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의 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학의 시 2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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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관계인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는 의붓 이모가 있는데,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첫결혼에서 친구의 어머니를 낳았고, 사별인지 이혼인지 한뒤 재혼에서 친구의 이모들을 낳았다.) 그렇다보니 친구와 이모의 관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카와 미혼의 이모의 관계는 아니었단다.  

어린시절, 친구가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이었다는데 종종 외가에 맡겨지는 일이 있었다. 친구는 그럴 때면 7살 짜리가 용돈을 그러모아 뭔가를 사가지고 가서 이모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온 몸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줄 테니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 

7살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애정의 거래다. 구걸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 그 자체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의 애정이 필요한거다. 지나가는 20대 젊은 여자 아무나가 아닌 바로 나의 이모, 내가 사랑하는 이모 당신의 애정이 필요했던거다. 그렇기에 그 아이의 손에 들린 건 가슴아플만큼 순정한 애정이다.  

사람은,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어떤 일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 이라는 건 거짓이지만 "사랑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언제나 옳다. 도박, 무능, 무책임, 기만, 밥상을 엎어버리는 예의없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 이라고 말하는 건 자기 기만이지만, "내가 너를 " 사랑하니까 그런 일들도 괜찮다, 라고 말하는 건 자학이다. 이 단계를 또 다시 뛰어넘는 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아니까, 괜찮다, 이거다. 이렇게 되면 이건 자학이 아니라 시가 된다. 

유키에와 이사오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건, 이사오의 사랑에 대한 유키에의 믿음이다. 당신이 과거의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따위의 보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사오 당신은 유키에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신뢰다. 유키에의 인내와 노력엔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이미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사실, 타인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남편이 나를, 내가 남편을 사랑하듯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은 최고의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건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사실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게 사람인데, 타인의 마음을 그렇게 신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테니까.  

상대의 애정에 신뢰가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을 구걸한다.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고, 숙제를 보여주면서 대신 나를 사랑해 달라고 주문을 외었던 유키에는, 이사오에게는 대신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이렇게 해 달라는 시험도 하지 않는다. 유키에에게는 이미 사랑의 증명이 필요없다. 알고 있으니까. 유키에가 원하는 것을 해 주어도 해 주지 않아도, 유키에에 대한 이사오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니까.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  

앞으로도 이사오는 별반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유키에 역시 변함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이 뭐 별건가. 자기 마음이 즐거우면 그만이지.  

신뢰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게 했던 만화책. 사실 처음 읽었을 땐 이게 뭐야 싶었는데, 읽고 나서 덮은 뒤에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아. 이 책. 참 좋다.

ps. 리뷰를 쓰다말고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 내 사랑을 확신하고 신뢰해? 

이 뜬금없는 질문에, 이 남자 머뭇머뭇.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도 아니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냐는 질문이라니 당황했나보다. ㅎㅎㅎ 

그러게, 타인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고 신뢰를 하는 능력이 아무나한테 있는 능력은 아니라니까. 

그럼 나는? 그리고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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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학의 시', 2년만의 역자 후기
    from 세미콜론 공식 블로그 2010-08-24 10:42 
    모든 예술의 주요한 테마이긴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주제에 대해 고다 요시이에는 천착한다. 자학의 시에서는 날백수 건달 남편 이사오와 바보같이 답답해 보일 정도로 남편에 헌신하는 아내 유키에의 삶을 그리면서, 그리고 고다 철학당(한국에는 영화 '공기인형'의 원작으로 조금 알려졌을지도...), 속 자학의 시 : 로봇 코유키 등에서는 인간이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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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전, 완역 이런 말에 집착한다. 사실은 완역에 집착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몇몇 작품은 각각 다른 번역본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한국 작가의 경우 좋아하는 작품은 그 창작의 뒷이야기도 열심히 캐다 읽는다.  

그 중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집착은 유난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다 샀고, 토마스 불핀치의 책도 몇가지 번역본으로 가지고 있으며, 책장 몇칸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섹션으로 아예 분리를 해 놓았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북구의 신화나 인도 신화도 좋아한다. 심지어 성경도 나에게는 히브리 신화서 또는 역사서의 개념이다.   

