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 따우님, 재미있는 지적이네요. 그런데 저는 이런 거 보면 가끔 왜 이렇게 구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양자를 구분하는 어떤 음성학적 또는 음운론적 규칙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국어학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구분들일까요? 제가 언뜻 보기에는 둘 다 "율"이라고 쓰면 오히려 간편하고 경제적일 것 같은데, 굳이 양자를 구분해야 하는 근거가 뭔지, 저로서는 좀 ... 말한 김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가끔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일하다보면 우리말 바로쓰기에 아주 철저한 입장을 보이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존중받을 만한 자세이긴 한데,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국어학자들이 제시해 놓은 우리말 어법이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의미 전달에 장애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그 때마다 속으로 참 국어학자들이 대단한 권력을 지니고 있구나 푸념을 하게 되죠. 제가 좀 삐딱했나요?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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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5-05-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법칙이 있어요. 제가 얼마 전에 가르쳤었는데... 저 부분이요.
그런데 사실 억지도 많아요. 어떤 법칙들은 그 법칙에 들어맞지 않는 예외들도 너무 많구요. 암튼, 국어 꽤나 어려워요. 하다보면 더더욱.

balmas 2005-05-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우주님! 반가워요.
요즘은 통 글도 안올리시고. 바쁘신가 봐요. ^______^
그렇겠죠, 뭔가 규칙이 있긴 있겠죠. 아무 규칙도 없이 저렇게 구분해야 한다고
할 리야 없겠죠.
 

 

정치la politique, 정치적인 것le politique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처음으로 구분해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다. 메를로-퐁티의 제자이며 저명한 마키아벨리 연구자이기도 한 르포르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등에 기초하여 정치에 관한 매우 독창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개념적 구분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정치”, 곧 경제, 문화, 종교, 사회 등과 구분되는 제도적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불어로는 “라 폴리티크la politique”에 해당한다. 그런데 클로드 르포르는 이처럼 경험적인 제도적 구분을 전제하는 “라 폴리티크”라는 용어는 정치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핵심적인 의미는 사회의 한 제도적 영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세계 및 자신들 사이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산출함으로써 사회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산출적 원리를 가리킨다. 곧 르포르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사회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경제, 종교, 문화 등과 같이 사회의 한 제도로서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제도화를 실현하는 게 곧 정치다.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와 구분하기 위해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를 “정치적인 것”, 곧 “르 폴리티크le politique”(영어로 하면 the political)라고 부른다([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19-20세기Essai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cles], Seuil, 1986에 수록된 여러 논문 참조). 그리고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적인 것”의 차원(또는 사회의 상징적 차원)을 처음으로 발견한 공적을 마키아벨리에게 돌린다(Claude Lefort, [저작의 노동. 마키아벨리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Gallimard, 1972 참조). 반면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상부구조인 정치의 본질을 하부구조인 경제에서 찾음으로써, 오히려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상징적 차원을 해명하지 못하고, 당관료제와 경제결정론의 이중적 굴레에 빠지게 된다. 르포르의 이런 구분법은 라클라우와 무페를 비롯한 영미권의 좌파 정치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발리바르는 2부 세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에서 르포르를 따라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양자를 각각 “타율성”과 “자율성”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정치의 타율성”이란, 르포르식의 “정치적인 것”을 포함하는 모든 정치의 차원은 자기자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원적 타자, 또는 이질적 차원에 의해 규정되어 있음(바로 이 때문에 정치는 타율적이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차원을 규정하는 이 타자(마르크스주의에서는 “경제”)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초월적 지위, 곧 최종 심급의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타자는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논문에서 발리바르가 보여주려는 것은 루소의 업적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발견해낸 데 있는 반면, 마르크스는 경제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근원적인 장소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노동의 정치)의 가능성의 장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치는 “인민 중의 인민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곧 역사의 주체의 선험적(또는 적어도 실제적)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이에 비해 스피노자는 대중들masses/multitudo이라는 개념을 정치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마르크스식의 정치의 타율성 이론이 지닌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곧 마르크스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정치의 타율성의 또다른 차원을 발견하며, 이는 마르크스 이론이 지닌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한계를 정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원천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경제의 차원을 경험적인 사회영역으로 환원시키는 르포르와는 달리, 발리바르는 경제가 함축하는 “정치의 타율성”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또하나의 정치의 타자, 곧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론과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이 양자의 관계는 대립이나 모순이 아닐 뿐만 아니라, 종합이나 접합, 보완 또는 병치나 나열의 관계가 아니다). 발리바르의 이러한 이론적 문제설정은 다시 「정치의 세 가지 개념: 해방, 변혁, 시빌리테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E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 in [대중들의 공포/대중들에 대한 공포. 마르크스 전후의 정치와 철학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1997에서는 “시빌리테”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좀더 복합적인 시도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구분은 르포르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인 전유의 시도로 읽는 게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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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5-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황지우는 시보다는 시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어려븐 말씀을 했더랬는데...에구 어려븐 거

balmas 2005-05-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조금 어렵죠?
르포르 책이 한두 권 번역되어 있다면 그나마 덜 어려울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balmas 2005-05-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건 웬 외마디 소리란 말인가 ...

