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제약업체들, 한국정부 약가정책에 강력 ‘태클’

환자모임․보건의료단체, “이윤보다 인간의 생명 우선하라”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지난 달 한국정부가 발표한 약제비 절감 방안에 대해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26개 다국적 제약업체들로 구성된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15일 오전 11시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달 3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모든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으로 등재했던 관리방식(네거티브리스트)을 효능과 가격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평가와 가격 협상을 거쳐 선별등재하는 방식(포지티브리스트)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선별등재방식을 중심으로 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통해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29%를 차지하고 있는 약제비를 적정화해 건강보험 재정의 내실을 다진다는 구상이다. 또 동일성분의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치료적․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등재함으로써 합리적 약제비 지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보건복지부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KRPIA는 이미 지난 달 4일 “보험약 선별등재 및 약가협상 방안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우수한 신약 사용을 저해하고, 연구개발이 필수적인 생명의약 분야에 있어서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연구개발 투자의욕을 감소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톰 메이슨 한국BMS 대표이사

다국적제약업체들, “한국정부 약가 절감 방안, 의약품접근권․신약개발 가로막는다”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다국적 제약업체 대표자들은 보건복지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투자 욕구를 저해하고,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지의 주장을 펼쳤다.

톰 메이슨 한국BMS 대표이사는 “한국 보건복지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다국적 제약업체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발표되었다”며 “이번 방안에는 의약품의 선별등재 조치뿐만 아니라 여러 규제조치들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신약개발 관련 투자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톰 메이슨 대표이사는 “한국에는 이미 약값을 조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견제와 규제조치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이번 방안을 통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했다”며 “이는 환자들의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저해하는 조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다국적 제약업체 관계자들은 ‘제약회사들의 반발은 특허권 강화와 높은 의약품 가격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즉답을 회피하며 빠져나갔다. 아멧 귁선 KRPIA(한국 화이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의약품 특허권 강화와 연장’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아주 긴 토론이 필요하다”며 “오늘의 모임과는 상관없다”는 짧은 답변으로 발을 뺐다.

한편,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한국정부를 향한 본격적인 압박 움직임에 환자모임을 비롯한 보건의료단체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의약센터,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감염인연대KANOS, HIV/AIDS인권모임 나누리+등 20개 환자모임 및 보건의료단체들은 KRPIA의 기자회견 보다 앞선 이날 오전 10시 30분 웨스턴조선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입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 “고가 의약품과 특허권에 환자들 죽어간다”

이들은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포지티브리스트 제도에 대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드는 신약들이 모두 효과가 우수한 약제가 아니”라며 “새로운 약을 등재시킬 때 비용과 효과를 따져서 기존 약에 비해 우수한지를 판별하여 등재를 할 것인지,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판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이어 이들은 이미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OECD 국가들을 언급하며 “이들 국가에서 신약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고, 또한 이 나라들의 의약품 시장 중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단체들은 이어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의약품 가격이 고가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의약품특허권 때문”이라며 “다국적 제약업체가 특허보호와 고가의 약값을 통한 이윤의 최대 확보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야 말로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은 “한 알에 23,045원인 노바티스사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한 달 약값만 300-600만원에 달한다”며 “한 알에 920원 짜리 제네릭(카피약)이 있지만, 특허 문제 때문에 정부에서 수입하지 못하고, 환자들이 직접 인도에서 개별적으로 수입해 사 먹는 실정”이라고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횡포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현실에서 일개 다국적 제약업체가 한 국가의 약가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주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료접근권 운운하는 다국적 제약업체,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꼴”

