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실적용' 출판 범람...5백부만 넘겨도 대박
반론 : 학술출판에 대한 저자들의 오해

2004년 06월 24일   박성모 소명출판 

박성모 / ‘소명출판’ 대표

지금 우리에게 학술출판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일방의 측면과 범박한 오해로 누더기가 되고 또 고정관념으로 뭉뚱그려져 각주 달린 책 또는 그럴 듯한 제목으로 학문의 외피를 입은 출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학문과 출판이 만나서 하나를 이루는 일, 그 현장에 대한 이해는 진정 없는 것인가. 6월 7일자 ‘교수신문’의 ‘안목 갖춘 편집자와 소통하고 싶다’를 읽고 새삼스레 드는 생각이다. 오해의 첫 단추는 어디서 시작됐으며 또 지금 여기의 학술출판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답답함에 몇 가지 생각을 추슬러 본다.

번역자의 역할과 출판사의 역할을 구분해야

먼저, 가장 긴밀해야 할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건너기 힘든 깊은 강이 가로 놓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저자와 출판사가 서로의 역할에 대한 엇갈린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들은 출판사의 전문교정능력 부재를 지적한다. 옳은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소명출판’ 역시 이 문제는 늘 더부룩한 체증과 같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일부의 저자는 전문적 원고내용에 편집자가 감히 어디 손을 대느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반면 또 다른 저(역)자는 교정 차원을 넘어 고난도의 교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극과 극의 요구는 출판 현장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번역의 경우 출판사로서 감당키 어려운 요구도 따른다. 우리 출판사만 해도 공동번역된 원고에 대한 출판을 진행하다가 반려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중국학 전문가들이 일정 부분씩 나눠 번역한 원고였는데 일관된 원칙에 따라 음가를 통일하는 과제를 출판사가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노신’을 ‘루쉰’으로 통일하는 일은 간단할 것이었다. 그러나 번역자 스스로에게도 낯설고 또 무수한 고유명사가 출현하는 원고에 대한 적확한 음가를 적용하는 일은 중국학 전문가 사이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감당키 어려운 난제라 여겨, 출판사에서는 정중히 번역자들의 통일안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출판사는 뭘 하는 곳이냐는 질타가 돌아왔다. 번역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정과 교열 요구를 출판사로서 끝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원고 교정이 끝없는 원고 수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레이아웃을 거쳐 조판을 뜨고 교정쇄가 나가면 양상은 달라진다. 끝없는 원고 수정이 그때부터 이뤄진다. 오자와 탈자에 대한 교정이나 최소한의 문장에 대한 의견을 달고 손보는 ‘교열’의 개념이 아니다.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원고는 말 그대로 편집자를 과로하게 만든다. 깔끔한 교정쇄를 보면 연구 당사자로서 새로이 단점이나 결함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수정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런 의미의 교정은 출판사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몫이다. 그러나 초교에서 수정된 2차 교정지를 다시 초교 만큼 많이 고치는 저자들이 적지 않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너무 쉽게 쓰여진 원고이거나, 자신감 없는 원고다. 이럴 때 출판사로서는 나름의 출판 결정이라는 판단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들만큼 난감해진다. 학술출판에 대한 천박한 이해가 급기야 천박한 출판 풍토를 낳고야 마는 것이다.

