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응달 박완서 소설전집 5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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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대부분 최소한 한번은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뜻밖에 낯이 설었다.  

이 책은 약간, 파격적이다. 전혀 박완서 스럽지 않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박완서 스럽다. 나는 이 책을 93년에 나온 세계사판 박완서 전집에서 읽었지만, 이 책은 실제 1978년 <여성동아>(문예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기 바람)에 1년 반동안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사실 작가들은 연재와 비문학지에 작품 발표라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한때는 신문 연재 소설이 소설의 대표적인 발표 지면이었고, 실제 신문 연재 소설중에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동아일보)나 최인호의 상도(발표지 기억안남. 신문이었음) 박경리의 토지 5부 (문화일보)등은 장편 소설로서의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 내지만, 대부분 비문학지에 연재되는 소설은 통속성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혐의의 시선을 짙게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박완서의 소설 중 가장 통속적이다. 숲 속의 별장 같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밀실, 그곳에 모여든 각자 모두 구린 구석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명 한명 죽어나가는 상황. 그리고 유일하게 순결한 누군가에 의한 범인 탐색. (오, 이쯤되면 크리스티 여사가 부럽지 않지 않나?)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박완서스러움을 잃지 않지만, 어차피 상황이나 인물 모두가 너무나 드라마틱한 관계로 박완서의 묘사는 빛을 그다지 발하지 못한다. 사실 이쯤되면 앗,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에도 오롱이 조롱이가 나오는 건가, 싶기까지 하다. 어떤 상황의 어떤 인물에게도, 그리고 어떠한 관계에도 충분히 그럴법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게 박완서 선생님의 최대의 장점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면이 부족하다.  

주인공 자명과 민우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도 억지스럽고, 사실 자명이 민우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다. 이야기는 미혼모인 자명이 민우의 유혹(?)에 이끌려 6살난 아들 윤명을 데리고 저택집으로 들어가 저택집의 과거와 비밀, 2살 어린 시어머니 소희 부인의 비밀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밝혀내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자명이 이 저택집으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부자연스러운데다 인물들이 죄다,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 게다가 도무지 이유없이 등장했다 사라져버리는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자면, 윤명의 아버지인 윤재. 윤재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자명이 윤재의 집에서 당하는 수모는, 이야기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자명의 배경으로 그런 장치를 해 놨었어야 했나 싶고(그냥 사연있는 미혼모쯤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민우의 어머니가 굳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영우의 어머니는 더욱 갑작스럽다.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사실 이렇게 군더더기 인물이 거의 없는 편인데 이 소설은 유난하다. 이야기는 지나치게 전형적인 구도로 흘러가고, 결말은 더욱 작위적이다. 박완서 선생님 작품이라고 하기엔 이 작품은 뭔가, 죄송스럽게도 2%가 부족하다.  

그래도 어쨌든, 박완서 선생님도 이런 소설을 쓴 적이 있다고, 한국적인(?) 추리소설은 이런게 나온다고, 박완서 스럽게 가독성은 역시 최고라고. 주저리 주저리.  

201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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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이 쓰셨다는 데, 제목을 보곤 모르겠더니...내용을 보니 읽은 책이네요~^^
저 이 책에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쫌 남사시려웠는데...ㅠ.ㅠ

아시마 2011-01-10 15:19   좋아요 0 | URL
전 솔직히...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남사시러웠던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을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요. -_-;;;

매문이 필요하신 분도 아니었을텐데.. 왜 이런 글을 쓰셨을까요? 에효.

아, 맞다. 근데 이 소설의 아우라가 한참 뒤, 2000년대에 쓰신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풍겨져 나와요. 저는 이 두 장편이 은근히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더라구요. 내용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뭐랄까 사람들의 속물성이 가지고 오는 그 기묘한 은밀함에 대한 탐구? 뭐 그런거요. 아직 정확히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되어서 말이 막 꼬이네요. -_-;;;

여튼, 마음은 아프지만 의미는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식의 추리기법을 차용한 소설은 전혀 쓰시지 않으셨어요.) 리뷰 한편 남겼어요. ^^;;;

78년작이니까요. 소설가도 변신을 하지만 대한민국의 소설작법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던 8-90년대 아니겠어요. 이해해야지요. 하하하... 그 시기 나온 한국 추리는 다 요모냥 요꼴... ;;;;

blanca 2011-01-1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설이 있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아니고--;; 근데 박샘이 의외로 통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지점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일단 너무 재미있잖아요. 정말 너무 훌륭한 작가인데 재미 없는 작품을 쓰는 이들도 많아서....

