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좌담] ‘월드컵 유령’을 잡고 흔들다

월드컵을 어찌할 것인가, 활동가 5인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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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석진 
결국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뜨거웠던 월드컵에 대한 전국민적 열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16강 진출이 좌절되자마자 급격히 식어버렸다. ‘축구와 월드컵을 사랑한다’던 그 많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일까. 이제야말로 수준급의 전세계적인 축구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는 판인데 사람들이 떠난 광장은 휑하기만 하다. 광화문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던 온갖 월드컵 상징 조형물들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고 대형 빌딩들을 가리고 있던 붉은 색 대형 현수막들은 서울 한복판의 ‘붉은 깃발(적기)’만큼이나 ‘쌩뚱맞다’.

그렇지만 이대로 순순히 2006년 월드컵을 놓아줄 수 없다는 활동가 몇 명이 모였다. 월드컵은 2010년에도 또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쏟아지는 월드컵에 대한 문제점들에 동의하긴 했지만, 어떤 이는 월드컵에 대한 화려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했고 또 어떤 이는 축구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한편 어떤 이는 ‘자신은 축구에 일말의 관심도 없노라’고 ‘용기내어 고백’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그들. 그들이 모여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 월드컵, 기억, 현재

(용석) 어렸을 때부터 월드컵 진짜 좋아했어요. 98년 월드컵 때에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만날 거리에서 뛰어놀았어요.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완전히 무관심했고, 올해엔 문화연대와 함께 월드컵에 문제제기하는 캠페인을 했어요.
완 - 축구를 사랑하고, 월드컵 기간 중 집나간 이성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던 문화연대 활동가
(완) 나도 월드컵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90년 월드컵도 거의 다 봤어요.
(용석) 그 때가 언제였지?
(완) 초등학생. 86년 월드컵도 기억나요. 원래는 유로2000을 좋아했는데 당시엔 할 일이 없어서 모든 경기를 다 보며 전력분석표까지 그리고…. 하하하. 2002년 월드컵 때엔 군대에 갈까 말까 하던 중이었는데 티셔츠 장사를 했어요. (“돈 좀 벌었다면서요?”) 허허. 그땐 지금처럼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사회 분위기가 달라서였을 수도 있고…. 근데 올해엔 적극적으로 월드컵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어요. ‘월드컵 기간 집나간 이성을 찾습니다’와 같은 캠페인 스티커도 붙이고 각 방송국의 월드컵 ‘도배’ 방송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조직하기도 했죠.
(꽃맘) 2002년까지는 월드컵이라는 게 내 사고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붉은악마가 ‘난리를 치면서’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들이 월드컵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고 봐요.
(재훈) ‘이중적 자아’ 외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축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태국 킹스컵, 박정희가 만든 한국의 박스컵 등 간혹 새벽에 축구를 하기도 했는데 그 때부터 잠을 안자고 볼 정도로 축구를 아주 좋아했어요.
(경내)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당시 국제민주연대에 있으면서 축구공 꿰매는 아동노동 관련캠페인도 하지 않았어요?
(재훈) 그러면서 밤에는 월드컵 보고…. 하하하.
(꽃맘)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한 번 해봤어요. 여자와 남자가 짝지어서 손잡고 하는 짝축구.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손에 이끌려서…. 진짜 재미없었어요.
(경내) 난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두 번 해봤어요. 농활 가서 마을 청년들과 축구를 했었는데 재밌었어요. 내 기억 속에 축구는 항상 북한과의 경기, 일본과의 경기처럼 국위 선양, 국력을 과시하는 장으로서의 경기들로만 뜨문뜨문 채워져 있어요.
(재훈) 3년 동안 조기축구를 했었는데, 축구라는 운동 자체에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는 11명이 다 같이 하는데 발이 맞는다 싶은 순간이 있어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패스를 잘 해서 골로 연결되고 그러면 희열 같은 게 느껴지죠. 그 때 같이 축구를 했던 동네 형님들은 붉은악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었어요. 그거 다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거 아니냐, 우리는 아무도 안 알아줄 때 축구장 지켰다….
(완)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축구일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성들은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죠. 2002년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게 됐는데 여성들은 축구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퇴행적으로 김남일의 터프한 모습 같은 것들에 더 열광한 거죠.