‘필요’와 ‘공급’의 우울한 곡선

이렇듯 출판사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너무 의존하려 드는 양극단의 입장들이 있다. 그럼에도 학술출판사에 대한 이런 시선과 요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출판사에 따라 요령껏 저자 성향별로 눈치를 살피고 탄력적인 적용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순수 학술출판은 그 무엇보다도 자생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매스컴을 횡단하는 일부 소수 명망가를 제외하고 본연에 충실한 거의 대부분의 학문 종사자들의 연구 결과를 순수하게 출판한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매우 회의적이다. 말 그대로 자생력을 상실한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거니와 이 문제는 학술출판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그 어떤 오해와 불협화음이 저자와 출판사간에 존재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우선 순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학술출판은 최소한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현실적 ‘필요’와 어쩔 수 없는 ‘공급’이라는 기형적 법칙이 언제부턴가 학술출판가의 현실이 돼버린, 그러니까 이렇듯 우울한 현실이 문제다. 공급은 출판사가 하되 ‘수요’가 없다 보니 ‘필요’에 의해 출판한다는 것이다. 필요는 무엇을 말하는가. 시장의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저자만이 책이 필요한 현실을 말한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 교정능력을 확보하는 일은 거대한 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인 다역으로 출판사 사장이 혼자서 또는 직원 한두 명과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의 경우는 사장이 그나마 어느만큼 전공영역을 감당할 만한 경우에 해당한다. 특정 전공분야의 범주 안에서 출판하는 경우가 이 예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출판사는 교정능력 하나에 있어서도 좌절의 쓴맛을 보고 있다. 그나마 자본력과 전문인력을 확보한 대형 출판사가 학술출판을 성실하게 감당해 주는 길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출판 상업주의에 매몰돼 갓 쓰고 장사한다는 눈초리를 피하기 위한 체면치레에 머무는 정도다. 순수 판매율 5백부를 넘기면 대박인 현실에서 교정은 고사하고 누가 어떻게 학술출판을 감당할 것인가.


사실, 순수 학술출판은 취업용이나 연구 실적용 책을 발간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저자로서 학술출판과의 첫 만남은 대부분 박사논문을 출판하는 일로부터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취업용’을 위해 출판사를 찾는다. 또는 이런저런 기회에 발표한 논문들을 한 데 모아 찍는 논문모음집의 형태가 있다. 단단한 주제아래 하나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내 놓는 경우도 있으나, 책을 위한 책이 많다. 또 고도의 연구결과가 집적된 것이 아닌 ‘거기서 거기’인 학습교재들이 있다. 이런 교재성 책은, 다 알다시피 연구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특정 시점에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취업용이나 연구 실적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책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장사는 안되면서 학술출판사가 가장 바삐 움직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는 길고 출판은 짧다.


안에서 싸워야하고 밖에서는 방어해야 하는 학술출판의 현실,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과연 지금 여기에서의 학술출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원죄’를 안고 있기는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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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올린 [교수신문] 6월 7일치 기사에 대한 출판사 쪽의 반론입니다.
 
 전출처 : 수수께끼 > (퍼온글) 좋은 아내....나쁜 아내

1.
좋은 아내는 천사같이 되려고 한다
나쁜 아내는 자기가 천사라고 믿는다.

2.
좋은 아내는 조그마한 선물을 받고도 기뻐한다
나쁜 아내는 뭘 사줘도 잘못 샀다고 구박한다.


3.
좋은 아내는 집안이나 집밖이나 똑같이 대해준다
나쁜 아내는 밖에만 나가면 천사가 되지만
둘만 되면 다시 악악거리기 시작한다.


4.
좋은 아내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남편이 원하는 것이면 기억을 했다가 해준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안된다고 빡빡거린다.

5.
좋은 아내는 남편이 방구를 껴도 생색을 내지 않는다
나쁜 아내는 차안에서 방구를 크게 뀌고도
남편이 창문을 열라고 하면 못열게한다.

6.
좋은 아내는 남편의 실수를 들쳐내지 않는다
나쁜아내에게는 남편의 실수는 곧 처벌과 처형을 뜻한다.

7.
좋은 아내는 남의 흉을 보지 않는다
나쁜 아내는 남 흉볼 때 남편이 자기 편
안들어준다고 악악거린다.

8.
좋은 아내는 남편이 아픈것 같으면 더 잘해준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아플래면 혼자 조용히 아프라고 소리지른다.



