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봉고차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나온다. 아, 정말 힘들면 저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그 영화가 떠올랐다. 심지어 학자금 상환 분투기라니. 이 사람이 왜 봉고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한눈에 알 것 같아서 표지를 보는 순간 집어들었다.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벌써 나는 이 책에 매료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내 고민에 딱 맞는 책이었기에. 딸이 고3이 되면서 입시와 대학, 취업 같은 문제가 실감나게 다가왔고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을 외치는 시대에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인지 항상 고민이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을 원합니다>를 읽고 너무 놀랐던 경험은 딸아이가 학교 생활을 얘기해 줄 때마다 '이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진격의 대학교>를 읽으면서는 절망했다. 요즘의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 지옥에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써야하나? 고3 딸에게 습관처럼 "올해만 잘 버티자..."이라고 말하지만 차마 대학만 가면 너의 진짜 인생을 펼쳐볼 수 있다고 말은 못했다. 그곳은 취업으로 이어지는 진짜 전쟁터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청년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학자금을 감당해야 한다. 대학이 채무에 시달리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사회다.

저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미국에서도 똑같은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너무나 똑같다. 고등학교 시절의 목표는 "가능한-한-최고의-대학-입학한다. 비용-신경-안-씀". 그래서 물고기떼처럼 대학에 입학하고,학생인 신분인데도 순순히 거액을 대출해주는 학자금대출의 은혜에 감동받으며 대학을 다니는 동안 어떤 면에서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빚이라는 족쇄가 발목을 얽어맨다. 졸업 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취업이 가능하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은 대부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 보다도 못한 직업을 전전하며 평생 '빚을 갚기 위해 저당잡힌'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의 친구 조시는 훨씬 공부도 잘했고 하고싶은 일도 뚜렷했지만 사립대와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더 큰 빚더미에 앉았고 결국 그 빚이 족쇄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윤리적으로는 '하면 안되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조시의 얼굴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세상과 타협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깝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인구론(인문계 90프로는 논다)의 전형을 보여준다. 취업시장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고 3만 2천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2년 반동안 알래스카에서 모텔 청소, 여행 가이드, 산악관리원 같은 저임금 노동을 전전한다. 그래도 저자에게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과감히 족쇄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야생으로, 자본과 단절될 수 있는 삶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 용기마저도 갖지 못한 대다수의 청년들을 생각하면, 우리 딸 아들이 곧 맞이 하게될 세상을 생각하면 책을 읽다가 계속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아이들에게 다 때려치우고 모험을 떠나! 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엄마처럼 늘 걱정하게 될 것이다. 제발 평범하게 살자꾸나 하면서.

아이들에게 안전을 이유로 매번 보호막을 쳐 주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던(여기를 벗어나면 위험해!) 우리에게 이제 모험은 너무 위험해서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성인신고식'이라는 절차도 없이 학교에서 직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사라져버렸다고 볼 수 있다.  딸아이도 내년엔 잠을 좀 더 잘 수 있겠지, 무시무시하게 쌓여가는 수험서에서 해방될 수 있겠지 하고 꿈 꿀 테지만 '그곳이 니가 원하던 자유로운 세계야'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차마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 모든 고리를 당장 끊고 네 진짜 인생을 찾는 모험을 떠나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수능이 끝나면 함께 책도 많이 읽고,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 남자가 어떻게  빚을 갚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자유롭게 사는지도 꼭 들려주고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이 취업에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그 덕에 자기성찰능력과 양심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나쁜 환경에 젖어버리지 않고 자기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독서였다.

오늘 아침 우연히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가치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강하다."