최인순 보건의료연합 집행위원장도 대표적인 혈전용해제인 아스피린을 예로 들며 포지티브리스트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한편, KRPIA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아스피린 한 알 당 가격이 34원에서 84원 정도인데, 똑같은 효능을 가졌더라도 신약은 2,174원에 달한다”며 “같은 효능을 가진 약의 가격이 7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인순 집행위원장은 “늦게나마 보건복지부가 약의 효능과 효과, 가격 등에 따라 선별적으로 의약품을 보험 등재하겠다는 것은 약제비 적정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이에 대해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환자들의 접근권을 운운하는 것은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권미란 공공의약센터 활동가는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조직적 반발 움직임에 대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특허법을 개정하려하자,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만델라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소했고, 태국 정부가 에이즈치료제의 제네릭을 만들려고 하자 무역보복을 한다며 태국정부를 협박했다”며 “이제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제3세계에서 했던 방법과 똑같이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을 위해 한국정부를 압박해오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초국적 제약자본이 요구하는 것은 환자들의 이해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며 “오로지 의약품에 대한 독점 기간을 연장하고, 특허권을 강화하는 것만이 초국적제약자본이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KRPIA측의 기자회견장에서 윤한기 나누리+ 대표가 '사람들이 에이즈 아니라 의약품 접근권이 없어 죽어간다'는 문구가 적혀진 티셔츠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이즈치료약을 당장 먹어야 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보건의료단체들은 조선호텔 안에서 열리고 있던 KRPIA 측의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해 참관을 시도했다. 웨스턴조선호텔과 KRPIA 측 관계자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보건의료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11시 30분경 회견장에 진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의 순서가 끝난 뒤 다국적 제약업체 대표들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대표자들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윤한기 나누리+ 대표는 이날 다국적 제약업체 대표들을 향해 "새로운 에이즈 치료약을 먹어야 하는 에이즈 환자"라고 자신을 밝힌 뒤 “지금 당장 약을 먹어야 하지만, 로슈사가 에이즈 치료약을 너무 비싸게 책정하고, 한국에서는 판매조차 하지 않아 약을 먹을 수 없다”고 따져 물으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KRPIA이사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업체 대표자들은 이를 묵살하고 그대로 회견장에서 철수했다.

윤한기 대표가 언급한 에이즈 치료제는 '후지온'이라는 약으로, 로슈사는 '후지온' 에 대해 1바이엘 당 4만3천원을 국내 판매가격으로 요구했으나, 한국정부가 약가를 2만5천원으로 책정하자 이에 반발해 현재 시판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오늘 한국정부에 항의하러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모국정부들도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며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그들의 모국정부의 약가정책을 반대해야지, 자국시장에서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한국과 제3세계에서 보상받으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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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 ②] 논쟁조항 살펴보기 - 17조 재산권 조항
논쟁과 타협 속 기억해야 할 출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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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세계인권선언 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세계인권선언 17조, ‘재산권’ 조항은 읽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재산을 인권으로 인정한다고? 그러면 재산 많은 사람에게 눌리는 다른 인권은 어떡하란 말이야?” 혹은 “재산권은 세계인권선언도 보증하는 당연한 인권인데 왜 인권 운운하는 사람들은 재산을 가지고 그리도 못마땅해 하는 거야?”, 이렇게 서로 다른 식의 이해 또는 오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계인권선언 17조는 불친절하다. ‘재산’이 ‘무엇’인지를 얘기하지 않고 ‘재산권’을 얘기하고 있고, 재산을 ‘단독’으로 가져도 ‘공동’으로 가져도 괜찮다고 하니 안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인 말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언을 기초한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 17조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을 크게 세 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재산의 소유는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둘째, 재산은 단독으로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으로 가질 수 있다. 셋째,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이 세 요소를 차례로 살펴보자.


세계인권선언 17조의 영문본 <그림 출처 : UN Photo>


재산의 의미

재산의 소유를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선언은 재산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선언을 만든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논쟁 중에 계속 변했다. 처음에 인권으로서 생각한 재산의 의미는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적(private) 소유’가 아니라 ‘개인적 (personal) 소유’였다. 즉 사는 집, 소지품, 가구,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통신 등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생각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유자가 될 권리를 인권으로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언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 다뤄진 문구는 ‘존엄한 삶과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에 대한 권리’를 재산권으로 봤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개인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갖는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조항 이전에 중간 채택했던 조항의 문구는 “모든 사람은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그러한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가지며, 이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곧 흔들리게 된다.

여러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개인적 재산의 개념이 나라마다 다른데,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필요나 최소한의 재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의 개인 소유를 기본적 권리로 봐야 하느냐? 이런 문제 앞에서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를 재산으로 보는 것은 너무 막연한 표현이라 비판받았다. 인간의 존엄한 삶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재산권을 정당화하는 것이 막연한 반면에 개인 재산 외의 다른 종류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선언 기초자들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해내는 경제체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냐를 생각하게 되자, 의견이 대립되는 건 당연했다. 재산권을 앞서 말한 개인의 소유에 국한하는 것은 협소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윤창출 기업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등의 여타의 재산권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 소유와 사적 소유 둘 다를 재산권으로 인정하는 걸 반대했다. 개인의 소유가 생산방식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부 사람은 엄청나게 소유하는 반면 다수를 착취하고 굶주리게 하는 일은 나쁜 것이고, 광산․운송서비스․은행 등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개인의 소유와 사적 소유는 다르다고 했다.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의 부에 대한 동등한 몫을 요구할 권리, 기업의 이윤에 대한 몫을 요구할 노동자의 권리를 재산권이라 주장했다.

