다냐 뭐 이르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할 테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이세린은 여성이라면 또 피해갈 수 없는 외모타령에 시달린다.

이 외모 타령이 흔히 못생기거나 뚱뚱한 사람에게 가해질거라는것도 편견이다.

내 시댁 사촌 시누 중 한명은 키가 굉장히 크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살이 찌진 않았지만 원래 타고난 골격이 큰 편이라 아주 늘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진짜 부러운 키에 부러운 외모였다.

그런데 시댁의 행사 때 가족들이 모였다가 이 시누만 보면(당시 고등학생) "넌 또 컸냐? 지난 번 보다 더 크네, 아고 키 커서 좋겠다. 야 모델같다" 이런 말을 한 명도 빼지 않고(우리 시집 식구가 굉장히 많다.) 하는거다. 

어느 순간 이 시누 울음이 빵 터졌다. 

자기는 키가 너무 큰데 자꾸 크는게 스트레슨데, 식구들이 칭찬이랍시고 다 한마디씩 걸치니까 결국 터진거다.

이세린 역시 마찬가지다. 이세린의 경우는 너무 살이 안쪄서 당하는 외모 비하다.




남성이 키가 작을 때 사람들은 속으로만 생각하지 앞에서 대놓고 저렇게 떠들지 않는다.

혹시 기죽을까봐, 또는 실례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한마디씩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무슨 자동 패치라도 장착한건지....

내 식사는 항상 평가당한다라는 이세린의 저 독백이 마음에 콕 와서 박힌다.

물론 내 경우는 이세린과는 반대의 이유로 평가당한거지만.....



그래도 자기 일을 가지고 작업장도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추고 독립된 삶을 사는 우리 이세린.

이제 무엇을 해도 무서울게 없을 거 같지만 세상은 참 만만치 않다.




혼자 사는 여성, 아니 같이 살더라도 여성 혼자 있을 때 어쩌다 배달을 시키면 누구나가 맞닥뜨릴 저 상황은 너무 실감이 나고 너무 공감이 가서 오히려 짜증이 났다.

내 경우도 딸이 온라인 수업으로 혼자 있을 때 점심을 배달음식으로 먹게 되면 배달 왔다 갔을 시간에 꼭 전화해서 딸이 무사한지를 확인하게 된다.

배달하시는 남자분들은 무슨 세상 남자들이 다 범죄자냐고,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거냐고 불쾌해 하시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저절로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세린이라는 90년대생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으면 이 만화는 더 풍요로운 재미와 공감을 안겨준다.

다만 내가 너무 심각한 얘기만 해서 이 만화가 무지하게 심각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역시 만화니까 유머감각 넘치는 장면들도 꽤있다.

가장 내가 깔깔거렸던 장면



김첨지 이 시발놈아!!! 

아 진짜 욕은 카타르시스다.

올해 욕 안하기로 해놓고 이 장면에서 낄낄거리며 김첨지 이 시발놈아를 따라하는 난 도대체 뭐냐? 

새해 목표 달성은 정말 갈길이 멀구나.....

덧붙이자면 이 장면은 실제로는 꽤 의미심장한 장면인데 왜냐하면 바로 앞페이지에서 여중생들이 먼저 흉내내는게 밥상을 뒤집어 엎으면서 에잇 이놈의 재수없는 집구석이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다른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너네 아빠라고 외치고 친구가 정답 이러면서 웃기다고 데굴 데굴 구르는거다.

그래서 저 시발놈이라는 욕은 김첨지뿐이 아니라 차마 대놓고 말을 못했던 밥상 뒤엎던 모든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생각이 막 든다. 지 기분 나쁘면 지가 차리지도 않은 밥상을 뒤엎고, 치우지도 않던 그 모든 아버지들말이다.


결론 - 이세린 가이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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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키라 2022-01-05 0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만화책에 그것도 귀여운 캐릭터가 욕하는 장면은 첨이네요 ㅋ 욕하는 아이 표정을 상상하니 이밤에 저도 낄낄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3   좋아요 2 | URL
이세린이 중학생때 경험을 말하는 부분이에요. 여중생에게 저정도 욕은 뭐 욕도 아닌걸요. 그냥 일상어....ㅠ.ㅠ 한편으로 진짜 웃기고 또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한 부분이었습니다.

새파랑 2022-01-05 07: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페이지 예전에도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다시 봐도 재미있네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3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막 웃을듯요. 재밌었어요. ^^

오거서 2022-01-05 0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에도 마지막에 반전이 있군요. 욕해서 나쁜 놈을 물리칠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요… ^^

바람돌이 2022-01-05 09:55   좋아요 2 | URL
문제는 욕해서 나쁜 놈이 물리쳐지는게 아니라 제가 물치쳐지는 느낌이랄까? 진짜 나쁜놈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계속 욕하고 살아야 하는데, 저의 올해 결심은 주변의 조금 나쁜 사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요. 그 사람들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화내고 하는거 이제 좀 안할려고요. ㅎㅎ

coolcat329 2022-01-05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미있는 부분 정리 잘 해주셔서 저도 아침부터 낄낄 거렸네요.
이 책 저희 아이가 재미있게 읽는거 봤는데 방학이니 다시 빌려 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2-01-05 09:56   좋아요 3 | URL
아이들도 보면 재밌을텐데 저희집 딸은 권해주니까 그림이 내 스타일 아니야 이러고는 팽!!!
그놈의 취향은 얼마나 확고해주시는지 말이죠.
하긴 저도 딸이 좋아하는 만화책 취향 아니라고 안봐주긴 합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01-05 1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랑 웃음포인트가 비슷하셨네요 ㅋㅋㅋ저도 저 장면만 딱 찍어 놨어요.

바람돌이 2022-01-05 13:34   좋아요 4 | URL
아 저 장면은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는듯하지 않나요? ㅎㅎ 너무 공감가는 욕이라서 그런걸까요? ^^

scott 2022-01-05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이세린에서 가장 재밌는 곳만 콕콕 찝어 주셨네요.
저도 82년 작품보다 이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ㅅ^

바람돌이 2022-01-06 09:20   좋아요 3 | URL
오우 스콧님 역시 저랑 같은 생각! 어쨌든 내가 좋다는걸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기분!
오늘 아침은 스콧님덕분ㅇ[좋은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

mini74 2022-01-05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좋아해요.ㅎㅎ

바람돌이 2022-01-06 09:20   좋아요 2 | URL
은근히 웃기고 심심한듯하면서 재밌더라구요. ^^

stella.K 2022-01-05 1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은 욕을 사랑해요!
사람들이 제가 욕을 하면 찰져서 좋다고 대리만족을 하더라구요.ㅋㅋ
사람들이 왜 욕쟁이 할머니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06 09:22   좋아요 3 | URL
저도 욕을 사랑해요. 욕할 때 찰진것과 쌍스러운것이 진짜 경계가 아슬아슬한데 그걸 또 진짜 찰지게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제 친구 중에도 있는데 말이죠. 스텔라님도 그런 분이셨군요. 아 좋아요. 찰진욕쟁이!!!
저는 그러너 능력이 없어서 그냥 욕 안하는걸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