그런데 저는 왜 자꾸 혼자서 박완서샘 책 전작주의를 90%는 했다,고 착각하는 거죠? ㅋㅋㅋ 캐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아시마님, 저 담주에 이사가는데 <도시의 흉년>은 아주 어수선한 가운데 주문해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진짜 너무 추워요. 여하튼 아시마님이 돌아오셔서 저는 너무 기쁘다는^^;;

아시마 2011-01-11 16:10   좋아요 0 | URL
박완서 샘 작품을 전작하시려면 일단 세계사판 장편소설 전집(19권까진가 나와있고요)이랑 문학동네에서 나온 단편소설 전집 6권+푸르매 출판사에서 나온 <환각의 나비>라는 박완서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을 읽으면 큰 줄기는 잡히는 거고, 나머지는 에세이집들이랑 근간이라고 보시면 되요. 아주 오래된 농담 이후의 책들은 아직 전집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여행기랑 일기도 따로 있고 박완서 선생님 작품 해설집이랑 작가앨범(웅진판), 작가세계에서 나온 박완서 편, 뭐 이런것들까지 챙기면 한 80%쯤은 전작 콜렉션 하신 셈이 되요. 워낙에 다작하시는 분인데다 예전에 나왔던 에세이 중에 절판된 것들이 좀 있어요. 소설로만 다작이 아니고, 에세이랑 산문들도 워낙에 많이 쓰셔서... 짧은 산문인데도 정말 버릴것이 없다는게 박완서 샘의 장점이죠. 저도 옛날 80년대 초반에 나온 에세이집 <혼자 부르는 합창>은 아직 구해보지 못했어요.

아, 도시의 흉년은 세계사판 박완서 전집에 상, 하 두권으로 들어가 있구요, 그거 말고, 하권 이후의 이야기가 있는 속편이 또 있는데, 그건 새로 발간하지 않으시는 듯 해요. 저도 예전 세로읽기로만 읽었던 기억이 나요.

<도시의 흉년>은 박완서 샘 작품 중에 제가 또 특별나게 손꼽는 작품이거든요. 빠져드시면 ㅎㅎㅎㅎㅎㅎ 짐정리가 늦어지실 겝니다.

어디로 이사가세요?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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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혹평을 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다. 나의 혹평으로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도 저어되지만, 더 중요하게는 혹평을 하고 듣는다고 한들 그가 조금치라도 발전하거나 변화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나쁜점을 마구 공격하기보다 좋은 점을 마구 칭찬해서 그쪽을 돋워주는 쪽을 택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가, 김진규에 관해서는 이제 혹평 좀 해야겠다. 뭐 나 따위의 혹평으로 이 사람의 글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지만. 

김진규는 2008년 벽두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다.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알라딘은 시끄러웠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아직 등단도 하지 않은 작가의 첫 작품이 제 13회 문학동네 문학상의 수상작이 되었고, 작가의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작가의 인터뷰가 먼저 알라딘에 게재되었다.  

그녀의 첫 책 <달을 먹다>로 나를 화악 끌어당긴 것은 책 뒤 박완서 선생님의 추천의 말이었다. 옮겨본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재,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무려 최명희란다. 무려 최명희. 그 혼불 최명희 말이다. 지름신이 내려와 머릿속에서 광을 쳐 댔다. 당연히 예약구매를 했다. 그리고 책을 받았다.  

이런, 문학동네, 이 조선일보스러운 것들아.  

책을 다 읽고, 책 뒤에 수록된 심사평까지 다 읽고 한 말이었다. 어떻게 박완서 선생님의 심사평 중에 딱 너 좋을 거 한줄만 꺼내놓냐?  

박완서 선생님의 <달을 먹다>에 대한 평가는 정말이지, 그지없이 가혹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모든 박완서 선생님의 각종 문학상 심사평 중 가장 가혹하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 박완서 선생님글 스토커쯤 되니까, 이 말 믿어도 된다.) 

박완서 선생님의 평 중 일부를 옮겨본다. 

"<달을 먹다>를 나는 아마 세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내리 세 번을 정독했다는 뜻이 아니라 읽다가 줄거리를 놓쳐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다는 소리이다. 참으로 읽기 힘든 소설이지만 난해한 소설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줄거리만 말하면 흥미진진할 듯싶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략).............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큰 그림을 총체적으로 보려면 독자는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스스로 꿰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게 그 조각 맞추기가 쉽지 않다. .... (중략) .... 어렵사리 꿔맞춰서 겨우 한 화판 속에 퍼즐조각을 빈틈없이 집어넣고 나서도 완성의 기쁨이 별로 없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다.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는 거, 곧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그 작의가 와 닿지 않았다.  .....(중략)....