이런 대립 속에서 선언 기초자들은 경쟁하는 경제체제에 대해 뭔가 말해야 하는 곤란에 부딪쳤다.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어떤 체제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서로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단독’으로나 ‘타인과 공동으로’

그래서 선언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할 권리라고 말한다. 어느 하나가 아닌 둘 다를 허용하는 혼합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단독”이라는 말은 개인 소유와 사적 소유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당시 소련은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그 재산이 위치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서”를 덧붙이자고 주장했다. ‘단독’이냐 ‘공동’이냐의 소유형태의 선택을 국가가 할 수 있어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가능성을 불허할 수 있고, 그래야만 사회주의 체제가 세계인권선언에 의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단독으로”란 말은 개인적 재산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사적 소유도 포함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식 경제 방식을 배제한다고 봤다. 선언의 취지를 따져보면 ‘단독’의 소유가 사적 소유만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을 포함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국가가 자본주의를 불법화하고 사적기업소유를 금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련안을 반대했다. 개인소유냐 공동소유냐를 결정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소련의 제안대로 하면 선언과 같은 보편적 문서에서의 재산권이 무의미해진다고 했다. 다른 여러 국가들도 국가 법률을 언급하면 선언의 도덕적 탁월성이 손상되고,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기존의 재산관련 법률을 승인하게 된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다. 결론적으로 “그 재산이 위치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서”란 소련안은 거부되었다.

사유형태든 공유형태든 둘의 혼합이든 어느 쪽을 선호하든지 선언 기초자들이 ‘무제한적’인 재산 소유권을 옹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 간에 중도를 유지하려 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들조차 순수자본주의 체제란 게 설령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언 기초자 중 그 누구도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간 존엄성에 요구되는 재화를 전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선언 29조에 권리의 제한과 규제를 둔 이유이다.

한때 제한 요건을 17조 자체에 두느냐, 딴 조항에 별도로 두느냐도 또 하나의 논쟁거리였다. 결론은 별도의 조항인 29조에 “공동체에 대한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란 제한에 모아졌다. 선언 29조에 있는 제한 요건이 재산권 조항만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재산권 조항이 그것의 구속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29조에 덧붙여 더 중요한 제한 요건은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재산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권리에 의해 기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분명히 인식했다.

재산을 무엇으로 보고, 어떤 재산에 대해 얼마만큼 제한을 두어야 하느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논쟁이다. 한 예로, 세계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양대 국제인권규약(약칭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에는 재산권 조항이 없다. 그 이유는 재산권은 인권이 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라 재산권을 어느 정도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의적 박탈 금지

재산권에는 재산을 획득할 권리와 재산을 획득한 후에 그것을 이용하고 향유할 권리가 포함된다. ‘자의적 박탈 금지’는 획득한 재산에 대한 사후 보호를 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논쟁의 핵심은 ‘자의적’이란 단어의 의미이다. ‘불법적’이란 단어를 더 선호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거부됐다. 선언 기초자들은 ‘자의적’이라는 것이 곧 ‘불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국가는 법률로써 얼마든지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에, 법률로 행해진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 재산의 박탈은 자의적인 박탈과 법률에 의한 박탈 둘 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자의적이란 말은 불법이 아닌 오히려 불의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모아 읽기

선언에서 재산권 조항만 따로 떼어서 읽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재산권 조항은 홀로 있는 ‘섬’이 아니라 다른 여러 권리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권리이고, 그것이 위치한 더 큰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할 권리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권 등 경제사회적 권리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재산권 조항은 선언에서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구분되는 권리군의 중간에 놓여있다. 어떤 국가는 재산권을 자유권으로 읽고, 어떤 국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 노동, 주거, 교육, 의료 등에 관계된 권리와 같이 고려하지 않으면 재산권을 권리로 고려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그래서 국가의 자의적 개입이나 간섭을 배제하기만 하면 보장될 수 있는 권리로 재산권을 바라보는 국가가 있는 반면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의무가 요구되는 사회권으로 취급하는 국가가 있다.

유엔은 어떤 식이냐 하면, 재산권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란 주제 속에서 다뤄왔다. 그 속에서 주된 논의는 재산권을 여타 인권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재산권에 대한 논의를 돕기 위해 90년대에 독립전문가(Mr. Uis Valencia Rodriguez)를 임명한 일이 있다. 그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개인의 사적 소유를 보편적 인권으로 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사적 소유의 이용은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의 집중을 촉진해왔을 뿐 아니라 소수가 무제한으로 부를 축적하게끔 했다. 이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 간의 계급 분화의 근본원인이다. 집단적 재산이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왔으며 재산의 사적 이용은 국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어떤 경제체제에서도 절대적으로 사적인 생산수단의 소유 현상은 결코 없으며, 공공의 이용․안보․건강보호 등의 필요성에 법으로 제한돼왔다”고 말한다.

