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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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직전,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이 책은. 인천공항의 서점에서 간신히 구해든 책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를 재워놓고,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펼쳐서 읽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는 문득문득 슬프고 서러워진다. 그녀의 소설들이 가진 색채는 "갓난 아이의 손바닥만한 연푸른 피멍(한강, <내 여자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 창작과 비평사, 2000, p. 217)" 같고,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 식물적인 무엇 (한강, <몽고반점>, 《채식주의자》, 창비, 2007, p. 101)" 같다. 그건 몽고반점의 색채다. 

아주 어릴때, 갓 태어난 사촌동생의 엉덩이에 넓게 퍼져있던 몽고반점을 보고 그게 무어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뜻밖에도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안나가려고 버틸때 엄마 고만 괴롭히고 얼른 배 밖으로 나가라고 삼신할머니가 엉덩이를 철썩 때려 내 보낸 흔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은 참 슬펐다. 여하한 이유로든 나가기 싫었던 엄마 뱃속에서 억지로 내쫓긴 아기가 그렇게 작고 연약하다는 건 더 슬펐다.  

그 뒤 한동안 잊고 있던 그 말은, 내가 첫 아이를 낳아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아 주던 순간에 다시 떠올랐다. 너도 내 뱃속에서 나가기가 싫었니, 그래서 엉덩이를 맞고야 나왔니,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울었던 거니, 문득 아이의 울음이 서러운 흐느낌으로 들렸다.  

한강의 인물들은 모두가, 그렇게, 지독히도 연약하고 무방비한채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채이고 떠밀려 세상에 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섞여들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돈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도 그렇고, <검은 사슴>의 의선도, <그대의 차가운 손>의 주인공들도, 단편의 주인공들도 모두가. 그래서 그들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연약하고, 섬세하고, 상처받기 쉽고 서럽다.  

이번 소설에서도 한강 특유의 주인공들, 그렇게 엉덩이를 걷어채여 세상에 나온듯 연약하고 순결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한강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피와 죽음, 불과 물의 원형 그리고 재생(창조자-즉 예술가) 모티프가 한 가득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여기다. 인간으로서, 아니, 세상 속의 생활인으로서의 죽음과, 거기에 이어지는 예술가로서의 창조를 통한 재생. 한강은 아마도, 넘지 못할 것, 죽음이라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그 죽음을 뛰어넘고 싶어서 바람을 느끼면서도 장대를 들고 뛰었던 인주처럼, 지금이 아닌 다른 것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자면, 한강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 이미지는 아마도,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야. 뭔가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숴야 하는 것 같아. 
아니, 그건 달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부숴야 하는 거야.
p. 324

라던 서인주의 말처럼, 다시 시작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강의 주인공들은 아티스트가 많다. <채식주의자>의 비디오 아티스트나 <검은 사슴>의 사진작가 <그대의 차가운 손>의 라이프 캐스팅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이번 소설의 화가와 작가까지. 결국 한강은 소설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마지막 이정희의 안간힘처럼 살고싶다 살고싶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문도 모른채 이 세상에 떠밀리듯 나와 엉망진창 지독히도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그 고통스런 몸부림을 읽고 있는 건 슬프고도 괴로운 일이다. 몽고반점을 달고 나온 사람의 천형.  

힘들고 무거운 내용과 아름답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하여 소설은 빠르게 읽힌다.  

한강이 써 낸 또 한편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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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2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기부처]를 꽤 인상깊게 봤어요. [몽고반점]은 두번째 읽었을때야 아! 했답니다. 그래도 역시 제게는 [아기부처]가 제일 좋은 그녀의 작품인데요, 이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가 또 한편의 걸작인가요? 외면할수가 없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아시마 2010-03-26 14:22   좋아요 0 | URL
전 한강 소설을 죄다 좋아해서요. 아기 부처나 몽고반점을 좋아하셨다면 이 작품도 아마 좋아하실 거예요. 딱 한강스러운 분위기의 한강스러운 인물이 나오는 한강스러운 작품인데도, 매너리즘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또한 신기하구요.
제가 한강을 참 좋아하거든요. ^^

트윈 2010-03-2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오랫만에 왔나봅니다.
갑자기 없어져버린 홈페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아시마의 라이브러리"는 잊어버리지않아 검색해서 겨우 찾아왔네요.
먼곳으로 이사도 가버리시고 ...
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에 아시마님의 글로 만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시마 2010-03-26 14:23   좋아요 0 | URL
아이코야. 예전 홈페이지 없어진게 언젠데요. ^^
회자정리 거자필반~ ^^ 이사간 아시마는 곧 컴백홈 하겠지요. 아하하.
글이라... ^^ ㅎㅎㅎ 늘, 열심히, 쓰고는 있어요!
 