이 한마디가 봉고차월든의 저자 켄 일구나스도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나는 물고기떼처럼 움직였다.졸업 후 어떤 방향이든 진로를 선택해 나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이끌려 한 무리로 헤엄치면서 곡선을 그리고, 질주를 하며, 당당하게 나아가다가 결국 꾸물꾸물 대학으로 향했다.(26쪽)

닥친 상황이 너무나 한심했기 때문에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경멸스러웠다. 5년이나 대학을 다니고, 두 차례나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3만 2천달러나 되는 빚을 지고도 나는 십대 때와 변함없이 취업시장에서 환영받을 요소는 전혀 갖추지 못한 채, 딱히 기술이 필요 없고 책임도 별로 지지 않는 저임금 노동만 벌써 몇년 째 하고 있었다.(83쪽)

<월든>은 1854년에 출간되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간다"는 소로의 대표적인 경구는 당시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잘 부합되는 통찰력을 담고 있다. 소로는 동료 시민들("땅의 농노")이 책상이나 거대한 농장에서 매 순간을 증오하며 죽도록 일하는 모습에 대해 묘사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불행하게 노동하는 이웃에게 뽐내기 위해서, 큰 집에서 살고 세련된 옷을 입고자 말이다.
소로의 글을 읽자, 나는 맨정신으로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소로는 나의 안내자가 되어 내 세포벽을 통해 지혜를 속삭여주었고, "만약 신념과 경험을 통해 단순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자아를 지켜내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고 믿는다"고 털어놓았다.(127쪽)

빚은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직장에서 묵묵히 버티게 하고, 소파에 푹 파묻혀 현상황의 편안함을 음미할 좋은 구실이 되어준다. 빚을 지면 참여할 게임, 싸울 전투, 실현할 신화가 생긴다. 빚은 읽을 대본, 지켜야 할 규칙, 따라야 할 지시사항이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즉 가정과 집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우리는 떠돌이 일꾼이나 히치하이커, 히피와 집시, 부랑자와 유목민을 보고 분노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내면의 갈망, 집안에 가득한 쓸모없는 물건 아래 묻어버린 영웅, 땅에 발을 디딘 채 안정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몰아낸 영혼을 상기시킨다.(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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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10-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어떤 드라마가 떠올라요. 가장 두려운 사람은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욕심이 없어 통제가 안되는 사람이라더군요. 그 대사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갈수록 욕심과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에 자기를 지킬수 있는 힘은 역시 독서인거 같다는 ㅎㅎ `모리사키서점의 나날` 저두 재밌게 봤어요 ㅋㅂㅋ

살리미 2015-10-07 07:03   좋아요 0 | URL
좋은 대사네요. 욕심이 사람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망하게 하기도 하네요. 해피북님 말씀에 저도 백프로 이백프로 공감입니다^^
 