이처럼 선언의 기초과정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은 여전한 논쟁거리이다. 눈에 보이는 명시적 문구는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를 누릴 권리로서의 재산권이 17조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입력] 2006년06월08일 0: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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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 ①]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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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글 싣는 차례
1) 탄생의 배경과 한계, 2) 논쟁조항 살펴보기-재산권 조항, 3) 논쟁조항 살펴보기-사회보장권 조항, 4) 논쟁조항 살펴보기-교육권 조항, 5) 논쟁조항 살펴보기-노동권 조항, 6) 그 밖의 문제들


달력을 틈틈이 살펴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흔한 습관이다. 올해는 휴일이 며칠이나 되는가를 헤아리기 위해, 또는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인가 알아보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달력을 훑다보면 12월 10일에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또는 ‘인권의 날’이라 적혀있다. 한국 사회에선 오랫동안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인권대통령이니 인권경찰이니 국정지표니 하는 것들에 ‘인권’이 바쁘게 등장하면서 약간은 주목받는 날로 변한 것 같다.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이란 걸 만든 날이어서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는 요지의 기사와 인권특집이 해마다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고, 각종 기관과 단체들의 ‘인권’자 붙은 포상과 기획행사들이 많이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세계인권선언’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인권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일에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인권을 헤쳐 나가는 길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맞닥뜨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인권 논의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서이기 때문이다. 가보지도 못한 곳의 지명을 듣고 ‘아, 거지 좋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집어서 무엇이 좋은데요?’라고 물으면 얼버무리듯이 ‘세계인권선언’이 전 인류가 소중히 여겨야할 공통의 기준이라고 떠받드는 사람에게 ‘왜 무엇이 그런데요?’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그간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그것에 대한 찬사와 반복적 인용이지 비판적 분석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를 통해 우리 시대 인권의 허술하고 빈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생략된 부분을 복원하고 암시된 부분을 명확히 해보는 건 어떨까?


살육과 야만의 경험, 선언의 기초

세계인권선언 작성을 주도한 엘리노어 루스벨트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알려진 2차 대전의 살육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침해가 인권선언 기초의 주인공이었다. 전후 국제질서의 판을 짜는 열강의 입장에서 인권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려 했든 간에, 선언을 기초할 당시의 국제 분위기는 인권을 소리 높여 강조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손에 피를 묻혔지만 유독 나치의 인권침해에 대한 비난은 강도 높았기에 ‘나치가 이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세였다. 인권의 인정이야말로 나치즘의 복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전쟁수행과 전후 재건을 위한 이념으로 등장했다. 그 일환으로서 새로 만드는 국제기구인 유엔이 강한 이빨을 가지기를 바랐다. 인권을 말로만이 아닌 이행과 실현의 장치와 결합된 것으로 요구했다. 그래서 국제권리장전을 유엔헌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국제적 요구가 거셌다. 이런 장치가 조금만 더 일찍 있었더라면, 파시즘과 나치즘이 아직 미약했을 때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야만적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인권을 높이 치켜세웠다. 여기에는 인권을 부인하는 정부들에 대해 인권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시각이 깊이 배어 있었다.


왜소해진 선언, 의외의 결과 낳아

하지만 계산된 명분과 실천은 다른 것이다. 선언을 만드는 과정 초반의 대부분은 ‘조약’을 만드느냐, ‘선언’을 만드느냐는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대표자들은 국제권리장전이 ‘조약’이어야 한다고 느꼈고, 당시 유엔 회원국 중 소국들은 단순한 권고나 결의안이 아닌 큰 국가나 작은 국가를 똑같이 구속하는 조약을 원했다. 하지만 두 강대국, 미국과 당시 소련은 이행장치 없는 선언 또는 원칙들을 담은 성명을 끈질기게 주장했다. 반대의 이유는 서로 달랐다. 미국이 권리를 갖는 것과 그것을 이행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라고 하면서 ‘선언 먼저, 조약은 나중에’를 주장했다면, 소련은 ‘몇 개 국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언기초위원회가 국제권리장전의 이행문제까지 고려할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반대했다.

