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 더 나아가 모든 창작행위는, 그리고 그 결과물은 제일 먼저 창작자를 매료시킨다. 자신의 창작물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은 창작행위를 지속할 수 없다. 자신의 창작물에 매료되는 사람에게 창작의 행위란 피와 고름을 찍어 쓰는 것과 같은 고통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리영의 그 유명한 대사 "피와 고름을 찍어 썼다."는 말보다 더 웃긴 창작 관련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진짜 창작자는 창작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스티븐 킹은 그 창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소설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인 나조차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알면서도 그 소설의 결말을 정확히 짐작할 수 없다면 독자들도 안절부절 못하면서 정신없이 책장을 넘길 거리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p. 201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 그리고 흡인력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아, 이 상투적인 표현이라니) 압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작가 스스로가 정말 재미있어 못견뎌 하며, 그 다음 이야기와 결말을 알고 싶어 몸부림치며, 소설 그 자체에 푹 빠져 쓴 글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것이든 프로의 것이든, 하는 동안 즐거워 했는지 아닌지는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즐기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결국, 쓴 사람이 재미있게 써야 읽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는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글을 쓰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 소설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의 가치이자 덕목인 "재미"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그 최고의 가치를 획득하는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재미있어서,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내지 못할 것 같아 쓴 그런 글이다.  

물론 소설을 써서 꽤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p. 308 

누군가 이 글이, 그의 소설들 못지 않게 재미있는 글이라고 추천하기에, 사두고 백만년간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정확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이미 콘테이너에 실려 저 푸른 태평양을 넘실넘실 건너가고 있는 중이고, 내가 읽은 책은 친정 동생의 책장에 꽂혀있는, 동생 전 남친이 동생에게 물려준 책이다. (앗, 이건 제부 될 사람이 알면 안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죄다 콜렉션 하고 있으면서(스티븐 킹이 무슨 치토스냐고. 언젠가는 읽고 말거야... 라니)도 막상 읽은 책은 단편집 하나 장편 한권 그리고 이 책이다. 세권의 책을 순위를 매기자면, 글쎄,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면서도 소설들만큼이나 재미있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들 만큼이나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고(아, 스티븐 킹이 봤으면 뿡야! 라고 외치며 붉은 줄 쫙, 돼지꼬리 땡땡! 했겠다.) 그의 작가로서의 성공기를 따라 갔다. 그 사이사이 오는 그의 글쓰기 방법과 창작론은 굉장한 덤이었고. 그의 첫 소설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40만불에 팔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기뻐서. 아, 이 남자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정말이지! 대단한 엄청난 훌륭한 괴물같은 엑설런트하고 스펙타클하고 어메이징하고 언빌리버블하고 초 특급 울트라 마징가 제트 같은! 이야기 꾼이다. 그가 끝도 없이 끝도없이 끝도없이, 말하는,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 스토리, 그거 우리말로 바꾸면 이야기니까.  

스티븐 킹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졌다.  

Ps. '수정본 = 초고 - 10% ' 라는 말, 그래서 적절한 삭제작업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또한 놀라운 문학적 비아그라라고 부를만 하다는 건, 한국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선생도 산문집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에서 이미 말씀하신 바 있다. 이윤기는 숱제 '수정본 = 초고 - 50% ' 이라고 한다. 신문 기고문을 쓸 때는 처음엔 원고지 10매를 써서 그걸 5매로 줄인다나.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의 기본 원칙은 대개 비슷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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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3-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영의 말 쓰러졌습니다. ㅋㅋㅋ 재미있지요, 이 책? 그런데 아시마님 리뷰가 더 재미있습니다.^^;;
 

큰놈을 낳았을 땐, 세상이 돈짝만해 보였다.  

원하던 때에 생긴 큰 놈의 임신 기간은 내내 순조로웠고, 아이를 낳은 직후에 들려오던 간호사들의 "어머, 얘 두상 좀 봐, 너무 이쁘다." 라는 말과 "아기가 쌍거풀이 있네." 라는 말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신생아 처치를 끝내고 내 품에 안긴놈은 과연, 갓 태어난 아이 답지 않게 말쑥하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하고, 건강하고, 책대로 크는 완벽한 아기였다. 16개월에 동요를 불러제꼈고, 20개월을 넘어가면서 글자를 더듬거리기 시작해선, 세돌이 되기 전에 한글을 뗐다.

세상이, 정말로, 돈 짝만해 보였다.  