혹평은 이만 접고 좋은 점도 많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제,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 작가의 억제해야 할 장점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인물도 사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물들이 구체적인 언동으로 성격을 표출하고 운명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미리 나서서 설명함으로써 인물들이 꼼짝달싹 못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인간도 정물화처럼 묘사해 박제화 시키는 건, 앞으로 이 작가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달을 먹다> 심사평 중에서

혹평 접고, 장점도 있다더니 두줄 써 주시고 바로 "그러나" 붙여버리셨다. 장점도 단점인 작가란다. 박완서 선생님 최고 乃 -_-;;; 

장점은 하나도 없는 글 되시겠다. 도대체 작가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모르겠고, 문학동네는 왜 무려 '소설'상을 줬는지도 모르겠고, 당췌 이 글이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처녀작이니까. 괜찮다. 최명희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도 인정한다. 구절구절 섬세한 묘사도 해 낼줄 안다.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 다음작품 기다렸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도 읽었다. 재미있게 술술 읽어넘겼다. 여전히 큰 줄기를 잡아내는 서사를 구성해내는 데는 약한 작가지만 그래 첫 작품보다 나아졌으니가 너그러이 넘겼다. 삼 세판, 한 작가에관해 글을 쓰려면, 세권까지는 읽어줘 보자 싶어 이 책까지 읽었다.  

아 쓰,.... foot. 어쩌라고오오오! 

아니 얘는 말이지, 그 위대한, 살아있는 대작가 박완서 선생님이 요목조목 넌 이런 점이 나쁘고 이런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다 손수 짚어주시기까지 하셨으면 극복하려는 척이라도 좀 해봐라, 응? 너한테 약한 건 서사거든? 넌 도대체 소설가라고 하기 무색하게(소설은 서사장르라고오오!) 서사가 너무 약해. 장면과 장면만으로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 나가라고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라고, 어떻게 넌 니가 쓰고 싶은 장면만 쓰냐고,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다는 말씀으로 이렇게 불친절하면 안된다, 라고 말씀해 주신 그 대작가 노선배의 말을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냐? 응? 응? 응? 아니, 뭔 깡이냐고, 대체! 

이 책은 전혀 서사가 연결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진짜, 웬만해서는 서사와 서사사이의 블랭크를 메우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편인데, 이 소설은 2/3가 넘어가도록 이 이야기가,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박완서 선생님이 달을 먹다를 세번 넘어 읽으셨다더니 이 책은(안 읽으셨으리라 확신하지만) 아마 열번쯤 읽으셨을게다. 나도 나중에 숫제 오기로 서사 파악하려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말한다.  

"내 이야기의 팔할은 공부에 의지한다."  

<저승차자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문학동네, 2010, 작가의 말에서

그러니까 말이다, 이 작가, 공부한 거 아까워서 놓지를 못하는 거다. 자기가 공부한 염색과 당시의 사건들과, 각종 벼슬아치들 구실아치들... 그런 것들 공부한 거 자랑하고 싶어서, 나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아는데 니들은 이거 모르지? 자랑하느라 정작 소설은 쓰지도 못하고 끝이 난다. 막판에 가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자기도 헤메었을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학동네 문학상을 수상한 후, 김언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김진규는 이런말을 한다.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랬나봐요." 

<달을 먹다>,  김진규, 문학동네, 2008, p. 263 수상작가 인터뷰 중에서

 

그러니까 이 사람의 글쓰기라는게 과식과 급체로 쏟아져 나오는 오바이트 또는 설사 되시겠다. 공부하는 작가 좋지. 남들보다 많이 아는 작가 좋고, 남들이 쓰지 못하는 글 써내는 작가 좋고, 속에서 이야기가 고이고 넘쳐 도저히 참을 수 없을때 터져나오는 이야기도 좋고. 김훈이 칼의 노래를 한달만에 썼다던가 세달만에 썼다던가.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속에 담아 발효시키는 과정이다.  

잘 삭은 똥냄새는 곱기만 한데 말이지. 이 작가의 글을 전부가 전혀 삭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그러나 이미 서로 뒤섞여 쓰레기가 되어버린, 그런 토사물 또는 설사의 느낌이다.  

도대체 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것일까.  

 

1. 타인의 글에 대해 토사물이니, 설사니 이런 극단적인 악담을 하기는 싫은데, 표현을 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김진규의 스스로의 글에 대한 설명이 그러하였으니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표현일 뿐 특별히 욕을 보이기 위해 선택된 단어는 아님을 밝혀둔다. 

2. 지금까지 출간된 김진규의 책 네권(달을 먹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을 모두 읽고 쓴 글이니 뭐, 어쩔 수 없다.  