또한 조약을 제쳐두고 선언부터 만들게 되자 차 떼고 포 떼고 추상적 원칙만을 나열하려는 시도가 거셌다. 애초에 국제 ‘조약’이 아닌 ‘선언’이라는 형태 자체가 이행장치는 떼어놓고 논의를 시작한 것인데, 자기에게 껄끄러운 문제는 최대한 간략화하거나 독자적인 조항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실랑이가 미소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은 아름다운 합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언에는 8개의 기권표가 있는데 그 주요 이유는 선언이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성과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1948년 12월 10일, 이행장치를 제쳐둔 선언의 채택은 결과적으로는 선언의 장점이 됐다. 부담 없이 채택된 선언은 이후 2백여 개가 되는 국제인권선언, 국제조약, 선택의정서, 헌장 등의 탄생을 자극했고 많은 나라의 헌법에 인용됐다. 이행의 부담을 떨쳐놓고 만들었기에 어찌 보면 만들 수 있었던 선언이 불러온 결과이다. 하지만 국가들 편에서 겹겹의 안전장치를 갖춘 것이 국제인권조약들의 전형적인 양상인 점을 극복하는 것, 효과적인 인권의 이행장치를 만드는 것은 선언 이후에 계속돼온 과제이다.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이었나?

한국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이라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상은 ‘보편(universal)' 인권선언이다.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언을 만들기 전에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논쟁이다.

하지만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한계점은 있다. 나치즘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언을 기초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한 국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1914년 레닌의 거친 계산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민지에 살고 있고, 이를 합하면 세계 영토의 3/4에 해당’했다. 이 계산은 1940년대 말까지도 대략 들어맞았다. 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할 당시 유엔회원국의 수는 58개국이었고, 유엔인권위에 속한 국가는 18개국, 선언기초위원회는 처음 3개국에서 나중에 8개국이었다. 회원국 58개국 중에서 아메리카의 21개국이 전체의 36%, 16개국의 유럽이 27%, 14개국의 아시아가 24%, 4개국뿐인 아프리카는 겨우 6%를 차지했을 뿐이고, 3개국의 남태평양 제도가 5%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이 아주 불충분하게 대표됐음을 보여준다.

수단의 난민 여성과 아이들. 이들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세계인권선언은 어떤 의미인가 <사진 출처: http://www.wfp.org>


선언 기초 과정에서 식민지 민중의 인권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주장은 식민지 종주국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식민 체제하에 사는 민족들 속에 생겨난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전혀 모른다”는 비난과 그에 대한 반발 끝에 선언에는 ‘식민지’라는 표현이 아닌 ‘비자치지역,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에둘린 표현이 등장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인권이 보편적인 위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실재와 모순된다”고 비판한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 유엔이 창설한 회의는 서구에 의해 지배됐고, 세계인권선언은 대부분의 3세계 국가들이 여전히 식민통치하에 있을 때 채택”됐으니 선언은 “제한된 적용성”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채택 50주년이 되던 해에 유엔회원국 수는 채택 당시보다 3배가 늘어났다. 이들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 요구를 실질적으로 고려하느냐 아니냐가 오늘날 선언의 적용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선언을 기초할 당시의 58개국에만 국한한다 할지라도 그들 간의 차이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37개국이 기독교전통을 배경으로 했고 11개국이 이슬람, 6개국이 사회주의, 4개국이 불교를 배경으로 했다. 서로 다른 문화․종교․경제․정치 체제 속에서 수용될 만한 답을 찾는 일은 ‘막연하지 않게, 하지만 모든 체제를 포괄할 정도로 유연하게’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이 조건은 오늘날 우리가 선언을 읽을 때 써야 하는 안경일지도 모른다.


진보적 선언은 거짓 희망을 불어넣는다?

세계인권선언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다. 전후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새로운’ 권리를 반영하면서는 ‘급진’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극히 신중을 기했고, 여성이나 가족생활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보수적 사회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조약기초과정을 보면 조금 ‘센’ 의견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불러일으키지 말자’며 제지하는 의견이 강력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수정돼야 할 점이 많고 실제로 이후의 국제조약에서는 변화된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성차별적 언어가 있다. 1조에는 ‘형제애의 정신으로’라는 표현이 나오고 노동자와 가족생활에 대해서는 노동자를 남성형으로만 지칭하고 있다. 이 구절은 한 가족의 임금을 남성가장이 버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의 지적으로 성차별적 언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 “모든 사람”(all men)으로 시작하는 초안에 대해 여기서의 사람(men)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에 관한 역사적 반영이기 때문에 고치자는 제안조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뜸을 들여서야 “모든 사람”(human beings)이 되었다. 또한 사형제 폐지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인정 등의 새로운 제안들은 깊이 논의되지 않았다.


