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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남편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6시이니, 두 시간을 꼬박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었나 보다. 이현과 이진의 만남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가끔씩 피식 웃기도 하다가 영혼의 기록 첫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사람이 가득한 까페의 구석 자리에서 마치 귓속에 물을 가득 채운 듯 까마득하게, 마치 두 눈이 뽑히기라고 할 것처럼 뜨겁게 그 기록들을 읽었다. 토토로에게 빌 소원을 생각하는 그녀 곁에서, 언제 이 밤이 끝나려나 하며 눈물 한 방울을 주르륵 흘렸다.
흐르는 눈물 사이로 영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슬픈 그녀, 이진을 보았다. 기록이 운명이 되어버린 사람의 적막함과 아픔을 보았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매일밤 그녀의 온몸을 들쑤시고 그녀의 가슴을 쪼아댔으리라. 이진, 그녀에게 마음이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지. 그녀의 생존을 위해 그녀의 종이 선택한 진화의 방법.
그런 그녀의 귓가를 살며시 간질이며 지나가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현의 사랑이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경박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밑도끝도없을 만큼 맹목적이며 몽환적이었던 까닭에 그 사랑은 어느새 이진에게 마음 비슷한 것을 욕망하게 했다. 이현이 영혼의 기록을 훔쳐봄으로써 사랑의 금기를 깨는 순간, 이진 역시 그의 생각에 눈물을 흘림으로써 운명의 금기를 깨버렸다. 마음이 생기는 순간 그녀의 기록은 끝이 났다.
나는 이현이 또다른 이세 공이 되어 버리고 말리란 걸 안다. 이세 공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녀의 딸을 증오하지 않으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의 관절 마디마디가 피를 쥐어짜내는 고통으로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사랑은 섬세하게 근육을 발라낸 골격 표본처럼 그를 야위게 할 것이며, 그렇게 이현의 연애는 끝이 나게 될 것이다.
기록의 운명은 매혹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록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그 기록이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아무리 은밀한 기록이라고 해도 그것이 기록인 이상 그 글자들 사이엔 읽히고자 하는 소망이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온통 나에 대한 생각, 나의 감정, 나의 번민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나는 기록이 동경이고 두려움이다. 도대체가 치기어린 감정으로 넘쳐나는 질척거리는 글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지긋지긋하면서도, 기록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동시에 타인의 글을 끊임없이 탐하게 된다. 무엇을 읽어도 결국은 내 얘기로 돌아오고야 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독서의 행위는 결국 내 욕망의 분출일 뿐. 어쩌면 이진의 마음을 빼앗아 간 건 나일지도 모르겠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 작가의 변,
세상의 모든 일이 모두 다 나의 어떤 부분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고질병 때문에 나는 텅 빈 백지 화면 앞에서 한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무언가 조금씩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326)
에서처럼 나 또한 세상의 모든 일이 모두 다 나의 어떤 부분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 고질병으로 먹먹한 책장 앞에서 한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무언가 조금씩 읽어가기 시작하는 게지.