3. 에혀.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_-;;; 공지영이 그랬지. 일단 언어에 대한 감각은 있어야 한다고. 거기에 덧붙인다. 최소한의 서사를 구성해 낼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4. 문득 느끼는 건데, 문학동네에서는 김진규 의 책들마다 표지를 어쩌자고 이런 일러스트들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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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0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 김진규 인터뷰만 몇 번 읽어 봤는데 등단도 하지 않은 주부가 단편 습작도 없이 장편을 갑자기 써서 바로 고액의 상금을 받고 등단했다는 그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좋아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군요--;; 요새 출판사 공모 수상작들이 함량 미달이라는 평이 많더라구요. 박완서 스토커 ㅋㅋㅋ 갑자기 안그래도 박완서 샘의 소설을 한 편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흉년>을 읽을까 하고 있었거든요. 또 아시마님의 추천을 듣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리뷰 왜이리 재미있죠? 아시마님이랑 얘기해 보고 싶어요.^^

아시마 2011-01-08 21:11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달을 먹다 기대가 너무 컸던 책이라 실망도 어마무지 해서요.
그래서 그때는 리뷰도 못쓰겠더라구요.

제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 다들 김진규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해요. 그나마 제가 좀, 희한하게 질깃하게 끌고가는 면이 있어서, 4권을 내리 읽어준거죠. 근데 이제는 그만 읽을까봐요. 사람이 발전이 없는 걸로도 모자라 점점 나빠져요.

습작도 없이 고액의 상금과 함께 바로 등단하는 드라마틱한 주부중엔 심윤경도 있죠. 심윤경은 김진규와는 전혀 달라요. 김진규가 달을 먹다를 내놓던 그 즈음해서 심윤경도 달의 제단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정말... 비교체험 극과극이니 반드시 읽어보세요, 달의 제단은. 너무 아름다운 책이죠.

김연수가 그랬잖아요. 첫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작가들이 80%가 넘는다고. 그러고보면, 등단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가는 외려 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도시의 흉년은 너무 좋죠. 하긴 뭐, 박완서 선생님 글중에 안좋은게 있으려구요. 그래도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책이기는 해요. 예전에 드라마도 했고.

이 리뷰가 재미있으셨다니 다행. 누구 험잡는 리뷰라, 재미까지 없으면 전파 낭비잖아요. ^^;;; 저도 블랑카님이랑 이야기 해 보고 싶어요.

최근 이사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디로 하셨나요? 나중에 저 귀국했을때, 가까이 산다면 우리, 다같이, 독서회라도 조직해 보아요!!!

잘잘라 2011-01-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관심 없던 책(작가) 리뷰를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평을 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다, 라는 첫 문장에 공감해서 읽기 시작한 리뷰, 끝까지 재미있게요^^.

내친김에 『나는 여기가 좋다』 리뷰도 읽었는데, 사기 결혼 운운하신 대목에서 킥킥거리다가 즐추 눌러버렸습니다. 재밌는 아시마님을 알게되서 보람찬! 주말이 되었어요. 땡큐베리감사마치~~~

아시마 2011-01-09 18:57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겨찾기까지 해 주셔서, 더. ^^
즐겨 찾으실 때마다 읽을 거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볼랍니다. ^^

김진규는 음. ㅎㅎㅎㅎㅎㅎ 관심 갖지 않으셔도 될 것같은 작가중의 한명입니다. ^^;;;;;;

2011-01-09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절로 2011-01-1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스러운 것들!!! 지존이십니다그려~

아시마 2011-01-11 16:1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녀고양이 2011-01-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여, 이 책을 50페이지 읽다가
못 견디고 던져버렸어요. 저랑 취향이 너무 안 맞는거예요.

그런데 제가 친한 지인이 이 책 괜찮다고 리뷰를 썼더라구요.
역시 제 취향이 지랄맞아 하고 있는데, 아시마님의 리뷰 보고,,, 크크크, 위안 받는 중.

아시마님, 굉장히 오랜만에 들렸네요. 잘 계셨죠?
건강하고 즐거운 새해되셔요. 아직도 인도네시아에 계신건가요?

아시마 2011-01-15 20:45   좋아요 0 | URL
작가마다 특징이 다 있고, 이 작가의 장기가 문장이랑 묘사니까 그쪽을 중점으로 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은 해도... 이 작가는 좀 심해요. 정말 어지간하면 저도 읽어주는 편인데, 화율은 진짜 좀.