# ‘무서운 월드컵’, 실체를 파고들다

(완) 월드컵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세계화의 대표적 표상과도 같은 월드컵이라는 창을 통해서 자본의 세계화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죠.
(용석) 세계화 자체가 다 그렇긴 하지만 월드컵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모든 나라의 우수한 선수들은 다 유럽에 가서 뛰어야 하고 잘 하는 나라도 다 유럽이고 다른 운동에 비해 유독 백인이 더 활약하는 것도 사실이고…. 월드컵은 특히 유럽-백인 중심적인 것이 있죠.
(완) 월드컵이 98년 이후에 급팽창하게 된 이유는 그때부터 미국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이거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 것 같아요.
(경내) 원래 월드컵이 유럽, 남미 중심인데 그야말로 ‘월드’컵이 되기 위해서 지역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고 다음 월드컵도 아프리카에서 하잖아요. 축구와 함께 자본이 전세계적 시장을 개척하면서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월드컵은 세계화의 한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속에서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철저히 공명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흡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상품과 월드컵을 조금 더 다르게 보게 만드는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재훈)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월드컵 문제가 과연 축구 때문이냐는 반론이 있는 것 같아요. 성차별.백인중심주의.기독교 중심관.서구 중심 등 세상이 다 그런데, 축구가 그런 것들을 조장하고 더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세계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축구에 반영되는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용석 - 축구도 야구도 좋아하지만 강요만 하는 국가는 싫어하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자본주의에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월드컵이 가장 심한 것 같기는 해요. 효과적으로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퍼뜨리죠. 축구 잘하는 나라들, 진짜 나쁜 나라들 아니에요? 하지만 보는 순간에는 나쁘다는 게 잊혀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정부를 그렇게 싫어하다가도 축구경기를 볼 때엔 또 한국에 열광하게 되죠. 견제해야 할 국가가 친숙하고 착한 모습으로 다가와요. 굉장히 효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들을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시키고 있죠. 그래서 월드컵이 무서워요.
(꽃맘) 국가라는 건 그 자체가 남성이고 축구도 남성, 표상하는 것도 남성이에요. 남성으로 표상되는 축구에 여성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월드컵의 태생이나 이런 것들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 국가주의, 애국주의 등 남성적인 모습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반대하는 거예요. 어느 스포츠는 안 그렇겠냐마는 축구가 더 심하죠. 지금도 ‘어떻게 이 대화에 끼어들까’하는 고민이 들어요. 축구나 월드컵 그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거죠.
(경내) 월드컵은 국가주의를 연습시키는 장이기도 하고 그 힘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이 단지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가 아니라 실제로는 4년 내내 준비하는 거대한 시스템 아닐까요.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기간을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월드컵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좀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발언하면 찍힌다?

(경내) 월드컵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단지 해석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고민이 돼요.
(완)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이 월드컵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저어하는 게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월드컵이란 게 한국 사회에서 큰 규정력을 갖고 있는데도 왜 사회단체들은 대응을 하지 않는지, 그걸 분석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모두가 월드컵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건 아니래도.
재훈 - 조기축구회 회원으로 다음 월드컵 땐 전혀 다른 해설을 해보고 싶다는 ‘경계를 넘어’ 활동가
(재훈) 한국에서는 전체주의가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월드컵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도 관심을 가질 것을 조장하고, 다른 목소리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고, 24시간 내내 미디어에서는 월드컵 이야기만 하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월드컵에 빠져들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한 대안을 내놓고 각자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완) 월드컵이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상업자본의 마케팅 장이다…, 이런 거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모범적이고 추상적인 답을 내놓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 않을까요. 개인은 수없이 많은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원칙들만 갖고서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른 한편으로 운동단체 역시도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히기를 원하지 않는 곳도 있어서 입장 내놓기를 어려워 하고….
(꽃맘) 월드컵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지 실천적인 방법이 안 보여요. 어떠한 실천이 가능할까?
(용석) ‘월드컵은 이것이다’라고 하나로 정의내리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월드컵은 누구에겐 국가주의의 첨병이고 누구에겐 축제의 장이고 또 누군가에겐 거대한 시장일 수 있는데…. 월드컵에 대해 거대하게만 생각하기보다는 월드컵을 자기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 거리응원과 붉은악마, 그 이면의 진실