인권은 액자 밖으로 뛰쳐나온다

사람들은 간직하고 싶은 좋은 것은 좋은 액자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다. 그럼 인권은 어떨까? 좋은 액자에 넣어 두고 우러러볼 수 있는 그런 것일까? 물론 세계인권선언처럼 일종의 액자에 담긴 인권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권은 그 속에 얌전히 있지 않고 뛰쳐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규범이 무시하고 있는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면이 언제나 그 규범을 돌파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권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세계인권선언에서 주요논쟁이 벌어진 조항을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인권오름 제 3 호 [입력] 2006년05월10일 5: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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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 1793)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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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의 1789년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신체제의 국가형성과 헌법제정의 원리를 밝힌 1791년 헌법 서문에 해당한다. 이 선언이 지향한 세상은 ‘구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는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전 세상을 지배했던 특권계급의 타도와 귀족제의 폐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중심이 되는 봉건적 소유관계와 경제활동에 대한 봉건적 규제를 폐지하는 각종 ‘자유’가 선포된다. 재산권은 이들 자유 중 하나로서 국가와 헌법에 선행하는 자연적 기본권으로 선언된다. 이러한 사람의 자연권 보전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적 결합의 유일한 목적이며, 사회 속에서 갖게 되는 유일한 제한은 권리의 평등을 정한 법률에 복종한다는 것뿐이다. 법률상 평등하기만 하면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통해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 결과 평등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돼버린다.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 <그림 출처 : www.unl.edu>


이로써 신체제는 재산의 자유를 토대로 한 체제이고, 재산의 자유는 여러 자유 중 하나가 아닌 사실상 다른 모든 자유들의 토대가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직 일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자들만이 참정권 등 권리를 갖게 되는 체제였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 세력인 부르주아의 우위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지, 농민과 도시민중을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왕과 특권세력의 끈질긴 도발 속에서 위험을 느낄 때마다 민중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계속됐지만 말이다.

부의 축적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자는 소수의 제안은 묵살된다. 그런 목소리 중의 하나가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이다. 왕국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공화국 헌법의 제정사업이 시작됐다. 1793년 국민의회는 새로운 헌법에 대해 논의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새 헌법의 정신에 대해 먼저 논의하여 그것을 새로운 인권선언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작성한 38개항의 인권선언 초안(아래 인용구는 모두 로베스피에르 초안에서 따옴)을 제안했다. 오늘 읽어볼 “재산권에 대하여”는 인권선언 초안의 재산권 조항에 대해 로베스피에르가 덧붙인 해설이다.


소유는 자연권 아닌 사회적 제도

재산권에 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생각은 1789년 선언이나 여타의 헌법구상과 달랐다. 사람의 ‘생존’과 ‘자유’만을 기본적 인권으로 하고,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권리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고 평등이 환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힘의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유가 단순한 사회적 제도인 이상 그 모든 것은 인민의 의사를 자유롭고 엄숙하게 표명한 법률에 의해 그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규제하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사고한 것이 자연적 기본권으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관념과는 다른 점이다.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적 형식에 맞추는 것은 폭정에 최후의 미화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비합법의 저항을 정당화한 것이나,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다”는 주장은 탐욕스런 계급에게는 너무 간 큰 소리였을 것이다. 그의 제안은 동료 정치집단의 권리선언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소유의 신성불가침을 신랄하게 공격했던 로베스피에르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차이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과의 격차가 컸다면, 또 다른 격차는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관계에서이다. 당시 입법자들이 염두에 둔 재산권의 현실적 대상은 토지소유로서, 그들은 토지소유권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재산 소유권 일반을 ‘자유’로서 규정했다. 토지나 생산수단의 소유를 다른 소유와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원리에 따르게 할 때 아무리 법률상의 제한을 가하더라도 자본의 소유자와 몸뚱이 하나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중의 인권구상에서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균등하게 분배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야기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1789 선언이 말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신랄하게 공격했지만,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들과 노동하는 이들의 자유를 동일한 원칙에 따르게 한 점에서는 동료들과 같았다. 그런 이유로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포효대로 “지상의 주권자”들은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정신과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해결방법을 계속 찾아왔다.