둘째 놈은 6개월을 노력해 만든 아기였다. 병원가서 날받아다 달력을 봐 가며 섹스를 했다.  

12주 목 뒤 투명대 검사(다운증후군 선별검사)는 문제없이 통과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16주차 검진에선 내 혈압이 완전히 바닥을 치는 바람에 입원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20주차 정밀 초음파에서는 네명의 의사가 방을 들락거리며 겨우겨우 임신 유지 판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애매한 정상치 +1 이라는 수치. 1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그때 알았다. 

30주차 정밀 초음파에서는, 태아 뇌실확장증 진단을 받았고, 경증이고, 이런 진단을 받은 아기중 90%의 아기가 아무런 장애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니 이제는 낳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주치의의 무심한 말을 들었다. 우리 부부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하루하루 였다. 병원에 갈때마다 초음파로 아이 뇌실 크기를 쟀다. 90 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작은 숫자인지도 그때 알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인터넷 검색만을 하는 날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임신성 소양증은 극에 달해 종아리와 허벅지는 긁어 생긴 피딱지가 떨어지고 다시 생기며 흉터를 만들어갔다. 체중은 줄어들었고, 신경은 있는대로 날카로워졌다. 

35주, 임신 막달 검사에선 내 간수치가 걸려들었다. 40이 정상한계치라는데 250을 넘어선 수치. 전격 입원이 결정되고 친정 엄마가 호출되었다. 내과 담당의는 응급 제왕절개를 말하고, 산부인과 담당의는 안된다고 버텼다. 그 와중에 피부과 의사까지 호출되어 임신성 소양증에 대한 처방을 받았다. 입원과 절대안정, 2주 가까운 입원끝에 간수치는 100 초반으로 떨어졌고, 큰놈이 신경쓰여 퇴원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진통이 왔고 아이를 낳으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400을 돌파한 간 수치, 진통의 속도는 빨랐고, 진통이 시작된 시간으로부터 8시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간단한 신생아 처치를 끝내고 안아본 아이는, 첫째와는 달리 양수에 불어 퉁퉁 부은 얼굴에, 출산 과정에서 생긴 두혈종으로 머리가 커져있었다. 

출산하면 떨어질거라던 간수치는 그대로였고, 아이는 호흡이 안정되지 않아 모자동실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신생아실 호흡기 아래에 누워있었다. 입원 사흘째, 간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내과 의사가 퇴원 불가를 말했고, 겨우 호흡이 안정되어 내 곁으로 왔던 아이는 다시 황달수치가 미친듯이 치솟아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옮겨졌다. 그 와중에 큰놈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아이를 낳고 닷새만에, 아이는 병원에 두고 혼자 퇴원을 했다. 젖이 퉁퉁 부어 남편이 유축기를 사왔다. 아이를 낳은지 일주일도 안되어 젖을 짜 운전을 해서 병원에 나르기 시작했다.  

퇴원한지 2주, 아이를 낳은지 3주만에 간수치는 정상이 되었고, 둘째놈은 병원을 나와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겸손해져 있었다. 한 생명이 생겨서 건강하게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다.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도, 아직까지는 잊지 않았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엄마는 과거를 복기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먹은 음식과, 가벼운 스트레스까지도, 혹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의 교만하였던 마음과, 못된 마음을 끊임없이 반성했다. 그 순간만큼 내가 겸손해지고 선해진 순간은 없었다.  

그렇게, 그 난리를 치고 태어난 둘째놈, 그놈이 돌사진을 찍었다.  









인간이란, 한없이 간사하여서,  

아이가 건강하고 정상이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을 어느새 잊고, 한 없이 작아졌던 그 마음을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난, 못 생긴 건, 안 낳아.  

라고.  

게다가 이제 14개월이 지난 요놈을 붙잡고, 니 언니는 14개월에 몇개의 단어를 말했는지를 중얼거리고, 16개월엔 니 언니처럼 노래를 부르라고 말하고 있고, 니 언니처럼 30개월이 되거든 한글을 똑 떼버리렴, 하고 있다.  

인간이란.  