열대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드물게 천둥소리를 동반한 번개가 친 날이었습니다. 이 나라에 도착해 처음으로 장대비라는 걸 눈으로 본 날이기도 합니다. 빗방울이 아닌 빗줄기가 하늘과 땅을 연결한 채 바람에 불려 우우 쓸려다니는 걸 아파트 베란다로 내다보았습니다.  

잎사귀 하나가 유치원생 아이 하나의 몸피만한 파초잎들이 집과 집 사이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고 그 사이사이 어떤 나무는 꽃을, 어떤 나무는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피부빛이 짙은, 순박한 눈매의 젊은 남자들이 그 나무아래 모여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차 안의 나와 눈이 마주치면 천진하게 웃습니다.  

이곳의 하루는 이르게 시작합니다. 몸집이 작고 머리가 큰 식모아이는 무슬림이라 매일 5시가 되기전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직 시차에 채 적응하지 못한 제 아이둘과 저 또한 6시가 되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합니다. 더듬더듬 사전과 회화책을 뒤져 그녀와 의사 소통을 시도하면, 그녀는 순한 눈매와 참을성 있는 태도로 나의 말을 꼼꼼하게 들어줍니다. 어쭙잖은 영어와 이 나라 말과 우리말과 바디랭귀지까지 온통 뒤섞인 말을 그녀는 용케도 알아듣습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속에 숨은 사랑>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요.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평생 임신부인 채로 사는 것과 비슷한 것같다는 말.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와, 놀라움 등등을 늘상 마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 책을 읽을때도 무릎을 탁 쳤던 말인데, 막상 제가 그 입장이 되니 줌파 라히리의 관찰력이란 어떤것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 구절은 정말이지, 임신을 경험해 보고,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말이었겠지요. 그리고 또한, 임신을 경험해 봤고, 외국인으로서의 삶의 첫발을 처음 떼고보니 지독히도 와 닿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튄다는 것, 주목을 받는 다는 것, 종로 한복판에서의 익명성이 이렇게 그리울수가 없습니다. 지나던 외국인에게 한번더 눈길을 주었던 나의 촌스러움이 참 미안해집니다. 그들을 보는 나의 눈에 악의가 없었던 것처럼 나를 보는 저들의 눈에도 악의가 없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문득문득... 음.  

열대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출국 이틀 전,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저 촌으로 쑥을 캐러 갔었더랬습니다. 남도 땅엔 봄이 와 어느새 쑥이 소복소복 자라 있더군요. 저와 엄마가 캔 그 쑥으로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일 쑥국을 끓여 남편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출국을 했습니다.  

이제 3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으니 그곳엔 봄이 한창이겠습니다.  

이곳은 지금 우기입니다. 5월이되면 건기가 되어 몹시 더워진다는데, 도대체 지금보다 더 더우면 어찌 살수 있는 건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이곳의 계절은 딱 두개, 건기와 우기가 있습니다. 건기는 여름이고 우기는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데요.  

이제 그만, 편지를 접습니다.  

손가락을 접어보면, 아직 한손으로도 손가락이 남는데, 그런데도 벌써, 

나는 그대가, 그곳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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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가신거군요, 아시마님!

저는 이곳에 있어서 그런지 아시마님의 '그곳이, 그립습니다'가 제대로 와서 박히는군요. 사람이 참 이기적이에요. 전 그곳에서도 아시마님이 이렇게 온라인상으로 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게 아니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네요. 몇년전이었다면 그저 그리워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낯선곳에서 조금 더 익숙해지고 그렇게 조금 더 편해지시길 바랄게요. 잘 지내세요. 그리고 이렇듯 글로써 안부 주시구요.

덕수맘 2010-03-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못와봤더니...벌써 떠나셨군요..로션도 답글이 없으셔서 아직 못보내드렸는데 서둘를걸 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립니다. 저두 다락방님처럼 아시마님이 그립네요..낯선곳에서 적응하면서 산다는게 쉬운일은 아닐텐데..늘 건강하고 좋은 사람들만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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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어난 직후, 신생아기에 황달과 호흡불안정으로 입원했던 것과 돌이 되기 전, 문틈에 손이 끼어 정형외과로 달려갔던 것을 제외한다면, 예방접종을 위해서 외엔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둘째놈이 아팠다. 태어나 두번, 감기를 앓았지만 매번 병원의 도움없이 영차, 이겨냈던 놈이었다. 큰놈도 그랬지만 둘째놈도 하루저녁 열이 좀 올랐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어이없을만큼 멀쩡해져서, 병원가기도 민망해 안가고 버티면 콧물 좀 흘리다 열흘이면 씻은듯이 낫는 놈들이었다. 그 흔한 해열제도 콧물약도  한번 안먹여봤다.