마녀고양이님도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저는 이제 2년 반쯤 남았답니다. ㅎㅎㅎ 세월 참 빨라요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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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가 정미경과 동향이다. 심지어 여고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가 정미경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하고, 그녀의 몇몇 작품은 구절을 외고 있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좋은 소설이고 좋아하는 소설이란 것과는 별개로 매번 의아해했던 것이,  

그녀의 글에는 그녀와 나의 고향 냄새가 없었다. 나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그대로 서울에 발목이 잡혀 주질러 앉혀졌다. 그래, 나는 '주질러 앉혀 졌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에서는 매끈한 서울내기의 냄새만 났다. 태생부터 서울인 듯,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구절은 단 한줄도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직장에 발목이 잡혔다. 젠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에만 있었다. 직장생활 5-6년차쯤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가자 돌아가' 할 무렵 남편을 만났다. 나와 동향의 이남자,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女"자 하나를 빼면 그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이 되는 이 남자, 나와 결혼하자 꼬실 때만 해도, 

"남자는 평생 세 번 반한대요. 여자에 한 번, 일에 한 번, 고향에 한 번. 남자들은 다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죠." 

라는 말로 미끼를 던져 나를 휙 낚아챘다. 난 그가 내민 미끼를 물고 파닥파닥 댔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내려가겠다 이거지? 좋아좋아. 이러면서. 

그와 살기 시작하고 어느하루, 서울살이 타향살이의 지겨움이 농울쳐 들어오던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수줍게 배시시 웃으며, 우리, 언제쯤 돌아가요오오? 교태와 사랑스러움을 듬뿍 담아서.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어딜?' 

어딜, 이라니, 어딜, 이라니. 이 배신감이라니, 어떻게, 어딜? 이라고 물을 수가, 어딜 이라니. 너 나중에 내려간다지 않았느냐고, 내가 파닥파닥 뛰었을때, 그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려가 뭐해먹고 살게?' 

아니, 응? 이따위로 나오면 곤란하지. 니가 이럴줄 알았으면 난 내려가서 해먹을 거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이미 내려가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단 한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사람하고 결혼했을 거라고오오오오오!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어! 사기 결혼이 별거냐, 응? 응? 응? 

향수는 주기적으로 몰려왔다. 어느때는 참을 수 없을만큼 나를 달달 볶아댔다가, 때로는 그저그만하게 견딜만 했다가. 동향 출신의 작가 책은 일단 사고보고, 어느 소설에선가 고향의 지명이 나오면 그건 그냥 지명이 아니게 되고. 

나의 그런 유난은 나로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인간의 기억이 5살부터 시작된다면, 19살까지 살았던 그곳의 기억 14년. 20살부터 살았던 이곳의 기억 14년. 이만하면 어디가 고향이다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떠돌아 살았던것도 아니고 한 도시의 붙박이 14년인데. 그래도 서울은 유난히 정이 붙지 않는 도시였다.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 도심이기만 했어도, 나는  남편이 미끼를 던질 틈도 없이 내려가서 거기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 등을 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절대 내 손으로는 돈 벌지 않겠다는... 이 태도는 뭔가... -_-;;) 

그러다 한창훈의 글은 일단 반가웠다. 오, 그래, 너도 내 과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막,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응응, 그래, 내 맘 알지? 알지? 이런 마음이 되었다.  

그의 고향에대한 집착은 나만큼이나 유난하다. 오죽하면 소설집의 제목이 <나는 여기가 좋다> 일까. 피폐해진 농어촌의 현실에 못견딘 아내가 출향 아니면 이혼이라고 해도 이 남자, 아내보다 고향을 택해 주질러 앉는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그 말에 발끈한 게 한순간에 발목 잡힌다.
"여기서는 모두 잘났다고 추켜세워 주는디, 육지 가믄 그렇지를 못하니께, 그게 겁나서 못 가는 것 아니요?"

p. 32,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라고 다그치지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것이 아니다. 육지가 무서운 것보다 여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큰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단편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는 마치 떠날 것 처럼 끝을 맺었던 남편이 이어지는 이야기인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섬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마치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떠올리게 하던 <올 라인 네코>나 <바람이 전하는 말><아버지와 아들>은 섬생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풍광묘사를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만 가능한 어떤 정서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것의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 아니, 이미 집착으로 변해버렸지만 어쩔수 없는 거야, 라고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애정 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나는 여기가 좋다, 를 외치고 있다.  

그런 그의 글에서 그가 말한 '여기'로 가지 못한 나는 위로를 받는다.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듯한 위로.  