어째 이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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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0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한없이 겸손해져 있었다, 부터는 제 감정이 격해지네요. 무사히 잘 자라주어 다행이에요. 그러게요 아시마님, 둘째 아이에게 니 언니처럼, 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둘째 아이는 둘째 아이 자체로도 충분히 예쁘잖아요. 사진을 보니 니 언니처럼, 이라는 바람을 갖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자랄것 같아요. 그러니 한없이 겸손해졌던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시마님. 이제 곧 다른 환경에서 자라야 할텐데, 그것 만으로도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스트레스를 받을텐데 저 어린것은 오죽하겠어요. 둘째 아이에겐 태어날때부터 세상이 치열했잖아요. 그러니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치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시마 2010-03-12 11:11   좋아요 0 | URL
그 겸손했던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사실 큰놈의 언어가 빨랐던 것도 가끔은 뿌듯하지만 대부분은 얜 비정상이야, 넌 뭐냐, 싶을 때가 더 많거든요. -_-;;; 큰놈이 빨랐던 것에 대해 딱히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으면서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순간순간 문득 둘째를 보면서 넌 왜 니 언니처럼, 이러고 있는 제가 웃겨서 써봤어요.
정말이지, 인간이란 왜 이모양일까요. 내 마음 나도 몰라, 이게 언제나의 정답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0-03-0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므낫 너무 예뻐요!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셨겠어요.
강한 아이로 자라겠네요.

아시마 2010-03-12 11: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마, 예쁘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사진을 올렸나 봐요. 사실 사진을 올릴때는, 비싸게 주고 찍은 돌사진 가족끼리 몇번 보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까워서 이리저리 활용이라도 하고자 올린건데, 막상 예쁘다는 칭찬들으니 기쁘네요. 헤헤헤.
참 웃기죠.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했는데, 무의식에서는 이미 잊혀져 있어요. 그래서 부모자식인가 보지요.
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래요, 저도. ^^

아포지 2010-03-0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시마 2010-03-12 11:15   좋아요 0 | URL
넵. ^^ 아마 어머니께서도 그 전화 받으시고 기쁘실 거예요.

마노아 2010-03-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울컥하다가 배시시 웃고 말았어요. 겸손한 마음도, 다시 부쩍 커지는 욕심의 마음도 이해가 가요. 아이가 너무 예쁩니다. 아시마님이 엄청난 부자라는 걸 알겠어요.^^

아시마 2010-03-12 11:15   좋아요 0 | URL
흐흐흐... 누군가의 서재 제목 같던데요. 남은 건 책 뿐이다... 뭐 그런.
제가 가진 건 책이랑 딸 둘. 이것만으로도 전 엄청난 부자지요. 암요. ^^

덕수맘 2010-03-0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내내 제눈에는 눈물이...정말 엄마라는 존재는 참...대단한것같아여..저또한 엄마지만 아직도 부끄러운 엄마이기에...헤헤 근데 어쩜 이렇게 이뻐여..저두 딸이있었으면 좋겠어여..아웅 우리덕수에게도 이쁜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아시마 2010-03-12 11: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곧 생기겠지요.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리니. ^^

저도 부끄러운데가 많은 엄마예요. 부끄러운데가 많은 엄마일수록 뒤집어 말하면 자식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많다는 말 아닐까 해요. 그럼 결국 그건 좋은 엄마라는 말? ㅎㅎㅎ
자화자찬, 아전인수, 책임전가가 제 삶의 3대 모토라니까요. ㅋ

2010-03-08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콜성지방간 2013-09-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 후 아기가 뇌실확장이 있고 발달지연이라 하여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요. 7개월 딸이랍니다. 잠든 아이를 안고 치료 대기 중에 글을 읽다 눈물을 흘렸어요.. 엄마맘이 참 많이 공감이 되고 울 딸도 이렇게 예쁘게 자라주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아시마 2015-01-13 19:15   좋아요 0 | URL
흠.....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아기는 두돌이 지났겠구요.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아마 건강히 잘 자랐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사실, 그 숱한 용서와 화해의 감동 드라마들이 불편하다. 지독한 일들의 끝에서도 주인공들은 악한을 쉽게도 용서한다. 자신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람에 대한 용서가 그렇게도 쉽다는 건, 뒤끝길고 질긴 나로서는 도무지. 흠. 

어릴때도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동화인 <소공녀>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건 그 장면이었다.  