8.
좋은 아내는 남편이 사준 차를 버릴 때 까지
고마와하며 운전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차를 사주면 진작 사주지
여태까지 뭐 했냐고 소리지른다.

9.
좋은 아내는 희망과 사랑으로 매일을 산다
나쁜 아내는 절망과 푸념으로 매일을 산다...

10.
좋은 아내는 남편이 실직을 해도 격려하고
직장 찾을 때까지 같이 해준다
나쁜 아내는 좋은 직장 다니는 남편도 구박을 해서
멀쩡한 직장을 실직하게 해준다.

11.
좋은 아내는 친구들이 자기네들 남편 흉볼 때 끼지 않는다
나쁜 아내는 자기 남편을 젤먼저 도마위에 올려놓고 난도질 한다.


12.
좋은 아내는 남편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나쁜 아내는 식당에서 혼자 맛있는 것 먹다가
남편 친구한테 들키면 남편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13
좋은 아내는 남편이 주말에 늦게까지 자고 있으면
더 자라고 조용하게 해준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자기보다 5분 더 자는 걸 눈 뜨고 못본다.
옆구리를 조용히 질러준다.

14.
좋은 아내는 화장실에 있는 남편을 위해서
잼있는 잡지를 가져다 준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
눈뜨고 못본다. 회사가서 싸라고 소리 지른다.

15.
좋은 아내는 남편이 이쁘다고 말해주면 즐거워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이쁘다고 말해주면
언제는 미웠었냐고 다구친다.




16.
좋은 아내는 남편이 이불을 걷어차면 조용히 덮어준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잘 때 이불을 다 뺏어온다.

17.
좋은 아내는 남편한테 새로 나온 양복을 사주고서 기뻐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새로 양복을 산다고 하면 애인 생겼냐고 다구친다.

18.
좋은 아내는 와이샤쓰를 대리면서 멋있는 남편의 모습을 생각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샤쓰를 입을라고 하면,대려놓기 무섭게 쏙쏙 빼입는다고 소리지른다

19.
좋은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가서 전화해주면 반가와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가서 전화해주면,
할일 없이 비싼 전화 하려면 출장 가지 말라고 소리지른다.

20.
좋은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가면 돌아오는 날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 준비를 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가면 그동안 혼자서 집안일 하게 고생시킨다고 칼을 간다.

21.
좋은 아내는 가끔 나쁜 아내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니까.
나쁜 아내가 가끔 좋은 아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아니니까.

22.
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사고라도 날까봐서 늘 걱정을 해준다
나쁜 아내는 큰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방송국에 전화해서 남편이름 확인한다

23.
좋은 아내는 잠자는 남편의 손을 한번 꼬옥 잡아본다
나쁜 아내는 잠자는 남편의 허벅지를 꼬옥 꼬집어본다.




24.
좋은 아내는 남편이 청소를 깨끗하게
못해놔도 나중에 몰래 마무리를 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이 청소를 잘 해놔도
트집을 잡으려고 뒤지고 다닌다.

25.
착한 아내에게는 남편이 화를 낼 수가 없다.
즉석에서 풀어지기 때문이다
나쁜 아내가 화를 내면 남편은 대꾸도 할 수가 없다.
즉석사형이기때문이다.

26.
착한 아내에게 제일 중요한건 남편의 사랑이다
나쁜 아내에게 제일 중요한건 자기 자신 자랑이다.


27.
착한 아내는 남편 월급이 오르면 같이 기뻐한다
나쁜 아내는 남편 월급이 오르기도 전에 신용카드로 자기옷을 사버린다.

28.
착한 아내와 남편사이를 갈라 놀 수 있는 것은
두사람의 죽음 밖에는 없다
나쁜 아내의 남편이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길은
자기자신의 죽음 밖에는 없다.

