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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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보면서 소설과는 달리 이 사람을 삶을 좀 더 알고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때론 투사처럼 보이고 때론 살아가는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는 섬세한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며, 여성의 역사를 얘기하는 곳에서는 치밀한 학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이런 다면성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아름다운 인간에 대해서 좀 더 내밀한 것까지 알고싶다는 욕구를 끊을 수가 없다. 

단 그녀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읽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녀의 삶에 대한 글은  일단은 좀 쉽게 알아먹을 수 있게 워밍업부터 시작하고픈 마음이 막 솟구치는데 이 책이 딱 그 지점에 위치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한마디로 대표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쓰는 사람>이라고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너무나 성실하게 글을 썼고, 바로 그 글을 쓰는데서 삶의 의미와 존재이유를 찾았던 사람이다.

존재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염세적일 수 없다. 더더군다나 성실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채워나가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쓴다.

소설을 쓰고, 일기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서평을 쓰고.....

그녀가 남긴 글의 양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쓰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쓰기 위해 열심히 읽는 사람이었으며, 론볼이라는 스포츠를 평생 즐긴 사람이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명민하게 관찰하는 사람이었고,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자기 집에 출판사를 만들고 직접 책을 출판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삶의 마지막까지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염세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단 하나 그녀의 신경쇠약이었는데, 그것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아마도 조울증이었던 듯 싶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 의하면 조울증은 우울증과는 다른 신체 질환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병하는, 당시에는 제대로 원인이나 치료방법도 없어서 그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울증의 시기를 무조건 버텨내야만 했던 질병의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고 쓰고자 했다.


단지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삶 전체를 애수와 염세주의로 얘기하는 것은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그녀의 병을 알면서 나는 그녀의 자살도 삶에 대한 절망이나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로 생각해서는 안되는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이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결짓고자 하는 욕망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지금 태어났다면 그래서 조울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주 나이 든 노년의 울프가 쓴 더 원숙해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자살을 나는 절망으로 읽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스스로 찍음으로써 자신의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마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 -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구나-과 그녀는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계속 가지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뒤섞이게 만든다.

역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그 이율배반들까지 이해하게 될 때 온전히 그녀를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그건 불가능하리라...

나 자신조차도 나를 다 알지 못하고, 그 때 내가 왜 그랬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버리지 하면서 살아가는게 인간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로 알려져있다.

나 역시 처음 그녀의 이름을 안 것은 이 시를 통해서인데, 이 시속에서 풍기는 그녀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목마와 숙녀>는 많은 사람이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알게 했지만, 그녀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 - 낭만적인 소녀감성, 염세주의자, 불행한 삶에 침몰당한 여성작가 이런 식의-를 심어주는데도 너무 큰 공헌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의 이름을 부를 때 함부로 부르지 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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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1-04-15 08: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쓰는 사람으로 존재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차분하게 기술한 리뷰를 읽으며 이 책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오늘 하루도 웃어서 행복한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4-15 14:51   좋아요 1 | URL
저처럼 버지니아 울프를 막 읽기 시작했다면 먼저 그녀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성지님도 오늘 하루 웃으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4-15 0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목마와 숙녀 첨들어 봐서 찾아봤어요. 바람돌이 님이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를 알겠더라는~! 저는 버지니아 울프 책을 몇권 안읽어봤는데, 읽고 싶어지네요^^

바람돌이 2021-04-15 14:56   좋아요 1 | URL
어머 여기서 또 새파랑님이 젊다는 게 보이네요. ^^ 저처럼 연식이 오래된 이들 중 중고등학교 때 책 꽤나 읽는다 하면 저 시가 아주 유명했거든요. ㅎㅎ 저도 몇권 안 읽었어요. 버 지니아 울프 책 2권, 관련 책 요것까지 2권이 다입니다. 이 책은 저처럼 입문하는 사람한테 딱 좋은 것 같아요. ^^ ,

scott 2021-04-15 1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생각에 동감 !!
[낭만적인 소녀감성, 염세주의자, 불행한 삶에 침몰당한 여성작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건
영문학자들(버지니아 울프를 전공한)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고딩때 올랜도로 울프 여사 책을 처음 읽고 난후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학 전공하는 친구가 울프 올랜도 강독 수업 있다고 알려줘서 한한기 수강(청강)한적이 있는데 분열된 자아 동성애 ,,,이런쪽으로만 집중했어요.
이후 울프 여상가 남긴 일기 기타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니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정말 성실하고 근면하게 글쓰기에 집중하며
스포츠 활동을 활발히 하며 변화하는 사회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혼돈의 세계 속에 여성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냈던 인물입니다.
병에 시달리고 정신병으로 몰아간건 후대인들의 편협한 시각이라는것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어야 하는데 어린시절에 방치 당하고 학대 당한,,,
울프 여사가 남기고 간 작품들이 현시대에 더더욱 활발하게 읽고 재조명 해야 할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04-16 00:15   좋아요 1 | URL
그쵸 그쵸 scott님
울프는 정말 성실한 생활인 작가. 그녀의 병이나 동성애는 진짜 그녀 삶의 일부일뿐 그녀 삶 전체와 작품의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scott님은 고등학생 시절에 벌써 울프를 읽었다니 우와 오늘도 존경합니다. ^^

2021-04-1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6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0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04-18 0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써서 조금 괜찮아지기도 했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좋아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더군요 힘들어도 자기 삶을 살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었다면 치료를 받기도 했을 텐데... 자기 마음도 모르고 다른 사람 마음은 더 모르겠지요 저도 요새 좀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희선

바람돌이 2021-04-18 01:40   좋아요 1 | URL
버지니아 울프의 병과 그녀 자신을 떼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녀의 글을 병과 너무 관련짓는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그녀의 정신분열이 그녀의 글을 낳은 것 처럼... 그녀는 단지 몸이 아팠을 뿐, 글을 쓰는 그녀의 정신은 누구보다 건강햇다고 생각합니다. ^^희선님 남은 주말 편안히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