이러한 그의 고향에 대한 집착은 이전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가던 새 본다>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으며 장편 <홍합>과 최근에 발간한 에세이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고향과 어촌이라는 존재 바다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창훈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어낸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이미 타인이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랐다.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명랑을 비롯하여, 이렇게 특정부분, 남들이 쓰지 못하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화젯거리를 가진 작가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ps. 이 글이 고향에 관한 글로 타겟을 맞추느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작품은 아무래도 <밤눈> 같다. 그리고 내게는 가장 찡했던 <가장 가벼운 생>과.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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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밤 눈! 저는 올라인 네코도 완전 좋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아시마님, 정말 사기결혼 했네요. 하하하.

아시마 2011-01-08 21:03   좋아요 0 | URL
완전 불쌍한거죠, 저. 서울로도 모자라서 이제 여기까지 나와서 이러고 있슴다. 정말이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둘리 목소리로 읽으셔야 합니다.) 입니다.

그나저나 저 이 책 덕에 한창훈 책 죄다 구해서 콜렉션 했잖아요. 한창훈 완전 좋아요. ㅎㅎㅎ 좀 있다 줄줄이 리뷰 올릴테니 기대하삼! 절판 품절이 많아서 애 먹었더랬어요.

저절로 2011-01-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러다 궁둥이에 털 나겠어요,,울다 웃다..하여튼 몽땅 책임져잉이이히히힝~

아시마 2011-01-08 21: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며... 면도기라도? ^0^

한창훈 참 좋아요, 에파타님. 꼭 읽어보세요. 아마 한창훈도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접신 박완서 샘도 한창훈 소설 되게 좋아하신다는 후문이 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첫번째 책 <비밀노트>를 읽었을 땐 조안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이나 저지 코진스키의 <잃어버린 나>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계대전 때에, 유럽의 시골에 방치된 어린 소년의 생존 투쟁기 말이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의 화자를 여섯살 어린 여자아이 옥희로 선택함으로써 얻게되는 효과는?" 

물론 정답은, 아이의 천진한 눈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을 거짓없이 드러내게 만든다 류일테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 <비밀노트>에서 얻어내는 효과도 그와 비슷하다. 여섯살 소년 둘의 눈에 비친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 시골 풍경은 삭막하고 살벌하기 그지없고, 천진하기 때문에 더욱 잔혹하게 비친다. 아이는 사실을 듣기 좋고 먹기 좋게 포장할 줄 모른다. 아이에게 사실은 오직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고, 그것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해 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지. 아이들의 기록은 그들이 당한일, 한 일, 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지 못하(거나 알려 하지 않)고 그렇기에 가감없이 드러낸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는 데에 아이의 눈보다 더 좋은 창은 없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유니세프나 유엔의 보고서가 아니라 소년병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이렇게 천진한 아이들이, 천사같은 이라는 수식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어리고 천진하다는 점에선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겪는 전쟁이란, 그 무엇보다 전쟁의 진실을 잘 드러낸다.  

2부 <타인의 증거>는 1부의 연장 선상에 놓인다. 전쟁 직후의 피폐한 사회상을 보여주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대척점에 있는 타인이라는 존재다. 아니, 정확히는 타인의 대척점에 있는 나 라는 존재다. 1부의 쌍둥이 클라우스와 분리된 나 루카스는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존재하고,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좌표를 찾는다. 그러다 상대의 좌표가 변화하면 나의 좌표는 길을 잃고, 결국 소멸하기도 한다. 1부가 충격적이었다면 2부는 슬펐다.  

그러나 3부의 충격에 비하면 1부의 충격은 충격도 아니었다. 3부에 가서는 모든것이 뒤죽박죽 섞여버리고 만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더니 모든 거짓말은 마치 변증법처럼 거짓이 거짓을 거짓으로 반박하고 그 거짓이 중첩되어 또다시 새로운 거짓을 만들어 내고, 그 거짓에서 가지는 의미 또한 거짓이 되고... 그러나 3부를 읽다보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책이 전쟁 소설이라는 생각을 접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주 테마는 전쟁이 아니다. 이 책의 테마는, 테마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가 아니라 존재는 거짓말을 한다, 랄까, 아니면 존재는 거짓말 속에 있다, 라고 해야하나.  

3부를 끝까지 다 읽고 아주 드물게 1부를 다시 펼쳐들어 3부까지 천천히 정독했다. 처음 읽을때의 충격과 경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번엔 눈물이 줄줄줄(그야말로 줄줄줄!) 흘렀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뭐가 중요한가.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리도 참혹하게 슬픈가..... 

이 책은, 두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3부의 끝에는 도돌이표가 달려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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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지를 않았어요. 그걸 한번 해봐야겠어요.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꼭 한번 그렇게 해 보세요.