29.
착한 아내의 잔잔한 미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한다
나쁜 아내의 잔인한 미소는 모든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30.
착한 아내의 남편이 죽으면 그이상 슬픈일이 없다
나쁜 아내의 남편이 죽으면 기왕 죽을거 일찍 죽지않고
재혼도 못하게 늦게 죽었다고 화를 낸다.


이제는 좋은 남편과 나쁜 남편을 비교하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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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한편으로는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아내/나쁜 아내를 너무 정형화한다, 도식화한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좋은 아내 항목에 들지 못하는 그대는 나쁜 아내다! 그러니 각성하라!"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은데, 이게 누구의 말일까요?^^

MANN 2004-06-2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영 찜찜하네요... 인터넷, 신문, 방송 등에서 떠도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잘 반영하고 동시에 그것을 공고히하는 역할을 하는 수많은 유머나 '삶의 지침'류의 글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유머같기도 하고, '삶의 지침'류인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아내/나쁜 아내'를 문제삼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수많은 유머들이(비단 유머의 경우에만 그런 건 아니지만요)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져 있고,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지 않습니까? 음담패설이 대표적인 예이구요. 물론 이 글은 음담패설은 아니지만... '아내'를 문제삼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아내'를 다루는 방식인데, 이 글을 보니 예전에 유행했던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생각나네요. 그 시리즈들은 떨어진 가장의 권위와 커진 아내의 목소리를 '풍자'하면서 사실 남편들이 큰소리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지요.
이 글도 그런 '가장의 권위가 서 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팍팍 느껴지는 글인걸요. 여기서 나오는 '좋은 아내'는 직업 없이 남편의 내조에만 전념하는 소위 '일등 신부감'이지요.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고, 남편의 병간호를 하고, 남편을 위해 옷을 사고, 남편을 위해 와이셔츠를 다려주고, 남편을 위해 음식을 하는 아내.
...아마 '좋은 남편/나쁜 남편'을 주제로 써 놓은 글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내의 내조를 하는 남편이 좋은 남편이라고 그려지지 않겠지요. 아마도 일 잘하면서도 아내를 잊지 않고 기념일도 챙기고 선물도 하고 집안일도 돕는, '부드러운 가부장' 정도가 '좋은 남편'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balmas 2004-06-28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페미니즘 수업 받고 이리가레와 헤겔로 보고서 쓰더니, 수업 효과가 확실하구만.^^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인가? 가짜인가? (3)

 앞면은 <금동계미명 삼존불>과 같고 뒷면의 명문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을 그대로 배꼈다는 북한의 불상이 정말 가짜인가? 어떻게 동 시대에 제작된것이 아님에도 명문은 똑 같을까? 배꼈다고 하는 명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의 그림 두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그림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전면과 광배 뒷면의 사진입니다.



 

 

 

 

 

 

 

 

 

 

 

 

 

이 불상은 1963년도에 경남 의령에서 농부에 의해 발견이 된 불상으로 신라의 영토였던 지역에서 발견이 되어 아직도 논란이 많은 불상인데 뒷면의 명문에 의하여 고구려의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정영호 선생에 의하여 수습되었는데 당시 이 불상이 안치된 장소는 절터나 무덤이 아니라 임시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 정도의 돌 함을 쌓고 그 속에 넣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정영호 선생은 이 불상이 북한군의 호지불로 후퇴 당시에 임시로 숨겨 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충식 선생은 이 불상의 크기가 16.2cm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호지불로 소지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기에 정영호 선생의 북한군 호지불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신라 영토에서 발견된 것은 다소 의아하지만 경주의 호우총(壺우塚)에서 광개토대왕의 무덤에 사용되던 청동호우가 발견된 사례도 있어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 불상은 발견후 광배 부분에 손상을 입어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동강난 것을 접합을 했습니다.  장충식 선생은 만약 호신불로 소지하고 다녔다면 금을 입힌 불상의 어느 귀퉁이는 마모가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 불상의 제작연대에 대한 논란입니다. 延嘉는 고구려의 연호로 己未年인데 539년부터 60갑자의 차이를 학자마다 보이고 있어 539년, 599년, 479년, 419년으로 보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대를 아주 낮춰서 고려 광종시대인 959년으로 편년을 잡는 학자도 있는것 처럼 편년에 대한 정확한 결론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전반적인 의견은 539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불상의 세부 표현기법이나 양식을 논하는것은 조금 어렵기에 생략을 하고 바로 명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배의 뒷면에는 47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명문은 모두 해독이 가능한데 명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延嘉七年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第子僧演師徒十十十十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十十九因現義

