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의 광고가 알라딘에 떴을 때, 나는 아주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눈을 반짝거렸다. '섹스'라는 어감만으로도 모자라서 '미들'의 섹스라니! 게다가 카피는 더욱 기가 막혔다. 양성인간이 나오는 '미들 섹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니 뭔가 아주 우아하고 품격높으면서도 감각높은 에로티시즘의 문학을 기대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나중에 역자 후기에서 역자가 말했던 "'미들 섹스'라는 제목과 양성인간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함정"에 나 역시 풍덩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기묘한 느낌에 빠졌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그리고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보았던 기억들이 기묘하게 얽혀들면서, 어쩌면 현대의 미국이 사랑하는 몇가지는 이 소설에 녹아들어있는 앞서 나열한 몇가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퍼 리의 소설은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퓰리처상 수상작이고, 샐린저의 소설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중의 한편임이 분명할 테니까.

이 소설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는 어떤 상황들을 한편으론 객관화 시키고 한편으로는 주관화 시켜 자신의 내면을 말하고 있음에도 남의 말 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샐린저와 닮았다. 칼리오페(또는 칼)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택하고 있지만 실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칼리오페를 만들어 낸 변종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있게한 주변의 환경들이다. 이 소설은 양성인간이 태어나게 만드는 유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소설이라해도 괜찮다.

엄격한 족외혼의 전통이 동성동본 불혼이라는 관습으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칼리오페의 존재는 엄청난 충격이다. 형제간에 태어난 자녀로도 모자라서 그 혈족(육촌)들이 다시 결합한다는 과정은 충격을 넘어서는, 아니, 충격이 과다하다보니 이제는 충격이랄 것 조차 없는 무엇인가가 된다. 게다가 서술자의 그 담담함이라니. 내 상식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해 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황당함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이 담담해져 버린달까.

할아버지 세대의 그리스 이민 초기의 사회상과 영화 언터처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던 금주법과 비밀 술집등 미국 개척기의 이야기, 포드 자동차와 디트로이트의 풍경,『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보여주던 고급학교의 어떤 모습과 그 사회와 문화, 당시 미국 10대들의 생활들이 잘 묘사되어 있는 책이다.

읽다보면 내내, 현대의 미국은 이런 것을 사랑하는(또는 그리워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랑하는 것에 상을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이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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