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아이 기다리는 엄마 - 자기주도형 아이로 이끄는 원동력
홍수현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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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가 또래보다 조금 늦은 것 같아 불안한 부모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자기주도형 인재로 키우기 위한 어떤 노하우를 배우기보다는 아이들 각자의 특성에 맞는 학습방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자기주도'라는 말이 마치 어떤 새로운 학습법이라도 되는 양 떠들거나 왜곡, 확대되는 것에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물론이고, 눈길을 끄는 책들에서도 '자기주도'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즉, 자기주도란, 부모나 주위 환경에 의해 주어진 목표와 주어진 과정을 얌전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 나름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각하는 아이, 기다리는 엄마'일 것이다. 아이가 또래보다 늦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은 아이를 믿고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연년생 아들을 키우면서 그 둘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큰 아이 윤구와 작은 아이 윤성이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 그 성향의 차이를 몰랐을 때 저자 역시 학업성취가 빠른 윤구와 달리 말을 배우는 것도,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느린 윤성이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둘의 차이를 알게 된 저자는 윤구와 윤성이의 성향에 맞는 학습법을 선택하고, 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 늘 이야기한다. 아이의 성향이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엄마라고. 그러니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내 아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은지 알아보라고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다양한 방법과 체험을 통한 경험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렇게 관찰한 결과는 아이의 학습법은 물론이고 생활 습관에까지 적용을 시킬 수 있다.

 

윤구와 윤성이처럼 성향이 다른 아이는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다르다. 이는 학업성취는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우리 세대의 교육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책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저자의 두 아이를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쉽게 다가온다.

 

이런 류의 책들을 읽을 때 나는 한 가지 조심하는 게 있다. 그것은 책이 전달하는 큰 주제를 보지 않고 작은 에피소드에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방송을 보고 책을 많이 읽어서 자폐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있다며 책을 많이 읽히면 안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분명 그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 자폐증상을 보인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책을 읽는 환경(독서습관, 책을 읽는 동기와 목적, 그에 따른 부모의 반응 등)이 올바르게 조성되지 않았고 그것이 책만(!!) 읽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본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으면 안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방송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과연 그것이었을까?

 

어쨌든, 이 책은 아이들이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내용이 뷔페식당의 음식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탓도 있겠지만, 핵심요약정보(책에서는 초록색으로 마크까지 되어있다. 이건 과잉친절이다.)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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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나의 상상 미술관
앤서니 브라운.조 브라운 지음,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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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브라운의 그림책은 한솔이때문에 보기도 하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보기도 한다. 그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도서관에서 보았던 '앤서니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이름도 낯설었고, 그의 책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미술관이라는 주제때문에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의 책을 선택하게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라면, 한솔이가 그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솔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우리 아빠가 최고야'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더군다나, 한솔이는 언제나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나를 깜짝 놀래키곤했다. 그림책을 보면서도 그림을 잘 보지 않는 엄마를 한솔이가 일깨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책 때문에 그림책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앤서니브라운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그림책과 만났다. 그림책 작가로서의 이야기기때문에 그의 그림책이 중요한 제재이다.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배웠다.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의 그림책을 읽고 보는 아이들의 입장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 생각하며 그렸다.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책 주인공의 상황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수정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무심코 던지는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는 평생의 기억 또는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뱉고 마는 나의 행동을 반성하게 했다. 

그의 유년기와 미술대학시절의 이야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진로를 고민하는 모습, 그림책 작가로의 변모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에는 글이 드러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담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에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담길 수 있다. 때로는 양쪽 모두에서 생략된 것들도 잇을 수 있다. 그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남겨 두어야 한다."(p.62) 

앤서니브라운의 그림책이 그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림과 글이 모든 것을 다 드러낸다면 그 텍스트와 그림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남겨진 그 여백이 있기에, 그림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한솔이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잘 찾아낸다. 어떨 땐 고릴라 그림만 보면 앤서니브라운의 책이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의 그림책을 잘 찾아낸다. 그리고 읽어달라고 조른다. 내가 책을 읽어주면 한솔이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찾느라 바쁘다. 그림책 한 페이지의 글을 다 읽었는데도 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책이 바로 앤서니브라운의 책이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무궁무진한 생각과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의 그림책에는 무수한 변형과 상징이 있다. 변형이 억지스럽지 않고 상징을 찾아내고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는 앤서니 브라운이 스스로 밝히는 변형과 상징에 대한 설명이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한솔이와 다시 앤서니브라운의 책을 보면서 그것을 찾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앤서니브라운의 그림책만큼이나, 이 책도 재미나다. 내가 몰랐던 그림책의 세계를 읽어가는 재미, 그리고 그의 작품 속 인물(동물)들을 다시 만나는 재미, 그들이 태어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재미. 