比丘法潁所供養

연가 7년 기미년에

고려 낙랑 동사라는 절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 승연을 비롯한

사도 40명이 현겁 천불을 만들어 유포한

 29번째 인현의불을

비구인 법영이 공양한다

 

  이 명문은 국내에서도 단 두글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입장이며 최근에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에 나온 내용을 주장하여 비교적 타당성을 인정하는 추세인데, 문제는 오역한 명문을 북한의 유물에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컨닝을 하였는데 다시 고친것을 모르고 틀린 답을 그대로 적어낸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럼...문제가 되는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불상을 발견한 후에 학자들은 명문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위의 파란 밑줄친 내용을 다르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因現義 이라고 해석된 부분을 回現歲佛로 해석하였던 것인데 이 명문에는 붉은 표시를 한 "歲"와 回現歲佛에서의 "歲"는 비슷하게 새겨져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回現歲佛' '回現義佛' 해독하는것이 타당하다 할것입니다.  회현세불이란 의미는 억지로 해석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부처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런 의미로 사용될 경우의 새로운 세상이란 의미는 '現世'가 맞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回現義佛이란 한자는 <현겁경(賢劫經)>에서 말하는 因現義는 것을 밝혀내게 된 것입니다.

좌측 사진에 나타난 '回'자는 '因'의 고어로 판단이 되는 것이며 이는 불교의 경전에 나타난 "제29인현의불"과 같은 내용으로 가운데 들어있는 'ㅁ'이 바깥의 'ㅁ'좌측에 붙은 글자라는 것입니다. 고어라는 것도 경전의 내용과 일치하기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유물인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불>에는 모두 46자의 명문을 담고 있는데 47자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에서 '主'자가 빠졌고 마흔을 뜻하는 "十十十十"대신 "此"로 음각되어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명문이 서로 다른 불상에 새겨진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히 잘못 판독되었던 부분을 그대로 배끼는 실수를 북한 유물에 저질렀던 것입니다. 주최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북한의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진 것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이지만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 유물이 평양의 고구려 왕궁터에서 발굴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좌측의 명문 확대사진에서는 분명히 "回(회)"로 읽어야 될 한자입니다만, 문헌자료에 해당하는 불교의 경전인 <현겁경>이 있었기에 회가 아니라 "因(인)"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에서는 이렇게 문헌자료와 실물자료의 일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출품된 북한의 유물은 어떤 경로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전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에서는 국보급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주최측에서 주장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유물 자체는 비교적 나이가 들은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 유물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었기에 똑 같은 명문을 새긴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먼 훗 날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가지...저도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에 대한 구구한 논란이 될 때 "回"로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관련 문헌을 찾아내고 그러므로써 명문에 대한 올바른 판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정확한 출토 경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것이며 중국의 불상의 형태에 대한 연구로 제작년대가 언제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539년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비교적 많은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바로 불상의 탄생이 언제인가를 알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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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인가? 가짜인가? (2)

  (1)편에 이어 북한의 불상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불상의 형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신문에 난 사진을 옮긴 것인데 좌측이 북한의 문화재라고 주장하는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이며 <우측이 우리 국보 72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입니다.

신문사진을 스캐닝해서인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좌측의 북한 유물은 우측의 유물보다 비교적 정교하게 제작이 되었습니다.

