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봉고차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나온다. 아, 정말 힘들면 저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그 영화가 떠올랐다. 심지어 학자금 상환 분투기라니. 이 사람이 왜 봉고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한눈에 알 것 같아서 표지를 보는 순간 집어들었다.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벌써 나는 이 책에 매료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내 고민에 딱 맞는 책이었기에. 딸이 고3이 되면서 입시와 대학, 취업 같은 문제가 실감나게 다가왔고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을 외치는 시대에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인지 항상 고민이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을 원합니다>를 읽고 너무 놀랐던 경험은 딸아이가 학교 생활을 얘기해 줄 때마다 '이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진격의 대학교>를 읽으면서는 절망했다. 요즘의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 지옥에 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써야하나? 고3 딸에게 습관처럼 "올해만 잘 버티자..."이라고 말하지만 차마 대학만 가면 너의 진짜 인생을 펼쳐볼 수 있다고 말은 못했다. 그곳은 취업으로 이어지는 진짜 전쟁터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청년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학자금을 감당해야 한다. 대학이 채무에 시달리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사회다.
저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미국에서도 똑같은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너무나 똑같다. 고등학교 시절의 목표는 "가능한-한-최고의-대학-입학한다. 비용-신경-안-씀". 그래서 물고기떼처럼 대학에 입학하고,학생인 신분인데도 순순히 거액을 대출해주는 학자금대출의 은혜에 감동받으며 대학을 다니는 동안 어떤 면에서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빚이라는 족쇄가 발목을 얽어맨다. 졸업 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취업이 가능하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현실은 대부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 보다도 못한 직업을 전전하며 평생 '빚을 갚기 위해 저당잡힌'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의 친구 조시는 훨씬 공부도 잘했고 하고싶은 일도 뚜렷했지만 사립대와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더 큰 빚더미에 앉았고 결국 그 빚이 족쇄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윤리적으로는 '하면 안되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조시의 얼굴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세상과 타협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깝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인구론(인문계 90프로는 논다)의 전형을 보여준다. 취업시장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고 3만 2천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2년 반동안 알래스카에서 모텔 청소, 여행 가이드, 산악관리원 같은 저임금 노동을 전전한다. 그래도 저자에게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과감히 족쇄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야생으로, 자본과 단절될 수 있는 삶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 용기마저도 갖지 못한 대다수의 청년들을 생각하면, 우리 딸 아들이 곧 맞이 하게될 세상을 생각하면 책을 읽다가 계속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아이들에게 다 때려치우고 모험을 떠나! 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엄마처럼 늘 걱정하게 될 것이다. 제발 평범하게 살자꾸나 하면서.
아이들에게 안전을 이유로 매번 보호막을 쳐 주고 어떤 면에서는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던(여기를 벗어나면 위험해!) 우리에게 이제 모험은 너무 위험해서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성인신고식'이라는 절차도 없이 학교에서 직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사라져버렸다고 볼 수 있다. 딸아이도 내년엔 잠을 좀 더 잘 수 있겠지, 무시무시하게 쌓여가는 수험서에서 해방될 수 있겠지 하고 꿈 꿀 테지만 '그곳이 니가 원하던 자유로운 세계야'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차마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 모든 고리를 당장 끊고 네 진짜 인생을 찾는 모험을 떠나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수능이 끝나면 함께 책도 많이 읽고,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 남자가 어떻게 빚을 갚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자유롭게 사는지도 꼭 들려주고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이 취업에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그 덕에 자기성찰능력과 양심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나쁜 환경에 젖어버리지 않고 자기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독서였다.
오늘 아침 우연히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가치 있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강하다."
이 한마디가 봉고차월든의 저자 켄 일구나스도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나는 물고기떼처럼 움직였다.졸업 후 어떤 방향이든 진로를 선택해 나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이끌려 한 무리로 헤엄치면서 곡선을 그리고, 질주를 하며, 당당하게 나아가다가 결국 꾸물꾸물 대학으로 향했다.(26쪽)
닥친 상황이 너무나 한심했기 때문에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경멸스러웠다. 5년이나 대학을 다니고, 두 차례나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3만 2천달러나 되는 빚을 지고도 나는 십대 때와 변함없이 취업시장에서 환영받을 요소는 전혀 갖추지 못한 채, 딱히 기술이 필요 없고 책임도 별로 지지 않는 저임금 노동만 벌써 몇년 째 하고 있었다.(83쪽)
<월든>은 1854년에 출간되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간다"는 소로의 대표적인 경구는 당시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잘 부합되는 통찰력을 담고 있다. 소로는 동료 시민들("땅의 농노")이 책상이나 거대한 농장에서 매 순간을 증오하며 죽도록 일하는 모습에 대해 묘사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불행하게 노동하는 이웃에게 뽐내기 위해서, 큰 집에서 살고 세련된 옷을 입고자 말이다. 소로의 글을 읽자, 나는 맨정신으로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소로는 나의 안내자가 되어 내 세포벽을 통해 지혜를 속삭여주었고, "만약 신념과 경험을 통해 단순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자아를 지켜내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고 믿는다"고 털어놓았다.(127쪽)
빚은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직장에서 묵묵히 버티게 하고, 소파에 푹 파묻혀 현상황의 편안함을 음미할 좋은 구실이 되어준다. 빚을 지면 참여할 게임, 싸울 전투, 실현할 신화가 생긴다. 빚은 읽을 대본, 지켜야 할 규칙, 따라야 할 지시사항이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르지 않는 사람,즉 가정과 집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우리는 떠돌이 일꾼이나 히치하이커, 히피와 집시, 부랑자와 유목민을 보고 분노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내면의 갈망, 집안에 가득한 쓸모없는 물건 아래 묻어버린 영웅, 땅에 발을 디딘 채 안정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몰아낸 영혼을 상기시킨다.(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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