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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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가 정미경과 동향이다. 심지어 여고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가 정미경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하고, 그녀의 몇몇 작품은 구절을 외고 있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좋은 소설이고 좋아하는 소설이란 것과는 별개로 매번 의아해했던 것이,  

그녀의 글에는 그녀와 나의 고향 냄새가 없었다. 나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그대로 서울에 발목이 잡혀 주질러 앉혀졌다. 그래, 나는 '주질러 앉혀 졌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에서는 매끈한 서울내기의 냄새만 났다. 태생부터 서울인 듯,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구절은 단 한줄도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직장에 발목이 잡혔다. 젠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에만 있었다. 직장생활 5-6년차쯤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가자 돌아가' 할 무렵 남편을 만났다. 나와 동향의 이남자,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女"자 하나를 빼면 그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이 되는 이 남자, 나와 결혼하자 꼬실 때만 해도, 

"남자는 평생 세 번 반한대요. 여자에 한 번, 일에 한 번, 고향에 한 번. 남자들은 다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죠." 

라는 말로 미끼를 던져 나를 휙 낚아챘다. 난 그가 내민 미끼를 물고 파닥파닥 댔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내려가겠다 이거지? 좋아좋아. 이러면서. 

그와 살기 시작하고 어느하루, 서울살이 타향살이의 지겨움이 농울쳐 들어오던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수줍게 배시시 웃으며, 우리, 언제쯤 돌아가요오오? 교태와 사랑스러움을 듬뿍 담아서.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어딜?' 

어딜, 이라니, 어딜, 이라니. 이 배신감이라니, 어떻게, 어딜? 이라고 물을 수가, 어딜 이라니. 너 나중에 내려간다지 않았느냐고, 내가 파닥파닥 뛰었을때, 그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려가 뭐해먹고 살게?' 

아니, 응? 이따위로 나오면 곤란하지. 니가 이럴줄 알았으면 난 내려가서 해먹을 거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이미 내려가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단 한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사람하고 결혼했을 거라고오오오오오!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어! 사기 결혼이 별거냐, 응? 응? 응? 

향수는 주기적으로 몰려왔다. 어느때는 참을 수 없을만큼 나를 달달 볶아댔다가, 때로는 그저그만하게 견딜만 했다가. 동향 출신의 작가 책은 일단 사고보고, 어느 소설에선가 고향의 지명이 나오면 그건 그냥 지명이 아니게 되고. 

나의 그런 유난은 나로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인간의 기억이 5살부터 시작된다면, 19살까지 살았던 그곳의 기억 14년. 20살부터 살았던 이곳의 기억 14년. 이만하면 어디가 고향이다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떠돌아 살았던것도 아니고 한 도시의 붙박이 14년인데. 그래도 서울은 유난히 정이 붙지 않는 도시였다.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 도심이기만 했어도, 나는  남편이 미끼를 던질 틈도 없이 내려가서 거기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 등을 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절대 내 손으로는 돈 벌지 않겠다는... 이 태도는 뭔가... -_-;;) 

그러다 한창훈의 글은 일단 반가웠다. 오, 그래, 너도 내 과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막,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응응, 그래, 내 맘 알지? 알지? 이런 마음이 되었다.  

그의 고향에대한 집착은 나만큼이나 유난하다. 오죽하면 소설집의 제목이 <나는 여기가 좋다> 일까. 피폐해진 농어촌의 현실에 못견딘 아내가 출향 아니면 이혼이라고 해도 이 남자, 아내보다 고향을 택해 주질러 앉는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그 말에 발끈한 게 한순간에 발목 잡힌다.
"여기서는 모두 잘났다고 추켜세워 주는디, 육지 가믄 그렇지를 못하니께, 그게 겁나서 못 가는 것 아니요?"

p. 32,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라고 다그치지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것이 아니다. 육지가 무서운 것보다 여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큰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단편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는 마치 떠날 것 처럼 끝을 맺었던 남편이 이어지는 이야기인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섬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마치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떠올리게 하던 <올 라인 네코>나 <바람이 전하는 말><아버지와 아들>은 섬생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풍광묘사를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만 가능한 어떤 정서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것의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 아니, 이미 집착으로 변해버렸지만 어쩔수 없는 거야, 라고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애정 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나는 여기가 좋다, 를 외치고 있다.  

그런 그의 글에서 그가 말한 '여기'로 가지 못한 나는 위로를 받는다.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듯한 위로.  

이러한 그의 고향에 대한 집착은 이전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가던 새 본다>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으며 장편 <홍합>과 최근에 발간한 에세이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고향과 어촌이라는 존재 바다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창훈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어낸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이미 타인이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랐다.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명랑을 비롯하여, 이렇게 특정부분, 남들이 쓰지 못하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화젯거리를 가진 작가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ps. 이 글이 고향에 관한 글로 타겟을 맞추느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작품은 아무래도 <밤눈> 같다. 그리고 내게는 가장 찡했던 <가장 가벼운 생>과.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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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밤 눈! 저는 올라인 네코도 완전 좋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아시마님, 정말 사기결혼 했네요. 하하하.

아시마 2011-01-08 21:03   좋아요 0 | URL
완전 불쌍한거죠, 저. 서울로도 모자라서 이제 여기까지 나와서 이러고 있슴다. 정말이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둘리 목소리로 읽으셔야 합니다.) 입니다.

그나저나 저 이 책 덕에 한창훈 책 죄다 구해서 콜렉션 했잖아요. 한창훈 완전 좋아요. ㅎㅎㅎ 좀 있다 줄줄이 리뷰 올릴테니 기대하삼! 절판 품절이 많아서 애 먹었더랬어요.

저절로 2011-01-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러다 궁둥이에 털 나겠어요,,울다 웃다..하여튼 몽땅 책임져잉이이히히힝~

아시마 2011-01-08 21: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며... 면도기라도? ^0^

한창훈 참 좋아요, 에파타님. 꼭 읽어보세요. 아마 한창훈도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접신 박완서 샘도 한창훈 소설 되게 좋아하신다는 후문이 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