krinein 2005-05-03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때 기억을 살려 질문입니다.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분은 르포르가 풀란차스에 앞서는 건가요? 아니면 두 저자가 다 의존하는 프랑스어의 맥락이 있는건가요?

balmas 2005-05-0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한 연대기적 순서는 잘 모르겠지만, 연배로 봐서는 르포르가 먼저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대개 이 구분법의 원조를 르포르에게 돌리는 걸로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NA 2005-05-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좀 퍼갑니다.^^

2005-05-04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5-0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퍼가신 다음에 코멘트 달아놓은 것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용어해설에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프랑스 철학자들 사이에서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용법이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것 같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용어법을 둘러싼 차이점들을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NA 2005-05-05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랬군요. 기대가 되는걸요?^^

마리선녀 2024-08-0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본인의 저서, 그러니까 번역서 여러 곳에서 클로드 르포르의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분, 특히 정치적인 것에 대해 수정ㆍ비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 [스피노자와 정치]에 수록될 "용어 해설" 중 몇 가지를 올립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부적절한 내용이나

잘못된 설명, 또는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댓글을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사례는 없죠. ^-^;;;


 

민주화주의démocratisme


  “민주화주의”라는 개념은 발리바르가 스피노자식의 민주주의 개념의 독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해낸 신조어로 보인다. 곧 발리바르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는 고대에서 유래하는 보수주의 전통이 주장하는 중우정치로서의 민주주의라는 관점과 다르지만, 근대 계약론에서 유래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법적 관점과도 다르다. 게다가 이는 루소나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래하는 인민민주주의 개념과도 차이가 있다. 전자의 두 관점이 대중의 근원적인 정치적 무능력과 통제 불가능성을 가정하고 있는 데 반해, 후자는 대중의 혁명적 역량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전자처럼 대중 그 자체는 정치체제에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후자처럼 대중은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역량이라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자와 후자의 관점 모두에게 스피노자의 정치학은 기형적인 괴물(또는 네그리의 저서의 제목을 빌리면 ‘야생의 별종’)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피노자는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정치론󰡕의 마지막 11장에서 민주주의야말로 “완전하게 절대적인” 정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대중 개념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개념을 제대로 사고할 수 없으며, 역으로 민주주의 개념을 “절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체의 구성적 토대로 대중 개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이는 스피노자 정치학의 아포리아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 근대 정치학 자체의 아포리아다. 그리고 발리바르는 이처럼 매우 독특한 스피노자의 민주주의 개념을 지시하기 위해 “민주화주의”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이 용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이 용어는 계약론에서 유래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법적 관점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곧 민주주의를 하나의 통치 유형이나 정체로서만 이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핵심을 법적 제도의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는 민주주의는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성과 봉기,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는 과정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함축한다. 다음 인용문에 나오는 발리바르의 지적은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정치론󰡕의 미완성은 이론적 이점을 내포한다. 즉 민주주의의 이론 대신에 그것은 모든 체제들에 응용될 수 있는 민주화의 이론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스피노자, 정치와 교통」,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의 현재성󰡕 공감, 1996, 180쪽(강조는 발리바르). 따라서 민주주의 개념을 적합하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이상적 모델(칸트식의 규제적 이념이든, 하버마스식의 규범적 모델이든 간에)에 의존할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세력들 사이의 갈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활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요인이라는 점에 입각해서 사회적 갈등의 “대표representation”를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요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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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5-02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분 고마워요. *^^*
내용과 표현을 새로 바꿨습니다.

비로그인 2005-05-0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식의 민주주의 개념의 ->스피노자식 민주주의 개념의
고안해낸 신조어로 -> 만들어낸 새로운 용어로
중우정치로서의 민주주의라는 -> 중우정치로서 민주주의라는
법적 관점과도 -> 법으로 사고하는, 법을 통해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 -> 맑스주의

혁명적 역량 -> 혁명을 일으킬 만한 역량,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역량
선험적으로 -> 미리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라는 보수의 관점을 가지고
...중략(-적 등등)
민주주의에 대한 법적 관점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민주주의를 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비판을 ...
“절대적으로” -> "완전히(온전히), 완벽히"
모든 정체의 구성적 토대로 -> 모든 정체를 구성하는 토대로
부각시키는 것이다->드러내는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 좀 과도하게 지적을 했습니다. 지나쳤다면 용서해주세요. 그래도 선생님은, 이런 지적도 받아들일만큼 훌륭하신 분이라 생각해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근데 -적은 참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내놓은 대안이 저도 의심스럽네요. ^^ 또 뵙겠습니다.