몇년 전,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사달라고 했을때, 남편은 그리스 신화는 애들이나 읽는 거 아니냐는 말로 나의 뒷골을 땡기게 했다. 그림형제의 동화도 성인판이 나오는 세상에 내 남편이라는 작자가 왜 그러느냐고.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담당교수님은 그리스 신화와 성경을 읽어오라는 숙제를 내셨다. 그 둘은 문학의 가장 베이스에 깔리는 거니까, 말하자면 서구 문학의 원전과 같은 것이라 읽지 않으면 문학 이해의 폭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대학 1학년, 3월의 어느날, 성당 다니던 친구에게 빌린 성경을 방에 엎드려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시편의 문장들은 그 종교색과 관계없이 아름다웠고(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문학작품중의 하나로 꼽는다.) 묵시록의 문장들은, 그 어느 SF 소설보다 상상력 넘치고 박진감있게 무서웠다.  사실 그 숙제는 꽤나 지루한 숙제였고, 성경은 별로 읽기 쉽지도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책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도 그 숙제를 내 주고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게 해 주신 교수님께 두고두고 감사드린다. 뭐, 신화야 읽으라고 안해도 읽었을테니. (사실 우리과 우리 학년 50명중에 그 숙제를 한 사람은 열명남짓... 대학 신입생때라 아직 고딩때의 습관이 남아서 교수님이 하라는 건 다할 때였다, 난. ㅎㅎㅎ)

성경을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리스 신화는 그 뒤로도 꾸준히 내 주요 관심사의 하나로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 내 독서는 성경과 신화를 읽기 전과 읽기 후로 나눌수도 있다. 성경을 읽고나니 갑자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변신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 전까지는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갑자기 의미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성경과 그리스 신화가 모든 서구 문학의 기본 베이스라는 교수님의 말은 틀림 없었다. 특별히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어졌다, 이런 말은 못하겠지만, 확실히 훨씬 재미있어진 것만은 분명했다. 예전같으면 무심코 넘겼을 구절들이 얼마나 말랑쫀득차진 재미를 가지고 다가오던지. 

그리스 신화는 신화 그 자체로도 참 재미있지만, 정작 중요한 효과는 그 후에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를 읽고, 어느정도의 지식을 베이스로 깔아놓은 뒤에 읽는 서구 문학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윤기의 책에 비해 삽화가 많은 것도 아니고(사실 이윤기 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는 삽화가 반~) 번역은 충실하고 매끄럽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말랑하지가 않아서 처음엔 좀 헤멜수도 있는데,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와 일의 순서가 앞뒤로 좌라락 정리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 원전이 꼭 최고인 것은 아니고, 그 원전에서 파생된 2차 3차 문학작품이 훨씬 문학성도 높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원전은 언제나 원전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이윤기는 읽기 전의 이윤기와는 또다른 재미를 가지고 온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이윤기의 책이나 불핀치의 책을 다시 읽으면 그 재미는 이전의 백배가 될 거라 장담한다.

Ps. 이 책을 내 책장에서 뽑아 빌려간 00아. 니가 돌려주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또 산다. 그 책은 무려, 내 남편의 선물이기까지 했단다, 버럭버럭버럭. 책 빌려달란 말 좀 하지 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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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19-07-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교수님의 팬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지 무척 매니악하게 좋아하기도 하구요. 잘 읽고 갑니다^^
 
<내집 마련의 여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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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하는 생각일 게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저 많은 집중에 내 집은 없구나 하는 생각.  

집을 구할때 내가 원하는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학군도 필요없고 비싼집도 필요 없고, 넓은 집이나 편의 시설에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조용하고, 베란다로 산과 나무가 보이는 곳, 눈 앞에 회색빛 아파트가 떡하니 가로막고 선 집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종종, 니가 원하는 그런 집이 서울 시내에선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냐고 퉁박을 놓았지만, 어쨌든 그런 집을 찾아내 주긴 했다.  