tvn에서 비밀독서단이라는 책 예능이 생겼다. 매주 화요일 저녁 여덟시에 방송한다는데 어떤 프로일지 궁금해서 한번 본다는게 매번 깜빡하고 못보다가 우연히 재방송을 보았다.
일단 책에 대한 방송이 거의 없는 (Kbs에서 하는 `TV 책을 보다`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 현실에서 대표적인 예능 채널인 tvn에서 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게 신기했고, 워낙 예능을 잘 만드는 채널이니 어쩌면 책 프로그램도 대박을 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몇년 전 강호동을 섭외하며 야심차게 만들었던 `달빛 프린스`가 몇 회만에 사라져버리는 아쉬움을 느꼈었터라 더욱 그랬다.
내가 한동안 독서와 거리가 멀게 살다가 책과 친해진 계기는 독서 팟캐스트들을 들으면서였다. 빨간 책방이나 라디오책다방, 문학이야기 등의 팟캐스트를 심심할 때마다 듣다보니 거기 나오는 책들을 읽고 싶어졌고 그 책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다음 책 또 다음 책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다. 방송에서 쉽고 재밌게 책을 소개한다면 분명 그 책을 시작으로 독서의 재미에 빠지는 시청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비밀 독서단>은 매주 독자의 고민을 해결할 주제가 있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명예단원들이 선정한 열권 정도의 해결책 중에서 비밀 독서단원이 선택한 책들을 각자 소개하고, 그 책중에서 오늘의 책을 선정하여 북크로싱을 한다는 컨셉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을 위로하고 길을 밝혀 주는 책들이 있었으니 비밀 독서단이 누구나 아는 동네.북!부터 아무도 모르는 뒷.북!까지 책 속의 넓고 얕은 꿀팁을 떠서 먹여주겠다며 본격 책.받침. 쇼!!를 자처한 홈페이지의 소개 글을 보는 순간 오호~ 감이 온다. 책에 관한 한 금사빠인 나는 이미 반했다.
독서단원이 정찬우, 데프콘, 예지원, 김범수, 신기주, 조승연 이라는 것만 봐도 이 프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볍게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부터 인문학의 젊은 피까지. 책프로지만 재밌게 해보겠다는 성의가 느껴진다. 주제도 1회는 `갑질에 고달픈 사람들` 2회는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 3회는 `부모님께 죄송한 사람들`이라니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맘에 쏙 든다.
그리고 북크로싱!! 책을 읽은 후, 책 속에 메시지를 적어 공공장소나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책 돌려 읽기 운동`을 한다. 오! 멋지다. 길을 가다가 북크로싱 책을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예전 <느낌표>처럼 이것도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본 3회에서는 <고령화 가족> <윤미네 집> <마테오 팔코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가 소개되었는데, 고령화 가족 말고는 다 처음 본 책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다 장바구니에 넣고 싶다. (이걸 계기로 책이 좀 팔릴까? 지난번 소개된 박준의 시집은 불티가 났다는데...) 가벼운 수다처럼 책에 대해 서로 느낌들을 공유하고 다른 생각들도 듣는다. 그런 와중에 자기의 기억을 떠올리고 눈물 짓기도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주기도 한다. 너무 아름답다. 나도 같이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한 회 방송을 보았을 뿐인데도 이런 프로그램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무엇보다 책 읽을 시간이 없거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애들하고도 재밌게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댓글이라도 남겨야 하나 고민중이다. 몇번 하다가 반응이 없어서 슬그머니 사라질까봐. 다행히 검색을 해보니 반응들이 꽤 좋은 듯하다.
이번 주 해결책으로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집이 선정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책마다 이 책의 `생명줄`을 소개한다. `한줄`도 아니고 `밑줄`도 아니고 `생명줄`이라니!! 이 프로의 작가들은 대체 무슨 매력덩어리들인가.
예지원 단원이 추천한 윤미네 집의 생명줄은 이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특별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 특별한 순간들로 다가와 그 시간들을 추억하게 했다.“ (161페이지)

아. 내가 오래 오래 이 프로그램을 응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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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 2015-10-04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바로 재방 찾아 보고 있어요. 모르고 있던 방송인데 소개 감사합니다.

살리미 2015-10-04 22: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지금 카푸치노님 서재 들여다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이렇게 인연이 되어 반갑습니다^^

카푸치노 2015-10-04 22:56   좋아요 0 | URL
글도 별로 없어 쑥스럽네요. 친구 감사합니다~

2015-10-04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4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10-0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두 줄 때문에 굳이 비밀글을 썼습니다.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0-06 11:29   좋아요 0 | URL
비밀독서단 패널에는 마태우스 님이 맞춤 패널 같습니다.

해피북 2015-10-0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프로그램보며 은근 좋았는데 아쉬운점은 서로 다른의견을 좀 더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조승연씨? 같았는데 이분이 부모님에 대한 다른 견해에 대해 말하니 다른분들이 받아들이지 못해하는 표정과 말투가 불편하더라구요. 아무리 아름다운 책이라해도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갖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들어 아쉬운 생각도 있었답니다. 그리구 또 하나 한 권을 소개해도 조금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되면 좋을텐데 했어요. 그렇지만 이제 4회째를 맞이하는터라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죠? ㅋㅂㅋ