아참! 다음 글의 '정치적인 것'을 -적 없이 할 수는 없을까요? '정치와 관계있는 것?' '정치를 구성하는 것?' 형용사로서 정치?'

balmas 2005-05-0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주루님,
여러 가지 제안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주루님 제안대로 고치면 오히려 독자들에게 좀 불편을 줄 것 같네요. 가령 제 생각에는 "법적 관점"이 "법으로 사고하는"보다 더 가독성이 있을 것 같고, 역시 "혁명을 일으킬 만한 역량"보다는 "혁명적 역량"이 좀 더 간편하고 가독성이 있을 것 같군요.
그래서 주루님 제안을 모두 수용하지는 못하겠지만, 몇 가지는 고쳐보겠습니다.
어쨌든 열심히 지적해줘서 고맙습니다. *^^*
 

오늘 연대 강연회가 예정보다 30분 가량 늦게 시작한 데다가 강연도 좀 길어지고 해서, 10시 30분을 넘겨서

강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뒷풀이 자리가 2시 넘어서까지 계속되어 이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여러분들이 댓글들을 많이 남겨주셨군요.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고 이런저런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최원 님에게는 분명치 않은 정보를 발설해서 본의아니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사과드립니다. 성실히

작업하셔서 좋은 번역본을 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해서 도서출판 b에도 사과를 드립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섣부른 발언을 해서 출판사의 명예에 좀 손상을 드린 것 같군요.

로쟈님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좋은 지적을 해주셨고, 저의 발언이 다소 감정적이었다는 지적도 해주셨는데,

저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역시 수긍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헤르베르트님은 저는 잘 모르는 판권 계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에 관해서 좋은 조언을

주셨군요.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져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 이외에 치카님, 클리오님, 따우님, 유아블루님, 스텔라님, 그리고 MANN과 같은 서재 지인들께도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처음 뵙는 도윤거사님도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두 개의 글을 올렸고, 두 글에서 [스피노자 반오웰]의 출판과 관련하여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비교적 충분히 표현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드릴 말씀은 없군요.

다만 최원님과 로쟈님, 그리고 헤르베르트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댓글을 다시 읽으면서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이 문제에 관해 제가 좀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도서출판 b에 관해 좀 부주의한 발언을 한 것도 같구요.

 한 사람의 독자의 입장으로 말한다면,

사실 도서출판 b는 출판 도서의 선정과 편집 및 출판 과정에서 나름대로 뚜렷한 원칙을 갖고 성실하게

작업하는 출판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젝 책과 관련하여 숱하게 제기되는

오역의 문제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을 입증해주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도서출판 b가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을 폄훼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비록

제가 지젝을 이론적으로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지만, 그건 다른 문제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피노자, 반오웰]의 저작권 문제와 관련하여 도서출판 b측이 보여준 태도는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꼭 그런 식으로 이 문제를 처리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앙금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이 문제로 다시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도서출판 b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스피노자, 반오웰]을 수록, 출판해서 외국 출판사에 이것저것

조회하고 여기저기 편지를 보내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욱이 소송까지 가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문제는 국내 출판계의 문제이고, 국내 이론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깨끗하게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스피노자, 반오웰]은 빼고 출판하되,

대신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해서 독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스피노자, 반오웰]을 같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출판사와 좀 더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독자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불필요하게 소란을 피운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한데, 어쨌든 저로서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교훈도 얻을 수 있었고, 서재 지인들의 우정도 확인할 수 있어서 전혀 무익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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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5-04-30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번역이 되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chika 2005-04-3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훌륭한 번역..하시리라 믿습니다.(물론 그렇다고 제가 그 머리 쥐어짜도 알 수 없는 책을 꼭! 읽겠단 얘기는 아니고요... ^^;;;)
책 출판되면 기념 이벤트... 어때요? =3=3=3=3

묵향 2005-04-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헌책방을 전전긍긍하며 절판된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저작들을 구하던 저로서는 새로이 발리바르의 저작들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온다길래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아쉬운 건 사실이네요. 알튀세르/발리바르의 팬이자, 선생님과 최원 씨의 팬으로서 아무쪼록 책이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선생님 힘내시고 좋은 번역 많이 해주세요^^

stella.K 2005-04-3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는 관심있게 댓글 남겨준 서재지인들에게 역자 사인본 선물하라! 선물하라! 선물하라!(이러다 발마스님한테 미움털 밖히겠다. >.<;; 3=3=3)

balmas 2005-04-3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원님, 별 말씀을 ... 때때로 들러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댓글은 별로 남긴 적이 없지만, 저도 최원님의 홈페이지에 종종 들르고 있답니다. ^-^
치카님, ㅋㅋ,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벤트를 요구하시는군요. 글쎄요~
필부님, 오랜만이군요. ㅎㅎ 그런데 점점 번역하는 일이 지겨워지고 있어서 ... ^^;;
스텔라님, ㅋㅋ 치카님보다 한 술 더 뜨시는군요. 스텔라님은 예쁜 털 박히셨습니다. ^___________^

2005-04-30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5-0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25680

속삭여주신 님 고맙습니다. 격려 댓글 남겨주셔서 ...

