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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개인적으로, 혹평을 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쪽이다. 나의 혹평으로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도 저어되지만, 더 중요하게는 혹평을 하고 듣는다고 한들 그가 조금치라도 발전하거나 변화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나쁜점을 마구 공격하기보다 좋은 점을 마구 칭찬해서 그쪽을 돋워주는 쪽을 택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가, 김진규에 관해서는 이제 혹평 좀 해야겠다. 뭐 나 따위의 혹평으로 이 사람의 글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지만.
김진규는 2008년 벽두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다.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알라딘은 시끄러웠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아직 등단도 하지 않은 작가의 첫 작품이 제 13회 문학동네 문학상의 수상작이 되었고, 작가의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작가의 인터뷰가 먼저 알라딘에 게재되었다.
그녀의 첫 책 <달을 먹다>로 나를 화악 끌어당긴 것은 책 뒤 박완서 선생님의 추천의 말이었다. 옮겨본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재,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무려 최명희란다. 무려 최명희. 그 혼불 최명희 말이다. 지름신이 내려와 머릿속에서 광을 쳐 댔다. 당연히 예약구매를 했다. 그리고 책을 받았다.
이런, 문학동네, 이 조선일보스러운 것들아.
책을 다 읽고, 책 뒤에 수록된 심사평까지 다 읽고 한 말이었다. 어떻게 박완서 선생님의 심사평 중에 딱 너 좋을 거 한줄만 꺼내놓냐?
박완서 선생님의 <달을 먹다>에 대한 평가는 정말이지, 그지없이 가혹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모든 박완서 선생님의 각종 문학상 심사평 중 가장 가혹하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 박완서 선생님글 스토커쯤 되니까, 이 말 믿어도 된다.)
박완서 선생님의 평 중 일부를 옮겨본다.
"<달을 먹다>를 나는 아마 세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내리 세 번을 정독했다는 뜻이 아니라 읽다가 줄거리를 놓쳐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다는 소리이다. 참으로 읽기 힘든 소설이지만 난해한 소설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줄거리만 말하면 흥미진진할 듯싶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략).............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큰 그림을 총체적으로 보려면 독자는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스스로 꿰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게 그 조각 맞추기가 쉽지 않다. .... (중략) .... 어렵사리 꿔맞춰서 겨우 한 화판 속에 퍼즐조각을 빈틈없이 집어넣고 나서도 완성의 기쁨이 별로 없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다.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는 거, 곧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그 작의가 와 닿지 않았다. .....(중략)....
혹평은 이만 접고 좋은 점도 많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당대의 온갖 사물, 짐승 꽃과 약제, 기후, 풍습 등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타계한 최명희 작가를 연상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 작가의 억제해야 할 장점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인물도 사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물들이 구체적인 언동으로 성격을 표출하고 운명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미리 나서서 설명함으로써 인물들이 꼼짝달싹 못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인간도 정물화처럼 묘사해 박제화 시키는 건, 앞으로 이 작가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달을 먹다> 심사평 중에서
혹평 접고, 장점도 있다더니 두줄 써 주시고 바로 "그러나" 붙여버리셨다. 장점도 단점인 작가란다. 박완서 선생님 최고 乃 -_-;;;
장점은 하나도 없는 글 되시겠다. 도대체 작가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모르겠고, 문학동네는 왜 무려 '소설'상을 줬는지도 모르겠고, 당췌 이 글이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처녀작이니까. 괜찮다. 최명희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도 인정한다. 구절구절 섬세한 묘사도 해 낼줄 안다.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 다음작품 기다렸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도 읽었다. 재미있게 술술 읽어넘겼다. 여전히 큰 줄기를 잡아내는 서사를 구성해내는 데는 약한 작가지만 그래 첫 작품보다 나아졌으니가 너그러이 넘겼다. 삼 세판, 한 작가에관해 글을 쓰려면, 세권까지는 읽어줘 보자 싶어 이 책까지 읽었다.
아 쓰,.... foot. 어쩌라고오오오!
아니 얘는 말이지, 그 위대한, 살아있는 대작가 박완서 선생님이 요목조목 넌 이런 점이 나쁘고 이런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다 손수 짚어주시기까지 하셨으면 극복하려는 척이라도 좀 해봐라, 응? 너한테 약한 건 서사거든? 넌 도대체 소설가라고 하기 무색하게(소설은 서사장르라고오오!) 서사가 너무 약해. 장면과 장면만으로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 나가라고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라고, 어떻게 넌 니가 쓰고 싶은 장면만 쓰냐고, 작가가 이렇게까지 불친절해도 되는 걸까 싶다는 말씀으로 이렇게 불친절하면 안된다, 라고 말씀해 주신 그 대작가 노선배의 말을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냐? 응? 응? 응? 아니, 뭔 깡이냐고, 대체!
이 책은 전혀 서사가 연결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진짜, 웬만해서는 서사와 서사사이의 블랭크를 메우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편인데, 이 소설은 2/3가 넘어가도록 이 이야기가,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박완서 선생님이 달을 먹다를 세번 넘어 읽으셨다더니 이 책은(안 읽으셨으리라 확신하지만) 아마 열번쯤 읽으셨을게다. 나도 나중에 숫제 오기로 서사 파악하려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말한다.
"내 이야기의 팔할은 공부에 의지한다."
<저승차자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문학동네, 2010, 작가의 말에서
그러니까 말이다, 이 작가, 공부한 거 아까워서 놓지를 못하는 거다. 자기가 공부한 염색과 당시의 사건들과, 각종 벼슬아치들 구실아치들... 그런 것들 공부한 거 자랑하고 싶어서, 나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알고 이것도 아는데 니들은 이거 모르지? 자랑하느라 정작 소설은 쓰지도 못하고 끝이 난다. 막판에 가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자기도 헤메었을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학동네 문학상을 수상한 후, 김언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김진규는 이런말을 한다.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랬나봐요."
<달을 먹다>, 김진규, 문학동네, 2008, p. 263 수상작가 인터뷰 중에서
그러니까 이 사람의 글쓰기라는게 과식과 급체로 쏟아져 나오는 오바이트 또는 설사 되시겠다. 공부하는 작가 좋지. 남들보다 많이 아는 작가 좋고, 남들이 쓰지 못하는 글 써내는 작가 좋고, 속에서 이야기가 고이고 넘쳐 도저히 참을 수 없을때 터져나오는 이야기도 좋고. 김훈이 칼의 노래를 한달만에 썼다던가 세달만에 썼다던가.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속에 담아 발효시키는 과정이다.
잘 삭은 똥냄새는 곱기만 한데 말이지. 이 작가의 글을 전부가 전혀 삭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그러나 이미 서로 뒤섞여 쓰레기가 되어버린, 그런 토사물 또는 설사의 느낌이다.
도대체 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것일까.
1. 타인의 글에 대해 토사물이니, 설사니 이런 극단적인 악담을 하기는 싫은데, 표현을 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김진규의 스스로의 글에 대한 설명이 그러하였으니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표현일 뿐 특별히 욕을 보이기 위해 선택된 단어는 아님을 밝혀둔다.
2. 지금까지 출간된 김진규의 책 네권(달을 먹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을 모두 읽고 쓴 글이니 뭐, 어쩔 수 없다.
3. 에혀.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_-;;; 공지영이 그랬지. 일단 언어에 대한 감각은 있어야 한다고. 거기에 덧붙인다. 최소한의 서사를 구성해 낼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4. 문득 느끼는 건데, 문학동네에서는 김진규 의 책들마다 표지를 어쩌자고 이런 일러스트들을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