살리미 2015-10-07 07:14   좋아요 0 | URL
음.. 그런 아쉬운 부분도 있긴해요. 어제는 일부러 알람 맞춰 놨다가 4회를 봤어요. 조승연씨는 워낙 젊고 똑똑하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 다른 단원들과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그럴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나름 재미있더라고요. 예능 컨셉에 맞게 하느라 그런 듯 해요. 저는 책프로라면 무조건 좋아해서 다 재밌게 느껴지는데 아이들하고 <TV 책을 보다>를 보려고 하면 재미없다고 안보거든요. 엄마! 솔직히 그게 재밌어?? 그래요^^ 근데 이건 아직 애들과 시간이 안맞아 같이 볼 기회가 없없지만 애들도 재밌다 할거 같아요. 깊이는 없지만 제가 모르던 책 여러권을 알게 되서 좋기도 하고요. ㅋㅋ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고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음 좋겠어요. 홈피에 가서 응원 댓글이라도 달아야 하나 고민이랍니다 ㅋㅋ

살리미 2015-10-07 07:16   좋아요 0 | URL
아참! 아침에 일어났는데 선물처럼 해피북님 댓글이 주렁주렁~ ㅎㅎ 너무 반가웠어요^^ 하루를 좋은 기분으로 시작하네요^^ 해피북님~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고양이라디오 2015-10-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예능프로가 나온 것 같군요.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한 번 봐볼께요ㅎ

살리미 2015-10-09 14:02   좋아요 0 | URL
같이 응원해요^^ 책 예능은 너무 귀해서~~ 어쨌든 오래오래 갔음 하는 바램이에요.
 

다락방님의 책을 방금 다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최대한 아껴가며 두고 두고 읽고 싶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저녁에 남편이랑 운동을 하러 갔다가 잠시 앉아서 쉬는 틈에 책을 펼쳤는데 하필 그 때 읽은 부분이 너무 재밌어서 혼자 피식 피식 웃는 걸 들켜서 민망해지기도 했다. <영국 남자의 문제>라는 하워드 제이콥슨의 소설을 소개한 글이었다. 제목은 `설거지는 미룰 수밖에 없다` ㅎㅎ

일단 제목부터 아주 맘에 든다. 주인공 트레스러브는 그간 마른 여자들을 사귀었는데 지금 사귀고 있는 헤프지바는 덩치가 아주 크다. 이름도 왠지 맘에 드는 헤프지바!! 그녀는 과식 후에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다락방님은 격한 공감을 하는데^^ 나 역시도 완전 공감이다. 싱크대에 설거지를 쌓아놓아서 주전자에 물을 채우는 것도 불가능할 상태임에도 당당하다니! 나도 자주 설거지를 쌓아놓고 더이상 그릇을 쌓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야 마지못해 씻을 때가 있는데 이젠 죄책감 따윈 버리고 헤프지바처럼 바로 설겆이 하지 않을 권리를 당당히 누려야겠다. 게다가 다락방님은 더욱 당당하게 선언한다.(속이 다 시원하다)

— 설거지를 하다가 아, 먹고 사는 게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집을 뛰쳐나가 시장을 한바퀴 돈 적도 있다. 이 허무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데 헤프지바는 과식 후의 설겆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 정말 존경스럽다. 멋지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혹여 내가 독립하게 된다면 과식한 후에는 결코 설거지를 하지 않을테다. 한껏 미뤄둘 테다. 혹여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설거지는 남편 몫이다. 내가 하지 않을 테다. 번번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싶진 않으니까. (245쪽)

