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토장이의 딸 - 하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인생이 나쁜 농담 같다고, 누군가의 나쁜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여자가 있다. '열셋에 죽을 운명이었던 사토장이의 딸' (하, 189), 레베카.
그래서 그녀는 인생을 당차고 책임있게 살아왔으나, 언제나 주인공은 아니라고 믿었다. 레베카 슈워트 라는 이름의 독일계 이민자 2세 여자의 삶을 마치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이 초연하게 담담하게 살았다. 나일리를 만났을 때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할 것임을 알았고, 나일리가 돌아왔을 때 이 남자를 떠나게 될 것임을 이미 알았다. 잔뜩 상처받은 작은 동물처럼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았지만, 떠나갈 때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각본을 미리 읽은 여배우처럼 어떠한 결말에도 놀라지 않을 태도로.
그러던 그녀의 인생에 균열이 생긴 건, '헤이젤 존스'가 누군지 알게 된 순간부터이다. 아주 안전해 보이던 그녀의 가면, 또한 누군가의 사랑과 축복일거라고 믿었던 그 이름의 실체가 밝혀진 순간, 그녀는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음을 알았다. 이젠 더 기댈 이름이 없다. 그녀만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은 그녀로부터 아프게 떠나갈 테고, 드디어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니고 누구의 어머니도 아니게 될 터였다.
'이제 네 자신의 삶을 살아. 네가 살아야 하는 삶은 네 자신의 것이니.'(407) 먼길을 돌아 그녀는 이제 제 자리에 섰다. 익숙했던 어느 호텔방에서 그녀는 들었다. '너, 너는 여기서 태어났어. 이 사람들이 너를 해치진 않을 거야.'(409) . 그래, 사토장이의 딸. 당신은 이제 사토장이의 딸인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