(경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월드컵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아직까지 합의된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속에서 헷갈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 지금까지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요?
(완) ‘2002년을 살아서 건너오지 못한 운동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현상’을 지지하면서 ‘살아 건너오지 못한’ 거죠. 문화연대 내에도 살아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화의 기점인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부족했기 때문에 붕 떠버린 것 같아요. 좀 더 세분화되고 자기 관점에 기반한 논쟁이 필요해요.
(재훈) 월드컵과 여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여성들 자체가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리응원을 보면 실제로 상당수가 여성들이죠. 제 어머니도 호나우지뉴 팬인데 호나우지뉴를 보며 “쟤 이빨 정말 귀엽지 않냐”는 식의 농담도 하세요. 하하하. 축구는 전쟁과 가장 유사한 형태인데 여성들이 어떻게 이런 영역에 대해 열광하고 젖어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져볼 만하겠죠.
꽃맘 - 축구에 대해 전혀 관심은 없지만 월드컵과 여성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가
(꽃맘) 여성들이 축구나 운동 전반에 대해서 접근하기 힘든 조건들이 있었죠. 사회화 과정도 그렇고…. 2002년 이후 온 국민이 열광하는 상황에서 여성들도 열광하게 되었지만 여성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르게 봐야할 거라고 생각해요. 방송국에서는 응원할 때 예쁜 여자들만 앞에 내세워서 잘 보이게 하죠. 일종의 ‘섹스심벌’처럼. 오히려 여성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방식은 뭘까...이런 게 개발되어야 한다고 봐요.
(완) 실제로 프랑스전 끝나고 붉은악마들의 심각한 공격성이 드러나기도 했죠. 당시 서울 일부에서 ‘차 강간놀이’라는 게 유행했는데, 차 위에서 선동을 하는 사람이 ‘저 차 잡아라’라고 하면 군중들이 차 위에 올라가고 흔들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죠. 또 성추행, 성폭력 사건이 많이 발생했고…. ‘훌리건과 붉은악마는 다르다’고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다른 게 없잖아요?
(경내) 2002년 당시 한신대에서 사회학 하는 김종엽 씨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더라구요. 2002년에는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에게 도덕적 계몽이 끊임없이 이뤄지기도 했고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주최국 시민이 갖춰야 할 자세를 외부에 보여주는 게 시급했기 때문에 흔히 응원문화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이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었다는 건데…. 이젠 4년 만에 ‘아시아의 프라이드’가 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틈새들이 열리면서 일상에 존재했던 폭력성이 응원공간에서도 좀더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앞으로는 더 커지겠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조차 월드컵에 맞춰서 태극기 그리기 시키고 꼭지점 댄스 연습시키고 그러면서 어린이들에게 국가주의 학습이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교육과정에 대한 개입이 필요해요.
(꽃맘) 붉은악마들의 응원문화에는 그동안 억눌려있었던 여성들의 욕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할 수도, 여행을 할 수도, 외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억눌림의 분출구가 된 거죠.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속에서 응원문화가 있었죠.
(경내) 맞아요. 하지만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뛰어나온 것이 남성과 동일한 욕구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성에게 거리는 위험한 곳, 사회적 성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스쳐지나가는 공간에 불과했었죠. 그런데 그 거리로 여성들이 나오는 건 하나의 시민으로서 시민성(시민됨의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열광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여성들이 실제 축구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재미’라는 것에 길들여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탄탄한 근육질의 남성들이 초스피드하게 치고 빠지는 경기가 주는 마력 같은 거…. 최고의 운동 엘리트들의 재간에 빠져들게 되고 거기에 몰입하게 되는 거죠. 그게 감성으로는 재미지만, 그 재미 속에 강요되고 정당화되는 질서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해요. 단지 국가주의,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더 능력있는 사람들을 뽑아다가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니까. 더 많은 엘리트선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축구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식의 성과주의적인 욕망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 역시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용석) 그런 성과주의적인 욕망은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이 축제같고 즐겁다면 무언가 하나에 그렇게 열광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재훈) 축제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 있는 곳일수록 축제의 의미가 있죠.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처럼. 축제가 일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잠시나마 일상의 문제들을 잊고 한번쯤은 즐기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겠죠. 그것을 월드컵이 제공해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문화연대의 이번 ‘월드컵 반대 캠페인’ 활동이 정치적으로는 맞지만, 놀 때 너무 이성적으로 놀면 재미없지 않아요? 실제로 축제를 할 때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데 재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고 봐요. 너무나 엄격한 도덕적, 계몽적 잣대를 갖고 현상을 정답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래도 2002년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고 보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내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 ‘월드컵 반대운동’을 상상한다