"그림책은 나이가 들었다고 뒤로 밀쳐두는 책이 아니라 어느 연령대의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책"(p.235)이라는 그의 말에 절대 공감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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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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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식이 한참 들려오던 때, 부산은 가을이 늦게 오는건가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다른 곳에서는 노란 은행잎이랑 단풍이 한창이었는데, 여전히 초록색 잎을 단 은행나무를 보면서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좁다하나 자연의 변화는 그래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결코 좁은 곳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곤 한다.

 

3일전, 나는 출근을 하다가 우연히 노랗게 변해버린 은행잎에 마음을 빼앗겼다. 육교를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내 눈에 노란 잎을 풍성하게 달고 있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감성적으로 변한걸까? 그 은행나무는 내 눈길은 물론 마음을 홀딱 뺏아갔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닥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밟으면서 딴 생각에 빠진 채 가야 할 목적지와는 다른 버스를 타버렸다. 곧장 직진해야할 버스가 좌회전을 하는 걸 본 다음에야 내가 버스를 잘못 탔음을 알고 후다닥 챙겨내리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목적지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착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노란 은행잎 때문이었다.

 

새벽에 제법 세차게 바람이 불더니 인도에 은행잎이 가득 쌓여 그걸 밟는 느낌도 꽤 새로웠던 것 같다. 제 아무리 예쁜 인공조형물들은 보는 순간을 황홀하게 만들지만, 수수한 자연의 변화는 그렇게 온종일 내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봄날 흩날리는 벚꽃과는 또다른 느낌.

 

아마도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를 몇날 며칠 들고 다니면서 읽고 있었는데 그 영향도 한몫을 했지 않았을까싶다. 저자는 들꽃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씨름하며 쪼달리는 생활고로 허덕이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내 앞에 산적한 문제들만으로도 복잡하기만 했다. 알고보면 그것 역시 남과 다를 바 없는 문제이고 그것을 조금 더 크게 바라보면 세상일일텐데 말이다.

 

지난 봄에 한솔이가 대문 옆에 핀 민들레를 매일매일 관찰하던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서양민들레였는데, 매년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한솔이가 꽃이 피었나 안피었나 매일 관찰하기에 나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깨끗하게 누군가가 뽑아버린 것을 보고 한솔이가 꽤나 슬퍼했던 일이 있었다. 키도 크지 않고 바닥에 딱 붙어서 피어있던 민들레는 영문도 모른 채 뽑혀져 나갔다. 그래도 내년 봄엔 다시 그 자리에서 또 싹을 틔울 것이다. 골목길에 잡초가 무성하다면 시아버님이 싹 뽑은 것이었다. 메마른 도시의 골목길에서 아침마다 노란 얼굴로 인사를 하던 민들레가 참 그립다. 그러고보면 은행잎도, 민들레도 노란색이다.

 

회색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노란색은 가라앉은 기분조차 즐겁게 만든다. 꽃밭가꾸기를 한다면서 길가에 심어놓은 꽃들은 자생력을 갖고 피었다 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필때가 되면 옮겨 심었다가 질 때가 되면 다른 꽃으로 대체된다. 그래서일까? 살아있는 꽃이지만 살아있음을, 생명을 느끼기보다는 만들어놓은 조화같은 느낌이 든다. 가로수길의 나뭇가지들도 어느날 싹 가지치기를 해서 볼썽사납게 만들어놓기도 한다.