3부를 읽은 직후에 읽은 1부는 정말이지, 처음 읽었을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전혀 다른 이야기. 그러니까 저는 아마, 루카스가 혼자 할머니도 아닌 집에 소개되어 가는 상황을 혼자 가정하고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그 둘의 이야기가 정말 사무치게 아프더라구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외로울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하고.

너무 많이 울어서(저 의외로 책 읽다가는 거의 안웁니다. 영화는 폭풍눈물 하는데 책은 정말 안해요.) 나중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어요.

이 책 띠지에서였나, 1,2,3부중 어느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각각의 역학관계가 형성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가는... 놀라운 소설이었어요.


따라쟁이 2011-01-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권에서 도돌이표. ^-^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요?
저는 중권을 읽고는 뒷 이야기가 넘 궁금해서리... ^^
따라쟁이님의 도돌이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궁금해요.

blanca 2011-01-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 안 그래도 이 책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궁금해요. 저는 어떤 느낌이 들지. 요새 잡은 책들이 대체로 재미가 없어서--;; 처지는 중입니다.

아시마 2011-01-06 0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도 블랑카님의 느낌은 참 궁금합니다. 정말로 참 궁금해요.

요새 잡은 책들이 무슨 책이었길래 재미가 없으셨나요?
근데 사실, 가끔보면 블랑카님은 난 읽기 싫은 되게 어려운 책도 막 읽고 그러시는 것 같드라~ ㅎㅎㅎ 난 어려운 책이 재미없어서 싫어요.

저절로 2011-01-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찔찔이 도돌이표 군요.
이 책, 어른 울리는 재주가 있군요. 겁나는데요?

아시마 2011-01-06 01:22   좋아요 0 | URL
음, 어른 울리는 재주가 남다른 책입니다. 에파타님 감성이면, 정말 많이 우실지도 몰라요.
그저 에파타님께서 써 주시는 페이퍼와 리뷰로 짐작할 뿐이라 외람되지만, 에파타님은 공감의 능력이 특히 뛰어난 분 같아요. 남들보다 훨씬 섬세한 현을 가진 듯. 그런 에파타님이 읽으시면, 음음음,

후유증은 제 탓이 아닙니다. ㅎㅎㅎ

저절로 2011-01-0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이제는 콧물까지~)
아무래도 책임은 지셔야 겠네요;;

아시마 2011-01-08 20:56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읽으시면 남들보다 훨씬 힘드실 거라고, 경고(를 가장한 강력추천)도 드렸건만 굳이 굳이 읽으시고 제게 와서 이러시면, 저는, 음 그저,
뿌듯함을 느낄 뿐이고! ㅎㅎㅎ

책임의 근원을 찾으시려거든 다락방님을 잡으셔야 합니다요. 예예.
제게 그 책을 소개하고 읽게 하신 분이십니다. ^^

그런데 참... 슬퍼요, 그죠?

다락방 2011-01-10 08:48   좋아요 0 | URL
저...저....절, 잡으실겁니까? 하핫 ;;

저절로 2011-01-10 18:30   좋아요 0 | URL
쌩=3=3=3=3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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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심지어 유일하기까지 했던 직장은 서울 한가운데,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3살부터 30살까지 만 7년을 일했고, 처음 2년은 혼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까지 그 숲근처에 구해놓고 혼자 외따로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걸어서 15-20분쯤 되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자박자박 걸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몇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자박자박 걸어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고,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널널한 직업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난 정말 많은 일을 해치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그야말로 새롭게 맺어왔는데, 게다가 처음 2년을 제외하면 내내 일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무실이었는데 왜 내 기억속의 나는 항상 외따로인건지 모르겠다.  

그 숲 속으로 숨어들 때, 그래, 숨어들 때, 나는 내가 '숨어든다'라는 걸 의식하며 숨어들었다. 그 숲의 산 그늘 속에 꼭꼭 숨어 숲과 함께 숨 쉬는 나무이고 싶었다. 숲은 한없이 고요했고, 침묵과 외면에 능했으며, 시침떼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숲은 때로 나의 기쁨과 함께 자지러졌고, 나의 슬픔과 함께 통곡해주었다.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나에게 그 숲과,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곳은 정말, 현실적인 의미의 '내 젊은 날의 숲' 이었다.  

김훈의 이 책이 나왔을때, 그 표지의 백색과 은청색이 가지런히 섞인 문양은 겨울숲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의 유폐를 떠올렸다. 내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켰던 그때, 그때의 그 평화와 그 외로움과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들의 기묘한 단절감들을. 여전히 세상을 왕따시키고 싶어하는 나를.  

