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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키운 아이
칼라 모리스 지음, 이상희 옮김, 브래드 스니드 그림 / 그린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 책장의 책 사이로 얼굴을 삐죽이 보여주고 있는 아이는 멜빈이다. 멜빈은 늘 도서관에서 사서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찾고 자료를 찾아 정리하면서 자란 아이이다.
"여러분이 어린이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다면 그 어린이들도 자라서 다른 어린이들을 그렇게 도와줄 거예요. 온 세상의 어린이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께, 또 프로보 시립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안 퍼키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는 글을 읽으면서,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짐작보다 훨씬 의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서선생님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엄마인 내가 읽었을 때 이 책은, 바로 나에게 그런 사서선생님같은 엄마가 되라고 말하는듯 하였다.
호기심 많은 아이 멜빈은 도서관에 가면, 자신이 알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다. 거기에다가 마즈, 베티, 리올라 사서선생님들까지 있으니 멜빈에게는 가장 즐거운 장소가 도서관이었을거라는 짐작이 간다.
멜빈이 관심을 보일 때면, 사서선생님들은 함께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을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선생님들이 바로 이 도서관의 사서선생님들이다.
"메에에엘빈! 도서관에선.... 뛰어다니면 안돼."라고 외치는 표정과 상황은 정말 리얼하다. 그런데 그 광경이 싫지 않은 것은 형식적이고 딱딱한 사서선생님들의 말과 표정이 아니라 늘 아이의 관심에 호응하고 도움을 주는 선생님들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나는, 아이가 아직 어리지만, 밖에 데리고 나갈 수 있을 때부터 줄곧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아주 어릴 때와는 달리 요즘(27개월)은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꺼내들고 읽고 싶어하고, 자료를 찾는 컴퓨터도 만지고 싶어하는 때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도서관 사서들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도서관이란, 발자국소리도 내지 않고 들어와 조용히 책을 읽다 가는 장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린이도서관이나 어린이 열람실에서는 조금의 자유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영유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는 어느 정도의 소음은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나.
어쨌든 그런 저런 것을 다 떠나서, 아이를 데리고 가서 도서관에서 책을 찾거나 할 때, 나는 사서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도움을 받고 싶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뭔가를 하느라 정신없는 사서에게 말을 걸기란 너무나 어렵다. 아이가 쿵쿵 발자국 소리만 내어도 고개만 까딱 들고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곁에 와서 관심을 보여주며 조용히 다녀야 한다고 속삭여주는 사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
엄마로서는 도서관에서 책 읽는 즐거움, 책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픈 마음에 데리고 간 곳이 권위주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로만 일관된 모습을 보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서 선생님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물론, 멜빈에게 쏟은 관심만큼을 바라는 건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함께 찾아줄 수 있는 선생님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아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서선생님들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내 느낌은 엄마도 이 책 속 도서관 사서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 말하는 헬리콥터 맘이 되자는 건 아니고, 아이의 호기심에 함께 반응하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현실의 사서선생님에게서 느낀 감정(말붙이기 어렵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운)을 엄마에게서도 아이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관심사에 함께 반응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지 않으면 아이는 내가 현실의 사서선생님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 것처럼, 엄마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연관성을 찾고, 거기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을까? 또한, 책을 통해 얻는 재미와 즐거움은 또 얼마나 많던가. 아이가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것을 책을 통해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엄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도서관 사서선생님들의 역할을 통해 엄마로서의 나, 조력자로서의 나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