아이들이 어렸을 땐 매일 쓸고 닦고 식기도 소독하고 한시도 살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늘 집은 엉망이었다. 그때는 언제 애들 다 키워서 집 좀 단정히 정리해 놓고 살아보나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고 정리정돈할 시간은 많아졌는데 우리집은 아직도 예전처럼 어수선하다. 주방에 설겆이가 쌓여있기 일쑤고 여기 저기 책들이랑 제자리를 찾지 못한 못한 물건들이 돌아다닌다. 내가 바뀐 까닭이다. 이젠 시간이 나면 청소나 살림을 하는 것 보단 조용히 앉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진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주부의 노동은 제로를 만드는 노동이라서 열심히 해도 티가 안나고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바로 티난다고 했다. 기껏 애써봐야 제자리로 돌려 놓는 노동인 것이다. 그래서 주부들은 곧잘 우울해진다. 나는 하루종일 정리하고 치웠지만 식구들이 돌아와 밥을 해먹고 생활을 하고 나면 또 설거지가 쌓이고 바닥엔 빨래가 굴러다닌다. 열심히 일을 할수록 허무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허무를 치료할 처방으로 너무 불편한 상황이 아니면 바로 바로 치우는 것보다 치우고 싶을때 몰아 치우는 걸 택했다.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기로.
그래서 아침에 남편이랑 애들이 다 나가고 나면 거의 하루종일 책을 읽다가 저녁에 몇시간 몰아서 일을 하곤 한다. 설거지를 잔뜩 쌓아놓고 책을 보다보면 명색이 전업주부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때가 많았는데 오늘로서 그런 죄책감도 안녕~이다! 설거지 안해서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건 다음장면이다.

— 그는 헤프지바가 움직일 때 매트리스가 크게 출렁이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끼어들면 모든 것이 거대해졌다. 그가 그녀와 함께하는 처음 그 순간부터 땅은 움직이고 바다는 들썩이고 하늘은 한데 모여서 검게 변했었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심한 뇌우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았다.(소설352~353쪽)

— 그나저나 덩치 큰 여자와 사랑한다는 건, 심한 뇌우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은 거구나! 멋지다. 뇌우 속에서 살아남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라니. 헤프지바는 정말 멋지다! (245쪽)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정말 멋지다! 헤프지바를 소개해 주시다니! 하루에 서너시간씩 운동을 하며 지내던 내가 몇년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운동도 끊고 살림도 끊고 많은 시간을 앉아서만 지내다 보니 살이 여기저기 붙어서 우울해졌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니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통통하더라고 이상한 논리를 펴가며 버티고 있었는데 (책 많이 읽는 날씬하고 이쁜 여자들을 볼때마다 좌절했다)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자꾸 혼자만 살이 쪄서 남편한테 미안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심한 뇌우 속에서 살아남은 기분이라지않는가.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 되어 남편한테 이 부분을 읽어보라고 책을 줬다. 킥킥대며 읽는 걸 보니 동의하는 건가. 차마 동의하는 거냐고 묻지는 못했지만 나는 다락방님의 책을 읽으며 마음의 짐들을 다 씻어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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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0-0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캐공감!

2015-10-04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4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5-10-0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장에 꽂아만 놓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오로라님 글 읽으니 읽어야겠어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

살리미 2015-10-04 09:32   좋아요 0 | URL
앗! 야나님. 반가워요^^ 야나문 오픈 준비하시는거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었거든요.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야나님 카페에서 하이볼 한잔 하면서 책 읽고 싶어요^^

수이 2015-10-04 09:52   좋아요 0 | URL
서울 오실 있으면 한번 들려주세요 오로라님 ^^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구요 :)

살리미 2015-10-04 10:36   좋아요 0 | URL
네^^ 기회가 되면 꼭 들를게요^^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요~~

스윗듀 2015-10-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히히. 오로라님도 멋진 남편을 두신 거 같은데요!

살리미 2015-10-04 13:45   좋아요 0 | URL
lovelydew님 반가워요^^ 제 남편은 그저 평범하고 착하고 조금은 불쌍한 대한민국 40대 중년 남자에요^^
 

역시 대가다. 대가는 다르구나. 내가 아무 생각없이 라면, 김밥, 짜장을 쳐묵쳐묵하고 있을 때, 대가는 이런 사색을 하는구나.