그 둘째놈이 아팠다. 토요일 친할머니댁에 잠깐 갔다오더니 그길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으레 괜찮으려니, 게다가 병원도 하지 않는 토요일 저녁이라 간간히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정도의 처치만하며 버텼다. 일요일 아침, 열이 내렸고, 나는 의기양양 웃으며 말했다. 울 애들은 참 희한해. 무슨 애들이 이렇게 건강하담. 이라고. 그러나 일요일 오후, 열은 다시 무섭게 치솟았고, 정신없이 애를 업고 집 근처 파티마 응급실로 달려갔다. 거기서 잰 열은 39.7도. 큰놈을 키우는 내내 최고로 올랐던 열이 39.5도였다.  

혼비백산해서 얼이 빠진 나에게, 응급실에선 겨우 14개월 된 놈의 몸에 링거를 꽂자고 했다. 그 상황의 엄마에게 yes, yes, yes 라는 대답 외에 무슨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얼떨결에 간호사를 따라 격리된 방으로 가 아이의 손목에서 혈관을 찾는 걸 지켜봤다. 손목에서 혈관 찾기는 실패. 간호사는 다시 발목에서 혈관을 찾아냈고, 짜내듯 몇방울의 피를 뽑아낸 다음 링거를 연결했다. 폐렴 징후를 살펴보느라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울다지친 아이와 응급실의 침대에 누웠다. 친정곳에선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에는 소아전용 코너가 따로 있었고, 수시로 드나드는 아픈 아이는 왜 그리도 많던지. 증세는 또 얼마나 다양하던지. 열이 높은 아이, 토하는 아이, 이유없이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는 아이. 아이의 증세는 다양한데 보호자들이 표정은 한결같았다. 아마 나의 표정도 그랬을 것이다. 속수무책의, 죄책감과 무력감이 절반씩 뒤섞인 그 표정, 의사나 간호사가 나타날 때마다 그 죄책감과 무력감의 소용돌이를 뚫고 튀어나오는 간절함.  

새벽 한시가 되어서 아이의 열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월요일, 열은 또다시 무섭게 올랐다. 이번에는 친정의 단골 내과이자 그 동네에서는 제법 잘한다고 소문난 내과 겸 소아과를 방문했다. 월요일 오후 3시. 열은 39.7 이번에도 내려진 처방은 링거였고 거기에 해열제 근육주사까지 나왔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몸을 온몸으로 누르고, 간호사가 혈관을 찾게 도와주는 동안을 어떻게 견뎠는지 나도 모르겠다. 도저히 아이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는데, 눈을 마주보지 않으면 안될것 같기도 했고, 그 눈에 떠오른 표정을 읽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괜찮단 메세지를 전해줘야만 할 것 같기도 했다.  

500cc 링거 한팩을 다 맞는 내내 아이는 잠이 들어서조차 내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열이 높아 손난로처럼 따끈해진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중얼중얼 내가 아는 모든 노래를 다 불렀다. 겨우겨우 열이 떨어진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지만, 밤이 되자 열은 다시 올랐고, 화요일엔 결국 입원을 했다. 그렇게 화요일밤과 수요일밤, 이틀을 병원에서 보내고 목요일이 되어 돌아온 집에 이 책이 와 있었다.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내 잠을 자거나 깨어있는 동안에도 내게 붙어 있으려고만 하는 아이를 업고, 이 책을 읽었다.  

18살, 고등학교 2학년때 백혈병이 발병해 21살에 죽은 딸의 병상기록. 

책을 읽는 내내, 뜻밖에도 기독교란 종교가, 그 중에서도 개신교가 아름다운 종교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름다운 크리스천도 있구나... 아니, 크리스천이어서 아름다운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 

딸의 발병앞에 신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그만큼이나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뭉쳐 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신앙인들의 모습도 아름다웠고, 기도 제목을 정하고 중보기도를 하고 작정기도를 하고(나는 이런 단어들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이런 모습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도움이 아닐까. 