그때가 2008년 9월, 지금 집사는 놈은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때였다. 속된 말로 상투를 잡은 거였다. 베란다로 내다보는 공원 전망이 끝내주는 집이었지만 정서향의 집이어서 여름엔 끔찍하게 더웠다. 우리는 그 집을 남서향이라고 속아 샀다. 4차선 도로를 향해 베란다가 나있고, 기차길 옆이라 소음도 먼지도 지독했다.

집을 보러 다니면, 가끔 집이 나를 환영해준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흔히들, 내 집이 될 집은 느낌이 온다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일 것이다. 무턱대고 밝고 환하게 집이 나에게 웃어보이는 것 같은 그런 집이 있다. 집과 나의 궁합이랄까. 남들에게는 단점으로 여겨질 부분이 나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되어 다가오는 그런 집. 이건 단순히 금액의 문제와는 다르다.  

정서향의 그 집은, 서향이어서 날이 길었다. 여름엔 저녁 7시까지도 환했다. 그래서 참 좋았다. 무턱대고 막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더웠지만 에어컨을 켜면 되었고, 소음에 취약한 나였지만, 그래도 그 집의 소음은 견딜만 했다. 어릴때 우리 외가가 기찻길가에 있었는데,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음이 들릴때마다 포근하고 만만했던 외가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하지만 6개월을 살았는데, 남편이 덜컥 해외 발령을 받아왔다. 1년도 살지 못한 집을 부동산에 내놨을때 서브프라임의 여파로 집값은 우리가 샀을때보다 2천만원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꽤나 오래 기다려, 우리가 산 가격 그대로 집을 팔았고, 베란다 확장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손해로 남았다. 확장비용을 포함해서 세금이며 이자비용이며 웬만한 월급쟁이의 일년치 연봉을 고스란히 손해보고 1년 3개월만에 이사를 나온 집이지만 난 아직도 그 집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처음 그 집을 보러갔을때, 그 화사한 아파트 외관과 나를 환영해주는 듯한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집이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야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는 마냥 그 집이 좋은, 그 집과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고 이 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집. 

이 책은 사람들에게 그런 집을 찾아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가진 돈과 생활 조건에 맞춘 집을 찾아주는 일이 이 책의 주인공 송수빈에게 주어진 임무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그 일에 종사하는 기간도, 찾아준 집의 갯수도 너무 작으니까 일종의 미션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모든 사람이 다 우와우와 할 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부분이 본인에게는 장점으로 치환될수 있는 그런 집.   

집다운 집. 
춥지도 덥지도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집. 딱 좋은 양질의 햇빛과 바람이 솔솔 드나들고 나무와 꽃과 구름과 새, 하다못해 도마뱀까지 모든 자연을 앉아서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집. 넓지 않은 간소한 테라스지만 직접 만든 나무 벤치에 걸터 앉아서, 또는 해먹에 누워서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노닥거릴 수 있는 우리집.
p. 213 

집다운 집은 집은 이런 집이다. 실제로 수빈은 남편과 함께 그런 집다운 집을 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발리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은. 

예전엔 그랬었다. 누가 집을 샀다거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 모두들 축하해주며 이런 덕담들을 해 주었다. 누가 그러는데 그 동네 애 키우기 참 좋다더라, 어머 내 친구 아무개가 살았었는데....... 옛날에 거기 배 밭이 있었지, 빵공장이 있어서 냄새가 참 구수했는데, 지나가다 보니까 산이랑 개울 경치가 참 좋더군....... 
지금은 다르다. 누가 집을 샀다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 아파트를 샀다 그러면,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그 집의 시세와 호가, 입지, 평면도를 알아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는 동네 집값이 얼마나 거품이라거나 2006년 폭등으로 이제 폭락할 일만 남았다거나 임대아파트들이 많아서 거긴 막장이라거나 판교 입주하면 볼 장 다 봤다거나, 원래 주민 수준이 낮다는 둥의 그런 악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 것이다. 그 사람의 인격을 깎는 것 만큼이나 몰상식한 말이라도 사람들은 이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무슨 집값 올림픽이라도 벌이듯, 너도 나도 더 높은 집값을 향하여 비교하고 깎아 내리고 분석한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드러내놓고 험담을 하진 않지만, 그 정도 동네 그 아파트라면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며 회심의미소를 짓거나 배 아파하거나 둘 중 하나다.
p. 259-260 

누가 어떤집에 사는지보다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가 더 궁금하고, 사는 동네가 수준을 말해준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청담동 도련님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세태는 분명 비정상이다. 이건 분명 주객전도다. 집이 사는(living)게 아니라 단순히 사는(buy) 게 되어버린거다. 이래서야 집다운 집이란 허명만이 있을 뿐.  