어젯밤 예약 주문을 했던 책이 도착했다. 사은품으로 너무 앙증맞은 양은냄비와 라면 한개를 품고.
나는 초미니 사이즈의 그 냄비가 귀여워 미칠 뻔 했다. 식구들 모두 거기다 라면을 먹겠다고 예약을 했다. 뚜껑에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이렇게 김훈의 문장이 새겨진 특별한 양은냄비. 이런 냄비를 막 써도 될까? 잠시 생각했다.

라면을 끓이는 대략 오분정도의 시간에 나는 그저 멍~ 하니 있을 뿐인데 김훈은 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그는 우선 라면처럼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김밥을 떠올린다.
—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P.15

라면처럼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짜장을 떠올리며 `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의 사고는 1960년대 이후 라면시장의 팽창이 그 무렵부터 구조적으로 전개된 빈부의 양극화, 인구의 대량 소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데 이른다. 그렇다. 라면은 주로 가난한 노동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음식이었고 혼자 있을 때 한끼를 때우기 좋은 음식이니까.
된장, 간장, 장아찌같은 우리 고유의 음식들은 맛의 심층구조를 갖는다. 시간이 오래 그 맛을 숙성시키는 것이다. 된장찌개의 국물 얘기를 하다가 그는 삶의 심층구조와 서사적 로망을 회복하는 것은 이제 영영 불가능해 보이며, 시간의 작용이나 기다림, 환상, 스밈, 우러남처럼 삶에 깊이를 가져오는 기능은 음식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쯤에서 나는 부끄러워진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좋은 음식을 식구들에게 제공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과연 애들이 나중에 얼마나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게 될 지는 자신이 없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라면으로 한 끼를 때웠던 적도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장아찌나 된장 간장의 깊은 맛의 심층을 그리워하게 될까?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먹는 매운 짬뽕 국물은 `몸에 스며서 몸을 위로하는 기능이 없고 목구멍에 불을 지르듯 날카롭고 사납게 달려든다.`
그렇게 몸을 위로하지 못하고 부박한 음식의 대표주자격인 라면은 생명체를 거치지않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가장 공업적인 식품이다. (아무리 라면 회사가 재료의 천연적 성격을 강조한다해도) 라면이 개발된 이후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까지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매출이 성장하고 있지만 이 라면시장의 팽창이 자본주의의 싹쓸이가 몰고 온 인간 소외 사태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는 라면을 끓일 때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분말 스프의 맛을 조금이라도 순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의 조리법을 소개한다. 센불에 물을 700미리 정도 넣고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한 것처럼 물이 넉넉하고 화산이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이, 삽시간에 익는단다), 분말스프는 3분의 2만 넣고 대파를 많이 썰어 넣어 파의 달고 청량한 맛이 국물과 면발에 스미게 한다. 그리고 불을 끄고 달걀을 넣어 저어준다.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만하고 견딜만한 음식이 된다는게 김선생님 레시피이자 지론이다.

그런데... 응?.... 이렇게 끓이려면 출판사의 선물인 고 앙증맞은 작은 양은냄비로는 택도 없다. 라면 한개는 끓일 수 있을까 싶은 작은 사이즈이길래 물을 넣어봤더니 500미리 간신히 넣고 라면을 끓이면 넘칠까봐 조마조마해야 하는 사이즈다. 김선생님 레시피처럼 파를 듬뿍 썰어넣었다간 젓지도 못하고 끓어 넘치게 생긴 이 작은 냄비.... 이걸론 레시피 재현이 힘들다구ㅠㅠ

뭐 어차피 쎈 화력이 필요하고 가정용 가스렌지는 어림없다 하셨으니 레시피의 재현은 이 냄비가 아니라도 힘들겠지만 나는 아쉬운대로 그 앙증맞은 양은냄비에 (좁은 욕조에서 답답하게 퐁당거리듯)라면을 끓여 보았다.