그런 모습들이 하도 아름다워서, 이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면서도 따스해졌다. 사실 따지고보면 정말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인데도, 고통스럽지만은 않게, 비참하지는 더더욱 않게, 죽은 서연도 딸을 잃은 저자도 정말 힘들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뭔가 다행스러웠다. 종교란 건 참 좋구나, 이 사람들 마음 참 많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그야말로 하느님과 종교와 신앙의 힘으로 그 도움으로 그 아픔들을 위로받고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종교는, 정말 참, 좋구나.  

이 책을 덮을때쯤 작은 놈도 어느정도는 회복이 되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낮잠에 드셨고. 

건강이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거라던데, 

건강한 아이여서 참 고맙다고, 그리고, 그 건강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걸 잊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큰놈이나 작은 놈이나, 내게 와 주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참 고맙다고, 이게, 고마워 해야할 일이라는 걸, 너희 두놈에게나 세상에게나 신에게든 누구에게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걸 잊지 않겠다고. 

감사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감사할 일이 많아질 수록, 인간은 참 작아진다.  

내가, 아이를 잘 키워서, 내 아이가 건강한 게 아니라, 그저, 건강한 아이를 신이 나에게 맡겨주신거라는 걸 잊지 말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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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국날이 정해지고, 콘테이너로 짐 부칠 날이 정해졌다. 미친듯이 책을 사댔다. 콘테이너로 책 부치고 나면 더는 못사니까, 앞으로 몇년간은 알라딘에서 책 못살테니까 이러면서.  덕분에 세달 합산 200도 넘겨봤다. 충무공의 경악에도 여보, 참아, 몇달 뒤엔 알라딘이 더이상 카드 명세서에서 보이지 않을거야. 라는 말로 달랬다. 

2. 콘테이너로 짐을 부치고, 친정으로 내려왔다. 처음엔 꾸욱, 잘도 참으셨다...만. 행여나,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시겠다. 서평단 책이 날아왔고, 짐 부치기 전까지 고민하다 사지 않았던 아이 영어 동화책 몇권을, 우리가 갈 그나라에선 영어 동화책도 엄청나게 비싸다길래(영어권이 아니다.) 눈 딱 감고 지르고, 그걸 시작으로 책을 또 야곰야곰 샀다. 

3. 항공사에 확인을 해 봤다. 위탁화물은 개인당 2개, 우리 네가족 나가는데 6개, 총 70키로 정도를 부칠 수 있을 거란다. 작은 놈은 24개월 미만인 관계로다 항공료도 없지만 짐도 안 실어 준단다. 짐 부치고 겨우 3주... 그간 사모은 짐이 우체국택배 5호 박스로 6개다. 동생이 보더니, 야, 70키로 가뿐히 넘지~ 이러고 간다.  ㅠ.ㅠ

4. 그 와중에 한강 신작소설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한강이잖아. 어떻게 안살수가 있느냐고, 한강인데. 이게 도대체 몇년만에 나온 장편인거냐고. 그대의 차가운 손 이후 거의 7-8년만에 나온 장편 아냐? 단편이야 간간히 써 왔지만, 이 책은 도저히 주문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오늘 주문 넣었더니 내일 온다네.  

몇달에 한번 정도, 이 작가의 새 책이 나왔나, 알라딘에서 검색을 해 보는 작가들이 있다. 심윤경, 정미경, 한강. 

그간 심윤경도 정미경도 단편집을 한권씩 내줬는데 한강의 신작이 없어서 한동안 많이 애태웠다. 이 책은 별수없이 캐리어에 넣어가야 할듯. 비행기 안에서는 읽지 못할 거다, 아마. 캐리어에 넣어가려고 따로 빼둔 책도 엄청나다. 그래도 캐리어는, 음음, 무게를 안다니까, 차라리 무거운 짐은 죄다 캐리어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나 저러나 한강의 신작이 나와서, 기쁘고, 한편으론, 당분간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신작이 나와도 그때그때 사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슬프다. 흑흑.  

5. 서평단 책을 읽고 있다. 출국전에 두권 다 리뷰를 써 놓고 갈수 있으면 좋을텐데. 다행히 두권다 소프트한 책들이라.  

6. 해외 나가게 되어 가장 슬픈 건,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어차피  15년 전에 분리했다. 따지고보면, 남편하고 같이 살게 되어 기쁠 뿐이다. 훗. 자식이란 원래 이런거다.) 한국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바긔의 청와대를 안봐서 기쁘기만 할 뿐이고!) 알라딘과 지마켓을 떠나게 된 거라니. 이건 대체 뭥미? 