그 서향집을 팔고 또 다른 집을 사야했다. 외국 나가기전에 부동산은 하나 잡아두고 나가는 거라고, 세이브되는 주거비용까지를 포함해서 평수를 넓혀 사 놓고 나가는 거라고 한결같이들 조언을 하길래, 우리는 또다시 집을 보러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사는(living)집을 원했지 재테크를 위해 사는(buy)집을 원하지는 않았다. 서울 시내에 집은 왜 그리도 많던지, 서울이란 땅덩이는 이럴때 또 얼마나 크던지. 지방출신인 나도 남편도 다니던 학교 근처와 직장 근처외에는 아는 곳도 없어 우두망찰했다. 돈을 손에 쥐고 있으니 살(buy)집은 차고도 넘쳤는데 정작 살(living) 집은 없었다. 그럴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부동산에 도통한 사람에게 집 사는 문제를 일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을 붙잡고 우리가 가진 돈과 대출 가능한 규모는 얼마인지를 말해주고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을 세세하게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적당한 집을 구해봐 주는, 그런 시스템이 어디 없나.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세상엔 종종,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주인공 수빈이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그 사람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부분은 심윤경의 소설 <이현의 연애>를 떠올리게 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그녀를 사랑하는 이현과 이진의 기록속에 등장하는 영혼의 삶. 심윤경의 소설은 이 세가지가 어울려 일종의 옴니버스 액자소설을 만들어 낸다. 게다가 이진의 아버지, 이현의 장인이자 이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세.  

이들의 존재가 수빈(이진), 그렉(이현), 정사장(이세 공)에 슬쩍 덧칠되어 읽혔다. 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소설이다. 수빈은 기록하는 대신 성실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영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고. 단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집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수빈 자신의 사연이 두개의 이야기로 함께 진행되는 면이 비슷하다는 연상을 이끌어 냈을 뿐.  

처음에는 그저 그런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끝나는가 했다. 하지만 수빈의 사연을 풀어내고 그렉의 자취를 추적해가는 부분은 꽤나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가지고 온다. 끝까지 정확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정사장이라는 존재의 미스테리도 그렇고. 소설의 말미의 극적 재회는 뭉클했다.  

액자식 옴니버스(이런 말이 가능한가? -_-) 형태라 이야기는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동일한 주인공이 각각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시리즈 소설처럼 읽기가 쉬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맞춤집을 찾아주는 수빈, 수빈이 살고 있는 집 또한 수빈의 남편이 "소울 하우스"라고 칭할 만큼 수빈의 가족에겐 맞춤 집이었다. 남들이 다들 아파트를 선호 할 때, 수빈과 수빈의 남편은 그들에게 맞는 주택을 찾아내어 안착한다. 그 집에 남편은 밤나무를 심고,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측두엽이 손상되어 기억을 잃었던 그는 아내와 아이 대신 그 밤나무를 먼저 떠올린다. 아마 그가 더 떠올리고 싶었던 건 그 밤나무 아래에서 안아주었던 아이와 아내였겠지만. 때때로 집은 가족의 대체물이 되기도 하니까.

사람은 그런 소울하우스에서 살아야 한다. 집은 누구나에게 소울하우스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완벽했던 소울하우스에서 쿨하게 떠날 줄 아는 수빈의 모습과 결단이 또한 신선했다. 결국 집이 사람을 묶어두는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집은 살다 떠나는 곳이다. 정을 붙여도 결국은 나만의 집으로 남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더 큰집, 더 비싼집, 재테크를 위한 수단의 집은... 삭막하다. 그 집에서 과연 행복할까. 사람들이 돈 대신 나에게 맞는 집 "소울 하우스"를 찾는다면, 모든 문제는 좀 더 쉬울텐데. 헌데 과연, 내가 사 둔, 몇년뒤에 들어갈 나의 집은 내 "소울하우스"가 맞을까. 