 똑 같아 보이는 두 개의 불상은 인물의 선이나 옷자락, 그리고 광배(인물상 뒤어 있는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의 것은 인물도 선명하고, 옷 주름이나 손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이 되어 부드러움 보다는 날카로운 면이 돋보이는 편이며 오른 쪽의 국보 72호는 연꽃 대좌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편입니다. 이런 면 이외에는 광배에 담겨있는 문양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북한의 유물에 나타난 광배의 문양은 선(線)의 형태가 강하게 나타 난 문양이며, 우리 국보는 선이 아니라 낮은 돋을 새김을 하여 화염의 형태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유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또렷함이고 남한의 유물은 부드러움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드린것은 두 유물을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국보 72호로 지정된 <금동계미명 삼존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좌측의 사진이 바로 국보 72호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니다. 이 불상은 구리로 만든 불상에 금을 입힌것으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 보살이 있습니다. 높이는 17.5cm이며 광배만의 높이는 12.5cm로 광배가 전체 높이의 약 2/3 정도 됩니다. 이 불상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나타난 삼불상 양식을 따른 삼국시대 작품입니다.

 가운데 석가여래의 갸름한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숙여져 예불을 드리는 중생을 굽어보는 형식이며 입가에는 살짝 웃는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소는 서산에 있는 삼존불의 미소(이 미소를 김원룡 박사는 '백제의 미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처럼 신격화보다는 인간에게 친밀감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석가여래의 머리부분 뒷편에 둥근 형태는 두광(頭光)이라하여 성스러운 부처의 머리 윗쪽에 남는 서기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이 두광은 4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맨 가장자리의 원 안에는 연꽃과 당초, 인동초 문양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뒷편은 몸의 서기를 나타내는 신광(身光)인데 불꽃(火焰:화염)무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대좌와 본존, 그리고 광배를 각각 따로 만들어서 꼬다리로 조합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분별로 주조하면 보다 섬세하게 만들수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연가7년명 금동불>은 전체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불상에서 자세히 살펴 볼것은 이러한 문양이 선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주물에 의하여 많이 또는 조금 튀어나오도록 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각, 또는 돋을 새김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불상의 조성은 주로 밀랍을 이용해서 기본적인 조형물의 바탕을 만든 후에 틀을 만들어 구리를 녹인 물을 부어 만든 것입니다. 북한의 유물은 방법은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밀랍을 이용한 바탕의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밀하게 양각의 형태로 만들지 못하고 선을 그은 것 처럼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불심이 깊지 않은 사람이 제작을 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옛날만한 세밀한 기술을 발휘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부처를 섬기기 위해 만들었다면 북한의 유물과 같이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불상을 비롯한 종교와 관계돤 것의 조성에는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며, 마음마저 정갈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대충대충 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심과는 관계 없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위의 좌측 사진은 본존의 세부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육계라고 부르는 머리위의 살상투가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의 세부 표현은 인자한 표정으로 상당히 섬세한 표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측의 사진은 광배의 뒷 부분인데 윗쪽에는 명문이 있고 아랫쪽에는 본존과 연결하는 꼬다리가 있습니다. 이 삼존불의 광배 뒷면에는 모두 17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1자는 아직까지 판독되지 못하였습니다. 음각된 명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癸未年十一月一   日寶華爲亡  父趙ㅁ人造(계미년 11월 1일에 보화가 돌아가신 아버지 조ㅁ인을 위하여 만들다)                 * 명문중 'ㅁ'은 아직 정확하게 판독이 되지 않은 글자 입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신문에 게재된 사진으로 봐서는 두 불상의 형태는 비슷하나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더 중요한것은 광배의 뒷쪽에 있는 명문(銘文)입니다. 북한 유물의 명문은 위의 명문이 아니며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을 그대로 배꼈다는 것입니다. 국보 119호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광배 뒷면에 어떤 명문이 있기에 그 명문을 그대로 배낀 가짜라고 하는지..... 그 이야기는 (3)편에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如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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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가짜 고구려 불상...정말 가짜인가? ( 1 )