 

우리집 앞에는 내가 어렸을 때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그 학교 4회졸업생이니 그때 심었던 나무들도 30년이나 지나 제법 아름드리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에 학교 둘레에 서 있던 그 나무들이 싹 베어지고 초록색 철조망과 장미덩쿨로 바뀌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한솔이에게 이 나무가 엄마가 학교 다닐 때는 참 작은 꼬마나무였단다 하고 말해주길 즐겼는데,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허하던지. 빨간 장미꽃은 5-6월동안 얼굴을 보이다가 10달동안 초록색 철조망만 덩그러니 남겨놓는다. 늘 그자리에 서 있던 나무들이 또 그립다.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작은 꽃들이 차가운 도시의 흙을 뚫고 나와 피어있는 것을 본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꽃들을 아이들은 잘도 찾아낸다. 내가 무심코 길을 갈때 한솔이는 와 꽃이다, 예쁘다를 연발하며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바라본다. 그래서 가서 살펴보면 정말 꽃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꽃이 필 때가 되면 화분에 옮겨심어졌다가 꽃이 질 때가 되면 가차없이 퇴출당하는 꽃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리 차갑고 어둡고 딱딱한 곳에서도 자기의 역할을 다하면서 피고 지는 들꽃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전자의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내 아이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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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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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때였다. 그전까진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전태일만이 아니라 열사라 칭해지는 그 모든 사람을 다 나는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어서였다기보다 그들을 대중적으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그를 만났다. 그때의 느낌은, " 왜 저 사람은 그렇게 죽어야했을까?"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죽음으로써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그는 또다시 내게서 잊혀져 갔다. 그를 잊었다고 아무도 나를 뭐라하지는 않았다. 노동운동을 했던 그 많은 친구들도 각자의 생업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바빴으니까.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전태일'을 만나는 또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만난 전태일은 내가 대학생 때 만났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같을지라도 그를 만나는 방법은 시대를 따라 조금은 가벼워졌다. 물론 우리 시대의 동명이인 전태일들의 모습은 열사 전태일이 원했던 삶에서 우리가 얼마 달라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나 역시 또 한명의 전태일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부당한 대우도 참고 넘기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어도 그마저도 잃어버릴까봐 소리내지 못하는 삶. 그게 바로 지금 나의 현실이자 수많은 서민들의 삶이다. 얼마동안 시간강사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며칠 전 뉴스에 시간강사도 교원으로 인정해준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학생들에게는 '교수' 소리를 들어도 정작 현실은 일용직도 아닌 파트타임직이었으니 배웠다는 사람들도 그 현실에 대항하지 못하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닌 목소리를 내어주길 바랬던 적도 많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1박2일의 복불복처럼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걸 알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 속에서 만난 전태일은 현실 속의 전태일이다. 내가 현실 속의 전태일이었듯이 우리 모두 전태일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과거의 전태일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소리내지 못한 전태일들이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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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객의 맛있는 인생>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맛객의 맛있는 인생 - 소소한 맛을 따라 세상을 유랑하는
김용철 글 사진 / 청림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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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받아든 순간 좀 고민했다. 아, 맛집 이야기네. 읽을까? 말까?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가끔 '꼭 책으로 만들었어야할까?'싶은 블로거들의 글모음집이나 잡지의 한면에나 어울릴만한 내용으로 채워진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도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맛집들 중 몇 군데가 아닐까? 내용은 없고 사진으로 장수만 늘린 책은 아닐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음식과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을 통해 맛객(저자)이 느낀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물론, 소개된 음식점에서 그와 똑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음식의 맛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고, 음식을 먹는 장소에서 느끼는 분위기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식당은 식자재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야 하거나, 그런 음식을 요리하는 식당이다. 가끔은 식기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 정도 음식에 멜라민 식기가 웬말이냐고. 이것도 다 그 음식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저자와 조금 다른 입맛을 가지고 있다. 요리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것보다 초고추장 맛으로 먹기도 하고, 음식이 정말 맛있는 집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에서 먹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어린이놀이터가 있는 곳이라면 얼씨구나 좋다하고 들어가 먹는다. 결국 음식은 내게 그저 배고파서 먹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고, 음식점은 다른 사람과 만나기 위해 이용하는 장소에 불과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맛객이 찾아다니는 전국의 맛있는 집들은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맛객이 그곳에서 느낀 정서와 그 음식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들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맛집정보를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음식과 식당을 소재로 쓴 인생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뭐, 시간이 나거나 여유가 된다면 맛객이 추천한 집들을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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