나의 소울하우스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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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힘 2010-02-0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정말 저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많네요. 어쩜 저랑 독후감이 똑같은지 놀랬습니다. 저는 글재주가 미천하여 이렇게 님처럼 감성적이고 콕 집어서 잘 쓰지못한다능....참 좋은 책 같아요. 말 그대로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당
 
데이지의 인생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나라 요시토모 그림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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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그때가.  

하루종일 정말 지독했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날이었다. 일은 안풀리고, 가는 데마다 핀잔 야단 또는 원망을 받았고, 친구와는 오해로 한참동안 말씨름을 했으며 끝이 보이는 연애는 그 정해진 수순을 차곡차곡 밟고 있었다. 정말 참담하다라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되는 기분이 되어 어두운 길을 찬 바람을 맞고 터덜터덜 들어와 불도 켜지않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바탕 울 참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침대가 따뜻했다.  
그 순간 이불 속의 그 온화한 온기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 괜찮다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이제 그만 푹 쉬라고 내일이 되면 더 나아질 거라고... 나의 어깨를 감싸고 다독여주는 듯한. 

그리고 나는 우는 것도 잊고 잠에 빠져들었었다. 세수는 커녕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눈을 떴을땐 이미 창밖이 환했고 기분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곧잘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놓고 나가곤 했다.

이책은, 그때의 그 따뜻한 침대를 생각나게 했다.  

미혼모였던 엄마가 죽고, 데이지는 이모의 집에 얹혀산다. 이모와 이모부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늘 내가 더부살이라는 걸 의식하고 사는 어린아이의 삶은 처량하다.  

나는 나이도 어린 데다 더부살이 신세였기 때문에 이모부부가 집에 없을 때는 스스로 전화를 쓰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한 가지에서 시작된 내 안의 응석이 몸을 다 파먹고 밖으로 튀어나오면, 그 흐름에 휩쓸려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12

나는, 더부살이를 해 본 경험은 없지만, 전화에 대해 저런 조심성을 가져본 경험은 있다. 그래서 전화를 조심하는 그 마음이 어떤건지 안다. 미움받지 않으려, 거슬리지 않으려 잔뜩 도사리는 그 마음을. 그게 얼마나 간절한 마음인지도. 

선수를 치는 것이 더부살이의 덕목이다. 선수를 치고 그 다음은 어디까지나 겸손하게,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상대가 무슨 도움을 주더라도 과하게 고맙다 하지 않고, 이쪽에서 무언가를 해 주었어도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하며 지내는 것.
p. 30-32

 

능숙하게 응석을 부리는 것도 더부살이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p. 40 

자신의 말 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살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간절한 마음에서 나왔는지, 그 마음의 뒷면이 얼마나 외로운지도. 사실 아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고, 눈치 보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이런식으로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살아간다는 걸 알면 마음아파하고 슬퍼할 사람들이다. 그러지 말고 밝게 아이답게 천진하게 응석을 부리고 살라고 말해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게 안되는 걸.

그래서 밝게, 명랑하게, 자신의 일을 좋아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데이지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와 친구 달리아가 그렇게까지 연결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할수는 없지만 짐작이 간다. 달리아에게는 마음껏 할 수있지 않았을까. 그 잔뜩 도사린 마음을 달리아에게만은 풀어놓고 살지 않았을까. 달리아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데이지의 저 마음은 위로받고 있지 않았을까.   

약간이나마 기운을 되찾고 새 생활에도 적응한 후에는 외로운 밤에도 달리아를 무턱대고 불러내지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그랬지만 머리맡에 놓아둔 피리만 불면 언제든 그 마음씨 좋은 친구가 어둠을 헤치고 찾아와 줄 것이란 믿음 덕에 대개는 참아낼 수 있었다.
p. 70

분리불안을 유난하게 앓는 아이들이 있다. 그건 보통 이런 악순환으로 시작된다. 엄마에게 치대는 아이를 여하한 이유로든 귀찮아하는 엄마와, 거절당했다는 불안감으로 엄마에게 더욱 달라붙게 되는 아이. 이런 관계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필요로 할때 내 곁에 와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이의 분리불안을 더욱 키우는 거다. 하물며 엄마와 자식도 그럴진대 고작 이웃의 친구일 뿐인 달리아에게 데이지가 갖는 저 신뢰가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정말로 달리아는 그랬을 것 같다.  

