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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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있고 물론 나에게도 있다.

그 중 상위에 있는게 바로 남미 일주여행이다.

최소 한달 이상의 날짜를 빼기도 어렵고, 돈도 장난 아니고, 그래서 아직도 버킷리스트에 머물러있지만 지금보다 더 체력 떨어지기 전에 가고야 말리라 늘 결심하며 라틴아메리카 여행기가 나오면 일단 챙겨서 보게 된다.

 

그렇다. 난 이 책이 여행기인줄 알았다.

라틴 아메리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서 책소개도 대충 보고 집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예상과 다르기에 더 좋은 일들이 세상에는 많고, 이 책이 바로 예상과 달랐기에 더 좋은 책이 돼버렸다.

하지만 절망도 같이 했으니, 아 난 도대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아는게 뭐야라는 자괴감이다.

유럽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딱히 검색을 하지 않아도 반 이상은 이름이나 업적 정도는 아는 사람인데 이 책에 나오는 이름들은 정말 모두가 아는 이름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네루다 등등-빼고는 모르는 사람 투성이다.

핸드폰을 옆에 두고 끊임없이 검색을 해가며 책을 읽었지만 검색에서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나의 무지 수준이나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무지 수준이나 비슷하다고 할까? (도대체 이런 데서 위안을 얻는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말이다.)

 

책을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현재의 라틴 아메리카 - 음악 -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의 역사 - 잉카제국의 네트워크의 힘 - 플랜테이션 제국주의

이렇게 5개의 키워드로 돌아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재이다.

키워드 중심의 서술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범위의 협소함이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한 세계, 그것도 그토록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자연과 문화로 이루어진 세계를 몇 개의 키워드로 어떻게 감히 정리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세계는 세로로 길기도 길어서 라틴 아메리카 남북의 길이가 한국-베를린 간의 거리라고 한다.

지구에서 세로로 길다란 세계란 것은 다양한 위도로 인한 다양한 식생과 다양한 문화를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자연환경의 차이로 인해 교류의 폭이 가로로 긴 세계보다 훨씬 어렵다.

거기다 안데스 산맥이란 길고도 높은 산맥은 동서방향마저 갈라놓는다.

카리브 해의 그 수많은 섬들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키워드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조막만한 단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고,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장점으로만 가득 찬 책이다.

어떤 지역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이며,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이 책의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굳이 사랑해 사랑해라고 얘기하진 않지만 행간과 사실의 전달 속에 저자가 가지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온다.

또한 일반화된 서구의 시선이 아니라 그 땅을 살고있는 이들의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출발에서부터 좋은 책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탁월한 영화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서구 자본주의적 시각에 철저히 매몰되어있는가를 얘기하며 쿠바의 음악을 소개하는 장은 흥미롭다.

영화속의 음악가들을 서구는 발굴했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그들은 몇십년 전부터 음악을 멈춘 적이 없으며, 쿠바라는 지역에 갇혀있지도 않았다.

온 세계를 상대로 순회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표하고 쉼없이 음악을 계속해왔음에도 마치 쿠바혁명의 희생양인양, 서구가 비로소 이 음악가들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의 시선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유튜브로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또 다른 영화 <쿠바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쿠바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를 찾아봤더니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체 게바라의 땅이 아닌가?

무엇보다 흥미롭게 읽힌 것은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던 여성들, 아델리타라고 불리우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것처럼 이 곳 역시 마찬가지다.

페트라 에레라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혁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여성임을 밝히자 그녀의 무훈은 평가절하당하고, 오히려 그녀를 향한 내부총질에 더 힘들어야 했단다.

멕시코 혁명 중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탁월한 군인이었던 아멜리아 로블레스는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아멜리오로 불리워지기를 바랬지만 그 바램은 죽은 이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동의 대의를 위한 싸움에서 성별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리는 세상은 여기나 거기나 참....

멕시코 혁명에서의 여성에 대한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잉카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은 네트워크다.

그 네트워크는 오로지 인간의 발로 이루어졌다.

말이나 소같은 대형 포유류가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발이었다.

차스키라고 불리웠던 파발들은 하루에 350km까지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그것도 온갖 산지와 사막같은 지형이 산재한 곳에서?

그 비밀은 차스키 한명이 담당하는 구간이 3km정도였다는데 있다.

그들은 3km정도의 거리를 전력질주하여 다음 주자에게 자신의 임무를 넘긴다.

이들 차스키는 어렸을 때부터 선발되어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문직업인들이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을 때는 그것을 모두 외워 다음 주자와 같이 뛰면서 전달했다고까지 한다.