  지난 달 4일 조선일보에는 "서울온 北 고구려불상은 가짜"라는 제목으로 A21면에 제법 크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작은 제목으로는 '장충식 교수"南 불상 베끼다 틀린 명문 새겨"'였는데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4월 9일부터 제기동의 한솔동의보감에서 열리고 있는 '2004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에서 전시중인 고구려 불상에 대하여 그 진위를 논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느 전시회에 전시중인 작품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전시회가 개최될 때마다 가끔은 이런 문제가 대두되어 전시 주최측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가지를 예로 든다면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지하철의 모습'이라는 유화작품이 사진 작품을 보고 그대로 베꼈다고 해서 대상을 취소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심사위원회의를 했지만, 어차피 화가는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이며, 그림에서의 예술적 창의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로 삼을 수 없다고 해서 그대로 놔둔 적이 있었고(물론, 저는 사진도 보고 회화도 보았지만 표현 방식의 차이일뿐 완전히 똑같은 작품이라고 봐야될 정도였으며 제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대상 자격을 박탈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류화가 천경자의 작품을 두고 본인이 가짜라고 주장하여 한동안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가 결국은 작가가 우리 나라 땅에서 사는것이 싫다고 조국을 버리고 해외로 나간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문화재 분야에서는 김정희의 글씨와 겸재 정선의 그림에 대해 모 전문가가 시중에 나도는 것들은 모두가 위작이거나 가짜라고 해서 온통 바글바글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거나 경매장 등에 나오는 작품에 대하여 가짜 운운하는것은 자칫 전시 관계자와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함은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는 확실한 문헌근거나 입증할 방도를 마련치 않는다면 오히려 역공속에서 헤어나기 힘든 지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기에 상당히 조심을 해야 할것입니다. K박물관의 C실장이 자신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겸재 그림에 딴지를 걸었다가 무척이나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진위를 구별하는 명확한 방법이 없는 한은 차분히 그 진위를 다져보는 학문적인 전개절차를 거쳐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것입니다. 고구려 불상이 가짜라고 지적한 장충식 교수는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나름대로 불상과 석조물에는 정평이 있으신 분으로 문화재위원이며 개인적으로는 제 은사의 한분이시기도 합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할 때...깜짝 놀랐습니다. 함부로 그런 논리를 전개하실분이 아니신데 단정적으로 가짜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가짜다 아니다..라는 논란의 대상이 된 전시품은 북한에서 가져왔다는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인데 이 전시품이 우리 나라의 국보 제 72호인 <계미명 금동삼존불상>을 그대로 본 뜬 뒤, 국보 제 119호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의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그대로 음각한 짬뽕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기사의 옆에는 우리 나라 국보와 전시중인 북한의 문화재를 나란히 싣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세히 살펴보면 많이 다른것을 알 수 있는데 주최측에서는 "유물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졌다는 의문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유물 자체가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여 유물 자체는 고구려 유물이 맞다고 강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짜라고 주장하는 측은 이 유물이 1960년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시 유물이 가짜라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별황자총통"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가짜로 밝혀지고 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킨 주동인물인 해군 대령이 구속이 되고 이를 만들어 준 기술자(?)들이 구속되기도 했었고, 이로 인하여 당시 지정을 위한 심의에 참석했던 문화재위원들은 그 명성에 완전히 X칠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만큼 문화재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에 의심을 가게 만든것은 물론이고 국보로 지정 당시 시중에 가짜라는 말이 떠돌았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했던 문화재청도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유물이 가짜다 아니다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접근을 해야 할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몇 차례에 걸쳐 관련되는 사진과 관련 학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진실은 무엇인가에 접근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학술적으로의 전개는 다소 무거울것 같아 가능하면 알기 쉽도록 풀어가며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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