그런 달리아가 죽었다. 그렇지만 데이지는 또 살아갈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 허한 구멍이 뚫리기는 했어도 여전히 씩씩하게 웃으면서.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된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딱 맞는 구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아포리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앞 뒤 없이 온화하던 그 침대시트처럼. 엄청나게 용기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용기를 주기는 커녕 그냥 맥없이 있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지만, 오히려 그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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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5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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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 읽은 책이 없다!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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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엔 책 좀 조금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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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2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아시마님. 정말 엄청 읽으시네요! 하루에 두권씩 읽기도 하시는군요!!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제가 요즘 가장 읽고 싶어하는 책인데 말입니다.
저도 회사 때려치고 집에서 책만 읽었으면 좋겠어요. 아 물론 저는 회사 때려친다고 해서 집에서 이정도의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집에서는 한장만 읽어도 졸려서..orz

아시마 2010-02-02 09:29   좋아요 1 | URL
올해의 목표는 작년의 반만 읽자 였는데요. -_-;;;;;;;;;;;
전 좀 심란해지거나 이것저것 힘든일이 있거나 하면 책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서요.
갑자기 출국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심란해져서 미친듯이 책을 읽었어요. 정확히 따지면 책읽을 시간은 없는데요. ㅠ.ㅠ
저 지금 사는 집이 정해진 기한내에 빠지면 3월에 가요.
다락방님, 한국을 부탁해~

다락방 2010-02-02 10:19   좋아요 1 | URL
앗 갑자기 왜그렇게 빨라진거에요? 아 이런..

어쩔수없이 제가 한국을 지키고 있어야겠군요!!

아시마 2010-02-02 11:35   좋아요 1 | URL
왜 그러냐면...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구멍가게이기 때문이죠.
이건 뭐, 원칙도 없고, 계획도 없고...
망해랏! 아... 망하면 안되는구나. 남편 퇴직후엔 그 회사 망하라고 굿할 예정

blanca 2010-02-02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아시마님. 지금 입을 딱 벌리고 있음^^;; 그와중에 25일날 읽으신 박완서의 책에 눈독들이고. 겹치는 책 보면서 기뻐하고 ㅋㅋㅋ 저도 일부러 책 몇 권 읽고 쉬고 그러고 있어요. 그리도 있는 책 한번씩 다시 볼까 그런 생각도 하고. 그런데 아시마님 출국일정이 바뀐 거에요? 헉...

아시마 2010-02-02 22:12   좋아요 1 | URL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 이 책이 원래 90년대에 웅진 작가앨범으로 나왔던 책의 개정본이예요. 박완서 선생님의 글도 있고, 따님 호원숙씨가 본 엄마로서의 박완서도 있고, 살짜쿵, ㅎㅎㅎ 저도 몰랐는데 제가 찍어서 드린 사진이 실려있더라는. 오호호호호호... 저 완전 감동먹었잖아요.^^
무슨 사진인지 궁금하시죠? ㅎㅎㅎ 그건 책을 보셔요.
(앗, 그렇다고 제 이름이 나오거나 하진 않습니다. -_- 걍 저만 알아보는 거죠 뭐.)

blanca 2010-02-0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 당장 주문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아시마님 박완서샘을 독대하셨단 말입니까?!! 찍은 사진을 직접 건네주고 게다가 그 사진이 실려 있기까지....혹시 아시마님 유명인이 아닐까 ㅋㅋㅋ 혼자 고민하고 있다는...

아시마 2010-02-03 23:29   좋아요 1 | URL
유명인은요. ^^ 그냥 직업상,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거지요. 출판사 다니시는 분들이 작가분들을 뵙는 거랑 비슷한 원리예요. ㅎㅎㅎ

2010-02-07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7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