경내 - 붉은 물결 속 생동하는 국가주의와 폭력성이 몹시도 불편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경내) 월드컵에 이런 면도 있다, 월드컵 때문에 이런 사안들이 묻힌다 등과 같은 이면에 대한 반대를 넘어 월드컵 자체에 대한 반대 운동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육식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고 채식이라는 실천을 통해 대량사육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재훈) 나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옳은 것만 남은 무균실과 같은 사회를 바라지는 않아요. 월드컵과 축구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만 월드컵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갈등을 했죠. 축구를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까 축구를 이대로 봐도 될지….
(완) ‘월드컵 반대’와 같은 슬로건만으론 별로 의미없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입장에 대해 물어봐요. 너는 월드컵에 반대하는 것이냐…. 반대냐 아니냐 하는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면을 알려내고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슬로건과 같은 입장으로써 조직되는 게 아니라 월드컵의 다양한 측면을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과의 일치를 통해 동의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용석) 정치적인 구호로 월드컵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완) 2006년을 거치면서 영국의 경우는 공중파 방송 편성 비율을 경우에 따라 정부가 통제하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선 거의 하루 종일 월드컵 방송을 했는데 영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옥외광고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공공장소에서 광고를 안볼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거니까. 이런 것들도 운동으로 추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재훈) 다음 월드컵 땐 거리응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월드컵에 반대하는 사람들,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아동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될 수 있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면 좋겠네요.
(경내) 소수자들은 월드컵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겠어요. 응원과정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그나마 올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응원 속에 온 국민이 하나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설득력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용석) ‘월드컵과 병역거부’와 같은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네요.
(경내) 그러한 문제들이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제기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다음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인권오름 제 10 호 [입력] 2006년06월28일 9: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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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고문, 왜 하는지 아시나요?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25〉조직적 가혹행위와 심리전

 

 

  2006-06-23 오후 6:21:23

  2003년 8월 미국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건물에선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미군 특수작전국 고급장교들이 본 영화는 '알제리의 전투'. 1965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길베르토 폰테코르보의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흑백영화다. 펜타곤에서 '알제리 전투'가 상영될 무렵, 이라크 주둔 미군은 게릴라들의 매복공격으로 날마다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던 펜타곤 지휘부가 영화를 본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알제리 사람들이 8년 동안(1954~62년) 벌였던 독립전쟁은 폭탄테러와 살륙으로 얼룩졌다. 알제리 게릴라 조직인 FLN 지도부는 폭탄테러전술로써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과 일반 프랑스 시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려 했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이제 그만 알제리에서 손을 떼자"는 여론을 일으킨다는 전략이었다.
  
  영화 보고 얻은 힌트
  
  FLN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성들은 "알제리를 독립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 장군은 프랑스군을 알제리에서 철수시켰다.
  
  펜타곤 고급장교들이 '알제리 전투' 영화를 본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누가 지도자인지 몰라 답답해했다(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군은 이라크 게릴라를 포로로 붙잡으면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 영화 속에서 프랑스 특수부대는 알제리 도시게릴라들을 붙잡아 물고문, 전기고문, '통닭구이'(사람을 전기구이 통닭처럼 막대기에 묶어 공중에 달아매 놓고 하는 고문) 끝에 게릴라 점조직 정보를 캐내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거기서 펜타곤은 게릴라 조직 분쇄를 위한 힌트를 얻었다.
  
