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놈을 낳았을 땐, 세상이 돈짝만해 보였다.
원하던 때에 생긴 큰 놈의 임신 기간은 내내 순조로웠고, 아이를 낳은 직후에 들려오던 간호사들의 "어머, 얘 두상 좀 봐, 너무 이쁘다." 라는 말과 "아기가 쌍거풀이 있네." 라는 말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신생아 처치를 끝내고 내 품에 안긴놈은 과연, 갓 태어난 아이 답지 않게 말쑥하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하고, 건강하고, 책대로 크는 완벽한 아기였다. 16개월에 동요를 불러제꼈고, 20개월을 넘어가면서 글자를 더듬거리기 시작해선, 세돌이 되기 전에 한글을 뗐다.
세상이, 정말로, 돈 짝만해 보였다.
둘째 놈은 6개월을 노력해 만든 아기였다. 병원가서 날받아다 달력을 봐 가며 섹스를 했다.
12주 목 뒤 투명대 검사(다운증후군 선별검사)는 문제없이 통과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16주차 검진에선 내 혈압이 완전히 바닥을 치는 바람에 입원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20주차 정밀 초음파에서는 네명의 의사가 방을 들락거리며 겨우겨우 임신 유지 판정을 내렸다. 그야말로 애매한 정상치 +1 이라는 수치. 1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그때 알았다.
30주차 정밀 초음파에서는, 태아 뇌실확장증 진단을 받았고, 경증이고, 이런 진단을 받은 아기중 90%의 아기가 아무런 장애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니 이제는 낳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주치의의 무심한 말을 들었다. 우리 부부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하루하루 였다. 병원에 갈때마다 초음파로 아이 뇌실 크기를 쟀다. 90 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작은 숫자인지도 그때 알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인터넷 검색만을 하는 날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임신성 소양증은 극에 달해 종아리와 허벅지는 긁어 생긴 피딱지가 떨어지고 다시 생기며 흉터를 만들어갔다. 체중은 줄어들었고, 신경은 있는대로 날카로워졌다.
35주, 임신 막달 검사에선 내 간수치가 걸려들었다. 40이 정상한계치라는데 250을 넘어선 수치. 전격 입원이 결정되고 친정 엄마가 호출되었다. 내과 담당의는 응급 제왕절개를 말하고, 산부인과 담당의는 안된다고 버텼다. 그 와중에 피부과 의사까지 호출되어 임신성 소양증에 대한 처방을 받았다. 입원과 절대안정, 2주 가까운 입원끝에 간수치는 100 초반으로 떨어졌고, 큰놈이 신경쓰여 퇴원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진통이 왔고 아이를 낳으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400을 돌파한 간 수치, 진통의 속도는 빨랐고, 진통이 시작된 시간으로부터 8시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간단한 신생아 처치를 끝내고 안아본 아이는, 첫째와는 달리 양수에 불어 퉁퉁 부은 얼굴에, 출산 과정에서 생긴 두혈종으로 머리가 커져있었다.
출산하면 떨어질거라던 간수치는 그대로였고, 아이는 호흡이 안정되지 않아 모자동실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신생아실 호흡기 아래에 누워있었다. 입원 사흘째, 간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내과 의사가 퇴원 불가를 말했고, 겨우 호흡이 안정되어 내 곁으로 왔던 아이는 다시 황달수치가 미친듯이 치솟아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옮겨졌다. 그 와중에 큰놈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아이를 낳고 닷새만에, 아이는 병원에 두고 혼자 퇴원을 했다. 젖이 퉁퉁 부어 남편이 유축기를 사왔다. 아이를 낳은지 일주일도 안되어 젖을 짜 운전을 해서 병원에 나르기 시작했다.
퇴원한지 2주, 아이를 낳은지 3주만에 간수치는 정상이 되었고, 둘째놈은 병원을 나와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겸손해져 있었다. 한 생명이 생겨서 건강하게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다.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도, 아직까지는 잊지 않았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엄마는 과거를 복기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먹은 음식과, 가벼운 스트레스까지도, 혹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의 교만하였던 마음과, 못된 마음을 끊임없이 반성했다. 그 순간만큼 내가 겸손해지고 선해진 순간은 없었다.
그렇게, 그 난리를 치고 태어난 둘째놈, 그놈이 돌사진을 찍었다.
인간이란, 한없이 간사하여서,
아이가 건강하고 정상이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을 어느새 잊고, 한 없이 작아졌던 그 마음을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난, 못 생긴 건, 안 낳아.
라고.
게다가 이제 14개월이 지난 요놈을 붙잡고, 니 언니는 14개월에 몇개의 단어를 말했는지를 중얼거리고, 16개월엔 니 언니처럼 노래를 부르라고 말하고 있고, 니 언니처럼 30개월이 되거든 한글을 똑 떼버리렴, 하고 있다.
인간이란.
어째 이 모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