7. 해외 배송을 가장 싸게 받는 방법은 우체국 선편이라길래, 알라딘에서 책을 야곰야곰 주문해다 친정에 쌓아서, 한박스가 되면 우체국 선편으로 받는 방법을 써 볼까한다 했더니, 주변 사람 모두가 외친다. "넌 병이야!" 라고. 감히 충무공한테는 말도 못했다.  

8. 모두가 말리지만 안할 내가 아니다. -_-;;; 

9. 에혀. 여튼. 나는 가네. 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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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3-1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드뎌 가시는군요. 그 예쁜 아기들과 함께. 흑흑. 저도 외국 나가면 젤 아쉬울 게 인터넷 쇼핑(지시장 반드시 포함 ㅋㅋㅋ)이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구요. 심윤경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또 통했군요.

아시마님. 책은 힘들더라도 잘 갖고 가시는 것 잘 하신 것 같아요. 다들 책 때문에 아우성이드라구요. 괜히 막 섭섭합니다. 가시더라도 서재는 꼭 유지해 주시기를...안녕히 가세요.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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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쓰기, 더 나아가 모든 창작행위는,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제일 먼저 창작자를 매료시킨다. 자신의 창작물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은 창작행위를 지속할 수 없다. 자신의 창작물에 매료되는 사람에게 창작의 행위란 피와 고름을 찍어 쓰는 것과 같은 고통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리영의 그 유명한 대사 "피와 고름을 찍어 썼다."는 말보다 더 웃긴 창작 관련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진짜 창작자는 창작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스티븐 킹은 그 창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소설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인 나조차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알면서도 그 소설의 결말을 정확히 짐작할 수 없다면 독자들도 안절부절 못하면서 정신없이 책장을 넘길 거리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p. 201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 그리고 흡인력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아, 이 상투적인 표현이라니) 압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작가 스스로가 정말 재미있어 못견뎌 하며, 그 다음 이야기와 결말을 알고 싶어 몸부림치며, 소설 그 자체에 푹 빠져 쓴 글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것이든 프로의 것이든, 하는 동안 즐거워 했는지 아닌지는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즐기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결국, 쓴 사람이 재미있게 써야 읽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는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쓰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 소설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의 가치이자 덕목인 "재미"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그 최고의 가치를 획득하는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재미있어서,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내지 못할 것 같아 쓴 그런 글이다.  

물론 소설을 써서 꽤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p. 308 

누군가 이 글이, 그의 소설들 못지 않게 재미있는 글이라고 추천하기에, 사두고 백만년간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정확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이미 콘테이너에 실려 저 푸른 태평양을 넘실넘실 건너가고 있는 중이고, 내가 읽은 책은 친정 동생의 책장에 꽂혀있는, 동생 전 남친이 동생에게 물려준 책이다. (앗, 이건 제부 될 사람이 알면 안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죄다 콜렉션 하고 있으면서(스티븐 킹이 무슨 치토스냐고. 언젠가는 읽고 말거야... 라니)도 막상 읽은 책은 단편집 하나 장편 한권 그리고 이 책이다. 세권의 책을 순위를 매기자면, 글쎄,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면서도 소설들만큼이나 재미있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들 만큼이나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고(아, 스티븐 킹이 봤으면 뿡야! 라고 외치며 붉은 줄 쫙, 돼지꼬리 땡땡! 했겠다.) 그의 작가로서의 성공기를 따라 갔다. 그 사이사이 오는 그의 글쓰기 방법과 창작론은 굉장한 덤이었고. 그의 첫 소설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40만불에 팔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기뻐서. 아, 이 남자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정말이지! 대단한 엄청난 훌륭한 괴물같은 엑설런트하고 스펙타클하고 어메이징하고 언빌리버블하고 초 특급 울트라 마징가 제트 같은! 이야기 꾼이다. 그가 끝도 없이 끝도없이 끝도없이, 말하는,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 스토리, 그거 우리말로 바꾸면 이야기니까.  

스티븐 킹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졌다.  

Ps. '수정본 = 초고 - 10% ' 라는 말, 그래서 적절한 삭제작업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또한 놀라운 문학적 비아그라라고 부를만 하다는 건, 한국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선생도 산문집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에서 이미 말씀하신 바 있다. 이윤기는 숱제 '수정본 = 초고 - 50% ' 이라고 한다. 신문 기고문을 쓸 때는 처음엔 원고지 10매를 써서 그걸 5매로 줄인다나.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의 기본 원칙은 대개 비슷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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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3-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영의 말 쓰러졌습니다. ㅋㅋㅋ 재미있지요, 이 책? 그런데 아시마님 리뷰가 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