  펜타곤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몇 달 뒤 큰 파문이 터졌다. 이라크 바드다드 서쪽 교외에 자리 잡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몇몇 미군병사들의 잔혹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포로학대는 그들로부터 정신적 항복을 받아내, 미군이 바라는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한 심리전에 다름 아니었다.
  
  아부 그라이브와 닮은 꼴
  
  정보를 얻기 위한 수감자 고문이란 측면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닮은꼴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관할하다가 2003년 가을 이라크의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 책임자로 옮겨갔던 제프리 밀러 미 육군 소장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미군은 매우 가치 있는 정보들을 거둬 들였다"고 강변했다. 이 대목에서 의문점이 생겨난다. 수감자들은 그냥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았을까?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관타나모의 미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에게 일상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수감자들은 '적성 전투원'으로 분류돼 포로 대우를 못 받았다. 관타나모에 2년 넘게 갇혀 있다가 풀려난 영국 국적의 두 사람(아시프 이크발, 루할 아흐메드)이 2004년5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낸 편지는 관타나모에서의 폭력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그리고 자주 벌어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8~9명의 미군병사들이 수용소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왔을 때, 그 수감자는 바로 우리 곁에 누워 있었다. 당시 그는 복부수술을 해서 배가 성치 않았다. 미군들은 군화발로 그의 배를 발로 차고 목을 짓눌렀다. 그의 얼굴은 마루 바닥에 대인 채 군화발로 짓뭉개졌다. 미 여군 한 명도 폭행에 끼어들어, 그의 성치 않은 배를 발로 찼다."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
  
  쿠바의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2002년 1월 문을 연 뒤로, '국제법을 무시한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비난을 들어 온 곳이다. 관타나모 포로들은 변호사 접견은 물론 정당한 재판절차를 박탈당한 채 하릴없는 나날을 보내 왔다. 수감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열 것과 수용소 안의 가혹행위들을 문제 삼아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벌여 왔으나,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다.
  

▲ 쿠바군이 관할하는 관타나모의 한 고지에서 내려다 본 문제의 관타나모 미군기지. ⓒ김재명

  국제 인권단체들은 가혹행위, 국제법을 무시한 장기구금 등 인권침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들의 석방을 촉구해 왔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 옛소련의 정치범들을 수용한 강제노동수용소)라 일컬었다(현재 수용인원은 460명).
  
  이미 알려진 바처럼, 지난 6월10일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안에서 수감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2명, 예멘 국적 1명으로 알려진 자살자들은 재판도 없이 바깥세상과 격리돼 지내는 수감생활에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없애야 할 변종"
  
  그곳 포로수용소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격리공간이다. 해군기지의 이름은 '엑스레이 기지'(Camp X-ray). 이 해군기지는 펜타곤의 서류엔 GTMO로도 표기된다. 미군들 사이에선 발음 나는 대로 이 기지를 흔히 '지트모'(Gitmo)로 일컫는다. 현재 기지 안에는 군인 1000명, 관련 미국인 2000명이 머물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관련 혐의를 받는 포로들을 격리시킨 별도의 삼엄한 수용소의 이름은 '델타 기지'(Camp Delta)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비난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도 관타나모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2001년 아프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비롯, 미국의 군사적 강공책을 함께 펴 온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야 할 변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자살사건을 계기로 유럽국가들과 인권단체들의 수용소 폐지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한층 커가는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관타나모를 폐쇄할 뜻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 인권 변호사들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2월30일 서명함으로써 발효된 '수감자 처리법'을 맹비난한다. 이 법은 관타나모 수감자가 미 연방대법원에 부당한 장기구금을 둘러싼 헌법소원을 내는 것조차 어렵도록 만들었다.
  
  아부 그라이브, 바그람, CIA 비밀수용소…
  
  9.11 테러 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세계 곳곳에 수감시설들을 운용해 왔다. 문제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 외곽에 자리잡은 바그람 기지(옛소련 군용비행장) 안의 수용소는 쿠바 관타나모와 더불어 미군이 반미 게릴라들을 잡아 가두는 공포의 장소로 꼽힌다. 풀려난 이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그곳들 모두에서 '전쟁범죄' 수준의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
  
  이들 말고도 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 몇 나라에서 '비밀수용 시설'을 운영, 논란을 빚어 왔다. 6월초 유럽연합(EU)의 하부기구인 유럽위원회는 한 조사보고서에서 "미국이 테러용의자를 불법적으로 가두는 비난받을만한 네트워크(reprehensible network)를 동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에 걸쳐 만들어 왔다"고 지적했다.
  