이 책의 내용도 그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폐 시키는 사람. 숲 속의 적막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숲 속의 나무들이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만을 원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p. 187 
 
   

 

주인공은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사 그 간극을 뛰어넘어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고 한들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너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내가 아는 너' 일 뿐이고, 네가 아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내가 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난다. 나는 내가 아는 너 만큼만 너에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김훈이 변했다.  

단 한번도 희망에 관한 말을 해 본적 없던 김훈이, 이 글에서 처음으로 마지막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비록 희망아닌 희망이고 의미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김훈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을 통과해 나오며, 숲의 치유력의 영향을 입은 것일까. 주인공이 입은 그런 치유력을 김훈도 입은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김훈의 문체는 여전히 예리하고 날렵하지만 따뜻해졌다. 아. 김훈의 글이 따뜻하게 읽히는 날이 다 오다니. 김훈선생께서 늙으신 겐가.

나는, 33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나왔다. 순순히는 아니고 자유의지는 더욱더 아니고, 그럼에도 불가항력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나왔다. 나왔으되 버리지는 않았다. 숲이 준 것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201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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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토끼 2011-01-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어요 ^^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솜씨에 비해서 방문자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블로그 모음 사이트에 가입하셔서 더 많은 분들에게 노출시키면
많은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요번에 새로 생긴 사이트에 가입해보세요(http://thegle.net )
얼마 전 오픈해서 님의 글쓰기 솜씨면 충분히 메인에 올라갈 수 있을꺼에요 ^^
그리고 오픈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꼭 같이 참여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아시마 2011-01-03 19:12   좋아요 0 | URL
네. ^^ 그렇군요.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

blanca 2011-01-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벼린다'는 용어가 항상 떠올라요. 한겨레21의 편집장 일기를 보니 문체가 거의 비슷해서 기자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시마님의 문장들도 정결하고 깔끔하고 그래요. 아시마님이랑 저랑 동감 아니면 한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올해가 왔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더라구요. 내가 나도 나마저 결국 중년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게다가 아시마님, 전 아직 둘째도--;; 이렇게 육아로 소진되는 (물론 생산적이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상찬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가는 구나, 싶어서요. 아시마님 페이퍼에 또 중언부언하고 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아시마 2011-01-03 22:15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예요.. ^^
김훈의 문장은 지우개의 문장이죠. 길게 길게 써 놓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나간 문장이라는 느낌. 하긴, 김훈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나 에세이에서였나, 여<칼의 노래>에서 죽은 여진을 대하는 대목이요. 그 부분을 원고지 두장쯤 썼다가 싹 지우고 "내다 버려라." 한 마디만 남겨 놓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하루는 글 안쓰고 종일 나가 자전거 타고 놀았다더라구요. ㅎㅎ 그런게 "벼린다" 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듯해요.
결국 벼리는 것도 깎아 내는 거니까.

그리고, 김훈의 글을 볼 때나 조선희의 글을 볼때나 느끼는 거지만, 언론인, 기자로서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팩트에 근접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제 문장이 정결하고 깔끔하다니... 오,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ㅎㅎ

전 아마, 블랑카님과 동갑인 것 같은데요. ^^ 학번은 아마 하나 빠를테고요. 저는 올해가 왔을때 정말 오히려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우리 나이를 벌써 중년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억울하단 말이죠. 전 아직 중년 안할랍니다. -_-;;;

육아로 소진되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간다는 말, 정말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독서라는 취미를 통해서 그 시간들을 무미하게 보내지만은 않잖아요. 전 지난 5년간 정말 애 둘 임신해서 낳아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다 다시 임신하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음, 기억나는 건 육아의 기억 절반과 내가 읽은 책들의 기억 절반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아요. ^^아

둘째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님의 방명록에 쓴 그대로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제 둘째는 두돌이 지났습니다아아아아!!! 으쓱으쓱.

저절로 2011-01-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항상 젊어요 그죠, 정작 나는 늙어가는데 말이죠.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왠지 짠해지는걸요.^^

아시마 2011-01-03 22:18   좋아요 0 | URL
옴마나, 그 문장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나봐요. ㅎㅎㅎ
젊의 날의 숲과 겹쳐져서 그런가 ^^
숲이 항상 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늙은 숲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숲과 젊은 숲, 장년의 숲은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게 지리산의 숲은 젊은 숲이고 설악산의 숲은 장년의 숲이거든요. 그 차이가 뭐냐 물으시면, 음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답했는데 왜 홍시맛이라고 했냐 물으시면,

이라는 답을 차용할밖에요. ^^

근데 아잉... 이분들이 왜 새해 벽두부터 늙음을 말하실까나.
저 처럼 철이 없으면 아무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는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