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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강영숙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5월
평점 :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문학 작품을 함께 읽으며, 문학이 뭔가, 문학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주 고민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왜, 문학 작품을 읽으라고 하는 거지? 라는 생각. 학생들과 읽을 작품을 고르다 보니, 단편 소설을 자주 읽게 됐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선별해주신 책을 많이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땀 흘리는 소설, 가슴 뛰는 소설(나는 자꾸 이 소설집을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부른다) 이후로 나온 기억하는 소설을 읽었다. 앞에 나온 두 권의 책을 읽을 땐, 하... 하는 안타까움이며 복잡한 심경이며 뭔가 아련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면, 이 책은, 한 편을 읽고 그 다음 편으로 바로 넘어갈 수 없는 먹먹함이 있었다. 그래서 읽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가 자주 회자되는데,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자꾸 회자된다는 게 중요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이 문장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 잦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큰일이 아니어도,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금세 잊어버린다.
얼마 전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어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으니, 저절로 두어 가지의 사건이 동시에 떠올랐다. 참혹한 정치적 현실로 말미암은 일, 그리고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혹은 그냥 단지 쇼핑을 나갔을 뿐인데 어이없게 당했던 일... 모두 누군가에게 삶이었던 순간이 그렇게 건물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백화점 붕괴와 관련된 임상순 작가의 작품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 그리고 충격적이어서 놀랐다. 아, 이게 진짜 이렇게 치워져(!) 버린 거였나? 싶은 마음. 당황스러움. 어떤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
몇 주 전에 김소진 작가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을 때에도 느꼈던, '어, 이건 우리가 알고 있던(혹은 생각하던) 게 아니잖아..?' 같은 생각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떠올랐다.
구제역으로 인한 살아있는 동물 매장. 뉴스로만 접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구덩이'. 교사의 입장에서(특히 특성화고에서 내 반 학생을 취업시켜 본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의 숨'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우리는 왜 자꾸 잊을까, 그래서 또 비슷한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걸까? 기억하기 싫어서,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자꾸 잊는 동물이니까? 여전히 어떤 일들은 미제로 남아있고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차 잊혀져 가는 것 같다. 모든 일을 기억할 순 없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의 어떤 것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 아닌가? 라는 생각이 여덟 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다. 또한, 나는 무엇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었나... -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말할 주제도 못된다 -
여덟 편의 작품 중 이미 읽은 작품은 최은영 작가의 '미카엘라'와 최진영 작가의 '어느 날(feat. 돌멩이) 이렇게 두 작품 뿐이었고, 나머지 작품들은 처음 읽는 것이었다. 이 작품집을 엮은 선생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글을 모으셨는지, 이 글들을 모으며 얼마나 마음이 먹먹하고 힘들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이 글들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 기억하고 기억하려 노력하면 좋겠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억'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 기억을 위해 학생들과 문학을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쓰레기장에 버리면, 흙으로 덮어 버릴 거 아니야. 그러면 잊어버린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 잊어버린다고. 봐라, 또 무너진다. 분명히 또 무너진다고." - P104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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