  "쿠바군 해군기지로 거듭나야"
  
  지난해 2월 쿠바 관타나모로 가봤을 때, 현지 쿠바 사람들의 반미감정이 높은 데에 새삼 놀랐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남의 나라(쿠바) 땅 한 귀퉁이를 무단으로 차지하고, 전쟁포로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 나라…. 당신은 그런 나라가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는 주권국가인 쿠바 영토 안에 파고든 사실상의 식민지다. 지난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과 더불어 쿠바를 빼앗으면서, 관타나모 만 일대는 미 해군기지로 개발됐다. 쿠바 카스트로 정권은 1959년 혁명에 성공한 뒤 줄곧 관타나모를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못들은 체 하고 있다.
  
  관타나모 현지에서 만난 쿠바 사람들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우리 손으로 돌아와, 쿠바 해군기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미국의 태도로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미군 당국은 올해 연말까지 그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2의 수감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관타나모에서의 전쟁범죄 시비가 사라질 날은 언제쯤일까?
  
  (이 글은 6월23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kimsphoto@hanmail.net
   
 
  김재명/프레시안 기획위원,국제분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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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2의 수감시설은 넓은 자기네 땅에다 짓지
왜 남의 나라 땅을 마음대로 한답니까?
비밀수용시설 실태 무시무시하네요.

balmas 2006-06-2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저런 끔찍한 고문 시설을 남의 땅에
계속 짓는 걸 보면 미국놈들 참 대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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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22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딱 그 시간에 모임이 있군 ... -_-;

푸하 2006-06-23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임은 반전에 의미있는 모임이 될 꺼에요.^^;

balmas 2006-06-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런데 다른 장소에서 있는 모임이에요. ^^;;
 

 

세계 난민의 날 기념식-난민과 함께하는 희망의 대화
채널만호


세계 난민의 날 기념식이 6월 20일 오후 2시부터 대학로 모임공간 토즈에서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주최로 열렸다.
먼저 김희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의 사회로 세계 난민의 날 소개의 인사말과 함께,
1부 시간에는 형수진 난민지원활동가의 진행으로 '세계의 그리고 우리의 난민'의 배움의 시간이 있었다.



이어 '4월 언젠가는(Sometimes in April)'의 영화상영이 있었다. 1994년 4월 르완다에 외세의 분리정책에 기인한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으로 100여일동안 100만명의 양민이 학살되는 끔직한 사건의 이야기를, 르완다의 인종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었던 주인공 Augustin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그려내면서 모두가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 방글라데시 출신 '로데'

 
  ▲ 콩고 출신인 여성(신상은 요청에 의해 공개 않함)


2부 시간에서는 김기연 유엔인권정책센터 사무국장의 사회로 난민 2명을 모시고 난민과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1. '로데'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자신이 소수민족인 줌마족이라는 이유로 방글라데시 다수민족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이렇게 줌마족의 박해가 수십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94년 망명을 시작해 인도-> 태국-> 한국(2002)순으로 떠돌게 되었고, 2004년 12월13일 가족인 아들과 함께 모두 13명이 난민인정을 비로소 받았다고 한다.
현제 공장을 다니며 생업을 이으고 있고, 틈이 날때마다 난민의 인권을 위해 함께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국은 경제성 및 민주화 국제연대활동이 가능하나 사회적인 갭이 있어 난민 인정받아 정착하는자 대부분이 서민층에 머물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 아닌 문제라고 이야기 하였다.

2. 콩고 출신인 여성은 한국에 6년째 되었고 아직도 난민인정을 해주지 않아 고등법원에 항소중인데 정부에서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되내었다고 한다.
현제 콩고는 6년째 내전중이며, 600만명이 죽어나갔고, 언론엔 희미하게만 비쳐진 상태라고 한다.