끓이는 동안 넘칠까봐 온갖 신경을 쓰느라 사색은 역시나 내 몫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냄비 뚜껑에 면발을 올려 후~ 후~ 불어 먹는 라면의 맛은 부박하지만 내 안에 깊이 인이 박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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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10-0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김훈라면레시피 시도해봐야겠군요. 싱겁지만 깊은맛?이 날 것 같습니다

살리미 2015-10-02 10:02   좋아요 1 | URL
참고로 대파는 하얀 밑동만 검지 손가락만한 것 열개 정도를 쓰고, 라면이 이분쯤 끓었을때 넣어준다네요. 달걀은 미리 그릇에서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어 놓은 후 뿌리고요~ 굉장히 정성이 들어가지만 이렇게 하면 파맛이 우러나면서 인스턴트의 맛이 많이 희석될 듯 해요^^

yureka01 2015-10-0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개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작가분들이 김훈의 신간에 냄비끼워 판다고 볼맨소리를 하더군요.ㅎㅎㅎㅎ
심지어,냄비에 책이 받침으로 하나라는 비아냥까지 ....

저도 예약했습니다. 도착하면 라면 끓여 먹음서 읽을 참입니다.ㅎㅎㅎ

살리미 2015-10-02 10:13   좋아요 0 | URL
저도 김훈 작가 정도되면 끼워팔기 안해도 되지 않냐는 댓글을 많이 봤어요. 전 그저 냄비를 준다는게 신기해서 덥썩 주문하고 말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죠. 근데 냄비는 정말 귀여워요^^

CREBBP 2015-10-0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끼워팔기라기보다는 예약 구매자를 위한 서비스같은 거 아닌가요. 절판된 주옥같은 글들이 이제껏 묻혀있다가 빛을 보는건데..

살리미 2015-10-02 10:33   좋아요 1 | URL
책 앞 `일러두기`에서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라고 하셨는데... 그 `버린다`는 작가의 표현 때문에 섭섭해 하시는 분들도 많은가봐요. 저는 그 세권의 산문집이 없어서 이 책의 출판이 너무 반갑지만 그 책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아쉬울 수도 있겠죠. 모두가 김훈 작가를 너무 사랑해서 생기는 일 아닐까요? ㅎㅎ 지금도 이 책 읽고 있는 중인데 정말 문장 하나 하나가 주옥같아요^^

CREBBP 2015-10-02 10:37   좋아요 0 | URL
바다의 기별 같은 책에는 김훈선생님이 버리고 싶다는 걸 이해할만한 글도 있긴 했어요. 자세히 생각은 안나지만 편차를 느꼈던 기억이..

해피북 2015-10-02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늘 점심은 라면으로 ㅎㅎㅎ
냄비에 문장이 새겨진건줄은 몰랐어요 ㅜㅜ 아버님이 김훈작가님을 좋아하시는데
알았다면 구입해드렸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ㅎㅎ

저는 김훈작가님하면 <칼의노래>가 떠올라요. 처음 그 작품으로 알게되었는데..
제 편협한 생각은 이순신 장군의 처연한 아픔보다도 김훈 작가님이 `여진`이란 인물
그것도 여성에 대한 인물을 비릿하게 표현하신것에 대한 반감(?) 이랄까요. 그런것도
있고 이후에 문학동네 계간지에 실린 단편에서도 그런 묘한 기분을 들어서 뭐랄까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아보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이상하게 자꾸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직까지 매력적인 김훈님의 글을 느껴보지 못하고 있는데ㅡㅜ
언젠가 저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오면 좋겠어요^~^