우리 주변엔 그런 예들이 수없이 많다. 이라크에서의 학살에 아파하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 서울역 로비에서 밥 굶어가며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들, 평화적 생존권을 염원하는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과 광화문에서 촛불을 맞든 사람들, ‘자유’로운 ‘생존’을 위해 ‘부자유’한 한미 FTA 협상에 맞서는 사람들…. 여기서 “살인자와 약탈자를 기소”하며 “사회 성원의 단 한사람이 억압된 경우라도 그것을 사회전체에 대한 압제”로 여기고,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를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포”하는 힘을 발견하자.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1793)
먼저 재산권에 대한 여러분의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항들을 제안하겠고 이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비열한 인간들, 가치를 재는 척도라곤 황금밖엔 없는 자들아, 그 재산들의 원천이 아무리 더럽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대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 선의로서 재산권을 지배하는 원칙을 세우자. 인간의 편견과 악이 그렇게 간고하게 비밀로 감추려 한 것이 재산권 말고는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필수적이다.  
 
이 인육상인에게 무엇이 재산인지 물어보라. 그는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넣어 보관하는 선박이라고 부르는 이 긴 관을 보여주면서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재산이다. 나는 일인당 얼마씩을 주고 이것들을 샀다.” 토지와 가신들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이것들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곧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믿는 이 귀족에게 물어보라. 그는 재산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보여줄 것이다. 
 
카페 왕조의 위엄 있는 성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든 재산권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프랑스 영토에 살고 있는 2천5백만의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합법적으로, 군주로서 억압하고, 타락시키고, 쥐어짤 수 있는, 그들이 예로부터 누려온 대대로 내려오는 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재산에 어떠한 도덕적 원칙이 있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인권선언이 “인간의 제일 가치있는 재산이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가장 신성한 권리”인 자유를 정의하면서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왜인가? 우리는 자유의 한계가 타인의 권리라는 것을 타당하게 이야기했다. 왜 우리는 이 원칙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인 재산권에는 적용하지 않았는가? 마치 자연의 영원한 법이 인간의 관습들보다 덜 신성하기나 한 것처럼! 여러분은 재산의 행사를 위한 가장 큰 자유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많은 조항들을 만들면서, 재산의 성격과 정당성을 결정하기 위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분의 선언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 부당이익자들, 투기꾼들, 전제군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진지하게 확립함으로써 이러한 결점들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1. 재산이란 각 시민이 법으로 그에게 보장된 몫의 재산을 향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권리이다. 
2. 재산권은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 
3.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이나 자유나 생존이나 재산을 해칠 수 없다. 
4. 이 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재산 소유, 모든 상업적 거래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다.  
 
또한 여러분은 세금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원칙으로서, 세금은 오직 인민 혹은 인민의 대표자들의 의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전체의 이해에 필수불가결한 한 조항을 누락시켰다. 즉, 누진세 원칙 세우기에 소홀했다. 이제, 공공 재정의 문제에는 자신들의 소득에 따라-즉, 자신들이 사회체제로부터 끌어낸 물질적 이익에 따라서- 국가 지출에 대해 누진적으로 기여하는 의무를 시민에게 부과하는 것보다도 더 사물의 본성과 궁극적인 평화에 굳건히 기초한 원칙이 있다. 
 
나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만큼을 넘지 못하는 소득을 가진 시민은 국가 지출에 기여할 의무를 면제받는다. 그 외 다른 시민들은 자신의 부에 따라 누진적으로 국가지출을 책임져야 한다.” 
 
위원회(국민의회의 제헌위원회)는 또한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우애의 의무와 그들의 상호원조의 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전제군주들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영원한 동맹의 토대를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의 선언은 소유하고 거주하도록 자연으로부터 땅을 부여받은 거대한 민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고립된 한구석에 몰아넣어진 한 무리의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다음의 조항들을 부가함으로서 이 큰 격차를 메울 것을 제안한다. 이 조항들은 여러분이 끊임없이 왕들과 불화를 겪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민족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이 단점은 결코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들과 화해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네 개의 조항이다: 
 
Ⅰ.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형제이고, 여러 민족들은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 
Ⅰ.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언된다. 
Ⅰ.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한 민족에게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예사로운 적이 아니라 살인자이자 반도, 약탈자로 기소되어야 한다. 
Ⅰ. 왕들, 귀족들, 폭군들은 누구든 지상의 주권자인 인류와 우주의 입법자인 자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입력] 2006년06월08일 2: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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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푸하 > 함께 책읽기 일정-인권운동사랑방

함께 책읽기 일정


안녕하세요. 인권운동연구소의 류은숙입니다. 이 메일은 인권운동연구소 강좌에 참여하셨던 분들에게 보내는 메일입니다.