앞으로 서재에서 종종 뵙기로 하죠. ^^

 


2005-05-02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5-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속삭여주신 분, 반갑습니다. 예,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르세요. ^^
 
 전출처 : balmas님의 "[스피노자와 정치] 출간을 코앞에 두고 부딪친 암초"

도서출판 b의 대표께서 직접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서출판 b와의 교섭에 관한 내용이나 소송에 관한 내용 등은

제가 이제이북스 출판사 측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니만큼 제가 부분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를 드렸다면

그 점에 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사실 진위여부야 더 따져볼 문제이긴 합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말이죠)

 

그렇지만 왜 [스피노자, 반오웰]의 수록을 허락할 수 없는지에 관한 조대표님의 말씀은

"사랑으로 굴복"시킬 만큼 별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군요.

 

첫째, 조대표님은 그 논문이 표제작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사실 그 논문은 {대중들의 공포}의 전체 분량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분량이고

또 {대중들의 공포}라는 책이 여러 논문들을 모은 논문집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표제작이라고 하더라도 그 논문 하나를 다른 논문집, 곧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집에 수록한다고 해서, {대중들의 공포}의 출간이나 판매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했듯이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말이죠.

 

둘째, {대중들의 공포}가 하반기 출간 계획에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것도 첫번째 이유와 거의 같은 연장선상에서 답변드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스피노자와 정치}, {대중들의 공포}라는 두 책의 성격이 전혀 다른데, 그리고

두 책 모두 논문모음집이고, 더욱이 [스피노자, 반오웰]이라는 논문은 표제작이라고는 하지만

{대중들의 공포}에 수록된 15편 가량의 논문 중 한 논문일 뿐인데,  그 논문이 다른 책에 먼저

수록되었다고 해서, 그게 {대중들의 공포}의 출간이나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더욱이 그 책의 역자에 따르면 번역 초고가 올해 말이나 되어야 끝날 것 같다고 하니

사실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책이 출간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출판사 사람들도 알고 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쓴 글에서 도서출판 b에 대해 내린 판단에서 별로 바꿀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대표님이 직접 와서 드신 두 가지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형식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모종의 다른 이유가 있겠죠.

이런 이야기한다고 별로 달라질 건 없겠지만, 하여튼 여기까지 오셔서 사랑의 굴복까지 시도하시고

감사합니다. 자비로우시군요. :-)

 

덧붙이자면 확실히 지젝주의자들은 미움이나 사랑이니 슬픔이니 하는 정념적인 언사들을 즐기시는군요.

그런 지젝주의의 눈으로 보니 스피노자도 꽤나 정념적으로 비치는 것 같구요.

"사랑으로 굴복"이라 ... 아멘이라고 답변해야 하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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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5-04-2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대중들의 공포]를 번역하고 있는 최원입니다. 저는 이번 일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어쨌든 문제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진선배님께 곤란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우선 매우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한 가지 번역 일정과 관련된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올해 말에나 초역이 끝난다고 말씀을 전해 들으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식의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중간에 어디선가 잘못 전해 들으신 것 같습니다. 원래는 5월까지 초역을 끝내기로 했었는데, 학업 문제로 속도가 늦어져서 이번 7월말까지 초역을 끝내겠다고 출판사 b에 며칠 전에 말했습니다. 그러니 출판사 b쪽에서 올해 하반기에 책을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렇게까지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더 늦춰질 수도 있지만, 현재의 계획이 그렇게 잡혀 있는 것이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출판사 b쪽이 숨겨놓은 별다른 "모종의 이유"까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게 도대체 뭐가 있을 수 있을까요?^^ 출판업계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모종의 이유"가 뭐가 있을 수 있을지 전혀 상상이 안가는군요. 막 책을 출간하려고 하셨는데 이런 일이 터져서 조금 당황하신 것 같은데, 우선 다시 한 번, 일이 이렇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해가 있으셨다면, 푸시면 좋겠습니다. 민감한 일인만큼 조그만한 일이나 말도 크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참 중간에 끼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역자에 따르면"이라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서 침묵을 깨고 한 마디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