그러니 그 유명한 몽골의 역참제도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제국을 연결할 수 있었겠다 싶다.

그런 잉카제국이 멸망할 때는 이 차스키를 근간으로 하는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 정말 공부하고싶고 해야할 것은 너무나 많다.

 

설탕과 카카오가 노예무역과 연결되어  라틴 아메리카를 황폐화시키는 과정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얼굴이 뜨겁다.

한 사회가 다른 한 사회를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는 야만의 장이 이 넓은  라틴 아메리카대륙 전체에 퍼져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을 어떻게 그들만의 문제로 이야기할까?

쿠바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온 서구가  라틴 아메리카의 착취에서 그토록 많은 부를 쌓았음에도 그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착취는 좀 더 세력되어지고 수많은 협정이나 조약으로 가렸을 뿐 현재진행형이다.

 

1장에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벽에 내걸린 십자가와 관들의 사진이 있다.

저자는 이 국경지대의 난민들을 '난민과 국민사이를 오가며 이중의 디아스포라를 살아내고 있다, 내일이 없는 어제를 산다'고 표현한다.

누가 그들을 이중의 디아스포라로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그 두장의 사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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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10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남미 여행 혹은 남미에서 살기가 버킷리스트에 있어욤!! 우리가 아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 어찌나 주류 서구사회적인지 깨닫게 되는 요즘인 거 같아용~ 그걸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인 거 같네요~👍

바람돌이 2021-02-10 12:29   좋아요 2 | URL
네 조금 산만하긴 하지만 재밌어요. 이분이 좀 더 체계적으로ㅜ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책을 내줬으면 좋겠더라구요. 툐툐님 명절 잘보내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붕붕툐툐 2021-02-10 22:28   좋아요 0 | URL
좀 더 체계적~ㅋㅋㅋ 바람돌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아 좀 더 체계적이란건 이 책이 약간 어떤 느낌이냐면 여러 군데에 그 때 그 때 쓴 글을 모은 느낌? 특히 1장이 좀 심해요. 하나의 주제로 묶기에도 약간 어려운 느낌이고요. 근데 이 분이 가진 내공은 학자라는 느낌이 팍팍 들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써 주시면 좋을듯해서요. 역사서적도 외국인이 쓴 것 보다는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쓴게 전 이해하기가 훨씬 좋더라구요. 촘스키를 좋아하지만 촘스키 글 읽을 때는 정말 땀을 빨빨 흘리면서 읽어야 해서 항상 아쉽거든요. ^^

scott 2021-02-10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자신에 사견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독자들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게 되는것 같네요 ^.^

바람돌이 2021-02-10 12:31   좋아요 2 | URL
하지만 글 전체에 저자가 얼마나 그 땅을 사랑하는지는 내내 느껴져요. 그리고 그에 대비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봉수 있다는것도 좋았습니다. 학자다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각이 좋았어요

수이 2021-02-10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 게바라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어요. 지금은 때가 많이 묻어 예전처럼 그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바람돌이님께서 추천하시니 읽어봐야겠습니다.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저 1키로 빠졌어요 소곤소곤, 올해 새해 계획 중에 다이어트 있던 거 기억나서 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0 13:41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도 한 인간으로서의 체 게바라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저도 사실 1키로 빠졌어요. 어쩌면 쬐끈 더... ㅎㅎ 우리 같이 힘내자고요. 수연님도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에는 복도 듬뿍 받으세요

mini74 2021-02-10 16:25   좋아요 1 | URL
여러분의 1키로들을 제가 다 갖고 간듯 합니다 ㅠㅠㅠ ㅎㅎ 축하드려요 두 분 다. *^^*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 여분의 살 많아요.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mini74 2021-02-10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평생을 좁은 연구실에서 마야문자를 해독해 낸 크노로조프가 생각나네요. 소련붕괴 후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다고 하죠. 방에서 라틴아메리카를 꿈꾸다 보면 언제가 그 곳에 가 있지 않을까요. 멋진 베레모에~ 왠지 저는 베레모 쓰고 가야 될 것 같아요 ㅎㅎ~ 바람돌이님 즐거운 여행 하실거예요 *^^*

바람돌이 2021-02-10 23:38   좋아요 1 | URL
시간과 돈과 체력이 모두 허용되는 그날을 네 기다려야죠. 그 전에 책이든 다큐든 영화든 열심히 읽고 보고 좀 알아야겠어요. ㅎㅎ 베레모 쓴 mini74님! 안데스 산지를 훨훨 누비는 모습 상상하고 있습니다. 전 좀 가려야 돼서 챙 있는 모자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