"제가 왜 선생님과 같이 가지 않는지 잘 아실 거예요. 너무나 잘 아실 거예요."
<세라이야기>,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시공주니어, 2004, p.291 

정말이지, 어린아이를 독자층으로 하는 동화답지 않은 통쾌한 장면이었다. 이 동화 소공녀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있고 그 장면들을 나는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 동화를 독특하게 만들어 주는 건 바로 저 구절이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에도 소공녀의 바로 저 구절과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앞으로 평생 동안, 엄마하고 두 번 다시 말을 섞지 않겠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감사할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p. 428 

 
이 책의 희망메시지는, 저자 콘스턴스, 즉 클레어가 대학을 가고, 영국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되었고 그런 사실들이 아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건, 그녀가 그녀를 학대했던 장본인에 대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자신에 대한 학대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학대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묻는다. 나는 원래 학대받을 만한 아이였다고 자학하는 대신, 엄마에게 억지 이유를 붙여주며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내가 뭘 잘못했나요, 엄마? 말해 줄 수 있어요?" 라고.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알고 있어요? 엄마 같은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라고.  

비슷한 유형의 아동학대 수기로 데이브 펠처가 쓴 <어둠의 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아동학대의 희생자였다고 하고, 그 아동학대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게된다. 물론 학대의 내용 또한 클레어의 그것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데이브는 "왜?" 라고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분노하지도 못했다. 그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에 대해 분노했다. 그는 자신의 학대받은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고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한다.  

두개의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흘러간다. 행복하지 못했던 가정, 많은 아이, 그 중의 한명이 타겟이 된 상황에서 나머지 형제들의 겁먹은 외면과 의도적인 따돌림.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분노의 투사. 친척들의 개입과 반발, 이웃의 개입과 반발. 클레어는 판사가 되고 데이브는 군인이 된다. 군인과 판사. 규율과 규칙 속에 존재하고, 누군가를 심판하는 존재들. 그들의 성장과정이 투사된 듯한 직업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글쎄, 이 책의 역자의 말대로 "세상에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일, 용서해서도 안 될 일이 있는지 모른다". (p.434) 아동 학대는 용서가 안되고 용서를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용서를 바란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용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더. 

나를 낳아주고, 피와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니까 용서를 해야 하는 걸까. 고아원에 버리지 않고 길러 주었으니까. 글쎄, 학대를 하는 것보다야 버리는 게 낫지 않았으려나 싶다.  

그녀의, 저자의 그 끈질긴 증오와 미움이 좋았다.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라는 말.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만큼 하찮은 생명은 아니었음을 아는 자존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엄마는 용서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70 노파가 무슨 상관이람? 부관참시도 시원찮을 마당에.  

끝까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할 수 있었던 그 단단한 자존감이 현재의 콘스탄스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무참히 잘라버리고 말살시키고자 했던 콘스탄스의 자존감은 새파랗게 살아남아 자신이 그렇게 하찮고, 어리석고, 못생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특히 자신에게 증명해 낸 것이다. 콘스탄스가 가지고 있었던 희망은 바로 그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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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2-1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이 되는 부모>에도 아시마님 말씀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것이 결코 치유에 도움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합리화하고 예전의 그 병든 관계가 다시 재생된다고 하네요.

참, <소공녀> 제가 정말 너무 너무 좋아했던 책인데 왜 저 대사들은 그렇게 새삼스럽게 들릴까요? 시공주니어걸로 다시 읽어야 할까요? 저는 파란 계몽사에서 나온 걸로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시마님과 제 독서의 궤적은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신기하고 기쁘네요.

아시마 2010-02-20 12:30   좋아요 0 | URL
오호. 이것도 겹치네요. 저도 파란 계몽사에서 나온 소공녀예요. 전집의 번호 9번. 10번은 소공자였죠. ^^ 1번이 이솝우화집이었고, 2번이 영국 동화집이었죠? 아... 그책 몇년전까지만 해도 친정에 있었는데. 가슴아파요. ㅠ.ㅠ
헌책방 레어아이템이라는 소문만 들었어요. 흑흑.
계몽사에서 나온 책에서는 아마, 저 부분이 빠졌던가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민틴선생이 난 널 정말 좋아했다 운운 하자, "그랬나요? 전 몰랐군요." 류의 대답을 하는 장면은 들어갔던듯.

비밀 하나 말씀드리면, 음음, 전 시공주니어판 완역본도 가지고 있고, 웅진주니어판 완역본도 가지고 있어요. 소곤소곤.

2010-02-18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0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2-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불끈! 당장 보관함에 집어 넣어야겠어요.

아시마 2010-02-20 12: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전 이책 서평단 도서였다지요~ 약올리기~ ^^
 

남편과 약간의 이견이 생겼다.  

나는 남편을 열심히 설득했고, 남편은 지극히 타당한, 남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하며 내 의견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주변의 사례들을 열거하며 이러이러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라고 우겼다. 그 말들의 끝에 은근히, 아니 대놓고 고집 쎈 이 남자 한 마디한다. 