살리미 2015-10-02 11:45   좋아요 1 | URL
김훈 작가는 본인 스스로도 가부장적이라는 얘길 해요. 저는 그의 문장에서 선비다운 꼿꼿함이나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는 밥벌이의 비애 같은게 느껴져요. 이 책에서도 아버지 무덤에서 곡을 하는 여동생들에게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라고 아버지에게서 배운 말투로 꾸짖어 단속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는 읽다보면 여동생들까지 오롯이 내가 책임지겠다는 그 책임감이 저는 좀 단호하지만 슬픈 운명처럼 느껴지거든요. 많이 사색하고 고민하면서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가는 어른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굉장히 섬세한 감성을 가진분이라는 게 드러나서 감동이 배가되는 듯하고요.
저는 김훈의 글은 일부러 천천히, 혼자 있을 땐 소리내서 읽어요. 그래야 문장의 맛이 더 나는 듯해서요. 근데 제가 좋아해서 주변에 권해주면 이런 문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해피북님도 다음엔 한번 천천히... 낮게 소리내어 한번 읽어보세요^^

마태우스 2015-10-0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배달받았어요. 첫 장부터 포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밤에 라면 먹고 싶어졌다는 게 단점이죠. 근데 오로라님, 요즘 정말 글도 많이 쓰시고 책도 많이 읽으시는 듯... 이런 추세면 서재 평정이 얼마 안남았네요. 저도 종종 들러 좋은 글 읽겠습니다.

살리미 2015-10-03 23:05   좋아요 0 | URL
아아악.... 서재 평정이라뇨...... 좋은 글이라뇨.... 무슨 말씀을요!! 저는 요즘 살짝 부담스러워졌어요. 아이들 어느정도 크고 나니 시간도 많고 책 읽고 어디 얘기할 데도 없어서 여기서나마 이런 저런 넋두리 했을 뿐인데... 이웃님들이 알고보니 다들 굉장하신 분들인데 서재 초보인 제가 뭣도 모르면서 하룻강아지처럼 너무 깽깽거린거 같아서요.
이웃님들의 댓글이 너무 기분 좋고 힘이 되서 저도 모르게 까불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아 근데 저 얼마전에 <서민 마니아>가 됐어요^^ 무슨 기준으로 마니아가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 땐 좀 까불고 싶었답니다^^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cgv 오리에서 영화 <마션>의 라이브톡을 보았다. 영화 상영 후 cgv 압구정에서 열린 이동진 평론가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님의 토크를 생중계 해주는 형식이다. 기다리던 영화 <마션>을 개봉보다 먼저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좀 멀어도 오리까지 갔다.
책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어서 영화를 너무나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일까, 요즘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같은 잘 만들어진 우주 영화가 나와서일까, 영화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다. 영화에 대한 토크도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화수준이라 사실 기대에는 못미쳤다. 라이브톡이 진행 될 동안 옆에서 자꾸 집에 가자고 조르는 남편 때문에 집중이 안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원작을 읽었기 때문에 사전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본 남편에게 물었다.
˝영화 어때?˝
˝글쎄? 근데 이게 가능한거야?˝
아무래도 폭풍감동은 없었나보다^^
사실 인터스텔라처럼 감동 코드를 넣은 것도 아니고 그래비티처럼 우주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의 막막함을 처음 느껴본 것도 아니라서 그저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막막한 우주 공간에서 초긍정 사나이는 어떻게 살아가는지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이 생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대개의 경우 그렇듯이 영화에서는 시간상 생략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마크 위트니가 너무 걱정이 없고 시도하는 모든 일이 족족 성공하는게 이상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소설에선 오히려 그런 점에서 아주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모든 일이 척척 풀리는 동화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동진 평론가도 말했듯이 그정도면 소설을 굉장히 잘 각색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소설에는 없는 마지막 에필로그가 참 마음에 들었다. 헬조선이라는, 어쩌면 우주공간만큼이나 막막하고 대책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사나이의 조언은 가슴에 팍!! 꽂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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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5-10-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마션> 영화 보러가려고요ㅎ 오로라님 글을 읽으니 소설 <마션>도 보고싶어지네요ㅎ~

살리미 2015-10-09 14:01   좋아요 0 | URL
즐겁게 감상하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