사회권 강좌를 마치면서 후속으로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한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애초에 6월 13일부터라고 했으나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광고를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기말고사 기간이라 하고, 제가 번역할 시간도 필요하고 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확 2주 미루고, 그대신 휴식주 없애고 좀 빡빡하지만 5주로 끝내려 합니다. 읽기에 좀 부담이 되는 분량이겠지만 더 더워지는 8월까지 끄는 것보다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듯 해서요. 아래 일정을 참고하시고 많이들 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청은 soom03@hanmail.net 으로 메일을 ?! 립뼉笭챰? 바랍니다. 신청을 하셔야 읽을 교재를 미리 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교재:

[인권:이론과 실천, 마이클 프리먼, 아르케, 2005] 각자 구입

[Socialist Concept of Human Rights, Imre Szabo 외, Budapest 1966] 번역 발췌본 제공

[반인권론, 슬라보에 지젝, 창작과 비평 2006 여름] 각자 구입

[Human Rights in Liberal, socialist, and Third world Perspective, Adamantia Polls, 1992] 번역 발췌본 제공


1주: 6월 27일(화) 저녁 7시 30분 인권운동사랑방 4층

2주: 7월 4일(화)

3주: 7월 11일(화)

4주: 7월 18일(화)

5주: 7월 25일(화)


참가비: 회당 5천원(단, 현재 소득이 없으신 분은 그냥 오셔도 됩니다)


<1주: 6월 27일>

시민의 권리 이론과 역사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Imre Szabo)

Ⅰ. 시민의 권리 이론의 형성

        1. 시민의 권리 선포의 사회적 기능과 형태

        2. 인권과 시민의 권리간의 차이

        3. 평등, 자유, 그리고 시민의 권리

        4. 개인의 권리

        5. 시민의 의무


Ⅱ.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회주의 이론

        1.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시민의 권리와 의무의 성격

        2. 시민의 권리와 의무의 법적 성격

        3. 다양한 법률 체계와 시민의 권리 의무의 관계

        4. 시민의 권리와 의무의 체계


<2주: 7월 4일>

시민의 권리와 자연법 이론(Zoltan Peteri)

        1. 도입

        2. 시민의 권리 출현의 역사적 전례

        3. 시민권 또는 인권의 사상; 17, 18세기의 자연법 이론

        4. 시민의 권리 개념을 성문법으로 제도화하는 이행에서의 자연법의 역할

        5. 자연법의 시민권 개념에 대한 제국주의의 영향

        6. 요약


마이클 프리먼 제 2장; 자연권의 흥망

        1. 왜 인권의 역사를 말하는가?

        2. 권리와 폭군: 고대의 권리개념

        3. 정의와 권리: 중세의 권리개념

        4. 근대의 자연권

        5. 혁명의 시대

        6. 자연권의 쇠퇴


<3주: 7월 11일>

시민권 이론 전개의 사회요인들(Kalman Kulcsar)

        1. 시민권과 사회적 현실

        2. 봉건부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 시민권 전개에 대한 그것의 영향

        3. 시민권의 문제와 사법적 실천

        4. 20세기 시민권 내용의 변형

        5. 부르주아 국가에서 경제사회적 권리의 등장

        6. 시민권 전개의 정치적 요인


마이클 프리먼 제3장 1945년 이후: 권리의 새시대

        1. 유엔과 인권의 부활

        2. 세계인권선언

        3. 이론에서 실천으로(냉전/냉전이후)

        4. 소결


<4주: 7월 18일>

시민의 평등과 법 앞에 평등(Jozsef halasz)

        1. 시민의 평등 법 앞에 평등 개념에 관하여

        2. 부르주아 혁명 시대의 권리의 평등과 법 앞의 평등

        3. 부르주아 헌법에서의 법앞의 평등과 권리의 평등의 규율

        4. 식민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들에서의 시민 평등의 헌법제정

        5. 사회주의적 시민 평등 개념과 내용

        6. 사회주의 헌법에서 시민의 평등을 규율하는 문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lajos Lorincz)

        1. 부르주아 헌법과 법률에서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2. 사회주의 헌법에서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3. 사회주의 헌법에서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체계; 그 이행의 수단


시민의 자유(Peter Schmidt)

        1. 기본적 시민권 체제에서의 자유

        2. 시민적 자유의 부르주아 이론

        3. 사회주의적 자유이론의 전개와 그것의 헌법 제정

        4. 사회주의적 자유의 내용과 그것의 헌법 체계


<5주: 7월 25일>

마이클 프리먼 제9장: 21세기의 인권

        1. 역사로부터 배우기

        2. 인권에 대한 비난

        3. 개입의 문제

        4. 마치며

슬라보예 지젝; 반인권론(Against Human Rights)

아다만시아 폴스; 자유주의, 사회주의, 3세계 관점에서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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