난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관심 없고, 나의 보편적인 상식에 비추어 내 일을 생각할 뿐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마지막 카드를 들이민다. 

나는 충무공의 일에 속하는 거 맞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니 그렇게 해 줘.
응응응응응? 당신 눈엔 안보이겠지만 야옹이 지금 열심히 애교떨고 있어. ^^
  

여기서 웃음 이모티콘은 정말 중요하다.-_-v  

남편은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거진 10분동안 보통날의 파스타 리뷰를 쓰며 남편 대꾸를 기다리다 내가 다시, 

여보오오오오오오오오오
왜 대꾸가 없어~~~~~~~~~~~~~
화났어?

했더니, 남편이 결국 백기를 든다.  

그렇게 해. 

그리곤 또 한마디. 

그래도 난 이해는 안된다. 

그래서 말해줬다. 

고마워.
이해가 안되는 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줘서 더 고마워.

그래서 오늘도 내가 이겼다. 음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정말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안되는 데도 내가 원하는 걸 하게 해 줘서 더 고맙다. 이건, 사랑이니까. 충무공이 이해못할일을, 싫다고 하는 일을 마구마구 우길수 있게 해 주는 건, 그의 사랑에 대한 나의 확신만이 가능하게 하는 거니까.  

아마 지금쯤, 충무공은 배가 아파서 잠이 안오겠지만, 

ㅎㅎㅎㅎㅎㅎ 이겼다 또 이겼다~  

"내가 원해." 이 카드로는 져 본 역사가 없다. 그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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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2-1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원해. 아시마님이 무엇을 원했을지 궁금합니다.^^ 이 글만으로도 아시마님에 대한 충무공님의 절대적 사랑이 느껴지는데요. 그리고 아시마님 사진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답니다.--;; 괜히 승부욕 발동해서 사진만 다시 보고 있다는 ㅋㅋㅋ

아시마 2010-02-13 00:21   좋아요 0 | URL
제가 원한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돈지랄" 되겠습니다. ;)
저에 대한 충무공의 절대적인 사랑....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내가 더 사랑하는데? 내가 더 사랑하니까 미안해서 내 말 들어주는거야~ 잘 알고서 얘기해. (MBC 하땅사 "괜한 자존심" 표절 멘트. ㅋ)
제 사진은, 우리 큰놈 11개월 무렵 책장속에 기어들어가 있는 애를 찍은 사진이랍니다. ㅎㅎ 그때만해도 지금만큼 책이 많지 않아서, 큰놈이 들어가있는 저 자리에 인형들을 졸졸히 놔 뒀거든요. 그랬더니 인형들을 끌어내고 큰놈이 들어가서 날 쳐다보고 웃더라구요.
 
<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다락방님의 페이퍼 http://blog.aladin.co.kr/fallen77/3382969 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여기에 오면 널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장소가 몇개 있다. 실제로 누군가를 바로 그 장소에서 딱만나 그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도 있다. 차이라면, 내가 가진 몇개의 장소는 절대로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거. 나도 센트럴 파크, 그런 곳을 나를 볼 수 있는 장소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는 몇몇 밥집일 뿐. 가끔은 나 거기가서 밥먹다가 니 생각 났어.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에게 그런 장소가 생긴 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일을 싫어하고(모르는 밥집에 스스로 찾아가는 것 포함) 인간관계가 극히 협소하며, 맨날 가는 그 장소만 가는, 동선이 지독히도 한정된 인간이라서 그렇다. 즉, 난 맨날 가는 곳만 간다.  