본 행사를 마치고 참석자중 5명이 자원한 가운데 난민인권을 위한 대학로 거리캠페인도 진행하였다.


 



MEMO :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에 대해서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org)는 한국의 UNHCR, UNDP등 기존 유엔기구와 차별화된 NGO민간전문기구이다.
유엔인권정책센터는 지난 출범일날, 1월 이주노동자방송국 및 5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945년 유엔이 설립된 후로도 세계의 인권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왔는데, 이는 유엔이사국의 활동저조나 매파화등 유엔기구가 인권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방기.직무유기한 원인도 포함된다. 이에 유엔의 인권수호라는 본연의 원칙을 보여주고자 유엔인권정책센터를 출범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9일 유엔총회가 뽑은 47개 인권이사회 이사국의 하나로 선출되었으나, 아시아 지역에 할당된 13개 이사국 가운데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와 일본에도 못 미치는 7위의 득표에 그쳤다. 이는 국제인권 분야에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미흡한 부분이나 초보 수준에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고, 이 시점에서 세계 인권 차원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유엔인권정책센터는 유엔 총회를 통해 신설된 유엔인권이사회의 초대 이사국 선거가 있을즈음, 8일 국내 13개 인권사회단체와 공동성명서를 내고 "평택주민 짓밟고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되겠는가? 이번 이사국 선거 출마를 국내외 인권 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국 정부를 향해 따끔한 충고를 한바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주요활동에는 인권에 관한 정책연구 및 인권호소이다. 난민,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국가보안법 등 인권 취약 집단문제 및 다국적기업과 인도의 불가촉천민, 빈곤퇴치에서 여성의 역할, 인권 전략적인 해외원조 등에 대한 인권활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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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날을 기념해서 한번 퀴즈를 내볼까요?

 

 

문제: 다음 10명의 저명 인사 가운데 난민이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마들렌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나디아 코마네치 체조선수

조지 웨아 축구선수

김대중 전 대통령

마를렌 디트리히 가수 겸 배우

게오르규 솔티 지휘자

루돌프 누레예프 발레리노

 

* 정답을 맞춰 주신 분들 중 2분을 뽑아서,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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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1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6-2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일단 아시는 데까지 다 말씀해주세요. :-)

chika 2006-06-21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난민이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

balmas 2006-06-21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치카님, 한 명은 맞히셨네요. :-)

2006-06-21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6-21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허걱!! ^^;;
ㅋㅋㅋ

2006-06-21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6-06-2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민의 기준이 모호해요..

넓게 본다면 스티브 유(유승준)도 난민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ㅎ

2006-06-2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6-2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겠어요.

아영엄마 2006-06-2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난민이었던 건 알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검색을 해봐야 알 것 같아요. ^^;;

3794 2006-06-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일이 난민의 날이 었군요..ㅋㅋ 그런데 다른사람은 사상적, 정치적 이유로 망명했던것에 비해 조지웨아 선수는 단지 가난때문에 유럽으로 간것인데 조지웨아 선수를 저 리스트에 넣어 놓으니 쫌 이상하네요. 그리고 기사 본문은 전쟁, 기아로 인한 난민의 문제를 다뤄놓고 깜짝 퀴즈를 이런걸 내다니.. 기자 수준이 쫌 의심스러운데요?? ^^;;

stella.K 2006-06-2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중도 난민이었다니 놀랍군요. 다 아닌가요? =333

balmas 2006-06-2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질님/ 흐흐, 잘 찍으셨네요. ^^;
라주미힌님/ 스티브 유도 난민일까요? ㅎㅎㅎ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아프락사스님/ 사실 모두 다 난민 출신이랍니다. :-)
아영엄마님/ 검색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용? ^^;
양민님/ ㅎㅎㅎ 경제적 난민도 역시 정치적, 군사적 이유가 겹쳐 있는
경우가 많죠.
스텔라님/ ㅋㅋ 예, 다 난민이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따우님/ 후후, 누구를 모르시겠사옵니까? ^^;
바람구두님/ ㅋㅋ 마침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길래 한번 해봤죠. :-)

stella.K 2006-06-2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맞았네요. 근데 2사람 골라 어쩌시겠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