그 "맨날 가는 곳(식당)" 이라도 뭔가 남들은 잘 모르는 비장의 맛집 이런 거면 좋을텐데, 내가 아는 곳은 남들도 다 아는, 그런 곳들 뿐이다. 칼국수는 명동교자, 수제비는 삼청동 수제비, 짜장면 짬뽕은 하림각, 콩국수는 손만두집, 쌀국수는 하노이의 아침 여의도점, 파스타는 뽀모도르 인사점, 샤브샤브는 샤르르 마포점 이런식이다. 체인점이 있다고 해도 맨날 가는 그곳만 간다. 남편과 외식을 해도 맨날 먹는 그 음식만, 맨날 가는 그 집에서 먹는다. 친구와 만날 때도 메뉴나 장소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지면 무조건 저 몇몇 곳들(나열되지 않은 곳도 몇개 더 있다.) 중의 하나를 말하고, 서울에 간만에 놀러온 친구나 친지를 데려가는 곳도 저곳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파스타는 늘 뽀모도르의 소스가 흥건한 파스타다. 뽀모도르 인사점은 인사동 한복판에서 약간 들어간 골목 안에 있는데 파스타 접시 두개 놓고 피클 접시 하나 놓으면 꽉차는 조그만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가게다. 난 그 가게의 10년차 단골이고, 남편이 알면 절대로 안되지만, 음음, 그곳에 데려간 남자는 남편을 포함해 둘이다. 남편은 그곳이, 나와 남편만의 비장의 장소(라고 착각하기 딱 좋을만큼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작은 가게니까/근데 실은,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흔하고 대중적인 식당이다.)라고 알고 있으니까, 쉿쉿.  

음식이란 참 묘한데가 있다. 애정중추와 식욕중추(맞나? 미각중추였나?)는 맞닿아 있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 친밀감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남편과 연애를 하던 중에도 한동안 뽀모도르를 피해다녔다. 인사동을 갈 때마다 그집의 파스타가 생각났지만 친구와 함께는 가도 남편과는 가지 않았다. 남편의 식성은 지극히 한국적이라 파스타를 좋아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싫어하면 뭔가 거대한 상실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러다 큰 결심과 함께 데려간 그 곳에서,

남편은, 촌스럽게도 마늘빵으로 소스를 싹싹 닦아 먹을만큼 그집의 파스타를 좋아했다. 된장찌개와 순두부와 갈치조림을 좋아하던 30대 경상도 아저씨가, 파스타집에 갈거라는 말에 파스타가 뭐야? 스파게티, 뭐 그런건가? 라고 말하던 그 아저씨가 얼마나 맛있게 그집의 파스타를 먹는지, 그날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로써 그 집은 남편과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우리의 첫 아이가 처음으로 파스타라는 걸 먹어 본 것도 그 집이고, 기념일 외식 1순위의 집도 그 집이다. 

나는, 음식을 잘 한다기 보다는, 남편의 은근히 까다로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데 유일하게 파스타를 만들어 주면 먹긴 잘 먹어 놓고는, 꼭 한마디한다. 뽀모도르가 나아. 라고.  

첫음식에 대한 추억은 놀랍다. 그 첫음식은 그 이후의 음식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책대로라면 소스가 흥건한 뽀모도르의 파스타는 짝퉁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파스타는 모름지기, 소스가 흥건해 면을 건져먹으면서 스푼(이태리에서는 포크 사용이 서툰 애들이나 쓰지 어른은 쓰지않는다는 바로 그 스푼!)으로 간간히 소스를 푹푹 떠 먹어주는, 가끔은 마늘빵에 찍어먹기까지 하는 그런 거다.  

이런걸 입맛의 보수성이라고 하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원래도 음식 에세이를 좋아하니까 정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막상 만들어 놓은 음식 사진을 보면서는 글쎄, 이게 맛있으려나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가지 못한 나의 그 보통의 식당, 늘 먹던 파스타가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당분간은 못먹을 테니까.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정세영 셰프의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가 있다.  

둘다 현직 세프의, 본토 음식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파스타에 대한 상식의 지평을 넓혀주긴 했지만, 특별히 식욕을 당기게 하지는 않았던 책. 그래서 별 하나 뺐다. 음식 에세이라면, 그 음식을 마구마구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게 지당하지않을까. 음, 하지만 그건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뽀모도르의 파스타를 지나치게 편애 하는 탓이 큰 것 같아 뺐던 별 다시 넣는다.  

ps. 근데 이 글은, 리뷰라고 하기엔 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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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1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리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리뷰가 아시마님의 그 어떤 리뷰보다 좋은데요! 읽는동안 막 따뜻한 기운이 돌잖아요. 아시마님의 그 걱정과 그 안도의 섬세한 감정이 고스란히 다 묻어나서 정말 좋았어요. 이럴때 바로 '잘 읽었습니다' 라고 해야하는 건가봐요.

잘 읽었습니다, 아시마님.

아시마 2010-02-13 00:23   좋아요 0 | URL
뜬금없는 답글이지만, 음, 전 다락방님 페이퍼가 참 좋아요. ^^
뭔가를 막 건드려서 간질간질 끌어내는 페이퍼거든요. 이 리뷰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글은, 다락방님의 페이퍼가 없었다면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 역시도,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